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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89회 아벨의 후예 Ch 42. 유리스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3.23 | 회차평점 0 0

 

 

 

 

(이전회차에서 연속됨)

 

 

 

 

 

 

 

 

도황(Sage Pope)들은 모든 종류의 법과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곧 유리스가 ‘유사 복음(Pseudo-Gospel)’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포하였다. 이는 구약 시대 때 계시된 모세 율법을 신약 시대 때 복음으로서 성취한 그 거룩한 구속의 패턴을 악랄하게 모방해 낸, 일종의 가짜 모방품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무법(Anomia)에 가까웠다.

 

 

구체적으로 도황들은 소위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서만 인간 본연의 의무와 법도의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들이 ‘절대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화해’라는 유일한 해답을 ‘자연과의 합일’이라는 이상한 개념으로 대체한 걸 제외한다면 대체로 복음과 유사한 모양새를 띠기는 했다. 최소한 겉보기 패턴만으로는.

 

 

인류연합의 엄격한 법도와 규율에 허덕였던 우주 인류는 이 달콤한 유사 복음의 유혹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실제로 이 유사 복음에는 모종의 권능이 있었다. 완전한 허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진정한 은혜가 아니라 표식을 통한 간섭이라는 점에서는 달랐지만 어쨌건 실체는 있었다.

 

 

유사 복음에 심취된 우주 인류 구성원들은 차차 인류연합이 세워놓은 법과 컨스티튜션셋을 자기 마음속에, 정확히는 자기 혼 속에 설치된 일곱 표식 위에 덧입혀 나갔다. 그들은 자기가 노예가 되어가는 줄도 모른 채 자유를 얻었다고 착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부에서 도황들의 행보를 저지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의 행동이 인류연합과 카이젤이 명령한 ‘전자아 훈련’이나 ‘1등 시민 선발’과 이를 위한 ‘징검다리 권역’의 부흥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어설픈 비유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엄격함과 어머니의 상냥함이 하나로 조화되었을 때 아이의 성취도가 증가하는 것과도 흡사한 듯 했다.

 

 

 

 

 

결과적으로 이 삼 교황 시스템은 이종족을 다스렸던 조율 프로그램인 TUNER와는 약간 다른 의미로 ‘불경의 삼각형(Blasmpheme Triangle)’이 되었다. 유리스는 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인간과 비인간, 기독교와 이교도, 북파와 서파를 하나로 화합시키고자 애썼다. 그녀는 이를 위해 포석으로써 선행과 구제와 사회 기여에 힘쓰며 자신의 인간적 명성을 드높였다.

 

 

그리고 거듭된 성공에 취한 그녀는 급기야 희대의 비상식적 정책을 실행으로 옮겼다. 바로 ‘포교용 인공지능’을 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무한정 양산이 가능한 전도자들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감정과 지성마저도 거의 비슷하게,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우수하게 모방해낸 희대의 걸작이었다. 여기에 종교성까지 더해지니 상식을 부수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유리스는 인공지능을 넘어 모든 카테고리의 인공 발명품들에도 종교심이라는 힘을 심어 넣었다. 그렇게 유리스의 세례를 받은 이종족과 기계들은 ‘영성’과 비스무리해보이는 속성을 띤 존재로 변질되었다.

 

 

이렇게 세례 받은 비인간 종족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종교심을 품는 걸 넘어서서 아예 타 개체에게 교리를 설파하기도 하였다. 예전에 리온과 내기를 했을 때 티아라가 미처 간파하지 못했던 실책을 유리스는 나름대로의 지혜를 동원하여 개선한 것이다.

 

 

더욱이 인간과는 달리 비인간들 사이에서의 종교심 또는 신앙 전이는 언어 이외의 ‘정신 간섭’, 예컨대 기계어나 텔레파시나 비언어적 교감을 통해서도 전달이 가능했다. 즉 포교에도 훨씬 더 유리하고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인류연합은 유리스의 행보가 혹시라도 걸림돌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감시를 놓지 않았다. 그녀의 방식이 본인들에게 유익이 되는 선까지만 허용하고 조금이라도 일이 엇나가는 즉시, 서파의 폭주를 제지할 작정이었다. 이를 잘 아는 유리스이기에 자신의 프로젝트가 화합을 깨트리지 않도록 균형 조절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작 그녀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쪽이었다. 종교개혁을 꿈꾸는 자들은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회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물밑에서 숨을 죽이고 인내했다.

