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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94회 아벨의 후예 Ch 44. 노화와 불로불사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4.06 | 회차평점 0 0

 

 

 

 

Chapter 44. Intergalactic: 노화와 불로불사

 

 

 

 

 

 

   수개월이 흘렀다. 달콤함과 평온감, 쓰라림과 안타까움이 무수히 교차했다. 함께 기쁨과 시련을 겪으며 두 남녀는 친밀감 속에서 마음의 깊이를 더해갔다. 훗날 이 시간을 돌이켜보며 둘은 ‘그 시기는 신체적으로는 고단하고 힘들었으나 일생 중 가장 쉼이 넘치는 시절이었다’ 라고 고백하곤 하였다. 매일 눈 뜨고 일하고 다시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상대방을 알며 느끼는 기쁨이 커져갔다.

   다시 말하지만 편안과 안락의 때는 아니었다. 혹독한 실험, 심장에 쏟아지는 희생 부담, 괴로워하는 연인을 지켜보는 쓰라림, 낯선 행성에서 겪는 미지와의 조우, 코스믹 호러의 연속, 그리고 영적 시험은 지속되었다.

   때로는 두 사람을 이끄시는 성령님마저도 당장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적인 고생에 대해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번 선택한 이상 험난한 길을 꿋꿋이 걸어가야만 함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것을 가슴속 깊은 부분이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의 고비를 넘기면 더 심한 고비가 도달했다. 그동안, 야속한 심장은 윤혁의 의지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작동하였다. 그렇다고 삯과 대가를 쌓을 기회도 없었다. 모든 것은 값없이 내어주어야 했다.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도 못했다. 자기들의 활약으로 인해 사람들이 환경 부적응으로부터 회복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에 의존하는 보람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버텨내었다.

   곁에서 늘 함께해줄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복된 일이었다. 윤혁은 어디서든 루디아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실험실에서 치료받는 시간을 제외하면 우주선 안에서든 행성에서든 떨어지지 않았다. 친밀감과 감정, 영적 교류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긴밀해졌다. 연정을 체험하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배워나가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그들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삶의 우선순위와 공급을 전능자에게서 찾아야 함을 배웠다. 때로는 의도치 않은 외부의 간섭으로 인해 떨어져야만 했다. 이를 통해 사람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며 타인과 더불어 살며 돕고 의지해야 함을 배웠다.

   고독과 연합, 이 두 요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순이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안다. 상대방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이해하는 법을. 상대방이 내미는 온기와 친절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법을. 그리고 하나님만을 인정하는 법을.

 

   윤혁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좀 더 많은 걸 나눠주지 못해서 아쉬워. 내게 여건이 있었다면 네가 고생 안 하고 편하게 지내도록 도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자 루디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왜 지금이라도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 거야? 네게는 기회가 있었잖아.”

   “그야…….”

   “끝까지 맡은 소명을 감당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그렇지?”

   루디아는 그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살며시 웃었다.

   “난 그저 네가 날 따라다니며 굳이 안 해도 될 고생을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전에도 이보다 더 어려운 시절을 보냈어. 그때나 지금이나 도리어 감사하게 생각하는걸.”

   확실히 난민 생활이 우주 떠돌이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거야 네가 의도해서 선택한 게 아니었잖아.”

   “그러네. 오늘의 우리는 일부러 고생을 사서 했지. 그렇다면 더더욱 원망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넌 언제나 어른스럽네.”

   “훗, 그러는 넌 참…….”

   귀여워. 루디아는 속으로 낯부끄러운 말을 삼켰다. 윤혁의 귓불이 붉어졌다.

   “이 땅에서 편안하게 지내며 호의호식하면 뭐 해.”

   루디아는 나그네로 사는 삶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했다. 이는 비단 종교적인 표현이나 위선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문자 그대로 나그네의 삶을 살아왔었다. 완곡하게 표현하면 나그네, 나쁘게 표현하면 난민. 생(生)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떨림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 아픔을 알았기에 모든 주어진 시간에 감사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감사할 것투성이였다. 믿음의 동포들이 흩어지지 않고 섬에 정착할 수 있어서, 아가씨의 마음이 자비로움을 향해 움직여서, 선교팀을 만나 뜻깊은 여정에 참여할 수 있어서, 하늘도시에서 사람들이 회개하는 걸 볼 수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윤혁이를 제게 보내주심을 감사해요, 주님.’

