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47회 아벨의 후예 Ch 31. 인본주의와의 타협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1.25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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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이에 대해 질문했다.
“형이 저를 놓지 못한 탓에 죽음 대신 생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원리를 설명하면 끝도 없지. 요약하자면 그 말도 맞다.”
수현의 특수성이란 ‘계열 한계를 돌파하는 것’. 원래 초인은 한 번의 각성으로 클래스가 고정된다. 그러나 그와 달리 수현은 반복적으로 클래스가 증폭되는 데 이는 바로 그의 특수 속성 덕이어다.
이 속성이 형제간의 혼의 공명을 통해서 특이한 방식으로 재현에게도 이양되었다. 이양 후 재현에게 맞춰져서 발현된 특성은 이능력의 괴이 증폭이었다.
“이양 현상이 일어난 후 유성운은 자신의 카리스마타와 여러 양자 역학 기반 기술과 생체 공학을 동원해 천재현의 신체에 고유 이능력을 심었다. 아마 그 이능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네게서 이양된 속성이 관여했을 거다. 유성운 본인도 그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겠지.”
재현이 어느 정도 충분히 이능력에 익숙해지자 성운은 재현에게 제복을 건네주었는데 이 역시 카이젤의 지시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U-society 회원이 입는 제복은 모두 카이젤의 손을 거친다. 그는 제복을 직접 손 봄으로서 입을 대상의 개성에 맞게 고유한 능력을 심어 넣는다. 수현의 옷에도 수현의 특성에 걸맞는 기술이 심겨졌다.
카이젤은 재현의 옷을 구성할 때 수현의 옷과 똑같은 재질의 복제품을 리폼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로 인해 재현의 슈트는 수현과 유사한 특수 속성을 이양받은 재현과 매우 궁합이 좋은 물건이 되었다. 또한 그 옷은 그의 이능력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외부의 초능력을 그의 몸에 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설마 그렇다면.”
“그래, 천재현이 획득한 너의 특수 속성, 유성운이 선물해준 이능력, 그 위에 내가 한 가지를 더하여 화룡정점을 이루게 했지. 그 옷은 애초에 천재현이 네게 이양 받은 속성을 십분활용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었지.”
담담한 어투로 카이젤이 말했다. 수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수께끼들이 이제야 풀리는 듯 했다. 재현의 신체에 자꾸 여러 채널의 초능력이 축적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실 옷을 의심하긴 했었다. 그런데 그게 처음부터 카이젤이 계획해둔 의도적인 일이었을 줄은 몰랐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의 헌신과 희생은 인류의 궁극적인 발전을 위한 소중한 자료지.”
“아닙니다. 제 형은 인류를 위한 실험체가 아닙니다.”
“그것이 그대의 의견인가. 기각(棄却)이다. 미안하게 되었군.”
카이젤이 판단하기에 천재현이란 인간이 더 위대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열쇠 자원이었다.
현존하는 초능력 채널의 개수는 무려 약 720 펙토리얼, 그중 단 하나의 채널에서 나온 힘만으로도 거진 거의 모든 물리 조작이 가능하다. 둘 이상이 시너지를 일으키면 범용성과 위력이 폭발적으로 넓어진다. 셋이 겹쳐지면 말할 것도 없다. 만일 천문학적인 개수의 채널에서 나온 권능의 발원을 모두 합친다면?
카이젤은 이미 반칙에 가까운 연합 기법을 응용함으로써 720! 가짓수의 초능력 채널을 모두 자신의 신체 속에 수용했다. 그는 그 전부를 한번에 조합해 쓰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시너지의 적합도를 한계치 너머로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무궁한 잠재력을 끝물까지 남김없이 끌어내려면 아직 그도 더 많은 성장을 필요로 했다.
그것을 두고 고민하던 중, 카이젤은 천재현이라는 인간에게서 한 가지 타파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재현의 특이성은 재현 본인에게는 그리 쓸모가 없다. 허나 카이젤이 그것을 완벽히 과학적으로 분석해낸 뒤 자기 것으로 취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는 충분히 이를 통해 720! 가짓수의 초능력 채널을 대통합하여 권능의 극의(極意)에 이르는 데 필요한 시간을 비약적으로 절약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 재현의 속성 자체를 송두리째 자신에게로 이양시켜 자기 자신 안에서 연구하거나 혹은 속성의 비밀을 밝혀낼 때까지 재현을 실험체로 쓰는 것이다.
수현 입장에서는 후자를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형 대신 저를 실험체로 써주십시오.”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렇게 도전했다.
“흠.”
“형의 특이성만이 아니라 제 특수 속성도 당신께 필요하잖습니까?”
