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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82회 아벨의 후예 Ch 40. 고백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3.04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멜카드제윈은 윤혁과 루디아에게 두 사람에 관해 간략히 소개해 주었다. 사실 예전에 한 번 스쳐 가듯 언급되었던 자들이었다. 둘은 연인 관계인데 하늘도시 안에서 멜카드제윈과 우연히 만나 그의 영향으로 초인으로 각성했다던 사람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카일, 여자의 이름은 조세피나라고 하였다. 둘 다 A 클래스 초인이었다.

   “그나저나 말이야,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나. 그 넓은 우주에서 왜 하필 너희가 여기에서 나와 마주쳤을까. 이거 참 의심스러운데?”

   멜카드제윈이 합리적인 의구심을 내비치자 카일이 대답했다.

   “저희는 그저 상부의 명령을 받고 왔을 뿐입니다.”

   순간 멜카드제윈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심은 이것이었다. 카이젤이 미리 무슨 목적으로 계획을 해둔 게 아닐까. 하지만 마냥 그렇다고 보기에도 애매했다. 딱히 어떤 목적성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무의미한 배치 같았다.

   이에 조세피나는 솔직하게 정보를 토설하였다. 이 행성에 펼쳐진 특수 결계와 서먼이라는 의식, 이 두 가지는 사실 카일과 조세피나 부부가 운용하는 초능력을 현대 과학 기술과 섞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멜카드제윈의 의심은 한층 더 깊은 미궁에 빠졌다.

   ‘저 부부는 나라는 존재를 트리거로 삼아 초인으로 각성했는데? 카이 혹은 인류연합 상부의 누군가가 뭔가를 의도한 건가? 나와 저 부부 사이에 있던 연관성을 일종의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인가?’

   그는 윤혁과 루디아를 잠시 떼어놓았다. 이후 그는 카일과 조세피나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기로 하였다. 셋은 과거에 겪었던 일화들과 근래의 일들을 수다스럽게 떠들었다. 사실 원래 카일 부부와 멜카드제윈은 제법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나쁘지 않게 펼쳐졌다.

   마침내 카일이 조심스럽게 어떤 화제로 대화를 이끌고자 입을 열었다.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문?”

   “소식에 어두우신 건 여전하시군요. 명성과는 달리 둔하시지 말입니다.”

   “그래, 너 잘 났다. 난 원래 초야에 박혀 사는 타입이란 걸 잘 알잖아. 중요한 문제라면 잔말 말고 당장 이실직고해라.”

   카일은 감지 계열 초능력으로 주변을 면밀히 살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완료되었습니다. 불과 이틀 전, 지구에서 말이죠.”

   “그러니까 뭐가 말이야?”

   조세피나가 정말 그것도 모르는 거냐고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멜카드제윈에게 대신 답했다.

   “사부도 참 둔하네요. RS-월드, 근진계(根眞界) 말이에요!”

   “……뭐?”

   “3대째 위버멘쉬께서, 우리의 초인들의 왕께서 드디어 ‘인류의 근본적 리미터’를 풀어버리셨단 말입니다.”

   조세피나와 카일의 말을 들은 멜카드제윈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 멍해졌다.

   “아무리 시골에 묻혀 산다지만 설마 그것도 모르셨을 줄이야!”

   “야, 지구에서 카이가 사고를 치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니잖아.”

   “사고가 아니에요. 이건 일대 대혁명이라고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율이 담겨있었다.

   “맞습니다, 드래곤로드여. 조만간 ‘RS-월드의 후폭풍’이 임할 겁니다. 우리 초인들부터 시작해 온 우주에 일대 변화가 벌어질 겁니다.”

   카일도 내심 기대감에 찬 모습이었다.

   “…….”

   “일단 능력 제약부터 풀릴 예정입니다. 지금껏 최상위 초인조차도 기껏해야 두 자릿수만큼의 초능력 채널에만 특화가 가능했었죠. 그것도 매우 초보적인 수준으로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용량만 닿는다면 이론상 모든 채널에 동시 특성화가 가능해집니다. 범위 제약도 없어지고요. 더불어 초인의 초지능의 진화 속도도 그 함수 자체가 달라질 겁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헌데 그렇다고 초인만 혜택을 입는 건 아닐 텐데?”

   “당연합니다. 이번에는 전 인류의 근원적 도약이 이뤄질 겁니다. 특별히 초월 진화의 표식을 갖춘 우주 인류가 말이죠. 물론 이종족과 기계도 진화할 겁니다.”

   “거기다가 기술 문명도 일대 혁명을 맞이할 거예요. 생산력과 경제력은 물론이고 엔트로피를 해결해 낼 획기적인 비결도 완비될 테죠. 그리고 강대한 힘과 권능과 초지능마저 이제는 양산 가능한 영역이 될 거예요.”

