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84회 아벨의 후예 Ch 41. 야르베스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3.09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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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 Intergalactic : 야르베스
우주 인류 시초 세대가 막 번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표준 시간으로 2년째가 되었다. 그때 카이젤은 초기 세대에서 건져낸 세 명의 강력한 최상위 초인과 회의를 나누었다. 이들은 그 존재 자체가 절대 비밀에 부쳐진 인물들이었다. 인류연합 간부는 물론 심지어 에녹마저도 카이젤의 허락 없이는 그들과의 접촉할 수 없었다. 정체, 본 모습, 현재 활동 내역, 진정한 의중까지 완벽한 베일에 싸인 자들이었다.
인류연합은 그들을 ‘아크삼형제’라고 불렀다. 어떤 연유에서 ‘방주(Ark)’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는 카이젤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왕에 의해 선택된 목적이 인류라는 종족의 존속 및 번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이미 당시에도 우주 인류 구성원들 속에서는 표식의 프로토타입인 ‘족쇄’가 있었다. 그 족쇄는 불미스러운 사건, 곧 우주 인류 시초들의 죄악과 직접 연관된 파생물이었다. 사실 그 시초들이 죄악을 범했던 이유도 자신들을 묶는 사형수 용 굴레 곧 정신 속박을 벗어버리기 위함이었다. 되려 그 대가로 더욱 가혹하고 철두철미한 멍에가 만들어졌다. 우주 인류를 영원히 봉인하는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 조상들의 죗값은 이렇게 후손들에게 대대로 유전되었다.
아크삼형제는 카이젤과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논의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그들이 힘을 써준 분야는 바로 ‘족쇄’를 더 강화하여 ‘표식(mark)’으로 진화시키는 일이었다. 셋과 그들이 모시는 파파는 기나긴 회의를 나눈 끝에 총 일곱 개로 구성된 한 세트의 강력한 굴종 시스템을 구상했다.
이 표식을 제작하는 데는 여러 가지 유형 및 무형의 재료가 필요했다.
당시로서 인류가 보유한 과학 기술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총망라해도 이 작업을 이루는 데는 역부족이었고 그저 기초 다지기만 할 수 있을뿐이었다. 그래서 단순한 물질적 과학 그 이상의 무언가가 요구되었다.
기본적으로 카이젤이 보유한 카리스마타 두엇, 그리고 그가 아크삼형제로부터 카피해낸 카리스마타도 필요했다. 여기에 더해 원본 고유 재능을 보유한 아크삼형제 본인들도 실험에 자원으로 동원되어야 했다. 그들은 기꺼이 승낙했다.
자율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첫째 아이는 ‘자아 기제’의 원리를 모방해서 ‘사상제어의 표식’과 ‘기억의 표식’의 모식도를 제안했다. 반면, 철저한 규율 우선주의자였던 둘째는 ‘충성의 표식’과 ‘소속의 표식’의 청사진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자유분방하고 본능적 사고에 익숙한 셋째는 ‘환상의 표식’과 ‘생사의 표식’을 제안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이젤이 이들 셋의 아이디어와 자기 자신의 것을 모두 총망라하여 ‘초월 진화의 표식’을 직접 고안했다.
즉각 일곱 개의 구성 원소를 개발하는 작업이 개시되었다. 처음부터 일곱 개를 전부 다 완성체 형태로 만들지는 못했다. 초반에는 하나둘씩 간단한 것부터 프로토타입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추후 점점 더 개량 작업이 이어졌다. 차차 원래 계획했던 기능들이 완비되었다. 결국은 일곱 원소가 모여 한 세트가 완성되었다. 그 이후로도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는 꾸준히 이루어졌다.
세월이 지나 어느덧 표식은 인체와 완전한 융화를 이루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아가 혼과의 융화도 이루었다. 또한 크기에 있어서도 피코를 넘어 펨토 단위까지 작게 압축되었고 그 침투력을 통해 전인적 인격체 내부로 자연스럽게 융합했다.
이후 표식은 완벽한 유전성마저 획득했다. 즉 우주 인류끼리 자녀를 낳거나 그들의 유전자를 베이스로 클론 내지는 ‘인간으로 분류될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무조건적으로 조상과 똑같은 표식에 구속당하는 운명적 규율에 세워졌다.
표식은 입자 단위에서부터 자가 복제성을 획득하였고 DNA 기반 유전자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고 절대적인 복제성으로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표식이 없는 인간과 표식을 지닌 인간의 교배 과정에서도 100% 표식을 지닌 후손만이 나올 정도로 우성 유전 성질을 획득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업그레이드된 표은 초미세 단위의 초차원 구조물로 거듭났다. 또한 파괴 불능의 성질을 띠게 되었다. 시대가 지날수록 각 분야의 최첨단 테크놀로지들이 쏟아져나오자 표식은 그 기술들의 이점과 장점마저 흡수했다.