   따지고 보면 윤혁이나 루디아나 입장은 똑같았다. 그들은 이 땅에 시민권이 없었다. 카이젤 라흐블뤼크가 지휘하는 인류연합 휘하의 세계는 1등 시민이네 2등 시민이네 비시민이네 비인간이네하고 무의미하게 계급 가르기를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은 그 모두를 초월한 ‘절대 영역’, 곧 창조신의 보좌가 있는 천국에 고정되어 있다. 윤혁과 루디아는 이 진리를 굳게 믿었다.

   “어차피 이 현세에서는 나그네 신세라면 조금 고생을 더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위로하려고 그렇게 말해줄 필요 없어, 룻.”

   “위로가 아니야, 진심이야. 난 너와 함께 주님 나라의 문지기로 지내는 편이 안락한 삶보다 더 행복한걸(시 84:10).”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너무 완벽해서. 어디서 이런 마음씨 예쁜 사람이 나왔을까. 윤혁은 수줍어하는 표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녀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루디아도 수줍어하며 그의 어깨를 살살 두드렸다. 워낙 작고 여린 손이라 귀엽기만 할 따름이지만.

 

 

 

 

 

 

 

*

 

 

 

 

 

   세미온과 야르베스 일당과 조우한 지 우주 표준 시각으로 7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인터갤럭틱 호는 인과율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교묘한 타임 시프트 이동 방식을 사용했고 타임필드도 내부에서 가동했기에 실제로 윤혁 일행이 체험한 시간의 길이는 7개월보다 훨씬 더 길었다.

   그럼에도 윤혁은 신체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았다. 알트루즘 때문이었다. 또한 우주여행에 동참하는 동안에는 전 함대원이 의료 검진 겸 노화 억제용 피코머신을 주입받았기에 모두가 몸은 늙지 않았다. 대신 정신적인 연륜은 꾸준히 늘어갔다.

 

   루디아는 소파 위에 잠든 윤혁 위에 부드러운 시선을 얹었다. 참 잘생겼네. 참 멋있어. 겉도 속도 모두 진국이야. 괜히 뿌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행성 여행과 신체 실험을 여러 차례 마치고 돌아온지라 몹시 피곤했는지 윤혁은 숙소로 귀가하자마자 깊게 잠들었다. 루디아는     몇 시간 내내 그가 숙면을 취하는 것을 보며 기다려줬다.

   한참 후, 루디아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낀 윤혁이 부스스하게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잘 잤어? 윤혁아, 이거 봐.”

   “음? 뭔데?”

   그녀는 깜짝선물 삼아 어떤 메시지 파일을 펼쳐 보였다.

   “서프라이즈!”

   “이건? 음? 우와!”

   그 선물의 정체를 깨달은 윤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시선을 고정하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혹시 잘못 본 건 아니겠지? 그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리온이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어.”

   “진짜 오랜만이네, 이 친구.”

   “그간 우주선이 인과율의 규율을 교묘하게 비껴가는 영역을 항로로 잡고 있어서 제대로 연락이 닿지 않았었나 봐. 기록된 시점을 보니까 우주 표준 시간으로 지금으로부터 2개월 반 전에 작성된 편지야.”

   윤혁과 루디아는 서둘러 암호를 채운 뒤 홀로그램 파일을 펼쳤다.

 

   친애하는 윤혁과 루디아에게.

   안녕, 친구들. 별 탈 없이 무사히 잘 지내고 있지? 너희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고 있어. 그동안 너무 바빠서 제대로 너희에게 안부 물을 시간이 없었네. 미안하다. 우린 우리의 임무에 한창 열중하는 중이야. 너희들도 잘 해내고 있으리라 믿어.

 

   서두를 읽자마자 윤혁은 기대감에 벅찼다.

   “다행히도 별 탈 없이 안전하나 보네.”

