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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77회 아벨의 후예 Ch 39. 빛과 소금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2.16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한편, 레리엔은 오늘 이 시점에 제2 관제탑을 습격했을 때, 그녀는 에녹의 내부에서 2세대를 향해 타오르는 맹렬한 복수심과도 직면하여 해결점을 찾아야 했다. 2세대는 카이젤의 어미를 죽인 장본인이기도 했지만, 에녹의 어미인 이벨리아의 원수들이기도 했다. 에녹은 2세대라는 이름이 철저히 효시 되어 부관참시당해야 마땅하다고 굳게 믿었다. 네크로-슈퍼휴먼이라는 이름의 망령으로 이용당해 인류를 위한 거름더미가 되는 것은 합당한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레리엔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에녹, 들어봐. 네가 생각하는 방법보다 더 효과적이고 완벽하게 복수를 성취해 낼 방법이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날 꾀려는 의도면 잘못짚었다.”

   “네 부모의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건 2세대, 너는 그자들이 일반인들에게 추월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지? 그러니까 네크로-슈퍼휴먼들을 농락의 판에 집어넣은 것일 테지.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승리 전략이 있어. 네 아버지가 소유했던 신념을 ‘증명의 자료’로 사용해. 너는 그것으로 2세대의 망령들에게 완전무결한 패배를 안기면 돼.”

   “뭐?”

   “마침 그 뜻을 수행해 줄 ‘신념과 유지의 후계자’들이 들어올 예정이야.”

   이치죠우지 쥰의 뒤를 이어 그리스도 신앙의 의지를 계승한 자는 성한이다. 그리고 그 성한의 뒤를 이은 자들은 크로스솔져들이다. 때마침 그들이 현재 RS-월드 속에 볼모로 붙잡혀있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그저 소모될 ‘대조군’으로서의 조연 배우로 투입되어 1등 시민과 네크로-슈퍼휴먼 간의 대결에 자극적인 양념을 쳐줄 존재가 될 예정이다. 레리엔은 이들에게 조금 더 큰 역할을 맡겨볼 것을 제의했다.

   “뭘 믿고 그런 불완전한 히어로들 따위에게 큰 역할을 맡기지?”

   에녹은 의심을 내비쳤다. 레리엔은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너는 과연 자아를 강화하는 방법만으로 인간이 지금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승격될 수 있다고 생각해? 설령 인간의 영혼에 담긴 잠재력을 완전히 꺼내는 법을 익힌다고 치자. 그런데 영혼 자체의 생명력이 고갈된 상태라면 어쩔 셈이지? 시체가 스스로의 질량을 연료로 태운다고 해서 생명력이 만들어지지는 않을 텐데?”

   카이젤의 방식의 허점을 꼬집는 기습 발언에 에녹은 머뭇거렸다.

   ‘설마.’

   그는 레리엔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모두 이해하였다.

   “크로스솔져들의 영혼 속에 담긴 영적 본질은 다른 배우들과 다르다는 건가? 침몰당한 인간 영혼의 생명력을 복원할 단서라고? 그렇게 판단한 건가? 하지만 꽤 위험하고 발칙한 주장이로군.”

   “사실 마침 나도 그 부분을 탐구해 보고 싶었어. 제안을 할게.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합의를 내리자. 내 가설을 검증할 실험을 해보는 게 어때?”

   레리엔은 천천히 에녹을 구워삶았다. 한참 그를 흔든 끝에야 대답을 얻었다.

   “한 번쯤 속아주지.”

 

 

   이렇게 에녹을 설득한 덕분에 지금처럼 맘 편하게 샤오와 대립을 이어나갈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레리엔은 샤오의 텔레파시를 해킹하여 인형들에게 자기 정신의 파편을 주입함으로써 카이젤이 원래 계획했던 청사진은 살짝 비틀었다. 실험군인 1등 시민이며 대조군은 히어로들이다. 그리고 RS-월드 속에서 이 두 집단의 균형을 잡아주는 무게추는 네크로-슈퍼휴먼들, 샤오의 인형들이었다. 레리엔은 바로 무게추를 살짝 교정하였다. 그렇게 하여 지금까지 조연으로 밀려나 그저 세계들 속의 사소한 요인으로만 작동하던 히어로들이 수면 위로 끌어올려졌다.

