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78회 아벨의 후예 Ch 39. 빛과 소금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2.20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넘버 1과 넘버 111이 준동하자 다른 이레귤러들도 본색을 드러냈다. 그들은 자신이 가슴 속 깊이 품어온 사상과 정신을 혁명적 테마로 발현시켰다. 어떤 테마들은 서로 반목을 빚으며 역작용을 일으켰다. 반대로 어떤 것들끼리는 화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였다.

   이러다 보니 이레귤러들 사이에서도 허울과 가식이 사라지며 적군과 아군이 극명하게 나뉘기 시작했다. 처음에 카이젤이 예측했던 바대로 정확하게 경계가 드러나면서 후보자들이 네 개의 분파로 나뉘었다.

   후보자 70명은 각 분파에 거의 비슷한 숫자로 고루고루 분배되었다. 그중에는 스테판처럼 순수하게 신의 거룩한 뜻과 통치를 추구하는 생명력 넘치는 영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반면, 복음의 영향은 받았으되 영원을 바라보기보다는 현세의 개혁과 혁명에만 더 초점을 맞추는 속세주의자들도 있었다.

   반면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아닌, 종교와 윤리와 철학과 가치관에 목매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엘 피어슨의 망령, 곧 현월의 교리에 아직 깊게 물든 자들이었다. 현월의 이름을 여호와로 바꾸었을 뿐 영혼의 중심이 완전히 개혁되는 체험은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예 현월마저도 자기가 제멋대로 구상한 혁명관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자들도 있었다.

   이렇듯 숨겨왔던 각 사람의 정체성이 이제 선명히 모두 앞에 공개되었다.

   이레귤러들은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투자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각종 혁명의 테마를 RS-월드에 투척했다. 어떤 이는 아자토스가 만든 세계관과의 정면충돌을 두려워하여 꼬리를 내리며 위배성과 격동성을 자가 검열하였다. 반면에 스릴과 도박을 추구하는 충동이 신중함을 이겨버린 자들은 중심 세계관과 정면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이에 상응하는 공정한 철퇴가 되돌아왔다.

   무의미한 변화를 야기하거나 RS-월드 전체의 세계관에 혼란을 일으킨 테마들은 가차 없이 배격되고 배제되었다. 아자토스는 꿈에 잠긴 도중에도 이러한 반역을 철저히 검열하였고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생선을 먹는 와중에 정교하게 가시를 발라내듯 무가치한 혁명 사상들을 반역자 전용 쓰레기통에 옮겨 담았다. 이런 혁명 시도는 마치 백신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되어 훗날 일어날 비슷한 부류의 혼란을 예방하는 용도가 되었다.

   반면에 드물게나마 유익을 거두어 높이 평가된 테마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혁명만을 위한 혁명은 이러한 명예를 얻지 못했다. RS-월드는 지독하리만큼 영리하고 분별력 있었다. 무엇이 쓰레기이며 무엇이 보화인지를 잘 알았다.

   또한 특정 가치관에만 경도된 혁명의 테마도 별 유익을 낳지 못했다. 평등이니 자유니, 사랑이니 인류애니, 해방이니 조화니 하는 각종 선(善)의 테마도 그 자체에서만 의의를 찾으려 하면 필연 실패로 귀결되었다. 왜 그것이 선이 되는지에 대한 근원적 근거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테마들은 필연 극도로 경도되어 왜곡의 길로 빠져들었다.

   흥미롭게도 스테판과 뜻을 한데로 모은 자들은 선전하였다. 꽤나 힘겹게 고전하긴 했으나 아슬아슬하게나마 생존을 유지했다. 겉보기에는 그들이 내세우는 테마들이 무모하고 어리석고 인류연합과 상존하기 어려워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도와주기라도 하는지 조금씩 투자분에 대한 이익 회수가 잘 이루어졌다.

   나머지 세력이 치열하게 선방과 후퇴를 반복하는 가운데도 스테판의 편은 불안정하게나마 현상 유지를 이뤄냈다. 폰들은 이내 네 세력 중에 스테판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기울였다.

