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87회 아벨의 후예 Ch 42. 유리스 (1)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3.16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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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 Reformation: 유리스
일곱 표식 시스템이 정착된 이후 하늘도시에서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 최강은 일곱 명의 철인왕이었다. 사실상 그들 이후로는 그들만큼 탁월한 초인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인구수가 불어나면 그만큼 인재가 등장할 확률이 높아져야 하거늘. 한 세대에 등장할 초인의 숫자에 근본적인 한계라도 있는 것일까. 창조주가 초인들의 수를 미리 정해놓기라도 했던 걸까. 과학적으로 입증된 명제는 아니나 충분히 그렇게 생각해 볼 법 했다.
여하튼 철인왕의 탄생 이후로는 차차 최상위 초인의 탄생이 뜸해졌다. 나중에는 신규 상위 초인의 탄생도 줄어들었고 전체 초인 인구 100만 명 정도를 채우고 난 뒤에는 아예 각성 자체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후로 초월 진화의 표식을 통해 일반인을 초인에 근접한 수준으로 올리려는 시도는 자주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2세대 이전 초인의 경지를 살짝 넘어섰을 뿐 3세대 초인의 높은 벽을 돌파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철인왕들은 보물단지처럼 취급받았다. 그들은 인류연합의 수장, 3대째 위버멘쉬에게 발견되어 직접 발탁되었다. 그들은 남들이 받지 못한 특혜를 받았다. 위버멘쉬의 아들 딸로 입양되는 영예를 누린 것이다. 오롯이 자격과 능력과 자질만을 기반으로 결정된 가족. 비록 뜨거운 애정이나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철인왕들은 나름 이 점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최초로 선발된 인간은 칼리드였다. 유난히 양아버지와 독재적인 성향이 비슷했던 그는 ‘제1 철인왕’이라는 지위에 더하여 양아버지의 고유 라스트네임까지 함께 수여받았다. 그는 실제로 하늘도시의 주민 관리 시스템을 재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아울러 그 당시 막 확립되던 ‘시뮬레이션 우주’의 세 번째 세대의 기틀을 닦는 데도 이바지하였다.
위버멘쉬는 그 보상으로 칼리드에게 당시 한창 뜨던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이능력을 선물해주었다. 현자의 눈. 표식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업데이트와 자율적 진보가 가능한 특수 능력이었다. 오로지 최상위 초인만이, 그것도 한때 표식을 가졌다가 그것을 적출한 자만이 카이젤로부터 직접 현자의 눈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귀한 이능력이었다.
속칭 불꽃의 눈. 이것이 칼리드가 받은 현자의 눈의 고유 명칭이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한 명의 철인왕이 발탁되었다. 그녀는 칼리드와는 다른 방면에서 우수했다. 전략 전술의 달인, 정쟁과 전쟁의 달인, 흡사 아테나의 현현과도 같은 여걸이었다.
에르샤의 기막힌 판단 능력과 민첩한 사고력을 높이 산 위버멘쉬는 그녀에게 총사령관의 지위와 함께 ‘제2 철인왕’ 칭호를 선사했다. 물론 인류연합은 당장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긴 했다. 하지만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일이기에 위버멘쉬는 그녀의 자질의 필요성을 높이 샀다.
다음으로는 제3 철인왕, 스튜아가 선발되었다. 그녀의 문화에 관한 깊은 이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인간의 사고 양식, 철학적 사유 방식, 대중 매체, 의식주, 예술과 문학, 오감을 활용하는 방식 등은 그녀의 전문 영역이었다.
아울러 스튜아는 ‘4세대 시뮬레이션 우주’를 디자인하는데 여러 측면에서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일곱 표식 중 ‘환상의 표식’을 활용하였다. 인간들의 뇌리에 담긴 이 표식을 S-unvs와 확고하게 연계할 수 있도록 기존에 쓰이던 가상 현실 연결 알고리즘을 더욱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스튜아는 더 나아가 여러 하늘도시에서 자율적으로 생성되어 가는 문화들을 능동적으로 추출해 인류연합의 자원으로 변환하는 프로세스의 기틀을 닦았다.
