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67회 아벨의 후예 Ch 36. 폰 (pawn)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1.19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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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 부부는 지구 해체 이후로 전원적이고 안락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적어도 몸으로는. 마음은 씁쓸했다. 지금껏 알고 지냈던 이웃들이 모두 떠났다. 지구는 완전히 새로운 도시 문명과 완전히 새로운 주민들로 채워졌다.
더구나 그들은 버겁고 먼 존재였다. 새 시민들 하나하나가 초인에 범접한 존재였다. 또한 인간 이외의 이종족과 기계들도 사방을 활보했다. 새 문명은 기존 지구의 민간 세계와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 격상된 차원인지라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제대로 적응할 재간이 없었다. 그야말로 급변의 시대였다.
그래도 재혁은 사람은 사람이라고, 친아버지를 방치하거나 내치지는 않았다. 또 아버지가 신(新) 지구 인류 가운데서 부적응이나 소외를 겪도록 버려두지도 않았다. 그는 몇 개의 비밀 자치 구역을 만들어 지구에 거류한 초인의 식구들을 보호했다. 우주 인류나 이종족은 물론 심지어 초인도 그 구역들에는 함부로 발을 디디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말하자면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 구역이었다. 그곳은 넓고 쾌적하고 풍족했기에 지내기에는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약간 적적하긴 했지만, 종종 다른 초인의 가족들이나 크로스솔져들이 이웃 역할을 해주었기에 사람 사는 맛은 있었다.
한편 성한은 큰아들 걱정과 작은아들 걱정으로 요새 고민이 늘었다. 주님께 전부를 맡기고 마음을 놓아야만 하건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특히 맏아들은 이번에 또다시 무슨 일을 벌일지 도무지 예측이 가지 않았기에 더 골칫거리였다.
가족이란 위대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아픔과 당혹스러움의 근원이기도 했다. 가족은 성한의 부족함과 미숙함을 낱낱이 드러냈다. 그의 연약함을 처절히 노출시켜 고발했다. 또한 과거 그가 욕망에 몸을 맡긴 채 결혼의 테두리 바깥에서 남녀 관계를 범한 죄의 후폭풍이 결과물로서 그를 괴롭혔다. 그는 ‘어려운 가족 관계’란 형태로 실수의 대가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더더욱 십자가 앞에 겸허히 엎드릴 도리밖에는 없었다.
‘하나님께서 인생이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가족을 주셨구나. 과연 이것은 축복일까 고난일까 아니면 위장된 축복일까.’
몇 달 후, 재혁은 친부에게 다시금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조만간 지구는 더 큰 격변을 체험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주머니는 그걸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있습니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개변’ 현상이 지속되는 기간은 딱 하루입니다. 하루 동안만 세 장소 중 하나로 피신해 계십시오. Upol로 잠시 떠나계셔도 좋습니다. 일이 정리되면 다시 부르겠습니다. 혹은 ‘중립지대’로 대피하셔도 좋습니다. 아니면 최근 저와 계약한 이스라엘도 후보로 가능하지만, 그쪽은 되도록 추천해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중립지대라는 곳에 대해서는 윤혁에게도 대강 들은 바가 있었다.
‘루디아 양이 살던 곳,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거주지라지.’
성한과 유진은 이내 결정을 굳혔다. 그들은 두 번째 선택지를 택했다. 마침 이번 기회에 주님을 믿는다는 그 유대인들과 인연을 맺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앞날의 염려로 두려움도 따랐지만 그만큼 기대도 들었다.
‘루디아 양은 윤혁이랑 같이 먼 곳으로 여행 중이라 지금은 그곳에 없겠지.’
그녀가 남아 있었다면 그 마을의 사람들과 더 쉽게 친해질 수 있겠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여보, 너무 긴장하지 마.”
“걱정마세요. 저도 용기는 당신 못지않아요.”
유진이 결연히 웃으며 성한을 달랬다.
이윽고 며칠 뒤 성한 부부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머무르는 하와이에 당도했다. 시기가 시기여서 그런지 세계 곳곳에 퍼져 일하던 유대인들이 죄다 섬으로 귀환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그들이 모인 것은 재혁이 언급한 ‘개변’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섬에 당도한 부부는 루디아네 공동체가 거하는 마을에서 큰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섬의 여주인이 그들을 중앙으로 직접 초청했다. 레리엔의 정원에 당도한 부부는 화려하고 고귀한 풍경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별의 여왕처럼 아름다운 레리엔의 위엄과 미모를 보더니 더 크게 놀랐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그녀는 정중한 품격과 함께 손님들을 대우했다.
“시장하실 텐데 어서 와서 저녁을 함께 나누시죠.”
“당신께서 혹시 이 지역의 여주인이십니까?”
어안이 벙벙한 성한의 표정에 레리엔이 너그러이 빙긋 웃었다.