 

 

 

 

 

 

 

 

*

 

 

 

 

 

수현과 재현은 다시 사적 대화의 자리에 앉았다.

 

 

“많이 야위었네.”

 

 

수현은 무덤덤한 성정에 어울리지 않게 염려하는 어투로 인사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거뜬해.”

 

 

“일부러 괜찮은 척 포장하려 하지마. 형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잖아.”

 

 

정확히 정곡을 찌르는 말에 재현은 움찔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눈초리가 푹 가라앉았다. 분하지만 사실이었다. 리온이 치열한 영적 전투를 벌이는 동안 자신의 조력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항상 ‘무능한 놈’이란 단어는 재현이 어렸을 적부터 수시로 귀에 박히도록 들어왔던 비난의 말이었다. 워낙에 잘난 동생과 비교해서 무엇하나 뛰어날 게 없는 형. 그게 주변 사람들의 평가였다. 따지고 보면 그런 평가는 합당치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재현도 모든 면에서 우수했다. 단지 수현의 본질이 초인이었을 뿐이었다. 더욱이 자신 때문에 동생이 일부러 제 역량을 숨겨 드러내지 않으니 죄책감까지 더해졌었다. 상당히 정신적으로 괴로웠던 시절이었다.

 

 

이후 재현은 하나님을 믿고 회심하였고 성한을 멘토로 만났으며 크로스솔져들과 합류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자기 발목을 묶었던 미련이나 열등감은 내다 버렸다.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이란 건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지식으로는 ‘외적인 능력이 진정한 가치가 아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무의식적인 사고관까지 바꾸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재현은 리온을 존경하였다.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나마 가진 재능은 리온에게 그닥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크로스솔져들과 동료가 되어 적과 싸울 때는 그나마 무력이라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종교 개혁자의 길은 오로지 비폭력적인 복음 운동만으로 맞서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 류의 싸움은 힘겨웠다. 이단 세력과 충돌이 벌어질 때마다 재현은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듭 되새겨야 했다.

 

 

리온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

 

 

“물론 저도 ‘불가피한 전쟁’의 의의를 통째로 부인하는 건 아니에요. 과거 지구에서도 복음과 성도들의 신앙을 핍박하려는 사악한 국가가 횡포 부리는 걸 막기 위해 기독교 국가들이 연합해서 전쟁해서 승리했던 적이 몇 번 있었어요. 그리스도인도 때때로 불가피한 싸움에 휘말릴 때가 있죠. 재현 씨가 히어로 분들을 도와 신수로부터 인간을 지켜냈을 때처럼요.

 

 

하지만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은 경우가 달라요. 이 과업을 수행하는 자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실 때와 같이 비폭력의 자세로 나서야만 해요. 그래야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될 수 있으며 거룩한 향기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죠. 설령 손해를 보고 희생당하더라도요.”

 

 

이렇게 리온은 거듭 폭력에 의존하는 태도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동료 중 가장 물리 공격 계열의 재능을 많이 띠고 있는 재현을 염두에 둔 당부였다. 그 마음이야 이해했으나 재현으로서는 한편으로 아쉬움도 들었다.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미안해, 형.”

 

 

회상하는 중 시무룩해진 재현의 표정을 금세 발견한 수현이 사과했다.

 

 

“괜찮아. 네 말이 틀린 게 없는 걸.”

 

 

“형은 약하지 않아. 아니, 굳이 강해지려 할 필요도 없어.”

 

 

“하지만…….”

 

 

“혹시 생각해봤어? 내 제안 말이야.”

 

 

고심하였다. 재현은 아직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였다.