   샤오가 의아해하며 질문했다.

   “그렇게까지 열의를 다하는 이유는 뭐지? 그런다고 네게 이득은 없을 텐데?”

   “부탁받은 일이 있어서 말이죠.”

   레리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며 계속 권능 대립을 유지했다.

   ‘이걸로 당신이 요구한 부탁은 완료되었습니다, 강성한 씨.’

   이제 남은 부분은 크로스솔져들의 몫으로 바통이 넘겨졌다. 그들이 과연 제대로 해낼지는 의문이었다. 그들이 뜻하지 않게 선한 변화를 끌어낸다면? 그때는 레리엔도 성한이 계승했다던 그 신념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을까? 당장은 그 미래를 생각하기에 앞서 눈앞의 과제부터 맞닥트려야 하리라.

 

 

 

 

 

 

 

*

 

 

 

 

 

   엘리베이터 속에 앉은 스테판은 용감하게 자기 본체의 일부분을 과감히 RS-월드 속에 투자하였다. 그가 행동을 시작하자 그의 내면에서 샘솟아 나온 테마가 광대한 RS-월드 전역으로 흘러 들어갔다.

   원래 RS-월드에 기본값(디폴트)으로 설정된 테마는 아자토스(카이젤)가 만들어낸 테마뿐이다. 스테판과 같은 이레귤러들은 자신들의 ‘변형 표식’을 매개체로 아자토스의 테마에 반대되는 테마를 주입하여 변형을 더하고 길항을 이뤄야 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역할이었다. 이것은 제법 큰 도박이었다. 그러나 스테판은 망설임 없이 나섰다.

   ‘이것으로 첫 한 수를 두겠소.’

   거울상처럼 펼쳐진 스테판 소속의 정신세계들이 프랙털처럼 일제히 변형 현상으로 일렁거렸다. 스테판은 상위 차원 속에서 증강된 자신의 인지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투사했다.

   그가 제일 처음으로 손을 본 테마는 바로 ‘소유권’에 관한 주제였다.

   인류연합은 지금껏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만물은 인간들의 소유이며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가치관을 주입해 왔었다. 소유권은 늘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살고 자기를 위해 만물을 소비했다. 심지어 스스로의 자아와 영혼마저 자기 만족적 소비를 위한 소유물이 되었다. 비단 이번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고 어느 시대나 그렇긴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해진 문명의 고도화가 이 사상을 극한까지 치닫게 했다.

   당장 인류연합의 최고 지도자와 그 직속 부하들부터가 그러한 철학하에서 움직였으니 나머지 인간들이라고 다를 이유는 없었다. 만물의 소유권을 쥔 분이 정작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들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넘버 111 이레귤러, 스테판은 과감하게 도전했다. 그는 인류의 ‘소유의 갈망’에 맞서서 저항하는 테마를 던졌다. 인류연합의 소유욕, 인간들의 소유욕, 위버멘쉬와 초인들의 소유욕에 경종을 울릴 횃불을 집어던졌다.

   스테판은 만물의 소유자인 창조주에 대해서 이미 개인적으로 깊이 알고 있었다. 인간의 소유물이나 지배권은 어디까지나 잠깐 맡겨진 물건일 뿐임도 알았다. 그것은 언제든 원주인께서 되찾아가실 수 있는 것들이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영원토록 맡겨질 자원이란 없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빌려 쓸 뿐이다.