“선생님은 강윤혁 군과 카이, 그 둘의 아버님이 맞으시죠?”
“아, 네, 그렇습니다만.”
“다행이네요. 저는 두 사람 모두와 인연이 깊답니다. 저를 편하게 대해주세요.”
레리엔은 부부를 융숭히 대접했다.
정원에는 레리엔의 양아버지인 레우벤과 몇몇 유대인도 함께 있었다. 마침 아나스타샤도 그곳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중요한 역할을 할 체스판의 말들은 다 같이 모인 셈이었다. 오래간만에 좋은 말동무를 얻은 부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들과 흥미롭게 담화를 나누었다.
레리엔은 이미 초인 제자들의 입을 거쳐 소식을 들은 지라 조만간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내막을 전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장은 손님들이 경악하지 않도록 침묵을 유지하였다.
‘천천히 전해주는 편이 낫겠지?’
어차피 머지않아 실체가 드러날 테니까.
*
몇 달간, 신해는 곧 닥쳐올 2차 경합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매일매일 수련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력 투쟁은 그로서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훈련을 게을리하거나 방책 마련에 허술히 임할 수는 없었다. 평화란 자기가 무장을 내려놓는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게으름에는 훗날 필시 후회가 따를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고된 각오는 나머지 크로스솔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서로 긴밀히 정보를 교류하였고 개인 훈련을 통해 연단 받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한편, 신해는 넘버 1이라는 후보를 긴밀히 주시했다. 그는 여러 면에서 스테판과 유사한 영적 아우라를 발산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자질이나 재능 측면에서는 다른 이레귤러들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했다.
신해 외의 다른 41명의 크로스솔져들도 각자에게 할당된 경합 후보자에 대해 정보를 모았고 그것을 크로스솔져 멤버들과 공유했다. 종합해 본 결과 과연 넘버 1은 여러모로 특별한 개체였다. 현재로서는 스테판과 함께 인류연합 측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양대산맥이랄 만 했다.
다만, 정작 가장 마음에 걸리는 상대는 크로스솔져도 기타 히어로도 아닌, 문제의 ‘또다른 보조인원’이었다. 스스로 폰(pawn)이라고 소개했던 그 존재들.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감조차 안 잡혔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인간이건만, 인외(人外)의 성질을 연상케 하는 신비감을 내뿜는 자들이었다. 더욱이 그들이 운용하는 초능력의 기운은 일반적인 초능력들과는 성질이 완전히 상이한 것이었다.
‘다음 판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안 가네.’
그렇게 고심하며 지내던 신해는 어느 날 낯선 누군가에 의해 길에서 가로막았다. 후드와 모자를 눌러쓴 자라 그런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몹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었다. 신해는 조용히 그를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를 순순히 지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잠시 날 따라와라.”}
“넌 누구지?”
-{“따라와 보면 알게 될 거야.”}
못 이기는 척 반응해 주기로 한 신해. 수상한 그 인간은 신해를 으슥하고 폐쇄된 곳으로 유인했다. 그때 괴한은 겉옷을 벗어 던졌다. 겉보기에는 인간의 형상이었으나 눈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신해는 대번 녀석이 문제의 그 폰들 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기억난다.’
같은 팀은 아니지만, 분명 1차 경합 도중에 잠깐 비슷한 류의 존재들을 적으로 마주쳤었다. 태양처럼 빛나는 금색 눈동자와 그 위에 포개진 두 가지 색의 빛의 고리가 그의 눈에서 형형히 빛을 발하였다.
“뭘 할 생각이냐.”
-{“너 크로스솔져의 일원이지? 궁금하네. 히어로들은 솔직히 형편없었거든. 기대 이하였지. 너희는 조금 다를지 기대되는데 말이야.”}
“뭐?”
당황한 신해는 황급히 65명과 비상 연락을 시도해 보았다. 마침 1차 경합이 종료된 뒤로는 그들만의 자유로운 통신이 허락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 회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에 이런 알림 메시지가 돌아왔다.
{보조 인원 중 히어로 출신은 현재 전원 일대일 대치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신해 말고도 다른 크로스솔져들, 심지어 일반 히어로까지도 전부 낯선 괴한들과 대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상대는 아마도 이번 경합에 참여한 폰들이겠지. 계산해 보니 마침 살아남은 70명의 후보자의 보조인원을 세 보면 폰들이 그 중 정확히 절반이었다.
“너 정체가 뭐냐?”
-{“알아서 뭐 하게.”}
“널 알고 맞서야 지더라도 후회 없이 싸우지.”
-{“헤헤, 제대로 겨룰 마음은 있나 보네. 기쁜 일이야. 그 보답으로 한 가지 힌트를 줄게. 우리의 정체는 폰(pawn), 킹(KING)의 세포이자 일부분이지. 그리고 이름 그대로 우리는 무엇으로든 진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폰이 신해에게 덤벼들었다. 깜짝 놀란 신해는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상대의 순발력과 전투 센스는 히어로들 이상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이 전부는 아닌 듯했다. 끝을 모를 거대한 힘의 기운이 선명히 느껴졌다.
