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62회 아벨의 후예 Ch 35. 가정과 교회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1.05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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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사람들이 교단의 힘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가정 예배를 드릴 편안하고 안전한 여건을 마련해 봅시다.”
헨리와 리온은 시종일관 차근차근 계획을 구상하였다. 리온에게는 미리 준비해 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기량을 바탕으로 노력하였다. 사역자가 별도로 없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정 예배용 자료와 프로토콜을 갈고 다듬는 게 그의 몫이었다.
한편, 헨리는 강단에 나서서 직접적으로 설교하였다. 그는 교회뿐 아니라 가정이라는 질서 역시 복음이 전달되고 선포되는 통로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지상 사명을 주셨다면,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신명기를 통해 자녀 교육을 명령하셨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에 당부하신 사항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원리는 동일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부모라면 자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가 최종적으로 믿음을 가질 지는 본인의 자유의지로 결정할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이 메시지를 들고 이 지역 전역을 순회하였다. 한편, 지현과 재현과 찬영은 사이버 네트워크를 활용해 설교를 확산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에 힘을 받은 헨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가정 예배의 가치를 선포했다. 또한 그는 리온의 일도 도와주었는데 가정 예배에 쓰일 교재를 더욱 실용성을 띠도록 현실에 맞게 재편해주었다.
그렇게 개량하다 보니 여러 버전의 유용한 자료들이 만들어졌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초신자 가정에 적합한 초보용, 신앙이 두터운 집안이 사용할 깊이 있는 내용의 서적까지. 아울러 그들은 가정 예배가 사랑 속에서 이뤄지는 교제로 확립될 수 있도록 인생의 지혜가 담긴 유용한 조언들을 교재에 수록하였다.
헨리는 가정 예배 회복 운동을 강력히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신 후 그들에게 가정을 꾸려나가도록 명령하셨다. 또 에베소서에는 이상적인 신앙인 가정을 향한 지침이 기록되어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그 유명한 말씀 교육 방식도 증거물. 오늘날의 세상이 그 중요성을 발견하도록 일깨워야 하리라.
한편, 그는 죄로 인류가 타락하면서 훼손된 가정의 현주소를 직시시켰다.
“오늘날, 가정은 우리에게 축복인 동시에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가족들로 인해 웃기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가족 때문에 슬퍼하며 고뇌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해 타락하였기에 이기적입니다. 때때로 자식이나 부모, 형제를 자기 자아의 연장선처럼 여겨 집착하며 우상화합니다. 자신이 기대하는 바에 맞지 않는 결과에는 분노하고 좌절합니다. 가족이 훼손되고 망가진 이유입니다.
우리 힘으로 이 문제를 억지로 해결하려 하면 도리어 상처가 벌어지고 곪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개개인의 영혼 구원도 그곳에서 이루어지지만, 공동체의 회복 역시 그곳에서 성취됩니다.”
풍족한 물질문명의 혜택으로도 분명 해결되지 않는 가정의 불화는 존재했다. 이 현실로 인해 고뇌하던 많은 영혼이 올바른 진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으로 헨리 목사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물로 여길 것을 청원했다. 부모의 역할은 그저 자녀의 손과 하나님의 손을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가 아니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세의 어머니인 요게벳과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인 한나는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여겼습니다. 만일 그분들이 아이를 자기 뜻대로 키웠더라면 하나님께는 영광을 드리지 못했을 겁니다. 여러분은 가장 위대한 아버지인 하나님께 자녀를 맡겨드리고 믿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헨리는 부모의 책임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는 아이를 교회에 내맡기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도리어 부모 자신이 능동적인 주체로 나서서 올바른 신앙 교육을 해야 함을 선언했다.
마지막으로 헨리 목사는 가족의 개념을 좁은 의미에서 더 위대한 의미로 확장할 것을 부탁하였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을 그분의 진정한 가족이라고 여기신 것을(눅 8:21) 상기시켰다. 육신적인 가족의 의미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피로 연결된 가족도 그 나름대로 가치를 담고 있지만, 영으로 맺어진 공동체도 가족임을 역설한 것이었다.