   두 남녀는 멜카드제윈에게 앞으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년 이내로 벌어질 여러 엄청난 변화들에 대해서 미리 일러주었다. 나아가 그 변화의 형태와 폭이 어찌나 큰지 그 대단한 제6 철인왕조차도 예측의 범주를 넘어섰음을 알려주었다. 멜카드제윈은 놀라면서도 그러한 예상을 마냥 낙관적으로 보지만은 않았다.

   “설령 위대한 힘과 가능성에 모두에게 보편화된다고 해도……, 그런 큰 힘을 우리가 휘두를 준비가 되어있기나 할까. 우리 종족은 아직 미숙해. 큰 힘에는 막대한 책임이 따른단 말이지.”

   물론 카이젤이 그런 일을 아무런 준비 없이 벌이진 않았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위험해.’

   카이젤이라면 필시 큰 힘을 획득할 인류와 인류의 피조물들을 제어하기 위해 훨씬 더 강력한 시스템을 마련할 것이다. 지금의 통일시스템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막강하게 업그레이드된 시스템을. 지금 수준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종하기마저 예사인 시스템이거늘 나중에는 어떨까.

   또 한 가지의 염려가 들었다. 인간들은 이미 오래전에 지구를 손에 넣었다. 이번에는 천체 우주를 정복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상위 차원, 특별히 그중에서도 벌크 차원으로 한창 영역을 확대 중이다. 이런 마당에 만일 근진계까지 손을 뻗친다면 어떤 결과가 임할까?

   역사 속에서 항상 인간이 지나갔던 자취는 마치 메뚜기 떼가 초목을 휩쓸고 폐허만 남기듯 엔트로피의 무더기만 황량하게 남겨져 왔다. 인류는 반성은커녕 더 넓은 영역을 탐욕적으로 정복한다. 그들은 기존에 망가뜨렸던 곳을 복구하겠다는 명목으로 더 많은 영역을 약탈하여 옛 상처를 메꾸는 일을 반복한다. 낡은 관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카드 빚 돌려막기’ 식이나 마찬가지다.

   ‘과연 상위 차원의 세계는 열역학 제2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카이젤이라면 그런 예측도 어느 정도 염두에 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에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그것대로 당혹스러웠다. 무질서와 무작위의 원리가 자연의 법칙이거늘, 그것을 따르지 않는 영역이라니. 가능한 설명은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과연 그런 영역이 어디이겠는가.

   ‘초자연.’

   인간이 감히 상대치 못할 초자연의 영역에 불법 침투를 시행하고는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 걸까. 멜카드제윈은 깊이 고심하였다.

   물론 이 같은 염려는 비단 그만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초인이 내색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고민을 속으로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찬란한 인류의 승리에 대한 열망이 더 컸기에 카이젤의 방식에 반론하지 않았다.

 

 

 

 

 

 

 

 

*

 

 

 

 

 

   세미온과의 비밀 회담 약속이 잡힌 날은 사흘째 날, 그 이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이틀 동안 윤혁과 루디아는 단둘이서 행성 곳곳을 거닐었다. 이제 둘 사이의 친밀감은 제법 무르익었다. 떨어져 있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가까워졌다. 물론 둘은 이전 두 차례의 선교 여행 때부터 끈끈한 신앙적 우정 안에서의 동질감으로 묶여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감정의 색채가 조금씩 여물며 또 다른 색채를 덧입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든 서로를 맡길 수 있는 신뢰감이 쌓여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온전히 솔직해지지는 못했다. 특히 윤혁은 자신 안에서 심경 변화가 생겼음을 자각하였으나 쉬이 나서지 못했다. 이는 그가 이성 관계에 전혀 재주 없는, 즉 숫기가 없는 남자여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성격이 순진무구해서 그런 면에 둔한 점도 있지만, 솔직한 감정의 고백에 대한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있었다. 윤혁은 찬찬히 고민해 보았다. 그는 분명 루디아를 각별히 생각한다. 단순한 믿음의 동역자나 여행 동료 이상으로.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려면 변명거리를 얼마든지 들여놓을 수 있었다. 먼저, 그들은 함께해온 긴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선(善)과 참된 사랑을 위해 동료로서 같이 투쟁해 왔고 열매를 거두며 함께 기뻐했다. 어쩌면 그렇게 고난과 성취를 공유해온 덕택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같은 신앙적 경험을 나눠온 리온이나 스테판에게 느끼는 정서하고 루디아를 향하는 정서는 분명 일정 부분 다른 성격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껏 각종 고생을 인고하는 시간 동안 그녀에게 많은 정서적 지지와 영적 위로를 받았기에 그 여파로 감정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예는 아니지만 아이도 자기 혼자 새로운 환경을 버텨내기 어려울 때면 엄마의 손을 의지하지 않는가. 때때로 남에게 의지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루디아는 훌륭한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윤혁은 거꾸로 자신도 그녀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어쩌면 부가적인 외부의 영향도 감정의 증폭에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윤혁의 심장과 그녀가 받은 힘. 이 두 가지는 공명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니 그 메아리가 반복되어 두근거림의 감정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의외로 신체의 변화와 혼의 정서를 칼로 무 자르듯 분명하게 나누지 못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강렬한 감정적 끌림도 알게 모르게 조심스레 불을 피워왔을 것이다. 에로스란 실체는 인간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것을 마냥 부정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윤혁의 경우 그것은 제어할 수 없이 불타오르는 정열적 힘이 아닌 서서히 젖어 드는 가랑비와도 같았다. 물론 그는 순결에 철저했으나 그렇다고 그 강렬한 에너지의 영향력을 아예 안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여러 이유를 댄다 해도 왜 하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여야 하는지에 대한 딱 떨어지는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결국, 이유와 근원을 대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왜 이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을까. 이 역시도 미스터리였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 관계가 그러하듯, 인간끼리의 사랑도 대개 이유를 모르게,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되어 새로운 차원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내가 선뜻 다가가도 될까.’

