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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47회 아벨의 후예 Ch 7. 선한 유대인 이야기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3.14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러한 감정과 별개로 그녀는 인간 대 인간으로 그의 큰 그릇을 순수한 마음으로 인정했다. 다만, 그것이 포기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지워주지는 못했다. 그녀는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감을 잊어 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그녀가 카이젤의 곁에서 부관을 자처했다면 거대한 부와 권력을 누리겠지만 당시의 그녀는 별로 그러기를 갈망하지 않았다. 상반된 방향의 소망을 위해 자신을 헌신할만큼 줏대가 없지는 않았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야. 너를 존경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겨보고 싶었어. 너는 나를 인정해준 사람이니까. 하지만 격차가 증명되니 한편으로는 씁쓸하네. 나도 이런 내 옹졸함이 슬프기도 해. 안타깝지만 그렇기에 너와는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아. 네 탓이 아니라 지극히 내 개인적인 문제니 섭섭해하지 마.”

   레리엔의 자조적인 고백에 카이젤은 심히 상심하였다. 지금껏 한번도 뜻대로 다루지 못했던 사람이 없었건만, 그녀만은 자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전설 속 파랑새와 같았다.

   그녀를 향한 감정의 정체. 카이젤은 그것을 명료히 인지하지 못하도, 바르게 판단하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하였다. 만유에 관한 지식에 능통한 초인들의 왕이지만 그런 그도 아이러니하게도 남들은 쉽게 누리는 평범한 사랑에는 미숙했다.

   차라리 눈 딱 감고 솔직히 고백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레리엔은 소꿉친구 시절부터 카이젤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라이벌로 여겼다. 그도 그녀를 이성이 아닌 대등한 존재로 간주해줬고 그녀는 이를 기뻐했다. 그런데 실력의 간극이 심하게 벌어진 지금 그녀를 향해 노골적으로 다른 태도를 드러낸다고? 오히려 레리엔의 심정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혹시 그녀는 카이젤이 그녀를 승리의 전리품처럼 여긴다고 오해하지 않을까?

   결국, 카이젤은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너를 다스리려 할 의도가 없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내어주겠다. 자치권을 원한다면 주겠다. 하대할 생각도 추호도 없다. 너를 언제까지고 대등한 파트너로 대우해줄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에 반드시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각자의 위치에 남되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과 도움은 중단하지 말자.

   그렇게 둘은 아슬아슬하게 친구로서의 관계를 유지했다. 카이젤은 내심 조심스레 특별대우를 해주며 그녀에게 마음을 내비쳤다. 들키지 않을 정도로 신중하게. 애매한 감정의 선이 둘 사이에서 이어져갔다. 사랑도 호감도 아니고, 친구도 애인도 아니며, 반려자도 협력자도 아닌 모호한 관계.

   둘은 상대방이 자신을 향해 품은 감정의 정체를 몹시 궁금해했지만,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았고 그것을 들춰볼 용기도 나지 않아 전전긍긍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두 사람은 사고력 수준이 높은 초인이었다.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과 사고력이 비비 꼬여 현란한 엉킴이 형성되었다. 카이젤은 레리엔으로 인해 만들어진 쓰고도 단 마음속 지옥 속에서 아등바등하며 해답을 찾고자 몸부림쳤다.

   “남녀간의 관계란 그야말로 해결되지 않는 숙제였어.”

   감을 잡을 수도 없는 고통.

   “형…….”

   윤혁은 신중히 경청하며 형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무척이나 아련하고 쓸쓸해 보였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복잡한 사정이었구나. 아직 연애다운 연애 한 번 못해본 윤혁으로서는 해줄 조언이 없어 더욱 안쓰러웠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난 사내로서 하자가 있었지.”

   그는 실망감 가득한 눈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결점을 직시하였다. 분명 그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가장 훌륭하고 근사하고 탄탄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겉보기에만 완벽할뿐 아니라 내구성이나 신체 능력 같은 질적 측면에서도 최강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유일한 하자는 더욱 두드러졌고 큰 비참함을 안겨주었다.