“그야 그렇지.”
분명 수현의 특이성도 탐나는 보물이었다. 인류 전체를 준 초인 급으로 각성시키는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꼭 필요하고, 무엇보다 카이젤 본인의 7번째 초지능체이자 본인의 본체인 Hyper-SELF를 최종 단계로 진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되도록 형제 둘의 특수 속성을 모두 얻고 싶었다. 마침 마련해둔 묘수가 하나 있었다.
“나는 내 동생과 약속했다. 너와 네 형 두 사람을 함부로 다루지 않겠다고. 그러니 약속은 지킬 생각이야. 하지만 꼭 필요한 희귀 자원을 내버려 둔 채 손가락을 빨 생각도 없어. 그래서 대책을 마련했다. 너희의 힘을 이양할 방법을 말이지.”
카이젤은 이어서 커버넌트라는 것에 대해 부분적으로 알려주었다. 계약 맺는 당사자가 아닌 한 초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는 비책 중의 비책이다. 대단히 통큰 제안이었다. 카이젤은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이 최근에 특수 형태로 개량한 커버넌트 기술을 응용한다면 재현과 수현의 성질을 영구적으로 카이젤 자신에게 이양하는 일도 가능하다. 커버넌트라는 기술력의 잠재력은 불가능에 가까워보이는 도전조차 허들을 극히 낮출, 지극히 대단한 묘수였다.
수현은 때마침 들려온 반가운 소식에 반색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면 곧바로!”
“하지만 어려움이 하나 있다. 현재로서 커버넌트는 같은 내용의 계약을 중복적으로 여러 사람과 맺지 못해.”
“네? 그렇다면?”
“너희 두 형제 각각에 반복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여럿이서 동시에 한 계약으로 묶이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하나 특수 속성을 이양하는 작업은 대단히 복잡한 알고리즘을 충실히 따라야 하기에 조건이 까다롭지. 아마 단일 개체 대 단일 개체 계약에서만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
“그리고 또 하나, 이양 작업은 대단히 복잡한 프로토콜을 따른다. 성공률이 확보되는 방법론은 지극히 제한적이지. 내가 고안한 방법론대로라면 계약 내용은 이렇게 확정된다. 너희 형제 중 한 사람이 나와 계약을 맺으면 맺은 자의 속성이 내게로 옮겨지고 다른 한 형제는 내 소유물이 된다.”
“네?”
미리 카이젤은 이 계약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함을 확실하게 못을 박아 두었다. 특수 계약은 내용 자체도 작동 알고리즘에 영향을 주는 변수로 포함되기 때문에 내용을 제멋대로 바꿔 설정할 수가 없다. 특별히 이번 경우는 계약 대상인 형제가 한 쌍의 연합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이러한 방식으로만 속성 이양이 가능하다.
“어쩔 도리가 없다. 두 명 중 하나는 내게 예속되고, 하나는 계약 당사자가 되어야 해. 그 방법으로만 너희 중 한쪽의 특수 속성을 안전히 제거해줄 수 있다. 만일 네 형이 계약을 한다면 원래대로의 평범한 몸으로 돌아가겠지. 너는 내게 종속되어 필요시에는 네 특수 속성을 분석하기 위한 실험에 참여하겠지만.”
“그건 상관없습니다.”
“반대로 너하고 커버넌트를 맺을 수도 있지. 그러면 천재현은 내 것이 된다.”
“그건 안 됩니다.”
확고한 수현의 태도에 카이젤은 회심의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네 형을 설득해봐라. 참고로 커버넌트 체결은 오로지 자유의지로만 성립해. 강제나 협박이나 마인드컨트롤로는 불가능하지. 설득할 수 있겠나?”
계약 내용의 진상을 알게 된다면 재현이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으리라고 어렵잖게 예상되었다. 하지만 수현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적절히 눈 가리고 계약을 맺도록 꼬드기는 수밖에.
“해보겠습니다.”
“또 하나, 계약 당사자는 되도록 평생 지구 밖을 못 나가는 입장이 될 거다.”
이 부분에 수현은 잠시 멈칫하였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고안한 알고리즘대로라면 너희 중 한 명이 계약을 맺으면 다른 한 명의 몸이 커버넌트 오브젝트로 변해. 예컨대 네 형이 나와 계약을 맺으면 네 몸이 오브젝트가 되지. 이때는 천재현과 내가 동시에 너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 실질적으로는 내가 너를 보유하지만, 커버넌트 규율에 따른 법적 소유권은 천재현에게 놓이지.”
카이젤은 오브젝트가 가진 강력한 힘과 가치에 대해서 경고했다. 한때 칼리드와 스튜아조차도 커버넌트 링을 탐하여 그것을 빼앗았고 여러 일들을 벌일 정도였다.
