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81회 아벨의 후예 Ch 40. 고백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3.02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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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 Intergalactic : 고백
세미온을 만난 이후, 윤혁과 루디아는 몇 달간 우주를 떠돌며 묵묵히 주님의 과업을 이어나갔다. 그들의 일은 인류연합이 내린 임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담기도 했다. 물론 인류연합과 주님의 목적하는 바는 정반대였다. 그 갈등을 알기에 윤혁은 매순간 치열하게 판단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다.
알트루즘의 소유권이 성령님께 넘어가면서 윤혁은 언제 어디서 고통이 엄습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긴장감을 품어야 했다. 주께서는 그로 하여금 평안감과 겸손함을 갖도록 이끄셨다. 끝내 윤혁은 자기 몸과 영혼과 생명에 대한 소유권을 원주인께 온전히 돌려드려야 했다. 그것이 반드시 직접적인 박탈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라도 일종의 포기 각서임은 분명했다.
때로는 풍성함과 기쁨이 함께했으나 때로는 아픔이 따랐다. 어떤 길을 체험할지의 여부도 윤혁 자신이 아닌, 주인께서 철저히 홀로 결정하셨다. 그렇기에 믿음의 싸움이란 간단한 과업이 아니었다.
때때로 우울감과 의심이 윤혁의 마음속에 임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고향에서 떨어져 우주를 배회하는 바람에 향수(鄕愁)의 쓸쓸함과도 싸워야 했다. 차라리 과거 선교 여행 시절과 같았더라면, 혹은 친구인 리온이 지금 하는 것처럼 직접적인 영적 활약에 앞장선다면 몸은 힘들더라도 영적으로는 더 보람찼기에 견딜만 했으리라. 하지만 은하들을 배회하며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자기 몸을 희생하는 일은 그런 찬란하고 빛나는 성격의 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윤혁이 밟고 지나간 행성은 이후 축복이 뒤따랐으나, 그 일은 윤혁이 지나간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즉 윤혁의 눈으로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그러니 보람을 느낄 기회도 적었다.
그렇다고 행성 주민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흘이란 짧은 시간은 맡은 임무를 겨우겨우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더욱이 행성에 당도할 때마다 알트루즘이 스펀지처럼 현지 주민들과 인근 은하 주민들의 육체적 고난을 흡수하는 바람에 피로에 몸을 가누기조차 버거웠다.
차라리 자신의 희생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육신적 고통에서 벗어났는지 그 가시적인 결과물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좋았으련만, 불행히도 구해야 할 비시민들의 숫자는 너무나도 많았다. 수백 해(垓), 아니 수천해,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이 불려놓은 거야.’
윤혁은 은근 속으로 형에게 불평을 쏟았다. 경솔한 욕망에 굴복하여 책임지지도 못할 아기를 계획 없이 만든 성급한 미혼 남녀나 다름없는 인간이었다. 지구만으로 만족할 것이지 왜 굳이 우주를 제패하겠다는 야망에 휩싸여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을까.
하지만 불평해서 무엇하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미 인간들이 수억 개의 은하를 뒤덮고 있다. 그 사람들도 소중한 생명이요 천하보다 값진 영혼들이다.
“휴우.”
힘겹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심정으로 윤혁은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아무도 자기의 일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기분에 기력이 빠졌다. 몸까지 지치다 보니 무력감이 짙어졌다. 하루하루 항암 투쟁을 하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이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이 맞긴 할까. 그는 자기를 괴롭히는 유혹과 분투했다.
“윤혁아.”
루디아는 그럴 때마다 지탱해주었다. 그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도 윤혁도 모두 연약한 인간임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여 두 사람 모두를 보호해달라고 간청했다. 윤혁의 강한 심장이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그에게 굳건함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어느덧 이제는 강윤혁이라는 사람이 단순한 동료나 동역자를 넘어 평생 함께해야만 할 사람이 되어버린 뒤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픔이 자신의 것인마냥 고스란히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알트루즘과 커버넌트 오브젝트의 공명 반응과는 전혀 별개였다. 그저 순수하게 심령과 혼이 함께 울리는 공명이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어쩔뻔했을지.”
“그러게. 내가 함께 나서길 잘했지.”
가볍게 주고 받은 말이긴 해도 서로를 의지하고 도우려는 마음은 진지하고 순결했다. 윤혁은 깊이 생각하였다. 루디아가 곁에 있으면 그녀로부터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진다. 자신에게 음성을 건네셨던 바로 그 주님, 그분이 두 사람을 함께 꼭 감싸 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세 사람이 모여도 그 자리에 같이 하신다는 약속이 이런 것을 말씀하셨던 것일까.