이에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S-unvs를 가공할 권한을 일부 선사했다.
네 번째로 등장한 자는 형제 중 가장 우수하다던 칼리드에 맞먹을 만큼 우수한 천재였다. 보통의 아빠들이 막내를 귀여워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긴 하지만, 3대째 위버멘쉬는 이 인간을 꽤 애지중지 여겼다. 왜냐하면 제4 철인왕은 양아버지의 ‘탐구 정신’과 ‘학자’로서의 자질을 빼다 닮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철인왕들보다도. 그래서 진은 앞선 셋과는 다른 부류로 여겨졌다.
칼리드, 에르샤, 스튜아는 오로지 철저하게 복종하는 역할이었다. 반면, 진에게는 중립에 가까운 위치를 견지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에게는 권력이 거의 부여되지 않았지만, 그 대신 자유롭게 인류연합 간부들을 견제할 권한이 주어졌다. 심지어는 양아버지의 계획을 견제하는 일마저도 적절한 한도 내에서 허락받았다. 그래서 칼리드와 에르샤는 진을 ‘조커(Joker)’ 또는 ‘로키(Loki)’라고 불렀다.
제5 철인왕으로 선발된 자의 이름은 유리스였다. 그녀에게는 다른 의형제와는 달리, 이상한 종류의 고유 재능, 곧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카리스마타가 있었다. 그녀가 발탁되자마자 카이젤이 대번 떠올린 인물은 그의 오랜 악우, 티아라 로페즈였다. 그만큼 유리스는 성녀와 몹시 닮아 있었다.
과거에 카이젤과 의견 대립을 벌였고 심지어 잠깐 속아서 그랬다지만 반역자들과도 손을 잡았던 성녀. 현재는 모든 권한과 재산을 내려놓고 방랑 중이었지만, 티아라는 그냥 방치하기에는 아까운, 소위 말하는 계륵이었다. 무의식중에 카이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티아라와 레리엔을 유용하게 써먹을 만한 방도가 아직 딱 한 가지 남았군.’
바로 교육자로서의 역할이다. 그녀들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위치가 또 있을까. 사실 예전부터 그녀들은 후학 양성에 관심이 많았다. 따지고 보면 인류연합 출신의 간부 중에도 그녀들의 사사를 거쳤던 인물이 많았다. 카이젤 자신이 직접 가르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 한 명만을 거치면 한 가지 성향만 주입되겠지. 그보다는 여러 스승의 색깔을 입혀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재를 생성하여 건강한 풀을 보유하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카이젤은 먼저 진과 스튜아는 레리엔에게 제자로 맡겼다. 칼리드와 에르샤는 자신이 직접 취해 자기 방식대로 교육했다. 그리고 유리스는 잠깐 티아라에게 맡겼다. 성녀의 색채를 배워 자기 것으로 충분히 흡수할 기회를 주도록 말이다.
이후 좀 더 시간이 지나 두 명의 철인왕이 더 발탁되었다. 제6 철인왕으로 선정된 킴벨리아는 예측과 관련된 카리스마타를 지닌 귀중한 인재였다. 카이젤이 그녀를 혼자서 독점하기로 마음먹은 뒤 비밀리에 직접 교육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지막 철인왕도 발탁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도무지 정무를 맡겨선 안 될, 시대를 거스르는 이단아였다. 하지만 카이젤은 자신만의 고유 재능인 ‘실패 확률을 감지해내는’ 카리스마타 총 열 가지를 조합하여 그를 점검해 보았다. 그 결과, 마지막 철인왕은 나름대로 재미있는 카드 패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말썽꾸러기 막내아들, 갈트론을 ‘더러운 일을 도맡는’ 악마적인 조커 카드로 채택했다. 위버멘쉬는 갈트론을 사람답게 구실 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의 교육을 티아라에게 양도했다. 그러나 티아라조차도 갈트론의 성향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갈트론은 끝까지 아버지나 티아라와는 상반되는 노선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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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라의 철학은 그 구성 성분을 분석하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축으로 되어 있었다. 첫째는 도덕과 종교심과 선행, 둘째는 평화와 화합이었다. 이는 과연 ‘성녀’라는 이명에 걸맞았다. 초인들은 이러한 그녀의 사상을 뭉뚱그려 속칭 ‘서파(西派)’라고 칭하였다.
