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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46회 아벨의 후예 Ch 31. 인본주의와의 타협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1.21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형은 혹시 하늘도시와 외계행성의 차이점이 무엇인 줄 알아?”

   “뭔데?”

   “하늘도시란 말하자면 ‘제로원’의 아바타와 같아. 제로원은 지구혼과 결합된 인공 축조물, 즉 지구의 수도이지. 그러므로 하늘도시는 지구혼의 아바타이자, 지구혼의 속성을 원격으로 공유받을 수 있는 분신이지. 그렇기에 Upol은 제로원에 철저히 종속된 의존형 구조물이야.”

   마치 인간도 인형 몸체와 연결되어 아바타를 부릴 수 있는 것처럼 제로원도 하늘도시라는 이름의 분신들을 거느리고 있단다. 그 개수가 제한이 없어 무려 1조 개를 가뿐히 넘는다는 것이 인간과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지만.

   “지구혼? 그 부분이 그렇게 중요한가?”

   이에 수현은 지구혼의 중요성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구라는 행성이 온전한 생태계 균형과 내부 자정 작용을 유지하는 데는 지구혼의 영향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즉 하늘도시, 아니 지금의 Upol도 지금처럼 완벽한 환경 조건을 유지하려면 외부 자원이나 에너지의 공급 못지 않게, 지구혼과의 공명이 절실히 필요하다.

   “반면에 외계행성은 Upol과 달리 자신만의 행성혼을 따로 소유하고 있어. 이것을 지구혼과 똑같은 속성으로 바꾸는 일이 중요하지. 물론 테라포밍으로 어느 정도는 환경 정화가 가능하지만, 그 작업을 한다고 행성혼 성질이 바뀌진 않아. Upol처럼 지구혼과 연결시키는 것도 불가능하고 말이야.”

   그래서 Upol과 달리 외계행성들은 혼 자체를 개조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 경우는 인간으로 비유컨대 조종형 인형보다는 인격 복제형 디지털 클론에 가까웠다. 인간의 정신 데이터를 디지털 상에서 복제하여 구현해내는 일은 가능하나 어디까지나 본체와는 엄연히 다른 복제품이 만들어질 뿐이다.

   분신과 클론은 뚜렷하게 다른 장단점을 지닌다. 분신의 경우 유지하고 운용하는 과정에서 본체의 정신력이 소모되는 대신 본체와 온전하게 연합되어 하나가 될 수 있다. 클론은 한 번 만들어놓으면 독립적이기에 추가적인 본체 정신력 소모가 없지만, 독립성이 강한 탓에 제어에서 벗어나기 쉬우며 본체와는 엄연히 분리된다.

   지구혼을 본뜨는 존재들도 동일한 원리로 장점과 단점이 엇갈린다. 비유컨대 하늘도시가 지구혼의 분신을 담는다면 외계행성은 지구혼의 클론을 담은 셈이다.

   “사실 지구혼과 행성혼의 속성 차이, 이것이 바로 인류가 공통적으로 갖는 귀소 본능의 원인이라 할 수 있지.”

   “지구혼에 대한 본능적인 접착력인건가.”

   “그래, 아무래도 테라포밍으로 만든 환경만으로는 인간의 그 본연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우니까. 물론 귀소 본능 자체가 악이 되는 건 아니야. 사람들에게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동기 부여를 주어 경쟁력을 증진할 수 있거든. 하지만 지금처럼 인구가 폭증하는 시대에는 문제가 되지.

   그래서 인류연합은 지구혼의 속성을 가능한 원본과 똑같이, 단순한 개량을 넘어 창조의 수준으로 복제함으로써 그 귀소 본능을 완충하려고 계획을 세웠어.”

   “그,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이야?”

   “쉬운 작업은 아니야. 최근 와서야 실마리를 얻었지. 위버멘쉬께서 행성혼을 지구혼과 유사한 성질로 바꾸는 알고리즘을 발견하셨어.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말이야.”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수현은 아무렇지 않게 꺼내놓았다.

