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59회 아벨의 후예 Ch 34. 타야테라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2.29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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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씨도 사부를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저와 그녀는 과거에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이입니다. 아마도 제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내란 때 반역자 측이나 인류연합 측에 사살됐겠죠.”
일전에 하늘도시에서 들었던 티아라의 과거 이야기가 떠오른 리온은 순간 멈칫했다. 그때 그녀는 인류연합 측의 누군가에게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노라고 고백했었다. 확률 관련 능력이었다던가?
‘설마 그때 말했던 조력자가 유성운인가?’
그러고 보니 윤혁이 선교 여행 도중 따로 그 부분에 대해 알려주었던 적은 없었다. 윤혁도 알고는 있었을까? 강재혁 대표가 총애하는 동생이니 은근슬쩍 일러주었을 수도 있겠다마는.
‘그나저나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부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마냥 확률파동 중첩 상태로 변한 것, 그 일이 마라크의 죽음의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으니, 유성운 저자도 그날의 일과 연관이 없지는 않은 건가.’
원한을 품거나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 대면이 썩 유쾌치는 않았다.
‘유성운 씨, 그러고 보니 윤혁의 아버님도 이용했었다지. 크로스솔져 분들도 이용했었고. 그나마 초인 중에서는 기독교에 우호적인 자이지만 그렇다고 믿을만한 자는 결코 아니다.’
성도들이 맺은 성령님의 열매로부터 단물과 과육은 빨아먹되 정작 그 씨앗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결코 심지 않는 자. 전형적인 기독교의 유익을 이용하기만 하는 자. 리온이 결론지은 성운에 대한 평이었다. 저런 인간은 고레스왕이나 느부갓네살왕처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로는 쓰일지언정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은 될 의지는 없다.
‘나도 참 한심하군. 애초에 오만한 초인에게 뭘 기대하겠다고.’
그때 성운은 부드러운 칭찬으로 리온의 경계심을 풀고자 하였다.
“마흐무드 목사, 당신의 놀라운 활약은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대규모 선교 여행과 종교개혁, 그런 위업을 이룰 용기와 지혜는 범인이라면 발휘할 수 없죠.”
속이 뻔히 보이는 아부에 리온은 무덤덤하게 되물었다.
“현재 인류연합은 저를 주시하고 있습니까?”
“인류연합 차원의 감시는 아직 없습니다. 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에 기록되어 감시되는 리포머(Reformer, 종교개혁가) 목록에는 당신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당신의 활약상이 미미해 보이니까요.”
리온은 대답이나 반응 없이 묵묵히 있었다.
“하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진실을 관찰한다면…….”
수현과 마찬가지로 성운도 이미 진실에 도달했다. 그는 리온이야말로 폭풍의 진원지가 된 나비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 논리적인 계산에서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동물적 직감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리온은 상대가 만만찮은 존재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과연 기독교의 영적 축복의 산물을 부차적으로 빨아먹는 일에 선수로구나.’
성운은 의기양양하게 능수능란한 화술을 펼쳤다.
“너무 염려 마시죠. 제 보스께서는 당신을 이유도 없이 해치는 일을 방지하도록 통일시스템에 명령어를 심어놓으셨습니다. 아무래도 그분은 당신을 꽤 아끼시는 듯합니다.”
“강재혁 대표님께서요?”
“그분은 거의 자기 동생에 버금갈 만큼 당신을 신경 쓰시는 듯합니다.”
선지자네 뭐네 하고 추켜세워준 게 마냥 입에 발린 소리는 아니었던 건가.
“리온 목사, 당신은 나를 괴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씀이죠?”
전혀 모르겠다는 투로 리온이 반문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흔히 기독교인들은 그런 유형의 인간을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내 막냇동생도 그랬죠. 그 아이의 눈이 나를 종종 향할 때마다 불쌍한 인간상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녹아있었습니다. 마치 지금의 당신처럼요.”
분신이 마음껏 떠드는 동안 성운의 본체는 지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솔직히 성운의 말은 지현 입장에서는 억울했다. 맹세코 지현은 성운을 경멸하거나 영적으로 얕잡아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회심한 이후로는. 오히려 전과 달리 주님의 은혜를 형에게 나누려는 마음만 품었다.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으려 했던 욕심 많은 야곱과 달리 지현은 형을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한참 후, 리온의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오해하시는군요. 저는 자본주의 자체를 저주한 적은 없습니다만.”
“…….”
“저는 유성운 회장님과 달리 정치에는 문외한이지만 물신주의(Materialism)와 자본주의(Capitalism)를 혼동할 만큼 무식하지는 않습니다.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을 개척한 시초는 애초에 근대 종교개혁의 정신이었죠.”
‘요 녀석 봐라.’
성운은 제법이라는 듯 씩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사실 리온의 말 그대로였다. 근대적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반은 16세기 종교개혁으로부터 출발한다. 프로테스탄트의 지도자들은 인간의 영적 실상에 대해 성경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올바른 진단을 내렸다. 인간은 누구나 죄성에 찌들어있으며 자기중심적이며 욕망과 탐욕에 물들기 쉽다. 그렇다고 국가의 힘을 앞세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사유재산권을 박탈하면 인간은 본질상 나태해지기 십상이다.
