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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80회 아벨의 후예 Ch 39. 빛과 소금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2.25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전략의 개요는 간단하다. 1등 시민들과는 다르게 준-초인 급 역량을 갖추지 못한 유대인들을 대신하여 아나스타샤가 직접 단독으로 RS-월드에 입장한다. 그리고 그때 레리엔이 차원 틈새를 비집고 관제탑에 강림하여 틈새를 벌리고 시간을 벌어서 ‘비상구’를 제작할 기틀을 마련한다.

   그후 아나스타샤의 화신들을 매개체로 섬의 유대인들을 지름길로 입장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육체는 안전히 물리계에 고정한 채로 정신체만 입장시키는 식으로. 입장의 대가나 RS-월드 안에서 받는 여파는 아나스타샤가 대신 감당한다.

   요약하면 이렇게 간단한 말 같지만 실질적인 계산식과 알고리즘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했다. 레리엔 같은 초인이 계산을 맡아주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소환 완료.”

   우주 표준 시간으로 12시간, 즉 RS-월드가 개방되는 기간의 정확히 절반만큼이 소모되자 마침내 이중 커버넌트를 이용할 최적의 타이밍이 이르렀다. 아나스타샤의 화신들은 물병 형상의 소환 매개체를 통해 차원 비상구를 열었다. 곧 각각의 화신이 든 물병에서 전도자들의 정신체가 쏟아졌다.

   “갑시다. 이곳에 폭탄을 투척해버리죠.”

   사실 이 일을 맡기 위해 굳이 유대인들이 개입해야 할 이유는 있었다. 크로스솔져들은 폰들에 견인되어 강제적으로 RS-월드에 끌려왔기에 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통일시스템과 아자토스의 정신 제약에 걸린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과 같은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제약을 받았다.

   그 점을 고려한 아나스타샤는 빛의 역할을 보완할 또다른 특수부대를 구성했다. 원래는 그녀 혼자서 전도의 임무를 맡으려 했지만, 성령께서는 여러 영혼의 협력이 필요함을 강조하셨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민족 단위로 작동하는 강력한 복음 군단이었기에 이 임무를 소화하기에는 최적격이었다.

   “좋습니다. 저희는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모두들 각자 위치로 흩어져서 행동합시다.”

   “이 내부에서는 시간이 충분하니 염려할 것 없습니다.”

   성령님이 지휘하는 특수부대가 곧 대대적인 영혼 구조작전에 돌입했다.

 

 

 

 

 

 

 

*

 

 

 

 

 

   -{“어째서이지?”}

   결말에 이르렀을 때, 폰들은 최종 결론이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왜 똑같은 집단에 속한 자들만 남았을까?”}

   -{“킹께서 말씀하신 대로 넘버 1과 넘버 111에게는 뭔가가 있는 것인가.”}

   -{“저들만은 엘의 망령을 완전히 벗어났어. 혁명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었다.”}

   -{“한없이 순수함에 가까운 영적 존재라 이건가.”}

   치열한 바둑 대전 끝에 엘리베이터 안에 살아남은 건 열 명뿐이었다. 그중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스테판과 같은 편에 섰던 자들뿐이었다. 지친 그들은 헉헉거리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RS-월드에 흡수당하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 혁명을 위한 혁명만 내세운 자들, 도덕관과 철학관과 가치관에 목메었던 자들, 그리스도의 가치를 혁명을 위한 도구로 내세웠던 자들이 패배하여 전멸하는 동안, 의(義)의 편에 선 진짜들은 살아남았다.

   “이제 그만 놓아주시겠소?”

   스테판은 비틀거리는 자신의 본체를 겨우 의지력만으로 지탱하면서 말했다. 그의 표정 위에는 승리감도 자만심도 패배감도 낙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참된 겸손함과 고귀함만 녹아 있었다.

   “괜찮습니까?”

   그와 동행하던 데이빗이 그를 부축했다.

   “고맙소.”