처음에는 카이젤도 표식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개체의 등장을 염려했지만, 그의 염려와는 정반대로 인생들을 묶는 표식의 구속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막강해져 갔다. 한 세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가 오면 더 강력하고 철두철미한 표식 체계가 확립되었다.
업데이트가 이뤄질 때는 굳이 인간 개체 하나하나 표식을 개조할 필요도 없었다. 기존에 심긴 표식 자체가 전 우주적으로 최신 유행하는 버전을 학습하여 자가 진화를 통해 동화되는 프로세스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인간의 표식이 자동적으로 외부 간섭 없이 업데이트되는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일곱 개로 구성된 세트가 사람들을 지배하자 인류의 기존 가치 체계도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굳이 인간 사회를 ‘가족’ 단위로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표식의 완전한 유전성을 고려하면 인간을 클론마냥 재배해도 상관없을 텐데. 혹은 유전자를 재조합해서 만든 수정란을 인공 자궁에서 배양하여 시스템에게 양육을 맡기는 체계를 세워도 될 텐데. 이런 심각한 질문들이 점차 제기되었다.
아크삼형제는 이런 의제를 카이젤에게 숨김 없이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모종의 이유로 그런 부류의 제안들만은 수용치 않고 보류하였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표식을 없애 인류를 풀어주었겠지. 단지 카이젤은 인류라는 종족의 존속 양식인 ‘가정 단위의 사회’가 단순한 ‘생물학적 번식’의 개념으로 치환되지 않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았다. 결혼이나 자녀 양육이 동물들의 그 ‘재생산’ 개념만으로 다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겼음을 그는 알았다.
그러나 카이젤은 알면서도 그 이유를 시인하듯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아크삼형제는 처음부터 지구와 콜로니라는 본토에서 떨어져나와 인위적으로 연합된 형제(sibling)였기에 가정이라는 낡은 양식의 개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이 보기에는 그 낡은 제도는 어리석고 시대 역행적이었으며 이질적이고 낯선 무언가였다.
당연히 그들은 그 제도를 폐지할 적폐로 취급했다.
*
윤혁은 위험한 상대의 재등장에 긴장하였다.
“오랜만이야.”
“별로 반갑지는 않습니다만.”
세미온은 여전히 영 불편했다. 그의 의중은 다른 초인보다 간파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차라리 형은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통한다만 저 인간은 다르다. 에고도, 슈퍼에고도, 이드도, 그들의 정체만큼이나 사상이 당췌 난해하여 불가해의 퍼즐처럼 여겨졌다. 어떤 광기를 머금었는지 가늠이 안 된다고 할까나.
“그나저나 왜 또 외양을 바꾸셨죠?”
“우리 본체의 모습은 어차피 파파 말고는 아무도 모르지.”
느껴지는 아우라의 밀도와 크기는 저번에 세미온이 쓴 소녀 모양 인형 단말기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저번에 본 몸체가 반딧불이라면 이번에 나타난 남자 모양의 분신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화염 덩어리 같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힘만이 아닌 내면에 담긴 본질적 권능의 크기에서도.
“왜 저를 부르셨습니까?”
“말했잖아. 너에게 내기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단서를 주겠다고.”
“사실 그런 식의 말부터가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네요.”
세미온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멍청한 녀석은 아니었네.
“이런, 너무한걸.”
“말투가 바뀌었군요? 마치 저번과는 다른 사람 같네요.”
“아, 분신 내부에 자율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이 섞여 있거든.”
“단순한 통화용 장치는 아닌 모양이군요.”
“전에 분신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줬지.”
“아바타니 클론이니 하는 이야기 말인가요?”
“그 둘은 양극단의 예시야. 그 사이에는 긴 스펙트럼이 놓여 있지. 오로지 장점만을 지닌 절충형 분신을 만들기란 대단히 어려워. 오직 파파의 ‘폰’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려나.”
‘폰이라고?’
윤혁은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생각해보니 룩과 비숍은 형을 킹(KING)이라고 불렀지. 혹시 폰(Pawn)이라면 그 호칭 체계와도 관련이 있으려나?’
혹시 카이젤은 큐오즈린이나 한즈 같은 실험체를 양산형으로 만든 걸까? 문득 궁금증이 머리를 스쳤다.
“그나저나 저한테 내기에서 유리해질 힌트를 주는 이유가 뭐죠?”
“음, 굳이 말하자면, 우리끼리도 의견 일치가 100% 이뤄지지는 않거든. 그래서 미리 너를 간접적으로 이용해서 고지 선점의 도구로 이용하려 한달까.”
“우리라면?”
“나와 나의 두 형제 말이야.”
“계속 궁금했는데 형제입니까, 자매입니까?”
“비밀이야. 역시 파파 말고는 누구도 모르지. 적당히 Sibling이라 해두지.”
