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27회 아벨의 후예 Ch 27. 반셈족주의의 종말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04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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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종족들의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그녀는 화제를 돌려 인류연합의 위선을 지목했다.
“듣기로는 그들에게는 자의식과 감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과 거의 유사한 정신을, 웬만한 동물 이상의 인지 체계를 갖춘 무수한 종족들이 인류의 노예가 되어 존엄성과 생명권을 완전히 박탈당하는 중이라 하던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겪었던 부당한 침탈이 인류연합의 행태에서도 비슷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감히 자신하시는지요?”
“비논리적인 비약이군요. 북미의 원주민과 앵글로섹슨의 침탈자는 같은 종족이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이뤄진 차별은 도덕적인 부패로 간주되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종족은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그저 우리가 만들어낸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자의식 또한 우리의 발명품에 불과하죠.”
“그것이 무자비한 약탈과 가혹한 처우를 정당화시킨다고 보십니까? 인간과 비슷한 존재들을 향한 인간의 태도는 결국 인간을 향한 그들 마음 속 태도를 보여주는 시금석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인류연합의 지도자들의 그런 본색이 지금 같은 인간들을 향한 심판자로서의 태도에서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 같군요.”
“어디서부터 정정해야 할지 막막하군요. 먼저 우리는 이종족들을 향해 가혹한 처우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마스터께 자유의지로 봉사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여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비저블 마인드의 완성 이후로 이종족들은 정말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온 태도로 자신의 존재를 인류를 위해 희생하게 되었으니까. 그것을 자유의지로 인정해도 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태양을 삼킨 늑대 본인부터가 각종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종의 기원’ 개념을 구축해낸 장본인 중 하나였다. 레리엔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사 인간들을 향한 가혹한 학대, 그 행태의 물꼬를 튼 주역이었다.
실제로 여러 이종족들이 그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산물들은 에녹의 손을 거쳐 의해 가공되었고 끝내는 카이젤과 그의 일부인 인비저블 마인드에 복속되었다. 한 마디로 현재는 인류의 노예 신세가 되었다. 우주를 개척하는 고역스러운 노동을 감당하고 그 열매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바치는 불쌍한 노예.
부당하게 침탈당한 네이티브 아메리칸과 침략해온 앵글로섹슨 족속.
만들어진 인공생명체인 이종족과 그들의 주인인 인간.
지구 원주민과 우주 인류의 조상, 그리고 지구로 되돌아온 우주 인류의 후예.
이렇듯 과거의 그림자들과 현재는 미묘한 교차로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를 거울로 비추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예시. 과연 도덕의 절대적 기준선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깊어진 토론은 윤리적 딜레마의 자아내며 미궁 속으로 빠졌다.
인디언이 백인들에게 본토를 빼앗긴 것이 부당한가? 그러면 우주 인류가 오랜 세월 지구를 차지해온 원주민인 지구 인류를 몰아내는 것은 과연 합당한가.
하지만 이 두 경우가 평행선 상에서 비교할 수 있긴 한 것인가? 고향이 다른 두 민족과는 달리 우주 인류와 지구 인류는 둘 다 지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권리로 따지면 양쪽 모두에게 지구 시민권이 있는 셈이다. 그 증거로 기나긴 세월 내내 우주 인류 구성원들은 무의식중에 항상 지구를 그리워했다.
창조주께서는 각 민족의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오로지 지구만을 인류의 고향이자 각 민족의 거주지로 정하셨다. 하늘도시와 같은 우주 식민지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술로 개척해낸 번외의 영토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각 민족이 자신의 본토를 추구하는 일이 합당한 일이듯, 우주의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지구로 회귀하고자 갈망하는 욕구도 정당한 욕구가 아닌가.
대단히 복잡한 문제였다. 원래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을 경우의 수였다. 하지만 불가능하리라고 여겼던 우주 개척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아울로 그로 인해 지구라는 제한된 땅이 도저히 포용할 수 없는, 수천 해(垓) 단위의 인구가 형성되면서 벌어진 딜레마였다.
다시 역사 속의 사례로 돌아가서, 본래 미합중국을 세웠던 그 백인 이주자들은 영국 땅을 벗어나 드넓은 땅을 개척하려던 이들의 후예였다. 그 풍요롭고 넓고 자유로운 땅에 매료된 이주자들은 이내 칙칙하고 비좁은 영국 본토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그들은 과감한 투쟁으로 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 뒤에는 본인들의 종교적 신념에 위배되는 침탈까지 억지로 정당화해가면서 인디언들로부터 땅을 빼앗아 향유했다. 그 역사는 명예로움과 선, 그에 대비되는 불명예와 악이 함께 버무려진, 흑역사와 자랑스러움의 혼합물이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우주 인류의 개척의 역사와 유사하기도 했다. 지구라는 좁디좁은 본토에서 벗어나 거대한 우주로 진출한 우주 인류. 그들은 결국 살아남았고 많은 우주를 취했으며 개척하고 번성하였다. 이종족과 인공지능들을 노예로 부렸고 우주의 자원들을 독점했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하지만 영국에서 떠난 이주자들과 지구에서 떠난 이주자들 사이에는 차이점들이 뚜렷했다.