   “그분이 행성혼의 속성을 변개할 인공생명체를 발명해냈어. 여기에 더해 그것들과 공명하여 같이 작업할 인간이 필요했지. 말하자면 ‘혼의 공명’을 일으키는 성질을 타고난 인간들이 요구되었지.”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긴 한 건가?”

   “많진 않은데 분명 있긴 해. 처음에는 초인들 중 특수 형질을 가진 자들을 몇몇 선별해내서 실험에 참여시켰지. 수량에 제한되었다고 할까나. 그런데 이제 그 초인들이 지닌 특수 형질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원리를 해독해냈어. 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그 형질을 획득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지.

   덕분에 이제는 일반인들도 이 작업에 투입하는 일이 가능케 되었어.”

   페아노르 프로젝트의 의의가 여기에 있었다. 2등 시민 중 잠재적으로 좋은 형질을 지닌 인간들을 발굴하여 적절한 알고리즘 하에 특수한 기법으로 훈련시킨 뒤 행성혼을 변형하는 촉매제로 완성한다. 그 뒤에 그들을 외계행성에 파견한다. 이렇게 파견된 2등 시민들은 그저 해당 행성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자동적인 행성혼 변환을 유발할 수 있다. 가만히만 있어도 막대한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된 셈.

   여기에 동반되는 별도의 부작용이나 고생도 없다고 하니 말만 듣고 보면 대단히 완벽해 보이는 프로젝트였다.

   다만 재현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왜 기독교 신자들은 페아노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걸까?”

   “그들은 전자아 훈련이라는 방법론을 종교적 신념으로 거절하잖아. 훈련법이라는 게 특별한 건 아닌데, 전자아 훈련이 기초가 되거든. 준 초인급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그 버금가는 단계까지는 이르러야 비로소 행성혼 변형 촉진제로 의미있게 쓰일 수 있거든.”

   재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쉽네. 만약 성도들에게 외계행성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필시 상당히 유용한 선교의 문이 열렸을 텐데.’

   그렇다고 잘못된 풍조에 동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딜레마였다.

   고민하는 형의 모습을 보며 수현은 다른 생각에 잠겼다. 그는 형의 손등 위에 살짝 손을 댐으로써 무언가를 조심스레 확인했다. 재현의 신체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초능력이 농축되었는지를.

   ‘위험하네.’

   언뜻 스치듯이 감지된 것만으로도 서른 개 이상이었다. 초인들조차도 한 개인 단위로 온전히 응용할 수 있는 초능력 채널은 많아야 스무 개 안팎이다. 예외적으로 모든 채널을 자기 몸 속에 압축한 특수 케이스인 위버멘쉬를 제외하면.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초인들은 두어 가지의 채널의 힘만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재현 같은 보통 사람이 저렇게 무모하게 담아내는 것은 무리수이다.

   ‘사교 집단들과 충돌하다보니 자연스레 몸에 많은 이능력이 축적되었겠군. 착해빠진 형은 바보같이 무력을 쓰지 않고 도망다니기만 했을 테지. 차라리 권능을 무력에 동원했다면 나았을 텐데. 오히려 보호나 방어 같은 활용법은 초능력의 과도한 신체 축적을 더 빠르게 유발한다는 사실을 몰랐겠지.’

   수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수현은 며칠 전의 대화를 회상하였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그날 수도로 소환된 수현. 그는 인류연합 수장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상대는 전신 제복과 가면을 두른 빈틈없는 차림이었다. 뒤돌아 서 있던 왕이 별안간 몸을 돌려 수현을 내려다보았다. 금안에서 섬광의 빛이 발하는 듯한 느낌.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채도가 점점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인간이 맞긴 할까 하는 의문까지 드는 이질감이었다.

   “그대가 현재 B 클래스였던가.”

   “그렇습니다.”

   “처음 각성 때는 F, 그런데 두 번씩이나 올라왔군. D를 거쳐서 이제는 B로.”

   수현은 대답도 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이례적이군. 나나 선대 위버멘쉬처럼 2차 각성을 겪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일종의 유사 각성 현상인가. 아니면 처음 각성했을 때 각성이 불완전했던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궁금하군. 초인 가운데 이런 예는 없었지.”