즉 이는 교회 안에서 소외되고 따돌림받는 이들이 없어야 함을 의미했다. 한 교회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족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상태를 심각하게 점검받아야 하리라. 이는 몸집만 큰 교회들에는 걸림돌이 되는 도전이었다.
*
성운은 시뮬레이션 우주상에 시현된 방대한 데이터를 감상하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회전했다. 가장 먼저, 그는 지도 형태의 다차원 공간도를 주시하였다. 겉보기에는 세계 지도를 그린 듯했지만, 지리적 배치를 다룬 것이 아닌 ‘사상(思想)의 지도’였다. 인류연합의 정치가들이 지향하는 여러 사상을 가시화한 도표였다.
북쪽에는 현 인류의 수자인 카이젤의 정치 철학 노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엄밀히는 카이젤은 중앙 쪽에 가까웠으나 원래의 주축이었던 어떤 인간이 퇴출되면서 카이젤이 북의 역할도 점유하였다. 소위 북파(北派), 이들의 핵심 정신은 도덕적인 틀을 갖춘 전체주의, 무궁무진한 발전, 다양성을 강화하되 철저한 질서 아래 다스리는 것이었다.
이 사상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했던 과거의 실패한 전체주의 노선들과는 달랐다. 북파의 핵심 주안점을 인류를 더 위대하게 성장시키는 데 있었다. 개개의 인간이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 상위 존재로 진화하고 사회 시스템도 더욱 효율적이고 유동적이고 합리적인 형태로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북파의 정책이 현실 위에 가동됨에 따라 인류의 영역은 여러 계층으로 분화되었다. 지구의 거주자인 1등 시민, 지구에 도달하기 위해 달음박질 중인 상아탑의 인간들, 나름 탁월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Upol의 2등 시민, 2등 시민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현하기 위해 바깥 행성으로 나아간 파송 시민, 그리고 아직까지 힘겹게 외계 환경과 투쟁 중인 외계행성의 비시민까지.
그렇다고 낮은 세계의 주민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도시 주민들이 결국은 시민권을 부여받은 것 같이, 시간차만 있다 뿐이지 최종적으로는 모든 인간에게 시민권 부여와 시민권 승격이 예정되어 있었다.
더욱이 계층을 노력으로 좁힐 사다리도 존재했다. 2등 시민에게는 전자아 훈련을 통해 자기 실력과 업적을 갈고닦아 1등 시민의 영역까지 이를 기회가 충분하게 주어졌다. 이는 혈통과는 무관하게 순수히 실력과 업적만으로 공정히 평가되는 시스템이므로 불만을 품을 명분이 없었다.
이 상승 시스템은 엄격한 스파르타식 구조였다. 혹독한 훈련과 경쟁을 통해 인간과 문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목적으로 설계되었기에 매우 숨 막히는 시스템이었다. 자유로운 활동과 경쟁은 허용되었지만, 서로를 깎아내리는 불공정하고 비도덕적인 네거티브 전략, 혹은 법도를 어기는 반칙 행위는 철저히 금해졌다.
단순히 경쟁만을 내버려두었다면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이 되었겠지만, 카이젤은 그렇게 방치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모든 개인을 암묵적으로 통제할 권능이 담긴 통일시스템이 있었다.
통일시스템은 마인드리딩과 마인드컨트롤 기능을 지녔다. 그것으로 사람들의 수단과 의도마저 간파할 수 있었다. 즉 오롯이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경쟁만이 허락되도록 사전에 조치하는 일도 가능했다. 자유의지를 억압한다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무한 경쟁의 폐해를 반칙급의 시스템 기능으로 보완하여 장점만을 취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시스템이 인간끼리의 경쟁을 관리한다는 건 존엄성 면에서 조금 자존심 상하긴 하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시스템도 보스라는 인간의 일부분이니까.’
성운의 감상평으로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실제로 이 정책들의 효과는 꽤 좋았다. 상위계로 승격되는 과정에서 인간과 인간 군집의 전체적 역량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지구에 당도하여 1등 시민 직위를 얻은 자들은 거의 최하위 초인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시스템의 힘으로 신의 선물을 거의 따라잡은 격이었다.