   “그렇지만 소년 시절엔 아직 다치기 전 아니었어?”

   “원래 결점투성이였어. 열등감의 근원이었지.”

   초인의 육체를 소유한 남성 초인은 본래 누구든 재생산 능력에 있어서도 압도적인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사실상 보편에 가까운 규칙. 유일하게 그만은 달랐다. 마치 그는 저주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발육의 심각한 결여가 그의 자존감을 괴롭혔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되기 힘든 현상이었다. 단순히 건강상의 이상이라기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나머지 부분은 훌륭하게 성장했으니까.

   게다가 그에게는 그 약점을 알고도 고치지 못할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사정이. 윤혁은 그 뒷사정을 형에게서 몇 차례 들었기에 그 수수께끼 같은 고충의 무게를 절감했다.

   요약하자면 이 수치스러운 약점은 그의 비밀 가운데 감춰져 열등감과 자신감 상실의 원인이 되었고 레리엔 앞에 다가갔을 때 자신도 모르게 축소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차마 남자로서는 그녀에게 나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와는 정반대의 이유로 고민했겠구나.’

   반대로 윤혁은 타인보다 몇 배 이상 강렬한 생리적 정욕과 투쟁하느라 고통으로 점철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부모님은 그에게 올바른 윤리를 가르치셨고 정결한 태도를 함양시켰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윤혁은 미세한 마음속 흔들림도 뿌리치기 위해 애를 써왔다. 인고의 경지에 다다르기까지는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완벽한 공감은 어렵겠지만, 형제로서 슬픈 마음은 들었다.

   “기운 내, 형.”

   “알았다.”

   둘은 슬픈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윤혁은 정작 궁금한 포인트를 향해 질문의 방향을 틀었다.

   “왜 아까 룻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본 거야? 혹시 알던 사이야?”

   확실히 그때 둘의 눈빛에는 뭔가가 있어 보였지. 윤혁의 질문에 상대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형의 눈에 조금 난처함이 깃드는 것을 보고 윤혁은 자신의 예상이 옳았음을 직감하고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말해도 돼.”

   그때 카이젤의 입이 열렸다.

   “기억이 떠올랐거든.”

   “기억?”

   “응, 잊고 있었던 기억.”

   해리 현상. 한 사람이 충격을 받아 특정 사건을 통째로 잊어버리는 심리 기제를 의미한다. 보통은 너무도 큰 트라우마를 받았을 때 나타나며 충격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 기억을 도려내 무의식 속에 감추는 원리이다.

   ‘형에게도 해리 현상이 일어난걸까?’

   분명 그에게는 딱 한 번, 잊기를 원할 만큼 큰 시련의 당함이 있었다.

   “역시 그렇다면.”

   “그래, 납치당한 직후 내가 어떻게 구출되었는지, 그 상세 과정에 대한 메모리가 삭제되었어. 고문 내용까지는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공간의 틈새가 열려 통상 공간으로 역소환되는 순간부터 며칠간의 기억은 상당 부분 지워져 버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은 조사해서 알긴 했는데 경험적 기억은 휘발되었지.”

   “그러면 지금은? 좀 기억이 되돌아왔어?”

   “부분적으로. 그때 에녹을 필두로 부하들이 개입해서 나를 되찾아오긴 했는데 하필 역소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었지. 음모를 꾸민 주역들이 몰래 방해 공작을 해놓았더라고. 그 탓에 이동 과정이 뒤틀려버렸지. 다행히 놈들의 손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낯선 곳에 오착륙하고 말았어.”

   통상 공간으로 빠져나오기 직전에 나노머신과 휴대용 의료 로봇들이 만신창이가 되었던 그의 몸을 조금 치료해주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납치 중에는 기계들의 도움과 분리되었으니 아마 빼내오는 과정에서 받은 외부 지원의 일부겠지.