 

 

 

 

 

 

 

 

*

 

 

 

 

 

   후보자들의 경합이 전개되면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테마도 여러 종류 발동되었다. 대개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악법으로부터의 자유, 규율로부터의 자유, 강압과 지배로부터의 자유,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등등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넘버 5는 조금 다른 관점의 ‘자유의 가치’를 제시했다. 그는 ‘악에 종속된 의지’로부터의 자유를 제창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는 말하지만, 그 의지는 정말로 100% 자유롭지는 않아. 우리는 환경이나 기질의 속박에 영향을 받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도덕적인 무능력으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넘버 5는 회심하기 전의 인간이 죄의 본성에 얼마나 철저히 종속되어 있는지 잘 알았다. 안타깝게도 사실이었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무능력하다. 절대자를 찾으려는 의지도 없지만, 선과 악의 기준을 계시받아도 선을 선택할 능력이 없다. 이는 너무도 절망적인 속박이었다. 인간 외부의 속박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무서운 힘은 인간의 내면에서부터의 속박력, 곧 회개치 못하도록 만드는 자기중심적 본성이었다.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런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

   ‘표식이 정말로 무서운 이유는 거기 걸린 자들이 그게 속박인 줄도 모르기 때문이야.’

   이러한 의미에서 현 우주 인류에 씌워진 ‘표식’은 치명적이었다. 그것은 인류 보편적 족쇄인 ‘원죄’와 너무도 닮은 꼴이었다. 마치 첫 번째 원죄 위에 제2의 원죄를 덧댄 격이다. 넘버 5는 ‘자유’의 테마를 다룸으로써 두 족쇄 모두를 고발하였다. 인간 본연의 자유를 망가뜨리는 죄악스러운 속박의 파괴성을 모조리 들춰내었다.

   물론 이는 시스템의 엄중한 제재가 돌아올 위험성이 있는 혁신적 메시지였다.

   하지만 넘버 5는 과감했다. 그는 단순히 속박으로부터의 해방만을 보지 않고 그 너머에 도래할 기쁨과 회복을 노래하였다. 세계관을 정면으로 깨부수려 하지 않고, 대신 세계관 그 자체로 하여금 해방의 은혜를 맛보도록 유도했다. 나아가 표식이 심어지지 않은 인간에게도 표식 못지않은 ‘악한 의지의 속박’이 있고 그것을 풀어낼 필요성이 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참가자들 모두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놀랍게도 넘버 5는 이렇게 과격히 도전했음에도 본체를 모두 압류당하지 않았다. 그는 버텨내었다. 이는 그가 노래한 테마에 반응하여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 속에서 활동 중이던 배우들이 마음의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오랜 시간 속박에 맞서 싸웠던 크로스솔져들과 그들의 화신체들은 RS-월드의 세계관에 취해있던 중, 강한 자극과 함께 잠에서 각성했다. 아울러 레리엔이 벌어준 기회 덕택에 세계관에 영향력을 끼칠 크로스솔져들의 여력도 증대된 상태였다.

   ‘움직이자. 공의를 바로잡기 위해.’

   힘겨운 싸움에 지쳐 쓰러져있던 전사들이 다시 의로움의 창을 붙들었다.

 

   한편, 넘버 19는 ‘자연법의 다스림’에 대한 테마를 노래하였다. 그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법률이 아닌, 자연법과 도덕법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규율로 되돌아갈 것을 권고했다. 율법주의를 제창한 것은 아니었다.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 절대자를 향한 믿음을 무작정 갖도록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인간이 제멋대로 법을 개변하는 일에 대해서 엄중한 경고로 일침을 가했다.

   “인간이 만든 법은 불완전하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만드신 법에 걸맞게 살도록 창조 때부터 설계된 존재다. 그 질서를 거스르고 인간의 힘으로 인위적인 법도를 지어내려고 한다면 도리어 부작용만 발생한다. 또 그 부작용을 덮으려는 과정에서 법률 체계는 점점 지저분해질 뿐이야.”

   그는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율법에 비춰서 거짓과 악으로 입증되는 모든 부조리를 신랄히 고발했다. 설령 인간이 그런 부도덕을 해방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했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는 이 모든 불법을 과감히 물리치고 거부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신의 자연법에 순종하라고 외쳤다. 무법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은 자유가 아닌 파멸의 길임을 알려주었다.

   ‘법은 신의 뜻을 순종해야 하며, 인간은 그 법의 다스림에 순종해야 한다.’

   이 테마가 RS-월드에 스며들자 곳곳에서 법률 개혁이 준동하였다. 이를 훼방하려는 몸부림도 벌어졌으나 차차 넘버 19의 테마가 옳았음이 밝혀졌다. 무법 대신 법치가 자리하자 인간계에 창조성이 회복되었다.