 

 

“이대로 하늘도시에서 정처 없이 떠돌 거야? 형을 보호해주지도 못할 무익한 사람들과?”

 

 

“내 친구들을 그렇게 부르지 마.”

 

 

“객관적인 평가야. 그들과 동행하면 형은 ‘그분’의 실험체로 전락할 뿐이야.”

 

 

“…….”

 

 

“정말로 그런 신세로 남고 싶어?”

 

 

수현은 설탕이 묻은 듯 달콤한 목소리로 친형에게 다가갔다.

 

 

“굳이 형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 리온 마흐무드 목사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둬.”

 

 

“수현아!”

 

 

“그 편이 그에게도 더 유리할 거야. 내가 살짝 조력만 보태도 그의 활동 범위가 급진적으로 넓어질걸. 그 사람, 명예욕은 없어 보이지만, 의욕은 강해보여. 어쨌건 나를 기회의 발판으로 삼아 크게 활약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교황권 세력’을 맞상대하려면 강력한 확성기가 필요하잖아. 형이 제아무리 무력이 강하다고 해도 여기에는 보탬이 되지 않아. 설마 초인과 맞설 생각은 없을 테고.”

 

 

구구절절 합리적이고 옳은 말들이었다.

 

 

‘차라리 나 대신에 다른 날개를 달아주는 편이 낫겠지. 그편이 목사님께는 확실히 더 좋을 텐데. 어차피 나는 곁에 머물러있어도 잠정적 폭탄밖에 안될 걸.’

 

 

이렇게 생각이 드니 급 우울해졌다.

 

 

“수현아.”

 

 

“어때? 결정했어?”

 

 

“그래도 아직 난 사역팀에 좀 더 남아있고 싶어. 하지만 네가 걱정하는 바가 뭔지도 잘 알겠어. 그러니 딱 10개월 정도만 시간을 허락해 줘. 그때까지라면 내가 정리해야 할 일들은 다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마음도 확실하게 해야 하고.”

 

 

재현은 변명 아닌 두서 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답답했던 수현은 재현의 생각을 독심술로 읽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물론 형을 존중했기에 꾹 참았다.

 

 

“10개월이면 충분하겠어?”

 

 

“일단은.”

 

 

“그래, 그 뒤에는 내 곁으로 와. 고생 따윈 다시는 안하게 해줄게.”

 

 

설마 유혹에 진 건 아닐까. 재현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불편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지현도 가족이 내민 제안을 과감히 뿌리쳤건만. 그러나 재현에게는 가족에 대한 미련보다는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자신이 팀에 부담만 된다는 무력감이 결정적인 포기의 이유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옛 나약한 모습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더 많은 성장이 필요했다.

 

 

“대신 약속해줘.”

 

 

“뭘?”

 

 

“교황권과 제대로 대결할 수 있도록 목사님께 안전한 발판을 마련해줘.”

 

 

“흠.”

 

 

“만약 그걸 보장하지 않는다면 난 네 제안을 평생 따르지 않겠어.”

 

 

수현은 별것 아니라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동생은 형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살살 속삭였다.

 

 

“약 1개월쯤 뒤에 지구에 대격변이 일어날 거야. 위버멘쉬께서 재미있는 일들을 꾸미고 계셔. 미리 알려주면 안 되지만, 형이니 특별히 귀띔하는 거야.”

 

 

“뭐? 어머니 아버지는 어떡하고?”

 

 

“부모님은 내가 이미 안전한 곳으로 모실 준비를 마련해놨어. 형도 그 기간에는 특히 주의하도록 해. 틀림없이 초능력 역량이 갑자기 전반적으로 급증하거나 인류의 정신력 레벨이 업그레이드되는 일들이 대거 벌어질지도 몰라. 어쩌면 인류뿐 아니라 인류의 피조물들도 진보를 겪을지도 모르지.”

 

 

“너희 초인들, 대체 강재혁 대표님의 계획에 얼마나 깊게 연루되어있는 거야?”

 

 

“비밀이야. 형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

 

 

그렇게 형제 사이의 밀거래가 시작되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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