 

   (중략)……, 이곳 Upol 벨트 전역은 현재 벌써 5개월 가까이 치열한 전면전이 이어지는 중이야. 현재 곳곳에서 종교개혁자분들께서 교황청들에 맞서 진리를 수호하고 계시지. 나는 그분들만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내 자리에서 일하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하루하루가 전쟁이라 긴장감이 감돌고 있어. 공개적으로 나서진 않아도 교황청들이 리포머들을 제거하려고 물밑 전쟁을 벌이고 있거든. 그나마 다행인 건 어찌 된 이유인지 강재혁 대표님이나 그 사람의 수하들, 그러니까 초인들은 수프림 팝(Supreme pope)을 외면하는 것 같아. 하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어.

   난 현재 저술 작업, (내 신분은 ‘L’이라는 이명으로 감췄지만) 공개 토론, 리포머들과의 교제 및 회의, 종교 문제를 주제로 둔 정치권과의 담화, NGO 운동, 전략 수립 등을 하고 있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태야. 처음엔 힘들어 죽을 맛이었어. 하필이면 천재현 씨의 동생분이 정말로 몸을 백 개처럼 쓸 수 있는 발명품을 선물해 주시는 바람에 부담이 컸어……, (중략)

   그래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는지 현재는 전쟁의 흐름이 기울어졌어. 제2의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은 이미 비가역적인 흐름을 타고 있어. 교황청 중 상당수가 몰락하거나 문을 닫았어. 살아남은 자들도 수프림 팝의 노선에서 탈선하는 중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아주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건 지금부터지. 처음 몇 달간은 주님 은혜로 (정치적 흐름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가는) 혜택을 입었지만, 앞으로는 개혁 세력이 정말로 그리스도인답게 깨끗하고 사랑 넘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돼. 계속 기도를 부탁할게……, (중략)

   아마도 내 생각에는 머잖아 외계행성으로도 선교의 길이 열릴 것 같아. 지금까지는 Upol들이 100개의 은하계에만 국한되어 있지만, 이제 차츰 5억 개 은하로 분산될 거야. 그만큼 외계행성과의 외교 수립도 활발히 이뤄질 거고.

   지금까지는 전자아 훈련을 해서 초인에 근접하게 다가가려고 했던 자들에게만 ‘페아노르 프로젝트’ 참여가 허락되었거든. 기존 그리스도인 중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잖아. 그래서 기회가 없었지. 그런데 종교개혁 덕분에 징검다리 권역에서 탈락하여 내려온 자들도 꽤 많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시작했어. 덕분에 새로 그리스도인들이 된 분들 중 적잖은 수가 페아노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될 거야. 그분들이 교두보가 되겠지.

   어쩌면 나중에는 문이 더 넓어져서 모든 2등 시민이 자유로이 비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다만 염려되는 점이 하나 있어. 현재 쇠락 중인 수프림 팝의 세력이 비시민들에게 포교를 함으로써 자기 세력을 보충하려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야. 그전에 종교개혁 세력 측에서 먼저 더 활발히 선교해야 할 텐데. 이 부분도 너희에게 기도를 부탁할게. …… (중략)

   천재현 씨도 유지현 씨도 김찬영 씨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천재현 씨는 개인 사정이 있어서 몇 달 후에는 퇴직하실 생각이야. 유지현 씨는 유성운 회장과의 알력을 잘 해결했나 봐. 당분간 그 사람은 기독교를 적대시하지는 않을 것 같아.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계속 예의주시는 해야겠지. 네 형은 너무 늦지 않게 회개할 기회를 얻도록 성심껏 기도할게.……, (중략)

   루디아, 유대인들이 현재 지구에 안전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소식이 내게도 들려왔어. 축하를 전해주고 싶어. 하나님께는 감사해야겠지. 레리엔 로즈라는 분은 그들에게 우호적으로 대하고 계신다더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니 나로서도 참 기쁨이야. 중립지대 외에 이스라엘 본토에 있는 유대인들도 어서 예슈아를 믿고 회심했으면 좋겠네. ……(중략)

 

   다양한 메시지들을 담은 리온의 편지는 윤혁과 루디아에게 ‘무리하지 말고 몸 건강히 간수하라’는 말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편지 덕분에 둘은 2등 시민들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많이 깨우치게 되었다. 특히 종교개혁 대목을 읽을 때 마음이 몹시 웅장해졌다. 부디 주님께서 끝까지 리온을 보호해 주셔서 훌륭한 일꾼으로 헌신하여 마무리하도록 해주시길.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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