   세계관은 이러한 넘버 19의 행태에 조금 의아해했다. 이레귤러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위적 혁명 대신에 사회 질서의 통치를 추구하는 행태, 그러면서도 사회를 경고하여 긴장감을 유발하는 그의 태도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넘버 13은 ‘구휼과 선행’이라는 테마로 음률을 자아내었다. 그는 우주 인류 사이에서 형성된 계층 분화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이미 1등 시민과 2등 시민이 나뉘었고 그사이에도 커다란 간극과 세분된 스펙트럼의 계층 사회가 존재한다. 더구나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자들마저 존재한다. 비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현실과 투쟁하고 있다.

   정말로 인류가 그 자체로 존엄하다면 왜 이러한 분화가 이루어져야 하는가. 단지 뛰어난 역량과 강한 세력과 고도화된 문명을 갖추는 것만이 위대해지는 유일한 길인가. 진정으로 위대해지려면 마땅히 서로를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넘버 13은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겨야 하며 이것이 참된 순리임을 온몸으로 주장했다. 그는 본체 전체를 거의 다 소각함에 이르기까지 구제의 참된 의미를 알렸다.

   이에 재미있는 일이 전개되었다. 마치 그릇을 모두 비울 때마다 어디선가 주전자가 물을 다시 채워주듯, 부식되어 가던 넘버 13의 본체가 희미하게나마 채워지고 보충되는 일이 거듭되었다. 흡사 가진 것을 후히 베풀고 나누는 자를 풍성한 공급의 통로로 사용하겠다고 하신 신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리고 넘버 13의 테마의 여파는 메아리치듯 RS-월드 속의 세계들에까지 구석구석 전달되었다.

 

   이번에는 넘버 37이 ‘창조 질서’를 주제로 테마를 생성했다. 그는 자연 만물을 원래의 모습에서 흐트러뜨리는 일을 반대하였다. 무모하게 인공생명체와 인공 지능의 발명하고 진화시켜 놓고는 책임지지 않는 행태, 자연을 지배하고 조작하려는 무리한 개발자의 욕심을 지적했다. 또한 생명을 제멋대로 만들어내려는 윤리 파괴적 행태도 고발했다. 생명체의 정신을 지배하는 기술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아울러 억지로 인격을 복제하거나 만들어내는 행위도 반대했다.

   이렇게 인류연합의 행보에 반대하는 노선을 취했음에도 그의 피드백은 마냥 경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간섭으로 인해 RS-월드의 세계관은 지금껏 무리하게 달려온 인류의 행보를 돌아보게 되었다. 주류에 반대되는 주장은 때때로 점검과 성찰의 기회가 되는 거울이기 마련이다.

   비록 적극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넘버 37의 테마는 RS-월드에서 벌어지는 ‘폭주의 시대’를 더 연장되지 않고 제지하는 에너지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이러한 제지가 윤리와 개발 사이의 균형을 재정립해 주자 실제로 세계 내에 선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자연히 넘버 37에게도 미약하게나마 보상이 돌아왔다.

   아울러 넘버 37은 이미 엎질러진 물, 곧 이미 기존에 만들어진 인공 인격들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돌아보도록 촉구했다. 분명히 의식을 갖고 있으며 높은 지능을 갖고 있음에도 무작정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인간과 인간과의 경계를 허물도록 주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인간과 비인간의 존엄성의 격차를 명백한 증거를 통해 구분할 것을 요청했다. 인간의 근원적 가치는 절대자의 형상에서 찾아야 한다. 반면, 만들어진 발명품들의 가치는 인간의 책임감에서 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는 인류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존재들에 대해 철저한 도덕적, 윤리적 책임감을 갖도록 부탁하였다.

   동물과 천체와 같은 자연물에 대해서도 ‘거룩한 방식의 다스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인간에게는 그 자연물들을 다스릴 권한이 분명히 있으나 지배하고 폭압으로 억누를 권리는 없다. 많은 것을 가진 강자가 가난한 약자를 섬겨야 하듯, 인간 역시 섬김의 다스림으로 자연을 지혜롭게 가꾸어 아름다움을 더해 나가야 함을 주장했다. 이는 ‘개발’이란 개념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
이전회

577회 아벨의 후예 Ch 39. 빛과 소금 (2)
등록일 2026-02-16 | 조회수 11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등록일 | 조회수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