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13회 아벨의 후예 Ch 48. 라오디케이아 (5)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5.29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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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그러나 아쉬워하는 재현을 되려 위로해 주기 위해 리온은 친절을 베풀었다. 그는 조용히 네 팀원을 모아 송별회를 열었다. 그는 재현이 자책하지 않도록 격려해 주었다. 이에 고마워하면서도 재현은 여전히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늘 옆에 있어 주셔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식사를 나누는 동안 리온이 재현에게 고백했다.
“제가요? 하지만 저는 딱히 제 힘을 사용해 볼 기회도 없었는걸요.”
실제로 사역팀에 참여한 이래로 재현은 한 번도 무력행사를 하지 않았다.
“물리적인 도움을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천재현 씨, 당신은 용감하고 강인한 분이세요. 제가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어른이 곁에서 지켜준다는 게 제게는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요.”
진심이었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며 성인이 된 이는 많으나 어른다운 어른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재현 본인은 동의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리온에게는 그가 그런 동역자였다.
“집에 돌아가서도 다른 분들에게 그런 좋은 버팀목이 되어주세요.”
하지만 진짜 어른다운 분은 목사님이세요.
재현은 마음속으로 이 말을 삼켰다.
‘그래, 나는 아직도 성장하지 못했다.’
아직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 이것이 객관적인 자기 평가였다.
그래서인지 이날 송별회는 아무래도 씁쓸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동료가 떠나가는 아쉬움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단순한 씁쓸함에 더해 쓰라리고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리온은 선교 여행 막바지 때처럼 다시금 최후의 만찬의 모습과 자신들의 식사 자리를 겹쳐보았다.
그리고 송별회를 마치고 사흘 후, 재현은 작별 인사를 남긴 채 일행을 떠났다. 리온은 쓸쓸한 감정을 숨기며 조용히 일을 하러 라오디케이아에 돌아갔다.
그때 그는 홀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찬영이 동물적으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그를 뒤따라왔다.
“오늘은 휴식하는 날인데 왜 굳이 이곳에 오셨나요, 목사님?”
사역팀은 그간 바쁜 가운데서도 반드시 일주일에 한 번은 휴식을 했었다. 때마침 그날은 안식을 취하는 날이었다.
“글쎄요. 오늘따라 이곳에 반드시 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어떤 손길에 끌려 나오는 느낌이랄까요.”
리온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고 무거워 보였다.
“혹시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찬영이 염려스러워하며 되물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리온은 내심 두려웠다. 하나님께서 어제부터 별다른 지시를 직접적으로 하시지 않았다. 리온은 전에 경고받은 그때가 가까워졌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사실 갈트론을 맞상대하기 위해 대중 앞에 정체를 드러내놓는 순간부터 이미 최악의 상황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이 코앞에 다가오니 무게감이 확실히 달랐다.
오늘이 바로 양이 도륙당하는 날이 되리라. 이런 예감이 들었다. 물론 아무런 이성적 근거도 없는 불확실한 예감이었다. 하지만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느덧, 리온은 다가올 최후의 순간을 미리 맛보고 있었다.
그도 두려움과 공포라는 감정을 알았다. 라오디케이아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인간 본연의 연약함 때문이었다. 도망치려는 행동이랄까.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 자리가 자기 무덤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언적 직감을 감지했다. 어디로 피해도 결과는 동일하리라. 이 순간만큼은 하나님 외에 자신을 보호해 줄 이가 없음을 느꼈다. 동시에 그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큰 시련을 기어코 허락하시리라는 걸 인지했다.
‘풍파 가운데 홀로 서는 감각……, 생각보다 많이 어렵네.’
이제 든든했던 재현은 떠나갔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지금 숙소에 남아있는 지현은 탈 없이 안전할까. 되도록 동료 중 아무도 이 운명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거늘. 하기야 지금은 어디로 도망치건 안전치 못하리라.
