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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79회 아벨의 후예 Ch 39. 빛과 소금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2.2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넘버 103은 ‘연민’을 노래하였다. 그는 인류애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죄인을 향한 용서와 긍휼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울러 인간이 비록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죄인이지만, 그 영혼 속에 ‘신의 형상’의 희미한 흔적을 안고 있기에 타인과 공감할 줄 알며 더불어 살 수 있는 존재임을 알았다.

   그래서 넘버 103은 사람이 자기 이외의 모든 존재에게 공감해야 할 근거를 발견하였다. 부유하건 가난하건, 지혜롭건 어리석건, 겉모습이 아름답건 추하건, 누구나 본질적인 차원에서의 공허감과 실존적 고뇌는 똑같이 안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물질적 차원의 충족을 뛰어넘어 이런 초자연적인 상실감에서 회복이 필요했다.

   이런 인간 본연의 처지를 깨닫는다면, 인간은 타인에게 연민을 품을 수 있다. 비단 겉으로만 불쌍해 보이는 사람에게뿐 아니라, 잘 나가는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으리라. 그렇게 서로를 동병상련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구원의 능력을 지닌 절대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연민과 긍휼은 연약해 보이는 테마였지만, 그 파급력과 파괴력은 상상을 웃돌았다. 그 안에는 혹독하고 강압적 질서에 뿌리를 내린 빙하 같은 세계를 녹여내는 힘이 있었다. 복잡한 시스템이나 알고리즘으로는 바로잡지 못하던 난제 중 많은 부분을 힘들이지 않고 쉽게 완화해주었다. 비록 완전치는 않은 해결일지라도 올바른 해결책을 향한 갈망을 품도록 하는 데는 충분했다.

 

 

 

 

 

 

 

 

*

 

 

 

 

 

   스토리 제너레이터들이 흰 돌을 두고 테마 제너레이터들이 검은 돌로 맞수를 두는 가상의 바둑 게임이 맹렬하게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RS-월드의 스토리와 테마는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매질 안에 섞여들었다. 아울러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 속에서 과업을 직접 꿋꿋이 수행하는 배우들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도 이러한 바둑 게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RS-월드 세계관의 지배에서 깨어난 크로스솔져들은 각자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정의를 실현하고자 애썼다. 외부 간섭으로 인해 그들에게 할당된 비중이 증가한지라 싸움이 훨씬 수월해졌다. 아울러 테마 제너레이터들 중 의로운 자들이 지혜로운 선택을 해준 덕에 크로스솔져들도 알게 모르게 긍정적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물론 모든 테마 제너레이터들이 선한 방향으로 움직인 건 아니었다. 때때로 혁명만을 위한 혁명이 테마로써 투사되어 필드를 어지럽혔다. 또한 RS-월드 안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한없이 가까운 ‘세계관의 의지’를 거스르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스솔져들의 화신들은 세상의 원리와 투쟁하기를 힘썼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력 투쟁과 분열의 전략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오랜 시간을 군인과 영웅으로 살아왔던 이들이었기에 비폭력의 방도를 학습하기란 뼈를 깎듯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자아와 욕구를 꺾어야 했다. 세상과 맞서 싸우되 선(善)을 통해서만 맞서는 기술을 배워야 했다.

   또한 그들은 지혜롭게 판단하여 행동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RS-월드 안에서는 공통적으로 누구에게나 인지 능력의 큰 증폭이 일어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본질적 지혜가 늘지는 않았다. 지혜와 지력은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크로스솔져들은 자기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방법을 연습해야 했다.

   숱한 평행 세계들 속에서 분투하며 그들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때로는 판단 실수로 인한 뼈저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되풀이하고 학습해 나가며 성장했다.

   그들은 타인의 인격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상의 죄를 분별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에 타인 자체를 판단하고 심판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태들에 대해서 선과 악을 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것은 진리의 말씀을 지침 삼아 세상의 병세를 진단하는 영적 의료 행위와도 같았다.

   분별과 섣부른 심판, 이 두 가지를 나누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선악을 판단하려 하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직접 심판자가 되려는 영적 교만의 본성이 튀어나왔다. 그렇다고 드러난 외부의 죄악들을 잠잠히 넘어가려다 보니 악이 창궐하는데도 비겁자처럼 방관하고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결과를 맞이하였다. 죄는 끝까지 미워하되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는 길이란 참으로 험난했다.

   마지막으로 크로스솔져들은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의 관계도 다시금 생각해야 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영웅으로 싸워오면서 죽여온 인공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비록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피 흘림을 너무도 많이 치렀다.

   이제 그들은 과거 다윗 왕이 성전 짓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던 것처럼 무언가를 금지당하는 훈련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자신의 옛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부인해야만 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성령이 주는 변화를 받아야만 했다.

