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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25회 아벨의 후예 Ch 26. 지구 해체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9.26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누가 어떻게 기대하건, 상관없이 곧 선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로스트엠페러들을 제외한 섹터장들에게는 비교적 제한된 권한만 주어졌다. 그들 중 몇몇은 개입을 포기했다. 다른 이들은 작은 개입을 얹어 그래프에 변동을 일으켰다. 게임 전개와 함께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었다.

   이어서 강력한 힘을 지닌 초인들, 로스트엠페러들이 개입할 차례가 되었다.

   {신수왕(神獸王), 일라이저 1세, 회답합니다.}

   {그는 앵글로섹슨 족속에 불이익을 던져주었습니다.}

   일제히 요란이 일었다. 거짓말! 자신을 낳게 해준 자신의 모국 민족을 제일 먼저 공격한다고? 제정신인가? 그는 자신의 동족들을 버릴 작정이란 말인가? 상식을 넘어선 행보였다.

하지만 앵글로섹슨 족속이 어안이 벙벙한 사이 다른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요정왕(妖精王), 마리아 살바도르의 회답입니다.}

   {그녀는 ‘라틴’ 족속에 불이익을 던져주었습니다.}

   남미 지역에는 적막 가운데 불분명한 혼란과 공포가 확산되었다.

   {인형왕(人形王), 샤오 윤윤의 답변입니다.}

   {그녀는 한(漢) 족속에 불이익의 점수를 던져주었습니다.}

   중국 지역에도 패닉과 혼란의 불꽃이 일었다.

   {마도왕(魔道王), 지그문트의 회답입니다.}

   {게르만 족속, 슬라브 족속에 불이익을 던져주었습니다.}

   에우로페 제국 지역도 혼돈에 잠식되었다.

   “내 선택도 똑같아. 안타깝지만 지도자로서 솔선수범해야지.”

   태양을 삼킨 늑대도 조용히 북미의 원주민들을 지목했다.

   “우리도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만 그랬지 전혀 심심(深心)해하는 애도의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솔선수범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옳았다.

   지구 시민들의 수호자였던 그들은 일제히 합심하여 자기 출신 민족을 제일 먼저 쫓아내겠다는 의지를 기필코 표명하였다. 한마디로 낡을대로 낡은 민족이라는 이름의 구분 시스템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태양을 삼킨 늑대는 달 방벽을 지키는 쿠에시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넌 어때?”

   “동료들과 같은 선택이다.”

   쿠에시도 역시 당연하다는 듯 아프리카 흑인 족속을 지목했다.

   의지할 것이 사라진 지구 원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태반 이상이 낙심하여 지구에 미련을 접었다. 그들은 최대한의 이익을 챙겨서 우주로 떠나가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허나 얄궂은 인류연합은 이들이 경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포기하는 걸 차단할 작정이었는지 지구를 떠난 뒤의 일들과 그 계산의 중요성도 분명히 알려주었다. 먼저 모든 인간은 지구를 절실히 갈망하게 된다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또한 치열한 경쟁을 거쳐서 승리하지 않는 한 되돌아갈 기회가 영영 없게 되리라는 사실도.

   마침내 화룡정점으로서, 메시지가 하나 더 당도했다.

   VVVVIP였다.

   {인류연합 대표와 부대표께서도 한번 개입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마스터? 그리고 아담즈 씨가?”

   태양을 삼킨 늑대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네. 책임자인 당신이 알아서 허락하든 말든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뭐, 아니 내게 무슨 권한이 있다고. 황제 폐하께서 꿇으라면 꿇어야지. 마음대로 하시라고 전해.”

   태양을 삼킨 늑대가 허락하자마자 유창한 일본어 목소리가 전 지구에 울려 퍼졌다.

   “공정한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번 지구 해체 프로젝트는 인류연합 모두가 책임질 일입니다. 저 역시 손이 깨끗한 척 뒤에서만 구경하지는 않겠습니다. 만일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연대 책임을 지는 편이 옳겠죠.”

   딱딱하고 사무적인 그 어투에는 고지식함이 잔뜩 묻어나왔다. 그 태도는 로스트엠페러들의 심술궂은 변덕성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그렇다고 친절이나 자비와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

   “부대표로서의 책임을 지는 의미로, 저는 제 생물학적 아버지의 요람, 일본에 거주하는 야마토 민족을 비롯한 다섯 일족에게 불이익을 부여합니다.”