우선, 영 왕실로부터 독립을 얻은 미국 백인들과 달리, 우주 인류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이젤 라흐블뤼크라는 황제의 철저한 지배 아래 종속되었고 장차 빠져나올 가능성도 요원했다.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영토가 넓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독하리만큼 유능한 전제군주는 일말의 틈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QUASAR-II와 테서렉트 아키텍쳐 같은 건축물까지 지어졌으니 앞으로 우주 인류의 목줄은 더욱 조여질 것이 자명했다.
또한 미국 땅을 고향으로 삼아 눌러앉은 백인과 달리, 우주 인류는 나름대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늘 지구로의 회귀 본능에 굶주려있었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 되었다. 이것은 창조 질서 때문이었다. 인간이 본래 땅을 밟고 살도록 창조된 탓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점은 인류연합으로 하여금 우주 인류를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강대한 우주 제국은 2등 시민들 사이에서 경쟁을 조장하였고 이를 통해 그들이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개로 남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백인이 인디언을 약탈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지탄을 불러일으킨 것과는 달리, 인류의 이종족 착취는 누구도 마땅히 내세울 불만이 없었다. 최근 인비저블 마인드까지 개발되면서 이러한 착취 구도는 지당한 자연적 이치로서 새로이 자리잡았다. 영혼조차 없는 인공생명체와 인공지능의 존엄성을 누가 신경쓰겠는가.
어쨌건 태양을 삼킨 늑대와 레리엔의 변증적 토론은 깊은 미궁으로 접어들었다. 둘은 슬슬 몸풀기를 끝내고 담론에 돌입했다. 통일시스템은 둘의 담화를 지구 원주민들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단 불필요한 정보는 걸러내었다. 실시간 방송이기는 했으나 누출의 위험은 없었다. 통일시스템에도 탁월한 예측 예지 기능이 탑재된 덕이었다. 그것은 그 기능으로 레리엔과 태양을 삼킨 늑대가 미리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부적절한 부분이 나올 것을 감지하고는 미리 유려하게 가공해버렸다. 진정한 의미의 악마의 편집이라 불릴 만 했다. 대화의 원본 맥락을 온전히 아는 것은 당사자 둘뿐이었다.
사람들은 이 현란한 토론에 숨 죽이며 주목하였다. 조금 전까지는 손쉽게 논객들을 짓밟던 태양을 삼킨 늑대가 레리엔을 상대로는 밀려나는 듯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내심 몇몇 사람들은 부질없는 희망을 품었다. 카이젤이 예측한 대로였다.
레리엔은 애초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둔 현자였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이는 드물었다. 그래서 어디에선가 튀어나온 낯선 이의 극적인 개입은 지구인들 입장에서는 구원투수처럼 느껴졌다. 어떤 관찰자들은 세계정부 내부에도 나름대로 올바른 관념을 지닌 선각자가 남아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통일시스템의 마인드컨트롤 기능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여 어리석게 만드는 바람에 어느 누구도 인류연합과 그 수장을 향해 의심의 칼날을 휘두르거나 그를 미워할 생각은 아예 기미조차 품지 못했다.
*
치열한 변증 대결이 한창 전개되는 동안, 또 하나의 무대에서는 흥미로운 볼거리가 열리는 중이었다. 바로 이레귤러들의 경기였다. 그들 사이에서도 분열의 조짐이 불거졌다.
이미 그래프의 안정성이 붕괴되었기에 그들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원래 의도대로 가만히만 있어서는 되려 아무 유익도 없으리라.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이레귤러들 사이에서 의견이 합치되지 않았다. 그야 111명 각자 도덕적 판단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 사이에서조차도. 실전 윤리 적용 방식은 천차만별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레귤러들끼리의 유일한 통신책인 텔레파시 네트워크도 실상 독이 든 잔이나 다름 없었다. 그 통신망은 통일시스템이라는 마스터에 의해 정밀하게 조정되는 중이었다. 이로 인해 이레귤러들은 서로 대화는 할 수 있었으나 마음의 의도를 온전히 전하는 데 범위가 제한되었다. 그 탓에 서로를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불신은 ‘죄수의 딜레마’를 더욱 격증시켰다.
이레귤러들끼리의 대화와 논의는 외부 세계에 대놓고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보자들이 지구 원주민들의 운명을 건 상벌의 그래프에 개입하는 순간,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윤리적 기준는 세상 만방에 분명히 공개될 것은 분명하다. 당연히 그 판단이 신앙에서 근거한 것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적 가치에서 도출된 판단도 예외는 없으리라. 그리고 그 판단은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극렬한 증오심을 일으키는 분노를 유발하리라.
다시 말해서 사실상 이 무대는 독이 든 사과였다. 그 어떤 판단을 벌여도 기독교의 이름으로 시행된 가치 판단과 그 기초가 되는 신앙의 가치관이 지구의 민족들에게 비난과 정죄와 미움을 받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대 로마의 공개적인 핍박이나 중세의 타락보다도 더욱 지독하고 교활한 전술이었다. 인류연합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모든 책임은 오로지 기독교인들에게만 씌워질테니까.
“우리가 모르는 다른 민족들을 우리 기준대로 정죄해서는 안 돼.”
넘버 3가 흔들리고 분열되는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다급히 후보자들에게 외쳤다.
“그래, 이봐! 기억해! 우리의 판단이 곧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올 거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판단을 받을 것이요] 라고 하셨지!”
넘버 19가 힘을 실어주기 위해 외쳤다.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때 시스템이 새로운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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