   카이젤은 은연중에 강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모르는 이가 보면 당장에라도 실험체를 해부하고 싶어 안달이 난 과학자를 연상할 정도였다. 수현은 상대의 거대한 위압감과 집요한 시선에 두려움이 들었는지 얼어붙었다.

   “윤리적으로 부적합한 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갈취하고 싶군.”

   “저를 말입니까?”

   “그 기묘한 특수 속성을 말이야.”

   노골적으로 드러난 고백에 수현은 도리어 담담한 태도로 대꾸했다.

   “원하신다면 당신께서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이런, 초인의 특수 속성을 이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 아니야. 현 인류의 과학의 지평으로는 무리가 따르는 복잡성이지. 지금은 보류하마.”

   “그러면 저 같은 일개 회원을 왕께서 직접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잠깐 침묵이 흐른 뒤 답변이 돌아왔다.

   “네 형이 능력을 얻은 경위, 궁금하지 않나?”

   그 순간, 수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카이젤은 그 미세한 안면 근육 움직임을 수현 자신의 인식보다 더 빠르게 인지하였다. 실제 반응이 나타나기 수초 전부터 이미 그는 상대의 반응을 예지하고 있었다.

   “힘 풀어.”

   중력 같은 힘이 수현의 몸을 짓눌렀다. 가까스로 그는 땅을 짚고 몸을 지탱했다. 현재 자신의 초능력으로는 전력을 쏟아부어도 저항하지 못할 압도적인 밀도의 힘이었다. 단념한 그는 잠잠히 주인의 말을 경청했다.

   “유성운에게서 데이터를 압수했다. 그가 작년까지 천재현을 상대로 실험하면서 획득한 자료를 말이야. 나름 흥미로운 정보가 많이 묻혀 있었더군. 유성운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이. 내게는 데이터에 나타난 흔적을 통해 진리의 원본에 관한 정보를 발굴하는 고유 재능이 있거든.”

   최상위 초인조차 감히 흉내내지도 못할 묘기를 넘치는 잉여 재산 중 하나 정도로 취급하는 카이젤의 여유로움에 기가 질렸다.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천재현군은 교통사고 직후 유성운의 텔레포트 프로세스에 의해 소생했다. 여기까지는 알 테지. 원래 그 양자 전송 계열 텔레포트 기술은 인간에게의 적용이 금지되어 있어. 유성운도 상대가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사용하지 않았겠지. 반쯤 도박을 벌인 셈이야. 아마 실패 확률이 훨씬 높았겠지. 그런데 천재현이 과연 어떻게 무사히 살아났을까?”

   그 부분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였다. 수현도 알지 못했던 해답. 여기에 대해 카이젤은 해답지를 펼치듯 천기누설을 해주었다. 추측에 불과한 이론이 아닌, 진리에 정확히 다가간 답안이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우주적 차원의 진실을 관통하는’ 카리스마타 덕분이었다.

   “천재현에게는 생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는 강한 연결의 닻이 하나 남아있었다. 그것이 바로 유일하게 신뢰했던 가족, 너였지. 당시의 그는 너에 대한 마지막 믿음, 정확히는 네게 품었던 애증의 마음에서 나온 욕구에 이끌려 생을 선택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의구심을 보이며 의심하는 수현. 이에 카이젤은 뜬구름 잡는 듯한 두루뭉술한 서술법은 그만두고 대신 구체적인 증거 데이터들을 보여주었다. 생존 당시의 재현의 정신파 분석 자료, 특수 기술로 복원해낸 사고 당시 재현의 신체 구성 데이터, 재현의 몸에 깃든 특수한 물리 속성이 형성된 기반 원리 등. 도대체 어떤 수를 써서 저런 증거 데이터를 모았는지 가늠이 안 될 지경이었다.

   “흥미로운 현상이지. 이런 연결점 때문인지 네 형에게는 네가 소유한 이레귤러로서의 특이성이 일부 전이되었다. 초인이 아니다보니 조금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이전되긴 했지만.”

   특수 속성의 이전. 이 일이 이뤄진 시점은 과거 재현의 사고 후 생존이 확정된 사건. 현대 과학의 지식들로도 설명하기 힘든, 위버멘쉬의 지식 아래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괴이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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