   구 일본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아니, 그전에 그들이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동포가 우주 전역의 세계단일정부의 2인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당황하든 말든 그들의 운명은 계속 선포되었다.

   “이로써 그분의 동포들이 받을 적법한 정의가 베풀어지게 되었군요.”

   에녹은 이미 자신의 뿌리인 친부 쥰에 대해 나름의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사이코메트리 기술과 역사 관측 기술까지 존재하는 현 시대에 딱히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그는 과거 쥰이 부당한 이유로 일본에서 추방되어 한국 땅을 거쳐 각국을 돌아다니며 고생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 정부가 쥰을 핍박한 것도 모자라 그 가족들까지 해쳤다는 사실까지도.

   “내 아버지를 핍박하여 외국으로 내쫓은 일에 대한 대가입니다.”

   “원리원칙주의자 답지 않군. 사적 감정 개입이라니, 친구.”

   에녹의 말에 이어 다른 거대한 음성이 시공간 위를 범람하였다. 데시빌이 크진 않았으나 사람들의 귀와 뇌 세포 위에 진한 존재감을 새기는 두려운 음성이었다. 하늘이 무너질듯한 무서운 공포가 텔레파시를 통해 전송되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지구 원주민만이 아닌 우주 인류까지도 본능적으로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 대화하는 말이긴 한데 말의 내용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보안이라도 걸 린 것처럼 말이다. 딱히 낯선 언어로 된 것도 아니었다. 각 사람의 귀에는 분명 그 사람의 모국어와 공용어가 들렸다. 그러나 이해되는 현상 자체가 뇌 세포 내에서 금지된 듯했다. 천둥 같은 음성의 느낌만 인지되었다.

   “위버멘쉬께서도 선택하시겠습니까?”

   “선택이라, 민족이라는 단위를 해체하자고 주장한 것은 이 몸이니 나 역시 너처럼 책임을 져야겠지.”

   “원 지구인들에게 해명하실 부분은 없습니까?”

   “해명? 누구에게?”

   “저들은 속으로 불만이 몹시 있어 보입니다만.”

   부대표와 대표의 여유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사람들이 듣기에는 인간 목소리와 천둥소리가 번갈아 교차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 위세에 다들 몸을 웅크리거나 납작 엎드렸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위버멘쉬…….”

   “지금껏 편의를 봐준 것만 해도 특혜가 아닌가? 우주 인류가 타임필드 내부에서 얼마나 긴 세월을 인내했는지를 안다면 유구무언이 되겠지. 그 전에 이 행성이 자신들만의 소유라는 착각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군.”

   “하긴 현 우주 인류에게도 지구 시민으로서 지원할 동등한 권한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실력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데 대한 일관성 있는 명분이 세워질 테니까요.”

   결국 얼마나 더 냉담하냐의 차이이지 둘의 의견 차이는 없었다.

   “그럼 별 의미는 없지만 나도 불이익을 받을 이들을 하나 선택하지.”

   현재 카이젤의 텔레파시를 천둥의 형태가 아닌 온전히 이해되는 인간 대화의 음성으로 인지하는 원주민이 딱 한 명 있었다. 이어지는 카이젤의 메시지는 그 수신자를 향해 대화하듯 던져졌다.

   “예상했겠지만 에녹과 마찬가지로 나도 내 아버지의 동족들을 축출하는데 한 표를 던지지.”

   그는 이것으로 선언을 마무리했다.

   ‘아버지를 내버리고 감옥에서 학대했던 이들도 대가도 치르고, 일거양득으로군.’

   성한의 가슴은 덜컹 내려앉았다. 그가 이 순간 두려워하는 대상은 아들이 아니었다. 힘없이 무릎을 꿇은 그는 신을 경외하지 않고 이 괴이한 일을 서슴지 않고 벌인 아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를지 몰라 두려웠다.

   “재혁아, 얘야. 오오, 주님, 부디 용서를…….”

 

 

 

 

 

 

 

 

*

 

 

 

 

 

   이제 이레귤러들의 전면 개입은 선택 사항이 아니게 되었다. 몇몇은 이렇게 주장했다. 자신들이 저울추 노릇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개입의 양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한다면 조금 전 인류연합 지도자들이 던져놓은 형벌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외침과 기대는 현실성 없는 몰지각한 소리였다.