   이 질문에는 확신이 안 섰다.

 

   “요샌 힘들진 않아?”

   루디아는 늘 그랬듯 이번 여행지에서도 자신보다 윤혁의 상태를 먼저 챙겨주었다. 알트루즘이라는 짐 때문에 자주 고통당하는 모습을 봐와서 그럴까. 그녀는 윤혁을 볼 때마다 항상 내면에서 깊은 보호본능을 느꼈다.

   “나쁘진 않아. 여긴 그래도 꽤 쾌적하네.”

   “다행이야.”

   윤혁은 그녀와 이야기하는 이 순간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공유해주는데 자신은 아직 그녀와 마음을 나눌 용기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비단 감정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사명에서도 너무 혼자 쥐려는 것들이 많았다.

   당장 그는 조만간 벌어질 세미온과의 ‘내기’에 대해서도 독단적으로 행동하려고 계획하는 중이다. 심지어 그는 이 행성에서 세미온과 몰래 독대하려는 심산이다. 이런 태도가 루디아를 존중하는 방식일까. 아무리 그녀가 위험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그렇지. 끝까지 윤혁 자신을 생각해 주는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괴로웠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멍에보다 앞으로 주어질 멍에는 훨씬 더 무겁다. 그런 버거운 자리에 그녀를 기꺼이 동참시킬 자신이 없었다. 믿고 의지해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옆자리를 내주려니 그것도 그것대로 미안했다. 사람 관계에 대해 진중하고 신중한 태도를 품는 건 윤혁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했다.

   “저기, 룻.”

   문득 마음속에 품은 이 복잡한 생각을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 소원이 들었다.

   “응?”

   “사실……, 너에게 할 얘기가 있어.”

   말을 막상 꺼내놓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너는 혹시 나를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야 난 네가…….”

   루디아는 순수한 미소와 함께 평소처럼 윤혁의 좋은 점과 그를 향한 긍정적인 정서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려 했다. 그러다 문득 그의 눈가에 서린 어린 깊고 진득한 우수를 눈치채고는 멈칫했다. 그 모습은 평소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수줍음과 더불어 망설임이 서려 있달까.

   “그럼, 너도 말해줘, 윤혁아.”

   망설이는 기색을 비치는 윤혁에게 루디아가 먼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알겠어.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윤혁의 말과 함께 몇 초간 침묵과 정적이 흘렀다.

   “나는 네가 좋아.”

   “그야 나도 물론 너를…….”

   루디아의 반응에 윤혁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런 단순한 의미 말고.”

   루디아는 순간적으로 하늘에서 낯선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이렇게 선뜻 다가가도 좋을지 고민도 많이 했어.”

   “윤혁아.”

   “너무 질질 끌고 기다려서 미안해.”

   감정을 향한 불가항력적인 항복 선언이었다. 윤혁은 순순히 시인했다. 그녀의 존재와 의미가 자신 안에서 저항조차 할 수 없이 너무도 커져 버렸음을.

   “넌 어떻게 생각해?”

   고백 앞에 루디아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늘 모든 사람에게 상냥히 대하던 그녀였으나 윤혁을 향해서 투사되는 마음만은 사뭇 달랐다. 평생 어떤 인간과도 이런 방식으로 마음을 나누지는 못할 것만 같았다. 그것은 순간적인 혈기일까. 아니면 정말로 진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감정일까. 그녀 스스로도 혼동되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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