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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595회 아벨의 후예 Ch 44. 노화와 불로불사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4.08 | 회차평점 0 0

 

 

 

 

 

*

 

 

 

 

   그리고 한 달이 더 지났다. 이번에는 지구에서부터 편지가 당도했다. 레리엔이 자신의 커버넌트 오브젝트와 루디아의 힘을 공명시키는 방법으로 어렵사리 전송시킨 편지였다. 그 안에는 그리운 사람들의 메시지가 여럿 담겨있었다. 루디아는 마을 어르신들과 메시아닉 유대인 대표들의 안부 인사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윤혁에게도 반가운 분들의 소식이 닿았으니 바로 부모님이었다.

   “엄마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가족들 염려는 말고 매일매일 소신껏 지내렴, 아들. 엄마는 네가 잘하리라고 믿어. 그러니까 절대로 낙심하거나 겁먹지 마. 하나님께서는 늘 너를 지켜보고 계신단다.”

   유진의 짧은 메시지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있었다.

   “아들아, 별 탈 없이 잘 지내니? 네가 자주 먼 곳으로 사역하러 떠나다 보니 아빠로서는 뿌듯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하구나. 너도 예상했겠지만, 이미 지구는 네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과는 다른 세계가 되었단다. 나로서는 이러한 변화가 낯설지만 어쩌겠니. 그래도 네 형이 우리를 배려해서 터전을 마련해주고 보호해주고 있단다. 그마저 사라진다면 우리도 주님께 다 맡기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겠지.

   어차피 땅은 우리의 고향이 아니니 상관없단다. 우리에겐 지구를 향한 귀소본능보다 훨씬 강력한, 천국을 향한 영적 귀소본능이 있으니. (중략) 몸 건강히 지내렴. 혹시라도 형이 너를 자꾸 시험 들게 몰아넣는다면 내게 말해주렴. (연락 수단이 여의치 않을까 걱정이구나) 내가 그에게 항의해볼게.”

   성한의 메시지에도 아들을 향한 깊은 염려와 배려가 묻어있었다.

   이어서 형님 누님들, 즉 크로스솔져 멤버들의 짧은 격려사의 모음도 있었다. 그들은 제법 곤경을 겪었던 모양이다. 내내 “죽는 줄 알았어”라던가 “정말 휴먼 솔져 시절에도 히어로 시절에도 듣도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경험이었지”라던가 “이젠 앞으로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와 같은 이야기들이 잔뜩 있었다. 뭔가 통일시스템의 통제라도 받는 것인지 구체적인 정보 누설은 전혀 하지 않았다. 누가 그들을 고생시킨 주범일지는 사실 뻔했다.

   ‘하여튼……, 나중에 돌아가면 제대로 따져야겠네.’

   그리고 윤혁은 마침내 그의 메시지에 도달했다.

 

   둘 다 잘 지내시오?

   그대들의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요. 주님께서 그대들을 굳건히 세워주시기를 깊이 바라오. 용기를 잃지 말기를 바라오. ‘괜찮다’라고 자신감 있게 큰소리치고 싶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하루하루를 긴장감 속에서 보내고 있소. 그건 내 동료들도 마찬가지요.

비밀 유지 조약 때문에 많은 걸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지금 내 모든 것을 걸고 어떤 중대한 도전을 하고 있소. 등산가가 높은 산 정상을 정복하려는 것과 비슷하오. 그리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자들이 나와 경쟁을 하고 있소.

   하지만 진정한 맞상대는 그들이 아니오. 나는 인류연합, 정확히는 그 배후에 있는 사탄의 깊은 음모와 맞서는 중이오. 자칫 잘못하면 크게 잘못될지도 모르오. 벌써 많은 도전자가 미지의 감옥으로 끌려갔소. 내일이면 나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너무 내 신세만 늘려놓아서 정말 미안하오. 둘이서 서로를 의지하며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하루를 보내시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선교 여행 때부터 그대들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소. 그러니 만약에라도 잘 이뤄진다면 누구보다 먼저 축하하는 마음이오.

 

   “스테판 씨……. 과연 무사하실까?”

   윤혁과 루디아는 아쉬움에 잠긴 표정으로 계속 편지를 읽어나갔다.

 

   (중략) 그런데 윤혁, 루디아. 당신들에게 한 가지 질문할 게 있소.

