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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484회 아벨의 후예 Ch 14. 각자의 출발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19 | 회차평점 0 0

 

 

 

 

 

 

*

 

 

 

 

 

 

   12월 초반에 이르렀다. 반가운 손님이 윤혁을 맞이했다. 루디아였다. 아마도 레리엔으로부터 장기 출국 허가를 받은 모양이었다. 루디아는 윤혁을 만나자마자 반가움에 그를 푹 끌어안았다. 수줍어하던 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친근감을 표현하는 것은 드문 일인지라 윤혁은 얼굴을 붉히며 당황했다.

   “저기…….”

   “이야기는 다 들었어.”

   루디아는 귓속말로 속닥였다.

   ‘무얼 다 들었다는 걸까?’ 

   숨기던 걸 들킨 사람마냥 윤혁은 조마조마했다.

   “네가 먼 곳으로 떠난다는 소식, 그리고 네가…….”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련함과 슬픔이 담겨있었다.

   “위험한 짐을 짊어졌다는 것도 말야.”

   “네가 그걸 어떻게?!”

   윤혁은 화들짝 놀랐다.

   “네 형님한테서 다 들었어.”

   “형이 너를 끌어들였다고?”

   “사실은 그게 말이지.”

   루디아는 그 사이에 있던 일들을 솔직히 밝혔다.

   그녀가 커버넌트를 형성한 후 얼마가 지나자 계약 당사자인 카이젤이 텔레파시와 초능력 분신을 활용해 루디아에게 접촉해왔다. 그는 윤혁과 자신 사이에서 있었던 이식 실험 건에 대해서 간략히 알려주었다. 윤혁의 신체와 융합한 모종의 물체가 그를 불로불사의 상태로 만들었으며 나아가 외계행성에 흩어져 사는 우주 인류의 부적응 상태를 대신 짊어지도록 만들었다는 사실도.

   화들짝 놀라며 왜 그런 위험한 일을 벌였느냐고 묻자 카이젤은 잠깐의 침묵 후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는 이렇게만 대답했다. 윤혁 스스로 사람들을 살리기를 원했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루디아는 당황한 심정으로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미안합니다, 제수씨. 안타깝지만 되돌이키진 못할 겁니다.”

   “윤혁이가…….”

   “그래서 제수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회를 얻은 카이젤은 그때다 싶어 커버넌트 오브젝트에 내재된 힘에 관해서 설명해주었다. 다른 경우와는 조금 다르게 루디아의 오브젝트는 본인의 육체 그 자체였다. 똑같이 변화를 겪었다지만 알트루즘을 이식한 윤혁과는 다르게 루디아의 경우에는 아무런 신체 특성 변화가 없었다. 대신 딱 한 가지, 그녀에게 획득된 능력이 있었다.

   “레리엔의 커버넌트 오브젝트는 그 특성상 그녀의 영토를 시간의 침식으로부터 보호합니다. 비슷한 원리로 제수씨의 오브젝트는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신체를 안정화할 수 있습니다.”

   카이젤은 진작 루디아가 동생을 짝사랑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안배를 들어뒀다. 루디아와 커버넌트를 맺을 때 이러한 보호 능력을 생성하도록 오브젝트의 구조식을 유도 조정했다. 그녀 자체를 오브젝트 삼은 데도 이런 이유가 있었다. 사람의 몸이 직접 오브젝트 역할을 수행하면 깊은 유대감을 지닌 사람을 보호하는 능력을 형성하는 데 유리하니까.

   “그러면……, 제가 윤혁이의 곁에 있어 주면 되나요?”

   “그렇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제수씨가 원하는 대로 하세요. 사실 내버려 둬도 윤혁은 죽지도 다치지도 않을 겁니다. 다만 겪는 고통의 양과 무게는 조금 달라지겠죠.”

   이어서 카이젤은 또 하나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레리엔의 경우와는 달리, 루디아가 새로 얻은 힘은 완벽한 중립적인 속성을 띠기에 루디아 본인의 정신력과 영적 성향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그 능력 위에 그녀만의 색채를 첨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제수씨가 간절히 지키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최적화될 겁니다. 앞으로 발전되어 나아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보면 됩니다.”