   하지만 공간이동 과정의 오류로 인해 그 나노머신과 로봇들은 차원 틈새에서 튕겨 나갔다. 결국, 그는 맨몸으로 어느 숲 지대에 난시착하고 말았다. 아직 다 치료되지 못한 상태로 벌거벗겨진 채 내던져져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신음하며 사경을 헤맸지. 고문으로 온몸이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였거든. 내버려 뒀으면 죽었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나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어. 그 시간 내내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혔어. 사신인지 뭔지는 몰라도 어떤 어두운 목소리가 내 귀에 속삭이는 소리가 끝없이 들려왔어.”

   돌이켜보면 분명 그 시간은 일분일초가 처절했다.

   찢어진 전신의 상처로 피가 계속 흘렀다. 목은 탈 듯이 말랐다. 전신 근육은 파열된 탓에 아팠고 다발성 골절로 인해 관절 하나조차 까딱할 수 없었다. 온 몸의 피부에는 채찍질과 매질로 인한 깊은 상처가 남았다. 그 화끈거림은 정신과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다. 칼에 찔린 자상에서는 진득한 핏덩이가 꿀렁꿀렁 흘러나왔다.

   너무도 괴로웠다. 끔찍하게 괴로운데 지나치게 강한 정신력과 질긴 생명력 때문에 의식을 편하게 잃을 수조차 없다는 점이 더더욱 끔찍했다. 무방비한 상태로 적의 침범을 기다리는 그 현실은 절망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하게 괴로웠던 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 가장 잔인하고 지독하게 찢긴 살점 위에 가장 오래 지속되는 고통이 주홍글씨처럼 새겨졌겠지. 인간 본연의 가장 큰 수치심과 결부된 통증이었으니 더욱 괴로웠으리라. 안면근육이 차분함을 잃은 채 부르르 떨리는 광경에 동생은 재빨리 형의 진정시켜주고자 걱정스레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형?”

   “고맙다.”

   흥분으로 인해 맥압이 증가한 여파로 심장 소리가 거세게 들렸다.

   “기억을 잃은 그 블랙아웃 구간, 아마 그 동안에 2차 각성이 벌어졌던 것 같아.”

   “2차 각성이라면, 위버멘쉬로의 최종 활성화?”

   “그래, 그때 각성한 건 분명한 데 경험한 기억은 없었거든. 어쩌면 사경을 헤매는 것이 각성 조건이었는지도 모르지. 아마 자칫했으면 내 자아를 잃고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정황을 보니 극렬한 고통과 절망의 압축이 위버멘쉬로서의 재능을 각성시킨 모양이다. 윤혁은 그 범죄자들이 저도 모르게 얼마나 위험한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를 깨닫고 부르르 떨었다. 그들이 멋모르고 저지른 흉악한 범죄가 하마터면 인류 최대의 위협이 될 폭탄을 일깨워낼뻔 했다.

   “그런데 말이지.”

   카이젤의 기억은 이제 윤혁의 관심을 끌 중요한 대목에 이르렀다.

   “그렇게 다친 짐승처럼 신음하며 도살만 기다리던 중, 어떤 소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어. 눈앞이 흐릿해서 정확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오늘 레리엔의 옆에 서 있던 그 소녀의 얼굴과 같았어.”

   충격적인 고백에 윤혁은 얼이 빠진 채 당황하였다.

   “그게 룻, 그러니까 루디아였다고?”

   설마 그런 순간에 만난 덕에 구면이 된 건가?

   “하지만 그 시절의 룻은 고작 열두 살이었을 텐데?”

   “내 안면 식별 능력이라면 그 정도 나이는 보정 가능해.”

   “아니, 뭐 그건 형이 초인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그럼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데?”

   윤혁은 궁금증을 참기 어려웠다. 루디아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 진상에 관해 몹시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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