 

   이 대목에서 둘의 표정이 의문으로 변하였다.

   혹시 그대들은 인류연합의 수장, 초인들의 왕, 그러니까 윤혁 당신의 형님분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아는 바가 있소? 이렇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서 정말 미안하오. 하지만 요새 들어서 자꾸만 성령님께서 내 생각을 이쪽으로 고정하고 계시오.

   난 지금껏 인류연합이라는 정부가 인간들을 지배하고 압제하며 하나님께 대적하는 악한 정권이라고 생각해왔소. 분명 일정 부분 맞는 바도 있긴 하지만……, 문득 주님께서는 내게 [너희 자신을 돌아보거라. 정말로 너희가 그들보다 나은 의인이라고 자신할 수 있겠느냐.] 라고 질문하시는 듯 했소. 난 거기에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소.

   정석대로라면 ‘나는 주님을 믿으니 의롭다고 하심을 입었습니다’라고 말했겠지. 그러나 주님의 그 질문은 그런 맥락이 아니었소. 난 그분께서 인류연합 수장은 최고로 악한 자가 아니라 그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자 중 가장 강력한 자일 뿐이라고 여기시는 것 같소.

   다시 말해 인간의 ‘악함’이라는 면만 놓고 보면 마냥 피해자라고 여겼던 내게도 어쩌면 더 심각한 허점이 있을지도 모를 듯하오. 이 생각이 떠오르게 된 계기는 내가 본 꿈 때문이었소. 정확한 내용은 잊어버렸지만 (워낙 추상적인 경험인지라) 나는 거기서 한 가지를 느꼈소. 우리가 선교 여행 때 보아왔던 ‘억압받는 주민들’의 모습, 어쩌면 그게 억울한 대우가 아니라 모종의 ‘정의 구현’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오.

   비약일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마냥 허튼 생각은 아닌 듯하오.

   통신 장애 때문에 그대들의 답변이 내게 다시 닿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만일 가능하다면 한 가지만 묻겠소. 윤혁 그대의 형에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묻자면……, 그대와 리온이 그때 성녀와 나누었던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이오?

   왜 인류연합 대표는 그토록 우주 인류를 미워하는 거요? 우리가 그에게 잘못한 것은 무엇이오? 난 더 늦기 전에 꼭 답을 알고 싶소. 내 마지막 도전이 곧 코앞으로 다가올 거요. 그전에 알게 되기를 기도할 뿐이오. (중략)

   몸 건강히 돌아오시오. 그대와 나눈 약속은 잊지 않고 지키겠소.

 

   윤혁은 몹시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스테판 씨, 대체 뭘 겪고 계시는지요.’

   형에게 있었던 사건이라. 맥락에 대해 감은 잡혔다. 하지만 그게 우주 인류와 무슨 관련일까. 그는 한동안 의문을 품었지만,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스테판이 남긴 질문은 그렇게 미궁 속에 묻혔다.

 

 

 

 

 

 

 

*

 

 

 

 

 

   다시 1개월이 더 지났다. 일정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세미온과 야르베스가 제안한 문제의 그 ‘내기’의 날은 째깍째깍 시침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윤혁은 종말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그 날의 다가옴을 준비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과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적의 계략을 간파하기 위한 사색과 궁리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이라는 단서 이외에는 모든 사안이 미로 가운데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사형수에게 처형 순번을 알리듯 긴장의 순간이 다가왔다. 데미안이 소식을 들고 왔다. 그는 인터갤럭틱 호의 임무가 거의 다 완수되었으며 짧은 시일 내에 마지막 목적지에 데려다주겠다고 선언했다. 카이젤로부터 전달된 다른 전언은 없었다. 윤혁은 속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긴장하였다.

   겔다도 대강 그 소식을 들었는지 루디아와 윤혁이 떠나가기 전에 최대한 즐거운 추억을 남겨주겠다며 매일같이 잔칫상을 베풀었다. 그녀의 친절을 기꺼이 받으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특히 윤혁은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의 운명이 달라질지도 모르며 그 여파가 얼마나 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기에 식사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루디아는 그런 그를 꾸짖어 마음을 편히 갖도록 도왔다. 윤혁이 풀이 죽거나 고심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가까이 다가가 포옹해주거나 손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가벼이 볼 키스를 주기도 하였다. 취침하기 전에는 함께 쉼터에서 모여 앞날의 인도를 구하며 기도를 나눴다.