*
다시 수개월이 지났다. 윤혁은 동료들의 지지와 보살핌으로 무기력과 의심을 가까스로 이겨내었다. 그의 어깨에 많은 생명들의 삶의 질이 걸려있다. 찬영처럼 몸을 던져가며 누군가를 불에서 건지지는 못해도, 그 대신 여러 사람의 몸을 치유해줄 강력한 무기가 윤혁의 심장에 심겨져 있다. 설령 그것이 재혁에게서 기원한 물건이라고는 해도 어쨌건 이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
이런 마당에 자신이 나태함과 무력함에 빠져 임무를 등한시한다면 무슨 수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돕겠는가.
‘게다가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기억을 언젠가 되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
그 시기가 언제일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성취될지는 모른다. 그저 반드시 이뤄질 줄을 굳게 믿고 복종하며 따를 뿐이다.
‘무엇보다 문제의 그 내기도 아직 남아있다.’
미지의 존재인 세미온은 윤혁과 루디아를 어떤 내기에 초대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필히 선한 의도로 내건 내기는 아니리라. 성녀가 한때 선교팀을 조롱했듯, 세미온이라는 인간도 틀림없이 꿍꿍이가 있으리라. 이번에는 어쩌면 하늘도시 안에서 벌어졌던 그날의 내기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경품이 걸려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벌칙이 될 수도 있고.
“제가 그 내기를 피해야 할까요? 아니면 맞서야 하겠습니까?”
윤혁은 기도로 주님께 물었다. 수백 번 같은 것을 묻고서야 답이 돌아왔다.
[네가 뜻하는 바를 행하라. 내가 그에 대한 해답을 이끌어내리라.]
금지하시려는 의도는 적어도 아닌 듯했다.
“성녀를 상대했을 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저 혼자선 그들을 이기지 못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동행을 요구하며 매달렸듯(출 33:15), 윤혁도 간절히 매달렸다.
[그러한가? 하지만 네 형은 그들 따위는 감히 비교조차 하지 못할 만큼 위협적이다. 네가 벌써 그들에게 겁을 먹고 패배한다면 앞으로의 싸움에서 넌 네 형의 위협을 막아내지 못한다.]
“그러니 더욱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억제자’는 제가 아닙니다.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성령 하나님뿐이십니다. 저는 그저 하찮은 질그릇일 뿐입니다. 친히 먼저 가시지 않는다면 저를 올려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속으로 애타게 외친 후에야 응답을 받았다.
[네가 걷는 모든 길에서 너와 함께하겠다.]
*
Gal-L-29,098,876에 속한 행성인 Planet-1,998,123에 착륙할 차례가 되어서야 마침내 윤혁은 세미온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이 메시지는 인터갤럭틱 호나 데미안조차 감지하지 못하도록 아주 비밀리에 윤혁에게 닿았다. 심지어 통일시스템마저 세미온이라는 존재를 ‘기밀’로 여기는지 메시지를 읽지 않으려 했다.
‘비밀스러운 존재라……, 정체가 대체 뭐지?’
세미온을 처음 만난 후, 윤혁은 멜카드제윈이나 데미안에게 자신이 들은 정보를 누설해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마치 기밀 정보를 보호하는 우주적 시스템이 작동하기라도 한 마냥 순식간에 차단이 이뤄졌다. 그것도 삼중의 차단이었다. 윤혁의 정신, 언어가 전달되는 매질인 공기, 그리고 청자의 정신까지, 그 모든 경로가 정보의 인식을 막았다. 마치 신적 존재의 간섭과도 같은 이 정보 보안 시스템의 실체에 윤혁은 기겁했다.
그때 데미안은 이렇게 설명해줬었다.
“놀랄 것은 없습니다. 그 ‘삼인방’은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미스테리의 존재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본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들이 과거에 대표님과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들의 능력과 임무가 무엇인지를 절대로 알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몇몇 정보는 절대적 보안이 걸려있는지라 허락받은 자 이외에는 접근하거나 인지하지도 못합니다.”
데미안도 이미 기존에 ‘삼인방’이라는 작자의 존재에 관한 어렴풋한 기초 정보는 아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윤혁이 제공하는 그들에 대한 추가 정보는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또한 윤혁이 알려주려는 정보가 차단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데미안이 아는 정보도 윤혁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우주 인류를 관리하는 업무란 게 참 중대한 일인 모양이죠?”
“그렇습니다. ‘그 형제’와 ‘그 삼인방’은 우리 초인들도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비밀 업무 담당자입니다. 대강 그들의 존재는 알아도 그 이상 구체적인 건 절대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죠.
더욱이 그 삼인방은 우주 인류 출신이며 까마득한 선배들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우주 출신 초인에게는 특히나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철인왕 정도의 급이 아니면 그들에게 감히 대들 초인은 없습니다.”
참고로 이번에 윤혁이 세미온에게 받은 새 메시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너에게 앞으로 있을 내기에 대한 정보를 미리 조금 흘려주마. 특혜이니 고맙게 여기거라.”