카이젤의 의도는 분명했다. 그는 초인과 일반인의 격차를 무작정 벌리기를 원했다. 그는 심지어 일반인도 초인의 경지에 인위적으로 도약하기를 추구했고 그런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엘리트주의를 배제한 평등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일반인이 성장할 때 그는 초인들에게도 더욱더 성장을 강요하며 채찍질했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비인간과 인간의 서열 차이를 분명하게 나누었지만, 그렇다고 비인간의 무한 진화를 억압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인공지능이나 이종족의 진화를 부추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나태해지지 않고 초자연의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훈련하고 진화해야 할 당위성을 주었다.
“공(共)발전(Co-Development)이라…….”
성운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그는 지도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파(西派)의 사상적 주축과 원조는 티아라, 그리고 현재의 주역은 제5 철인왕인 유리스 라흐블뤼크였다. 종교, 인류애, 평화, 통합과 화합, 도덕을 강조하는 집단. 이들은 심지어 인류와 이종족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마저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북파의 약점인 정서적, 윤리적 부분을 채워주는 장점은 있지만, 주축으로 설정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했다.
성운은 다시 눈을 돌려 남쪽 부분을 쳐다보았다. 즉각 그의 표정이 불쾌감으로 일그러졌다. 남파(南派)는 카오스의 사상이다. 자연선택, 변이와 변수, 무한한 혼돈과 경쟁 등의 단어로 묘사하기에 걸맞았다. 사상적 근원이라면 엘 피어슨의 독립주의나 종족 경쟁주의가 그나마 가장 가까웠다.
현재 남파의 계통을 진두지휘하는 자로는 제7 철인왕인 갈트론 라흐블뤼크를 들 수 있다. 그는 ASDM 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세상 만물을 도덕도 규율도 없는 방종적인 무질서의 장으로 이해하는 철학자였다.
무작위적 변수와 카오스에 의존하여 위대한 성과를 이룰 원동력을 얻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절대성을 부인했다. 모든 것을 상대론적, 진화론적으로 이해했다. 심지어 그는 아직 실체가 다 이해되지 않은 영혼의 영역마저도 유물론의 연장선으로 환원했다.
그 정도가 너무 과했던 탓에 많은 초인들은 갈트론의 철학을 불편하게 생각했으며 성운도 그중 하나였다. 카이젤은 그런 갈트론을 탐탁잖게 여기면서도 남은 이용 가치를 고려해 아직은 남파의 존재를 허락하는 중이었다.
“레이디가 떠나간 이래로 아직 동쪽의 자리는 공석이었지.”
빈자리가 있음에도 왜 아직 4분법의 사상 구도가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초인들도 제4의 대안의 필요성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성운은 리온과의 대화 후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혹시 리온이 대표하는 복음주의적 진영에서 뽑아낼 것이 있지 않으려나. 제4의 축을 복구할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소명 의식, 청지기 정신, 사회 정의, 선한 영향력,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냉철하고도 현실적인 이해, 공감과 연민, 이런 요소들이 북(北)이나 남(南)이나 서(西)와는 색다른 해답을 내려줄지도 모르겠다. 성운은 철학적 논증을 철저히 시뮬레이션하면서 새로이 복구될 동쪽의 축에 대한 설계도를 채워 넣었다.
이후 성운은 동서남북, 네 방향의 축이 확립된 체계를 기초 전제로 하여 자신의 경제학 알고리즘을 형성해 냈다. 수천 종류 이상 다양한 버전으로. 그는 각 버전에 대해 네 방향의 사상축 중 어느 쪽에 얼마큼 가까운지를 연산하여 사상 지도의 연속 좌표 위에 스티커처럼 붙여 넣었다. 각 스티커는 각 알고리즘을 지칭했다.
성운은 깊이 고민하였다. 과연 어떤 경제 알고리즘이 현실에 더 적합할까. 네 노선 중 어느 하나만 택하기는 아쉽다 보니 하나하나 다 고려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무려 8천 개가 넘는 도안이 나왔다. 계산이 더 복잡해진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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