 

   최후의 여정을 이틀 앞두고, 둘은 우주선 안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나눴다.

   “꼭 이러고 보니 최후의 만찬 같은 기분이네.”

   윤혁은 반 장난을 섞어 중얼거렸다.

   “훗, 이상한 소리 하지마. 우린 앞으로도 오래 함께 할 거야.”

   “꼭 그래야지.”

   맞닿은 작은 손이 난로처럼 따뜻했다.

   “우주선에서 나가면 나도 이제 평범하게 나이 먹겠지.”

   루디아가 문득 이렇게 말하자 윤혁은 말문을 멈췄다.

   ‘그랬었지. 내 몸은 이제 영구적 불사신……,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러자 그녀가 그의 굳은 표정을 눈치 채고 질문했다.

   “여정이 끝난 이후가 걱정되는 거지?”

   “룻.”

   “어떤 부분이 가장 염려돼? 우리의 연합을 방해할만한 게 뭐가 있을까?”

   그녀는 지금처럼 서로가 강렬하고 풋풋하고 연정이 깊을 때 미리 앞날에 다가올 어려움이나 갈등을 대비하고 싶었다. 행복한 연인의 현재가 장래의 안정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앞으로는 예기치 못할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그때 가서 감정 상하거나 당황하여 넘어지기보다는 차라리 지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미리 고민을 털어놓는 편이 낫다. 그녀의 연애관은 이런 식이었다.

   “너는 앞으로 평범한 사람처럼 나이를 먹길 바라겠지?”

   윤혁이 고심 끝에 루디아에게 질문했다.

   “음, 그건 왜 물어?”

   이전 시절 같았으면 이런 질문은 무익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현시대는 사실상 전 인류의 노화 억제 및 회춘이 가능한 시대이다. 그러니 더 이상 늙어가는 것은 불가피한 운명이 아닌,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예전 상태대로 남느냐 아니면 극복하느냐. 언제든 택할 수 있으리라. 정말로 지금껏 살아보지 못했던 완전한 신세계다. 윤혁은 속으로 탄식했다.

   “그게……, 난 이 심장 때문에 내 의사와는 상관 없이 계속 불사신으로 살아야 하잖아. 남은 인생 내내. 그러니까 도중에 사고사가 벌어지지 않는 한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이 일어나기 이전까지는 계속 이 상태겠지. 그러면 너는…….”

   어찌 말해야 할지 몰라 말끝이 흐려졌다.

   “아, 이해했어. 너 혼자서만 젊은 모습인데 나만 늙어갈까 봐 걱정이구나.”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벌써 우리 만남을 그렇게 진지하게 앞날까지 고려해주다니, 뿌듯하네.”

   “농담하는 거 아니야. 난 심각해.”

   그러자 루디아는 까르륵 웃으며 윤혁의 넓은 등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려줬다. 윤혁은 머쓱해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에게는 심각한 고민이었다. 당장 그의 가족만 봐도 어렵지 않게 상상되었다.

   그는 아버지인 성한과 어머니인 유진이 함께 사는 모습을 무려 스무 해 이상 보면서 자라왔었다.

   아버지는 가뜩이나 한국에서 제일가는 수준의 잘생긴 얼굴이었다. 몸은 어떤 운동선수보다도 탄탄했으며 이삼십 대의 얼굴과 이십 대의 신체를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성한은 ‘초인의 육체’를 지닌 반쪽 초인이라 노화 속도가 일반인보다 열 배 이상 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늙지 않는 아빠의 모습은 보기에 참 낯설었다.

   반면, 어머니는 원래도 평범하고 수수한 외모인데다 그마저도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나이를 먹어 쇠하셨다. 물론 인류 전반의 의학 발전으로 모든 사람이 전반적으로 과거보다는 늦게 늙는 경향은 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쌓여가는 연륜을 희미하게 느낄 수는 있었다. 희어져 가는 그녀의 머리와 이마의 주름 속에서 세월을 발견할 때마다 윤혁은 안쓰러움을 느꼈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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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회 아벨의 후예 Ch 44. 노화와 불로불사 (1)
등록일 2026-04-06 | 조회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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