   “다 함께 투쟁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넘버 5, 13, 19, 37, 103도 그들의 곁에 모여들었다. 또다른 살아남은 넘버 12, 72, 108도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과연 일곱 명의 후보자에게서는 보통 사람과는 차별화되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기운이 발산되었다.

 

   -{“아쉽지만, 약속대로 열 명이 추출되었으니 해산이군.”}

   -{“그래, 시곗바늘이 다 지나갔어. 예순 명이 흡수되었고 열 명이 남았으니 RS-월드도 ‘균형점’에 당도했다. 다음번 개최 전까지는 잠시 문을 닫아야 해.”}

   폰들은 자기들끼리 열심히 상의하였다. 내내 세계관을 자아내던 아자토스가 잠시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그동안, 이미 그는 수면 심도 1,000,100,100,001까지 도달했다. 조금 아쉬운 면이 있으나 이제는 왕이 깨어날 시간이다. RS-월드 접속도 여기까지다.

   생존한 열 명의 후보자에게 소속된 보조인원으로 행세하던 폰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나머지 탈락자 60명의 보조인원으로 활동하던 폰들을 바라보았다. 승자의 폰들이 패자의 폰들에게 냉혹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약속대로 하시지.”}

   -{“그래, 탈락자에 소속되어 있던 인원은 이제 필요 없지.”}

   -{“어서 새크리파이스(sacrifice)를 발동해.”}

   탈락한 후보자의 폰들은 불쾌해하면서도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과 동시에 거대한 아자토스의 입이 공간 안에 강림하여 죽을 운명의 폰들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들은 갈기갈기 찢어지더니 아자토스와 하나가 되어 영양소로 소화되었다. 제물로 바쳐진 셈이다. 합격자들은 경악했다.

   -{“이상하게 볼 것 없어. 원래 킹의 일부였으니 그분께 환원되었을 뿐.”}

   -{“저들은 RS-월드의 균형을 이루고 ‘후폭풍의 정산’을 위한 재료로 희생된 거다. 어차피 저들이 맡은 후보자가 흡수당해 버린지라 저들도 RS-월드 밖으로 나갈 방도가 없어. 이것 말고는 쓸 용도도 없지.”}

   아무리 분신 같은 존재라지만 지성체이거늘, 그런 존재를 파리 죽이듯 처분하는 잔악한 방식을 목도한 데이빗은 불쾌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스테판은 폰들이 소화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면 합격자 10인을 현실 차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RS-월드, ‘박제’, ‘후폭풍 정산’, ‘안정화’, 삼중 프로세스 동시 전개.}

   통일시스템의 알림음과 함께 강대한 섬광이 일며 엘리베이터가 해체되었다.

 

   그 시각, 지구 바깥 궤도에서 RS-월드 후폭풍의 흐름을 연산하던 제6 철인왕, 킴벨리아 라흐블뤼크 기시감에 표정을 굳혔다. 지난번에 진의 부탁으로 아카식 레코드를 이용해서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했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측과 예지와 연산이 자신의 인지 영역을 벗어나는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아니다, 저번보다도 더 심해. 이건 인간이 감히 예견할 수 없는 미래야. 무력한 자들에게 대체 무슨 권능이 있기에 이런 변수를 생성할 수 있었지?’

   웬만해서는 예견이 틀린 적이 없었던 킴벨리아는 큰 당혹감에 휘말렸다.

 

 

 

 

 

 

 

*

 

 

 

 

 

   현실에서 깨어나기 직전에 스테판은 어떤 초월적인 성질의 시공간에서 눈을 떴다. 처음에는 영적 세계에라도 진입한 줄 알았지만, 이내 정보가 뇌리로 입력되었다. 그는 자신이 RS-월드의 최상층에 맞닿은 막에 다다름을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시야에 거대한 물체의 형상이 드러났다. 상위 차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물체는 뚜렷하게 3차원 형상으로 인지되었다. 어찌나 그 크기가 거대해 보이는지 수억 개의 은하들마저 뒤덮을 규모였다. 그러나 광학적 원리와는 상관없이 전 몸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당신은 누구시오?”