뭔 궤변인지는 몰라도 윤혁은 한 가지는 짐작해내었다. 보아하니 저쪽 진영 내부에서도 서로가 원하는 지향점이 달라 의견이 엇갈린 듯하다. 공공의 적을 도와서 자신들끼리의 내분에서 유리함을 차지하려 한다니, 이 무슨 사치스러운 자신감이란 말인가. 그만큼 결코 질 자신이 없다는 뜻인가?
“그러면 세미온 당신 입장에서는 저를 돕는 편이 되려 낫다는 말인가요?”
“너의 모든 일을 돕겠다는 건 아니야. 그저 우리 셋 중에선 내가 그나마 너와 입장이 근접한 쪽이라서 말이지. 물론 어디까지나 아주 조금 가깝다는 뜻이야. 내 본색을 드러내면 틀림없이 넌 나마저도 극렬히 반대하겠지. 다만, 그 전까지는 나도 너를, 너도 나를 기꺼이 이용해줄 가치는 충분해겠지.”
“그러니까 뭘 계획하는지는 몰라도 당신은 온건파 쪽이란 말씀이군요. 강경파의 의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아예 정반대 입장인 나를 절충제로 이용하겠다?”
“뭐, 비유하자면 그렇게 되겠네.”
윤혁은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세미온이 지금 입은 분신 육체인 흑갈색 머리의 잘생긴 남자 형태의 몸. 그것은 언뜻 하늘에서 내려온 대천사장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하고 훌륭한 외모였다. 본체의 모습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최상위 초인이니 분명 상당히 뛰어날 것이다.
이러한 외적인 위압감보다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은 초능력의 기운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최상위 초인과 대면했을 때 느꼈던 압박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더 거대한 이질적 기운이 느껴졌다. 하늘도시 여행 막바지에 만났던 칼리드는 몹시 적대적인 태도였는데 지금의 세미온은 그와 달리 온화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칼리드보다 더 섬뜩한 아우라를 흘리고 있었다.
‘초능력 채널 시스템이 그때에 비해 엄청 발전했다지만, 초인의 몸도 그릇이 유한하니 역량 상 받아들일 수 있는 힘에도 한계가 있을 텐데?’
이상하게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윤혁은 전에 형 재혁에게서 초능력 시스템의 작동 원리에 관해 얼핏 설명을 들은 바 있었다. 수많은 초능력 채널이 존재한다지만 한 명의 초인 개체가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지. 특성화 가능한 채널의 개수에 제한이 따르는 건 물론 하나의 채널에서 나오는 힘도 수용하는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건 그때 들은 설명과 다르다. 뭔가 이상한데?’
뒷걸음질을 치는 윤혁. 딱히 위협이 따르지 않는데도 동물적 본능이 뒷걸음질을 명령했다.
“감이 좋은데?”
세미온은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파파에게서 허투루 배우지는 않았나 봐?”
“…….”
식은 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서는 윤혁.
“너무 무서워하지는 마. 이 영역 안에는 나 이외의 초인은 못 들어와. 나도 대화하는 데 방해받기는 싫단 말이지. 아, 그렇지 않아도 그 A 클래스 초인 녀석들의 이야기는 들었겠지?”
아무래도 카일 부부를 말하는 듯 했다.
“혹시 이 행성의 서먼(summon) 기술과 결계 말입니까?”
윤혁의 대답에 또다시 아까처럼 상냥해 보이는, 그러나 기분 나쁜 기운의 웃음이 세미온에 입에 담겼다.
“사실 그 녀석들을 몰래 사주한 게 나야.”
“뭐라고요?”
무슨 말인가? 카일과 조세피나를 세미온이 사주했다고? 설마 그들이 이 행성 안에 서먼 시스템을 만들어둔 게 세미온의 명령 때문이었단 말인가?
“무슨 목적으로?”
“이 행성의 대기권 내에는 특정 사물의 확률 파동을 강제로 배척하는 특수 필드가 만들어져있어. 그런 건 순수한 과학 기술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워. 뭔가를 더해야만 했지. 이 행성 대기권에 인류연합이 설치해둔 장비, 그리고 그 두 A 클래스 초인 녀석의 초능력 운용 스킬, 그리고 거기에 나의 하젠트라가 더해져 나온 작품들이 바로 서먼 기술과 결계지. 자세히 들어가면 이해를 못 하하려나.”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셨죠?”
“뭐, 낭비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너를 몰래 끌어들이기 위해서야.”
“고작?”
“다음번에 삼형제가 너와 대면할 때는 셋이 동시 참여하기로 사전 약속이 되어있거든. 개인적 대면은 지금 기회가 마지막이야. 헌데 개인적으로 지금 우리 삼형제의 전략 합의가 흘러가는 방향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단 말이야. 그래서 협정 위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둘 몰래 미리 널 만나려고 계획을 꾸몄어.”
교활한 사람 같으니. 크고 작은 모든 부분을 자신의 틀 안에서 조종해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인가? 이용 당하는 기분이 들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론은 됐으니까, 어서 빨리 본론이나 말씀하시죠.”
윤혁은 상대를 재촉했다.
(다음 회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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