‘야단이군. 무기도 없는데.’
마침 시스템의 메시지 상태창이 신해의 뇌리에 형상화되었다.
{무기 실체화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실체화라고? 설마 시뮬레이션 우주에서 적용되는 그 개념인가?’
그러나 깊게 고민하거나 이것저것 재볼 여유는 없었다. 긴박한 상황이었다. 폰이 다시금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초능력까지 사용했다. 초인들이 종종 사용하는 초능력과는 본질적으로 느낌이 다른, 괴이한 느낌의 어두운 힘이었다.
“수락한다.”
{수락하셨습니다. 아머(armor) 세트, 인간 ‘차신해’와 동기화 완료.}
이내 신해가 휴먼 솔져 시절에 다루거나 보아온 온갖 무기에 대한 데이터가 일제히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이어서 상상으로만 떠올리던 각종 무기가 실제 물질처럼 실체화되어 주어졌다. 잠시 후, 주변 공간 전체가 아공간인지 시뮬레이션 우주인지 구별이 안 가는 특수 영역으로 침식되어 완전히 덮였다.
-{“제대로 해봐. 내가 네 성능을 평가해 줄 테니까.”}
폰이 내뿜는 섬뜩한 분위기가 한 차원 더 강력히 반전되었다. 놈의 이마에 희미한 빛의 문양이 새겨졌다. 신해는 그 모습을 보더니 어디선가 흘려들었던 신화가 떠올랐다. 지구의 신비주의 종교에서는 저것을 어떻게 불렀던가.
‘제3의 눈!’
폰의 이마에 새겨진 가상의 눈이 섬광을 발하였다. 신해는 그 실체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는데 순간적으로 몸에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줄로 착각했다. 마치 상위 차원의 세계가 통째로 이곳 하계로 강림하는 것만 같았다.
‘설마 저 녀석, 물리 법칙에 간섭하고 있는 건가?’
이것은 과학 기술을 빌려 물리 법칙과 물리 현상에 간섭하는 작업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묘기였다. 폰은 현재 직접 상위 차원에 접속함으로써 하계의 법칙을 다시 쓰고 있었다. 그것도 초미세 조정의 규칙마저 완벽하게 준수하면서 안정성을 유지한 채로. 일개 인간형 개체에게 그런 엄청난 일이 가능하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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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들의 성능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고 느끼며 관측하는 카이젤.
“클론솔져의 능력, ‘허상의 초능력’을 다루는 기능, 과연 한계를 넘어서 어느 경점에까지 다다를지, 궁금하군. 한계까지 평가해 볼 가치가 있겠어.”
현재 그가 메타뉴런을 기반으로 만든 메타뉴런의 분신, 클론솔져. 소위 ‘폰’이라 정의된 이들에게는 세 종류의 특수 능력이 부과되었다.
첫째, 본체와 더불어 분신들이 완벽한 호환을 이루는 학습 공명 체계.
둘째, 카이젤로부터 각종 ‘영감(靈感)’을 받고 다른 ‘메이저급 초지능체’의 유사 분신체를 전달받아 내부에 생성하는 기능.
셋째, 기존 초능력 채널과 완전히 별개로 작용하는 무형의 힘, ‘허상의 초능력’을 체내에 개화하는 능력.
마침 시험해 보기에 딱 좋은 기회가 왔다.
“사흘 뒤에 전개될 2차 경합 때까지는 내 분신들이 좀 수고를 하겠군.”
카이젤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누워 흘러가는 모든 흐름을 지켜보았다. 우주 전역으로부터 정보가 쏟아져 그의 뇌와 합쳐졌다. 그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정신력만을 이용해 만사를 처리하였다. 매 찰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이디어와 연구 내용이 그의 뇌리에서 발원하여 통일시스템 쪽에 전송되었다. 그 모든 것들은 비서인 통일시스템의 손을 빌려 현실로 만들어졌다.
이제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프로젝트가 개막할 예정이었다.
“모두 준비하라. 우리는 곧 근원적 한계를 우리 손으로 해제하는 역사를 이뤄낸다(시 2:3).”
왕의 텔레파시가 전송되어 모두에게 선포하자 우주 곳곳에 주둔해 있던 백만 명의 초인들은 흥분과 열정의 도가니에 잠겼다. 그들은 성취의 기쁨이 묻은 사념파를 발원하며 자축의 즐거움으로 몸이 달아올랐다. 이윽고 경기를 관리할 심판관이 지구에 당도했다.
“마도왕, 인형왕, 이번 경기 심판은 너희에게 맡긴다.”
카이젤의 명령에 그들은 곧장 응답하였다.
“당신의 일을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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