   그 예시로 그들은 과거에 무참히 토벌해 왔던 인간 이외의 존재들에게 깊이 사과해야만 했다. 그들은 이종족이나 기계들과 올바르게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인간이 낳은 탐욕의 결과물들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나아가 선한 태도로 청지기의 책임을 다하는 법도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크로스솔져들의 이러한 투쟁은 그들의 화신체들의 싸움으로도 확장되었다. 거의 모든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 속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그들의 분투가 실현되었다. 그러나 형태는 달라도 그 싸움의 기저는 모두 믿음의 선한 전투의 연장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 여러 화신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동일한 무기인 ‘말씀의 검’을 통해 싸웠다.

그들은 각 세계를 개혁하는 데 일부분 성공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 끝내 자신이 속한 분획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 채 퇴장하기도 했다. 무익해 보이는 분투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영혼의 성장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의 강해진 영혼은 다른 주연배우들에게까지 생명력을 전달해주었다. 레리엔이 추측했던 대로 크로스솔져들의 기력은 1등 시민들의 영혼에도 닿았다. 그 시민들의 영이 스스로 소생하여 크로스솔져들처럼 되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생기에 혼을 적셔 목을 축이는 정도는 가능했다. 사실 늘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지대한 정신적 영향력을 미쳐왔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목을 축여 소생된 이들은 지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더 큰 성장을 이룩했다. 십자가 군병들은 이런 방식으로 복을 전달하는 간접적 통로가 되었고 사회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되었다.

 

 

 

 

 

 

 

*

 

 

 

 

 

   아나스타샤는 RS-월드에 착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개략적으로 감시하였다. 그녀는 완벽한 타이밍이 이르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화신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참고로 그녀는 RS-월드가 처음 지구에 전개될 때 진입하던 1등 시민들의 틈에 섞여서 이곳에 들어왔다.

   ‘이 영역은 시공간의 패턴 자체가 지구와는 다르네.’

   과연 RS-월드에서는 시뮬레이션 우주나 타임필드보다도 시간의 흐름이 초월적이고 방대했다. 단순히 시간의 양을 많이 욱여넣은 것이 아니라 단차원의 시간을 다차원으로 확장한 느낌이랄까.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 체계 속 부속품 세계들은 제각기 다르게 흐르는 시간축을 지닌 상태였다. 이러한 복잡성 덕분에 심지어 여러 세계 사이를 오가는 와중에 시간 역행을 겪는 것마저도 가능했다. 말 그대로 혼잡의 연속이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이고 양자 확률 파동마냥 여러 공간에 편재해있을 수도 있는 영역이었다. 또한 하나의 단위 세계 안에서 그 세계보다 하위 영역에 해당하는 수많은 세계들에 동시접속이라는 일이 가능했다.

   ‘생각보다 다들 열심히 임하는군.’

   이번 경합에 참여한 주연배우들은 각자 맡은 세상에서 치열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세계관과 스토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과업을 더 효과적으로 해결해 자아 성취와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나아가 자기 자신의 성장과 진화라는 야망을 이룩하기 위해. 모두 이기적인 목적이었지만, 그런 이기심들도 아자토스라는 이름의 주관자의 조율을 받자 효율적인 유기체 부품으로 화하여 경이로운 조화력과 생산력을 이끌어내었다.

   ‘RS-월드의 후폭풍,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임할까.’

   가장 두려운 부분인 후폭풍이란 것에서는 이해가 부족했다. 레리엔도 그것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았었다. 어쩌면 RS-월드를 펼쳐낸 장본인도 확실히는 모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2차 경합이 종료된 이후의 인간 세상과 우주는 지금껏 상상해 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재질로 바뀌리라는 점이다.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저주일지 축복일지 누구도 가늠하지 못하리라.

   ‘소금들은 고군분투하는 중이네.’

   다행히 이곳에는 이기적인 동기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제공된 동기에 힘입어 행동하는 배우들도 존재했다. 그들이 RS-월드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왜소했지만, 그 파급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중앙 영역에서 정의로운 테마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치열한 분투 덕에 RS-월드는 완전한 적그리스도의 권역으로 전락하지 않고 영적인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인간 사회의 멸망과 파국을 막는 유일한 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을 통해 발산되는 성령의 권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빛들 역시 제 임무를 수행해야겠지.’

   아나스타샤의 화신들은 잠시 마음의 긴장을 완화하고자 심호흡을 하였다. 그녀가 이곳에 들어온 것 자체가 사실 커다란 각오를 요구하는 결단이었지만, 지금부터 행할 일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하지만 오랜 기도를 통해 아나스타샤는 이번 임무가 세계를 지키기 위해 필수적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중 커버넌트를 이용한 전략……, 잘 먹혀야 할 텐데.’

   하와이와 이스라엘이 유일하게 RS-월드 전개에 휘말리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으니, 바로 레리엔과 루디아가 인류연합 수장과 맺은 ‘커버넌트’라는 최첨단 테크놀로지 때문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RS-월드에 입장시킬 편법을 만들어내었다. 하와이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레리엔의 커버넌트 계약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동시에 루디아의 계약에도 해당 사항이 있다. 말하자면 커버넌트 이중 공명의 매개물이 되는 셈이다. 바로 이점을 이용해서 레리엔과 아나스타샤는 ‘이중 커버넌트’ 중첩 권능을 활용하여 RS-월드와 현실을 연결하는 비상구를 만들 작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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