이같은 진단은 참으로 겸손하고 올바른 판단이었다. 도리어 무신론자들과 유물론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착각하였고 그 오진은 어리석은 처방을 내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결과의 패착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던 프로테스탄트 세력은 이러한 인간을 한시적인 인간의 시대 동안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여러 가지 구상을 떠올렸다. 돈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소유를 잠시 대신 맡는다는 ‘청지기 정신’, 직업에 대해서는 귀천 구분 없이 하나님이 맡기신 소중한 임무에 충성한다는 ‘소명 의식’,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검소함’, 그릇되고 거짓된 방법을 배척하고 정직하게 돈을 벌라는 ‘청렴 의식’, 청지기의 임무에 걸맞게 재물을 사회와 이웃에게 자발적으로 환원하는 ‘재투자의 개념’.
이렇게 성경적 세계관을 통해 깨우친 생활 철학을 제도적으로 집대성한 것이 바로 근대적 자본주의(Modern Capitalism)의 기반이었다. 이것은 분명 절대선은 아니었으나 분명 차선(次善), 혹은 적어도 차악(次惡)은 될 자격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자본주의 역시 인간의 탐욕적 본성을 완전히 다스리기는 역부족이었다.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자본주의도 세속적 가치관과 결합되자 타락하여 각종 병폐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악(次惡)답게 21세기 이전까지는 인류를 지탱하기에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경제 제도였음이 명백히 입증되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제도화되면 탁월한 결과물과 효율성을 낳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리온은 과감히 도전의 질문을 던졌다. 만일 상대가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논거를 이끌지는 않았으리라.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에 집중시켰겠지. 목사의 본분이 그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상대가 마음이 완고한 세상 사람이라면 좀 더 알아듣기 쉬운 말로 접근하는 편이 낫다.
“당신도 알겠죠. 유성운 회장님 당신도 강성한 씨와 크로스솔져들을 이용하면서 여러 가지 이득을 보지 않았습니까?”
성운은 리온의 도전에 호기심을 보였다.
“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해석하는 진리가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류가 유일하게 본질적 진리에 접속할 수 있는 통로는 오로지 성경 계시뿐이라는 뜻입니다.”
“남들이 들으면 꽤 싫어할 만한 발언이로군요.”
“상관없습니다. 저는 사실만 말했을 뿐입니다.”
성운은 이상하게도 이 젊은 목사의 당당함에 흥미가 끌렸다.
‘재미있어.’
현재 성운에게는 커다란 마음의 짐이 있었다. 머잖아 인류는 대대적인 경제 시스템 개편을 맞이할 예정이다. 이제껏 이용했던 ‘생명에 유착된 자본’ 시스템은 시대상에 걸맞지 않은 지난날의 퇴물이 되었다. ‘무한의 플랜트’ 같은 반칙급의 생산력이 무한히 건설되는 시대이다. 그러니 이미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자원의 양이 곧 절대적인 경제 권력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금부터 다가올 패러다임은 이것이다. 라이센스 기반의 질서. 누가 어떤 자원을 휘두를 권한이 있고 누구에게는 없는지를 구분하는 질서. 마치 군인이 아니면 무기를 쓸 수 없듯, 모든 자원과 재물에 격을 매겨 다룰 자격이 없는 자와 있는 자를 나누어야 한다. 좋든 싫든 앞으로 준 전능적 문명을 소유할 인류에게 책임감 있는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야만 한다.
‘즉 신용 기반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라이센스라는 것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였다. 또 기존에 사용되던 포인트들의 축적 분과 적립 알고리즘은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필요한 만큼 마음껏 퍼다 쓰는, 소위 극단적 사회주의식으로 개편하자니 큰 혼란과 방종이 예상되었다. 그런 시스템하에서는 라이센스 이외에는 인간의 활동을 제어할 수단이 없다. 또 개개인의 노력과 성과에 걸맞은 인센티브를 주어 자극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성운도 이 점을 직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계와 이종족이 있는 세상에서 인센티브?’
아이러니하지만 현재는 인간의 육체노동이 불필요한 세상이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정신노동마저 기계들의 선에서 해결된다. 게다가 그 기계들은 무제한으로 복제가 가능하지 않은가. 초인과 같은 천재가 아닌 한 인간이 사회 안에서 대체 불가능의 역할을 맡기란 어렵다. 지금은 기계나 이종족에마저도 창조적 능력이 깃들여진, ‘유비쿼터스-크리에이티비티’의 시대니까.
즉 이미 근대적 자본주의 개념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시대착오적이다. 지적설계종마저 출시된 마당이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보스와 부대표는 영의 존재와 그 의미를 강조했었지. 인간만의 종특이니 이 점을 강화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었어. 심지어 맥락은 다르지만 성녀조차도.’
동의는 한다만 그놈의 영성이란 개념이 워낙 정의하기 모호한 게 문제였다. 그나마 카리스마타 같은 고유 재능을 보유한 최상위 초인이라면 모를까, 초인조차도 대부분은 그저 탁월한 초지능을 소유한 게 전부였다.
그나마 맥을 잡자면 카이젤이 최근 개량해 낸 전자아 훈련을 고려할 수 있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전인적 특성을 극대화한 수련법이었다. 실제로 우주 인류는 이 방법을 통해 초인에 근접한 역량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 하루가 다르게 무한히 발전하는 기술력의 경지를 따라잡으려면 인간 역시 끝없이 발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앞으로 인류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성장욕의 갈증에 시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맞는 걸까?
‘영성을 강화한다는 게 과연 그런 뜻일까?’
자아, 곧 본인의 영과 혼과 육의 전인적 통합체. 이것을 키우는 훈련법.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만약 그 너머에서 해답을 찾으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닿는 것은 초자연적 개입뿐이다. 허나 인류연합은 초자연을 기본적으로 탐색과 정복의 대상으로 여길 뿐 타협의 대상으로 여기진 않는다.
‘그러면 초자연을 이용하는 것은?’
성운의 머릿속에서 발칙한 상상이 하나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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