   카이젤은 특유의 그 통찰력으로 상대의 심리를 읽어내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

   루디아가 선택지를 누르는 데는 그리 긴 갈등의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그녀는 윤혁 곁에 끝까지 남기로 곧장 결심했다. 그의 어려움을 곁에서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이 부분에 대해 레리엔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가씨, 미안해요. 저는 윤혁이의 고통을 내버려 둘 수 없어요.”

   “……루디.”

   레리엔으로서는 이것이 썩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이렇게 또 제멋대로 행동하게 돼서 정말로 미안해요.”

   레리엔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매와도 같은 아이를 사지로 내보내려니 마음이 쓰였다. 루디아에게 가벼이 포옹을 베풂과 동시에 슬쩍 진실에 관하여도 캐물었다.

   ‘그랬구나. 카이가 계약에 대해 이런 식으로 대응할 줄이야.’

   레리엔은 쓰린 분개를 삼켰다. 감히 내 주위 사람을 다시금 일에 휘말리게 만들다니. 그의 꿍꿍이를 알면서도 대항할 힘이 없는 현실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이 물건들의 사용법을 알려줄게.”

   대신 레리엔은 루디아에게 많은 보물을 챙겨주었다. 그것들은 진과의 기술 교류를 통해서 그녀가 만들어낸 첨단 발명품들이었다. 수량이 워낙 희소해 꽁꽁 아껴두었었지만, 루디아를 위해서라면 인심을 베풀 수 있었다.

   “너나 강윤혁 군이 위험해지면 요건히 사용하도록 해.”

   “고마워요, 아가씨. 역시 아가씨 실력이 최고예요.”

   루디아의 애교 섞인 감사 인사에도 레리엔은 썩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윤혁은 이런 사연이 있었음을 전해 듣고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난 이미 결정을 굳혔어. 네가 내쳐도 난 듣지 않을 거야.”

   루디아는 자신을 만류하지 말아달라며 강권적으로 나섰다. 윤혁은 내심 감동 받았는지 마음이 뭉클했다. 사지에 들어서도 함께하겠다는 친구라니. 이런 인연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책임감에 부담스러웠다.

   “괜찮겠어?”

   “잊었어? 나 또한 너와 함께 하늘도시 곳곳에 도사리던 위험과 맞서 싸웠잖아. 날 마냥 연약한 여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줘.”

   “네 용기를 무시하려는 게 아니야. 하지만 이번 일은 지난 두 차례의 여행처럼 선명하게 눈에 띄는 어떤 거룩한 사명을 담은 일이 아니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루디아는 윤혁의 눈을 응시하며 반문했다.

   “나도 전말은 대강 전해 들었어. 사람들을 살리겠다고 나섰다면서. 난 종교적인 임무만 거룩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방식이 무엇이건 네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임무야. 지금의 난 비록 너처럼 그런 큰 역할을 맡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너의 아픔 정도는 지켜봐줄 수 있어.”

   “룻.”

   “더는 반대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간곡한 부탁에 윤혁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사실 난……, 내가 옳은 선택을 내린 것인지 확신이 안 서.”

   자기 몸을 망가뜨려 가면서까지 희생하는 게 옳은 일일까? 그의 몸에 심긴 알트루즘, 그 초지능체의 일부분이 혹 자신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형의 악한 마음과 멍에를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최악의 경우, 나중에 형이 ‘그 존재’로 각성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나님께서 내 선택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실까? 혹은 치기 어린 실수라고 여기실까? 그분께 직접 듣지 못한 탓에 마음이 여러 차례 흔들려왔다. 여러 고민이 내내 윤혁을 괴롭혀왔다.

   “공감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커버넌트를 체결할 때 루디아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과연 이방 민족과 더불어서 계약을 나누는 일이 옳은 일일까. 구약 성경은 유대인들을 향해 언약을 조심할 것을 요구하였다.

   물론 고대 가나안 정복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에는 유대인 측에서 어떤 불리한 조건을 지키도록 강요받거나 우상숭배에 동참하도록 유도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심 거리낌이 들었던 건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인류연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말로 성경적 기준에 따라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는 쉽게 자신하기 어려웠다.