그 혹은 그녀는 여기에 덧붙여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인터갤럭틱 호가 조만간 거쳐 갈 좌표와도 정확히 일치했다. 세미온은 루디아나 다른 조력자는 일절 데려오지 말고 윤혁 혼자서 조용히 올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마음 속에서 갈등이 일었다. 만일 이 조건을 지키지 않는다면 추가 정보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동료 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게 과연 지혜로운 선택일까?
‘역시 시도해보는 게 좋으려나.’
깊은 고민을 안은 채 윤혁은 해당 행성인 Planet-1,998,123의 지면으로 향했다.
이번에 윤혁 일행은 평상시 행성 진입과는 조금 다른 방법인 ‘서먼(Summon)’을 행성에 입장하게 되었다. 제공된 정보에 따르면, 이 행성 주위로는 정체불명의 특수 결계가 펼쳐져 있어서 허가된 루트가 아니면 아예 결계 안쪽에 존재하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먼이란 일종의 특수 소환 의식인데 반드시 행성 안에 거주하던 자들이 그것을 시행해주어야만 작동한다고 한다.
“왠지 주술적인 용어처럼 들리는걸요.”
루디아가 꺼림칙한 의문점을 짚었다.
{형태는 주술적이지만 엄연히 과학적 원리가 밝혀진 테크놀로지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늘도시 선교 여행 당시 갖가지 마법 형태의 기술들을 보아온 루디아는 아무래도 기분이 불편했다. 윤혁과 함께 이것저것 경험하며 현대 과학에 대한 지식을 조금은 쌓았다고는 해도 그녀는 여전히 현대 과학에 친숙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기괴한 기술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것이 테크놀로지인지 마법인지 당췌 분간이 안 되곤 했다. 사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지금의 과학 기술을 앞에 두고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 인간이 카이젤 말고는 없긴 하겠다.
여하튼 윤혁과 루디아는 서먼 용 캡슐 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진입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밝은 빛이 그들을 휘감았다. 눈을 떠보니 그들은 낯선 건물 안에 있었다. 이교도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신전이었다.
루디아가 예상한 대로 정작 이곳 주민들은 서먼(summon)을 과학보다는 주술로 인식하는 듯했다. 물론 윤혁과 루디아에게 별다른 영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보아 초자연적 악령의 힘과는 전혀 무관한 그저 물리계의 기술에 불과한 게 맞긴 했다.
서먼이 시행된 자리에 소환된 건 둘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멜카드제윈이었다. 더 정확히는 녹색 구체를 통해 구현된 그의 분신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함께할게.”
멜카드제윈은 윤혁과 눈을 마주쳤다. 마치 숨겨진 걸 찾아내려는 기색이었다.
“고마워요.”
윤혁은 세미온과 나누었던 메시지를 그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했다. 혹시 멜카드제윈이라면 초능력이나 독심술 따위를 능수능란히 사용해서 생각을 파고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무리 세미온에 대해 우주적 정보 보안이 걸려있다지만 누출을 조심하는 게 좋을 듯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보니 과연 서먼 의식을 시행했던 당사자인 군중이 잔뜩 마당에 깔려있었다. 그들은 어떤 이상한 장치들을 마방진의 패턴으로 설치해놓은 채 그것과 자신들의 두경부를 연결하고 있었다. 이게 주술인지 과학 실험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군중은 자신들의 소환 의식으로 튀어나온 소환체들을 신을 대하듯 경배하였다.
“제정신이 아니군. 어서 달아나자.”
곤혹스러워하는 윤혁과 루디아의 손을 붙잡고 멜카드제윈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자리를 옮긴 그들은 멜카드제윈의 초능력으로 공중을 가로질러 주행하며 행성 곳곳을 횡단하였다. 이곳 환경 자체는 나쁜 편은 아니었다. 단지 사람의 주거를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뭔가 다른 목적으로 설계된 행성 같았다. 방금 전의 서먼 의식도 그런 목적과 일부 관련된 건 아닌가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어떤 상대와 마주쳤다. 화려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는 금발의 훤칠한 미남이었고 다른 하나는 은발의 미녀였다. 흡사 판타지 소설 속에 흔히 등장하는 황제와 황후의 모양새를 연상시켰다. 멜카드제윈은 그들을 곧장 알아보고 표정을 찡그렸다.
“너흰 여기 있었냐? 왜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러자 금발 남자가 대답했다.
“오랜만이네요. 드래곤 로드.”
“한 번만 더 그 엽기적인 별명으로 불렀다간 가만히 안 둔다.”
으르렁거리는 멜카드제윈. 어딘가 모르게 수치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은발 여인도 대꾸했다.
“반가워요. 잘 지내셨어요?”
“아아, 나야 물론 늘 똑같지.”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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