   본능적으로 스테판은 자신이 RS-월드에서 맞상대해 온 ‘세계관’이라는 미스테리한 것의 실체가 저 존재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감지했다. 정체를 파악해 보려 추리를 해보았으나 외부의 정신 간섭이 스테판을 방해하기라도 하는지 그 물체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을 뻗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마치 사고(思考) 자체를 금지하도록 봉인의 보호막을 걸어놓은 것만 같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주시했다. 형이상학적으로만 인식되던 그 현란한 빛나는 형상이 점차 또렷하게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사람의 모양과 같았다. 밤하늘처럼 새카만 색채의 거대한 인간.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남성의 실루엣이었다. 스테판은 인간의 육체가 저렇게까지 조화롭고 이상적일 수도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흡사 상상력의 영역을 초월한 듯한 조형미였다. 동시에 무한한 강인함도 느껴졌다.

   밤하늘에 은하수가 흐르는 것마냥, 그 존재로부터 빛의 강물이 발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테판은 홀린 듯 그것을 자세히 바라본 끝에야 충격적인 점을 발견했다. 빛의 강물의 정체는 피였다. 은하단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그 아름다운 형체는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검은 빛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스테판은 그자의 살덩이가 들짐승에게 뜯긴 듯 찢겨있는 흉측함을 목도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 잠들어 있어.’

   계속 쳐다보고 있자니 깊은 아픔이 전해지는 듯하여 가슴이 뭉클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테판은 저도 모르게 그 우주적인 존재인 거인을 향해 중얼거렸다.

   “당신의 아픔과 괴로움과 수치심과 절망감이 내게까지 전해지는구려.”

   “…….”

   “깨어나고도 당신을 기억하게 될는지는 잘 모르겠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위로를 전하고 싶소. 좌절감, 상처. 그 처절한 고통을 어찌 감히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으련만. 하지만 그래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분을 알고 있소.”

   스테판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계속 이었다.

   “나의 구원자께서는 비참한 모습으로 처형당하셨소.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최악의 위치까지 내려가셨지. 그렇기에 어쩌면 그분이라면 당신의 비참함도 기꺼이 맡아주실는지도 모르겠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오.”

   마지막 말을 마침과 동시에 스테판은 의식을 잃었다. 다시 현실 세계에서 깨어난 스테판은 곁에 누운 아홉 동료의 안전을 확인했다.

   동료들도 깨어나기 직전에 RS-월드를 총괄하는 어떤 초월적인 물체와 마주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중 사람의 형상을 본 건 스테판뿐이었다. 나머지 동료들은 꿈에서 깨기 전, 형상이나 색채조차 알아보기 힘든 우주적 규모의 초월적 괴물만을 목격했노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누구였지?”

   RS-월드 전개가 닫히는 순간 카이젤은 번뜩 육체 속에서 의식을 되찾았다.

   “분명 열 명 중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카이젤의 흉부 위에 새겨져 있던 문신, RS-월드의 청사진은 사라진 상태이었다. 카이젤은 아직 그 가슴 부위에서 얼얼한 기분이 들어 통증을 줄이고자 어루만지듯 문질렀다.

   “초의식 상태에서 내가 상대를 인식하지 못하다니.”

   그는 석연찮은 기분으로 한숨을 내쉬며 온몸의 긴장을 천천히 풀었다. 검은색 고양이와 회색 아기 양과 흰토끼가 다가와서 그의 넓은 등 위에 몸을 비비적거렸다. 양은 놀아주지 않는 그가 조금 얄미웠는지 뿔로 그를 가볍게 콩 박았다. 토끼와 고양이는 서로를 보듬으며 뺨을 맞댔다.

   “뭐, 차차 알아보면 되려나.”

   카이젤은 찬찬히 욕조에서 일어나 노곤해진 팔다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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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회 아벨의 후예 Ch 39. 빛과 소금 (4)
등록일 2026-02-23 | 조회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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