이는 사실 티아라의 발명품이라기보다는 과거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온 종교심, 도덕 철학, 깨우침, 윤리, 영적 교리를 총망라한 집합체였다. 티아라는 실제로 과거의 것들을 집대성한 장본인이었다. 그녀는 ‘모든 길은 하나의 궁극적 실체로 통한다’ 라고 주장하는 ‘통합주의’를 궁극의 단계까지 완성한 위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서파 철학을 인류의 주축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다섯 명과의 경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영향력이 말소된 건 아니었다. 때로는 엄격한 수직 질서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드러움도 필요하다. 많은 초인들은 이렇게 여겼다. 엄격한 지도자, 곧 아버지 역할은 이미 있으니 어머니 같은 부드러운 조언자 역할도 필요했다.
카이젤도 이걸 잘 알긴 했으나 그렇다고 티아라를 개인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대용품을 만들기로 했다. 한편 티아라 본인으로서도 자신의 이데올로기의 계보를 이어줄 후계자가 절실했다. 그렇게 카이젤과 티아라의 이해관계가 적절히 맞아떨어짐으로써 유리스라는 결실이 세워졌다.
제5 철인왕 유리스는 인간, 이종족, 기계를 포함해 지성 있는 존재라면 무엇이든 아우를 수 있는 소통의 재능이 있었다. 그녀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언변이나 설득력의 차원이 아닌, 가히 ‘마법적인’ 무언가였다. 티아라 본인도 그녀의 카리스마타를 보고는 자신은 그것을 직접 갖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물론 카이젤에게야 유리스의 고유 재능이 대단한 가치는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손쉽게 복제해서 자기 것으로 흡수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유리스의 이용 가치가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카이젤은 ‘인비저블 마인드’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유리스에게서 흡수해 낸 고유 재능을 응용했지만, 그 이외 용도로의 활용은 유리스 본인이 알아서 하도록 전적으로 위임하였다.
또 한편 제5 철인왕에게는 티아라와는 달리 막대한 크기의 권력이 있었다. 이점이야말로 유리스가 성녀를 넘어서서 ‘청출어람’의 과업을 이뤄내기에 합당한 이유였다.
유리스는 여러 종족과 외교를 함으로써 그녀의 권세와 영향력과 실력을 향상시켜 나갔다. 지적설계종인 ‘블라인드 워치메이커(blind watchmaker)’, 그리고 갤럭시 클래스 바이오스피어인 ‘셀레스티언(celestian)’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경험을 쌓았고 그렇게 그녀의 커뮤니케이션 전용 카리스마타는 한층 더 높은 단계로 성장했다. 여기에 나중에 개량된 초능력 공급망이 더해지자 비약적인 시너지가 나타났다.
이렇게 충분한 성장에 이르자, 티아라는 유리스에게 자신의 영적 권한을 모두 위임해 주었다. 비록 허울뿐인 직위라지만 교황, 아니 ‘미황’, ‘법황’, ‘도황’의 3대 지위는 티아라에게 있었고 그녀는 아까워 하지 않고 제자에게 모든 부분을 양도하였다. 카이젤의 감시를 받는 티아라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계륵이 그 지위들이었지만, 유리스에게는 이 지위의 수여가 곧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시발점이었다.
그 과정에서 티아라는 자기 수제자에게 세례를 내렸다. 기독교적 개념의 세례 의식과는 전혀 무관했다. 여기서 말하는 성녀의 세례는 교육 관련 카리스마타의 연장선이었다. 평상시 다른 제자를 교육할 때는 오로지 한 개의 고유 재능만 활용했다면 세례를 내릴 때는 다섯 개의 고유 재능을 추가로 동시에 발동시켰다.
“언니의 꿈은 제가 대신 이뤄드릴게요. 물론 아버지의 꿈도 함께요.”
“어머나, 참 기특해라. 고집 세고 건방진 어떤 제자 씨와는 다르네.”
티아라는 기뻐하며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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