   개인의 능력이나 역량도 마찬가지이다. 이 역시 주인께서 맡기신 달란트이며 언제든지 회수될 수 있다. 어리석게도 현 인류는 자신이 섭정에 불과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랬기에 더 많은 축적물을 자기 울타리 안에 쌓는 데만 열중했다. 개인도 그러하였고 집단도 그러하였다. 내줄 줄도 알지 못했고, 권리를 행사하려는 아집을 내려놓지도 않았고, 주인께서 맡겨주신 뜻을 실현하려고 고민하지도 않았다.

   “썩어빠진 병든 가치관부터 뜯어고쳐 주겠소.”

   스테판에게서 생성된 화신들은 그의 정신세계 속 부분들, 곧 무수한 거울상 영역 안에서 활동하였다. 그들은 본체가 의지하는 대로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 전역으로 ‘청지기 사상’이라는 테마를 주입하였다.

   폰들은 그런 그의 모습이 어리석다는 듯 쳐다보았다. 시작부터 메인 세계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사상으로 대립하다니. 저런 무리수를 두다가는 얼마 가지 않아서 금세 산산조각이 나버릴 텐데.

   -{“무모하군. 지혜롭지 못한 선택이야.”}

   “본체가 다 소모되더라도 상관없소. 어차피 RS-월드도 내 영혼을 취하지는 못하오. 잘해봐야 목숨이나 의식을 빼앗는 게 전부겠지. 나도 내 자아와 육체와 정신을 잠시 맡은 청지기에 불과하오. 그러니 주께서 어떤 방식으로 회수하시건 신경 쓰지 않을 것이오. 그저 지금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

   그는 자신이 발의한 테마와 모순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정직했다. 마음은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투명했다. 자신의 본체가 연기처럼 조금씩 흩어지는 와중에도 그는 두려워하거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도 나서도록 하죠.”

   이번에는 데이빗이 전진하였다.

   “지금 제게 맡겨진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천천히 그러다 보면 이 순간에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도 차차 알아갈 수 있겠죠. 행동조차 안 해보고 후회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는 ‘소명(召命)’이라는 테마를 투사해 영역을 뒤흔들었다. 이제껏 자기 스스로를 우상화하여 주인으로 섬겨왔던 인류는 결코 깨닫지 못할 주제였다. 신이 인간에게 하사한 거룩한 명령과 부르심. 오로지 절대자를 직접 만나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한 자만이 ‘소명’이란 것이 무엇인지 올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부름(calling)이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할 뿐이죠.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자들은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더듬어 발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들은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죠.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잘하거나 좋아하는 일이 있다. 여러 가지 외부 상황의 떠밀림에 인해 주어진 일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것들은 현실이며 임무이다. 그것들을 마냥 고통스럽게, 혹은 지루한 쳇바퀴로 여긴다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직임과 임무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면? 그 모든 일들이 지겨운 노역이 아닌, 어떤 위대한 뜻이 담긴 고귀한 것임을 이해한다면? 사람들이 그런 이해를 얻도록 돕는다면 얼마나 큰 유익과 가치가 있겠는가.

   그렇게 관점을 바꾸다 보면 그 임무를 주신 존재, 곧 절대자를 향해 관심의 초점이 옮겨지지 않을까? 그분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마치 장님이 손을 더듬어 물건을 찾아 나가듯, 사람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임무로 인한 고뇌로부터 시작해 궁극적인 의의를 찾으려 애쓰다 보면, 그는 궁극적인 주권자를 더듬어서라도 찾아내어 끝내 만나게 되지 않을까.

   넘버 1은 인류의 직업관과 소명관에 변혁을 일으킬 테마를 세계 속에 투사했다. 누구에게나 절대자로부터 맡겨진 귀중한 사명과 목적이 있다. 그 뜻을 발견하여 맡겨주신 분의 은혜를 빛내기 위해 활용하는 것, 그분의 선한 소원에 걸맞게 이용하려 노력하는 자세, 아울러 여력이 닿는 한 실력을 성실하게 갈고닦는 것. 그러한 태도야말로 단순히 자기중심적으로 능력을 쌓아 자아를 입증하는 데 집착하는 방식보다 훨씬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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