   이미 불안정했던 균형에는 균열이 생겼다. 지금 억지로 교정하려고 개입을 시도하면 되려 더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게다가 그래프의 변동 현상이 거듭되면 그래프 막대의 색채, 질감 등의 변수에는 어떤 영향이 갈지 모른다. 더욱이 후보자들끼리의 견해차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후보자마다 결론으로 내린 최적의 균형점이 각자 다르겠지.’

   이윽고 후보자들간의 불화를 더 거세게 지필 장작이 던져졌다.

   통일시스템은 정신 간섭을 통해 며칠간 후보자들이 배워왔던 지구 역사에 대한 지식을 다시금 뇌리에서 재현시켰다. 그 위에 추가 정보도 업로드되었다. 날조된 것이 아닌 매우 객관적인, 역사 관측 기술로 측정한 실제적이고 올바른 정보였다.

   ‘이건?’

   지구의 여러 민족들이 벌여온 온갖 흑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모두가 감추고픈 추악한 모습들, 역사 속 죄악의 현장, 그 생생한 정보가 실제 장면처럼 후보자들의 뇌리를 파고들었고 여기에 더해 피해자들의 감정도 주입되었다. 이내 많은 후보자가 격분하였다. 지구 모든 민족들을 향한 의로운 분노가 일었다.

   {여러분이 판단하시죠. 어떤 민족이 가장 먼저 축출되어야 마땅하겠습니까?}

   {어떤 집단이 쫓겨나면서 가장 큰 불이익과 냉대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시스템은 반복적으로 이레귤러들을 몰아세우며 세뇌하였다.

   {당장 객관적인 판단을 내어놓으라, 게으르고 느린 배심원들이여.}

   그 시각, 태양을 삼킨 늑대는 자포자기에 빠진 지구 원주민들을 향해 일대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는 약 올리듯 선포했다. 마음껏 와라. 와서 변론하자. 지구로부터 그대들이 축출되는 것이 왜 불합리한지 항변해보아라. 혹 내 민족, 내 나라만큼은 이곳에 남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면 이 또한 변증해보아라.

   텔레파시 네트워크가 개방 토론 모드로 변환되자 곳곳에서 훌륭한 철학으로 무장한 지식인들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최상위 초인이자 인간을 넘어선 정신을 소유한 태양을 삼킨 늑대에게는 일개 한 줌 조무래기에 불과했다. 그는 즐겁게 변증법을 늘여놓으며 상대를 무참히 짓뭉갰다.

   ‘역시 민족 해체는 시의적절한 선택이었어.’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와 대등하거나 더 뛰어난 이들은 모두 초인이었고 전부 그와 한패였다. 인류연합 소속이야 말할 것도 없고 성녀마저도 지구 해체에는 사실상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반역자 두 인간은 이 자리에 없다. 하물며 일개 일반인 따위가 어찌 감히 최상위 초인을 상대로 이기겠는가.

   바로 그때.

   “제가 개입해도 되겠습니까?”

   ‘뭐?’

   내내 의기양양했던 초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일그러졌다. 익숙한 느낌의 텔레파시가 뇌리로 스며들었다. 이윽고 늑대 앞에 불꽃 같은 것이 일렁거리더니 인간 형상으로 빚어졌다. 이 특유의 아바타 기술은 그에게도 익숙했다. 상대는 그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대단히 곤란한 상대가 나타났군.’

   민족 정서 때문인지 특히나 태양을 삼킨 늑대 자신에게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연약한 자들을 상대로 거둔 승리를 자축해서 무슨 보람이 있으시죠?”

   “당신은…….”

   “언제부터 당신들의 긍지는 그토록 저열한 수준으로 전락했습니까?”

   화려하면서도 고귀한 미녀의 형체가 생성되었다. 그 어떤 천상의 꽃보다도 아름다운 얼굴, 은을 녹여 담은 정금을 가늘게 뽑아낸 듯한 찬란한 머릿결, 대장부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용감한 기백, 그리고 상대를 제압하는 선선한 눈빛까지.

   “고귀하신 레이디께서 어인 일로?”

   “바깥이 시끄러워서요”

   섬의 여주인, 레리엔 로즈가 정적을 깨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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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초인들에게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런 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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