“누군가가 커버넌트 오브젝트를 빼앗아 이용하려면 반드시 법적 소유자를 힘으로 굴복시켜야 하지.”
최상위 초인마저 호시탐탐 노리는 물건의 소유권을 지닌 자는 필시 위험에 처하리라. 요컨대 재현이 수현이라는 오브젝트의 소유권을 갖는다면, 그는 찬탈을 노리는 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오브젝트 자체인 너는 강한 능력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겠지만.”
“탐욕스러운 하이에나들에게 노려질 만만한 상대는 제 형이 되겠군요.”
그렇다. 무사히 계약을 잘 치러서 재현이 초능력 폭주로부터 안전한 몸이 되고 카이젤로부터 자유로운 신세가 된다고 해도, 그의 추후 안전 문제는 고려해야 한다. 계약 쳬결 이후 수현이 노예 신세가 되고 그 공동 소유권자가 카이젤과 재현이 된다면, 허튼 탐욕을 품은 자들은 재현을 노릴 것이다. 수현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며, 또 다른 소유권자인 카이젤의 경우 아예 상대할 자가 없으니까.
“그래, 그러니 내 눈 밖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보호받는 편이 낫지.”
즉 추후를 고려해 지금 재현의 여행을 단념시켜야만 한다. 어차피 평생 지구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면 리온과의 모험도 더 이어지지 못하게 지금 끊는 편이 낫다.
*
수현은 이미 결정을 굳혔다. 형으로 하여금 여행을 포기하게 설득한 뒤, 위버멘쉬와 계약을 맺도록 유도하자. 그러면 계약 당사자인 카이젤과 재현에게 각각 계약 매개체가 주어질 것이다. 카이젤 쪽은 커버넌트 링, 재현 쪽에는 커버넌트 오브젝트인 수현의 신체. 물론 카이젤이 갑을 중 갑(甲)이기에 수현에 대한 소유권도 실질적으로는 그에게 치중된다. 그러면 수현은 오랫동안 실험체 신세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이 속성의 비밀을 파헤칠 때까지는. 그 부분은 두렵지 않다.
그 대가로 형은 안정화된 보통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브젝트 소유권자에 대한 보호 명분으로 지구 안에서 대우 받으며 지내리라. 초인조차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족과 함께 평안히 지내게 될 것이다. 서로 떨어질 일 없이 지구에서 지내겠지. 자신의 안위만 잠시 포기하면 모든 게 바로잡힌다.
“형, 지금 당장 목사 일행과 결별하자.”
“뭐라고?”
“지구로 돌아가자. 내가 형에게 평범한 삶을 보장할 안전한 방법을 발견했어. 그저 단 한 번의 계약이면 충분해. 누구도 손해 보거나 다치지 않을 거야. 가족들 모두가 지구에서 평화롭게 살게 될 거야.”
듣기에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재현은 뭔가 모르게 꺼림칙한 직감을 받았다. 동생이 자신 몰래 뭔가 숨기는 것 같다는 불길함이 들었다.
“너 설마 강재혁 대표님과 계약 맺은 건?”
“그래, 맞아. 정확히는 내가 아닌 형이 맺게 될 거야. 형 손해는 하나도 없어. 계약 조건 자체도 간단해. 형이 얻은 특수 속성을 영구적으로 그분께 이양하는 것이 전부야.”
순간 재현은 리온이 얼마 전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비판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들은 인본주의와 계약을 맺고 영혼을 팔았다’라고 말하셨던가. 지금 자신의 앞에도 계약이 제시되었다. 인본주의의 본체 자체라고 해도 될 무려 그 위버멘쉬와의.
“그, 그런 게 말처럼 간단하게 될 리가 없잖아.”
“철저히 안전성을 확증해봤어. 그러니 내 말을 믿어도 좋아.”
“하지만……, 그 이전에 나는 지금 목사님을 떠날 수는 없어.”
수현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다. 이 대답 쯤은 이미 예상했다.
“그럼 나와 거래할래?”
“거래라니.”
“내가 리온 마흐무드 목사를 후원해줄게. 적대 세력 부수기? 그것도 돕겠어. 우주 전역에 영향력이 필요하면 그 일도 지원해줄게. 갈트론이나 유리스 씨는 거슬려 하겠지만, 애초에 그 인간들 곤란해하건 말건 알 바인가. 나한텐 형이 중요해.”
재현의 동공은 혼란에 휩싸여 격렬히 떨렸다.
“아직 고민된다면 좀 더 생각해본 다음 말해줘. 기다리고 있을게.”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수현은 텔레포트로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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