   “주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주관하시기는 하지만, 상세한 지시사항을 일일이 알려주시기보다는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시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네 말대로야. 답답한 심정도 들어.”

   둘 모두 자주 체험해본 바였다. 때때로 그분의 뜻을 미리 알지 못해서 전전긍긍해 하던 경우도 얼마나 많았던가. 기도를 통해 뜻을 구해봐도 예스 혹은 노라고 대답해주시지는 않는다.

   “명확하게 죄악과 거룩함이 구분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중립적인 선택지들에 관하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주시는 아버지시지.”

   원칙은 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 하지만 인간의 지혜는 제한적이기에 실수는 언제든 발생한다. 때로는 어떤 가치가 더 선하고 올바른지 구분하기가 너무 애매한 경우도 잦다. 처음에 옳았다고 여긴 일이 되려 실패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어쩌겠어. 우리가 유한하고 연약한 것을.”

   “그러니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아.”

   루디아가 제안하는 바는 그 실패를 무서워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 삶에 그분의 명령을 적용하면 그것으로 충분해. 그러다가 우리가 모자라서 혹여라도 실수하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겸허한 마음으로 책임을 받아들이면 돼.”

   그녀는 위축된 윤혁의 어깨 위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과거의 선택에 실수가 포함되었다 해도 어쩌겠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앞으로의 선택에 더 신중을 기하면 돼. 분별할 수 있으면 의로운 길을 택하고, 분별이 어렵거든 기도로 뜻을 구하고, 정 다급한 선택이 불가피하면 결과에 대해서는 그분께 맡기면 그만이야. 실수마저도 합력해서 선으로 이뤄주시도록.”

   루디아의 지혜로운 대답이 윤혁의 가슴에 한 글자 한 글자 유리 조각처럼 박혔다. 저 친구는 왜 이리도 현명한 걸까. 지식을 많이 얻는다고 저런 지혜를 터득할 수는 없을 텐지. 문득 에드레이에게서 여러 신앙 지식을, 카이젤에게 온갖 세상 지식을 주입받은 자신이 그런 것 하나 없는 루디아보다 훨씬 더 미숙하고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스럽네.’

   이십 대 후반이니 당연히 어른스러워야겠지만, 확실히 루디아는 나이에 비해 정신적 성숙을 빨리 겪은 편이었다. 레리엔 같은 강하고 듬직한 어른 앞에서는 나름대로 어리광도 부리고 어린 모습도 보이지만, 공동체 식구들이나 동료들에게는 늘 의연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윤혁은 자신도 그녀가 아이 같은 순수함을 드러내도 될 듬직한 기둥이 되어주고 싶었다.

   “잠시만.”

   루디아는 그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둘의 피부가 닿자 순간적으로 윤혁의 심장에서 강렬한 반응이 일었다. 생리적인, 혹은 물리학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뭐지?’

   알트루즘이 차원 이면의 영역에서부터 에너지를 생성하더니 윤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좌표까지 광역 정보 파동을 발산하였다. 그와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결계 가닥들이 루디아에게서 나와 윤혁의 몸으로 파고드는 감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생체 리듬의 안정화 속도가 증가하였다.

   “너 혹시…….”

   “여기서는 잘 와닿지 않겠네. 하지만 네가 아플 때면 큰 도움이 되겠지.”

   알트루즘과 커버넌트 오브젝트의 공명 작용이었다. 두 물체는 궁합이 좋은 지 빠른 속도로 서로를 안정시켰다. 알트루즘 탓에 윤혁의 몸으로 흡수되는 인류 불확정성과 데미지가 빠르게 상쇄되었다. 편안한 감각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이젠 내가 너를 보호해줄게.”

   “…….”

   “그러니까 이제는 내 도움을 거절하지 말아줘.”

   루디아의 그 부드럽고 솔직한 목소리에는 저항할 수 없는 강한 권능이 담긴 듯했다. 윤혁은 봄날 향기 같은 그 힘에 붙들려 긴장감을 놓아버렸다. 혼란스러웠던 심리적 풍파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넌 정말, 항상 예상 밖이구나.’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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