‘제가 고난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할 수만 있다면 잔을 옮겨달라 기도하셨던 주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 번만 제게 증표를 보여주세요. 용기라도 낼 수 있도록.’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리온은 기도했다. 한참의 고뇌 끝에 그는 잠시 졸았다. 그 와중에 그는 어떤 환상을 보았다. 거기서 깨어난 후, 그는 깊은 경외감을 체감하며 겸허한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불안감과 두려움, 다가온 운명에 대한 번뇌가 씻긴 듯 사라졌다. 풍파보다 더욱 커다란 존재 앞에 그는 압도당했다.
“그렇군요. 잠깐이나마 처지를 한탄하며 비관했던 저를 용서해 주시길. 이제는 그 어떤 비통한 처지라도 제가 감히 마다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쇠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흥해야 합니다. 어떤 비참한 방법으로든 좋으니 저에게 그 길을, 당신을 영화롭게 하는 길을 허락해 주십시오.”
마침내 가슴속에 맺힌 깊은 응어리가 해소되어 무너져 내렸다. 무릎을 꿇은 젊은 목사는 하염없이 탄복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한탄인지 해탈인지 감격인지 혹은 그 모든 게 섞인 양가감정인지는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무거운 짐 하나를 마침내 떨쳐내었다.
한편 그 시각, 지현은 숙소에서 휴식하던 중에 익숙한 감각을 느끼고 벌떡 깨어났다. 리온과 찬영은 이미 라오디케이아 공간에 접속했는지 자리에 없었다. 재현은 얼마 전 송별 후 자기 동생에게로 떠나간 상태였다. 기척에 깨어난 지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 누구……, 읍!”
누군가가 갑자기 불쑥 나타나 등 뒤에서 지현의 입을 틀어막았다. 텔레포트였다. 감지조차 되지 않는 기묘한 신속함. 게다가 힘이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별로 물리적 악력을 주고 있지 않음에도 지현은 털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놀라지 마, 지현아, 나다.”
“큰형? 형님? 성운 형님.”
성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현을 진정시킨 후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안심해라. 어서 가자꾸나.”
“네?”
깜짝 놀라서 반문하기도 전에 성운은 지현을 데리고 순식간에 어딘가로 워프하였다. 도착한 장소는 성운이 작업 시 애용하는 전략 본부 중 하나였다. 행성 수십 개를 이어서 붙인 거대한 인공 축조물. 그 안에 광활한 광장이 하나 있었다. 성운은 지현이 그 공간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도록 보호막을 생성했다. 도시에 자신은 인류연합 간부들만이 입는 공식 제복과 특수 가면을 소환하여 무장하였다.
“형, 무슨 일이죠? 왜 저를 이곳으로?”
“잠자코 기다려라. 네가 괜한 일에 휘말리게 놔둘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저는 이미 말씀드렸듯이 목사님과 사역을…….”
“그때 그 이야기를 뜻하는 게 아니다.”
형의 차가워진 계산적 목소리에 동생은 긴장하여 입을 다물었다.
“나의 계산대로라면…….”
지현은 성운에게서 무슨 발언이 튀어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오늘 밤 그자가 ‘미끼’를 물기 위해 행동을 개시할 거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이해력이 부족하구나. 말 그대로다.”
미끼라. 하긴 그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성운은 몹시 탁한 기분을 느끼며 예전에 보스와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했다.
그때 카이젤은 이렇게 물었다.
“설명해 봐라, 왜 갈트론을 실각시킬 카드로 리온이 적합하다는 거지?”
“몇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전에 성운은 하늘도시 시절 인류연합의 과거 역사를 청산할 겸 갈트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전략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주었었다. 성운과 리온이 직접 토의하여 전략을 짜기도 했으니, 리온은 아마 그런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중에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실제로 리온이 성운의 예상대로 움직였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갈트론은 필시 그가 티아라의 제자라는 사실에 비이성적으로 반응하여 집착할 겁니다. 리온 마흐무드 목사는 유일하게 성녀께서 그 의지를 좌절시키지 못한 제자니까요.”
“자존심 문제라 그거군.”
“게다가 갈트론과 마흐무드 목사는 그 사상의 특성상 서로 철천지원수이지 숙적이며 공생도 불가능합니다. 둘의 성향은 반드시 감정적인 대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렇지.”
“그래서 만일 마흐무드 목사가 기독교 세력을 대표하는 주축으로 자리매김한다면, 나아가 그가 괄목할 성과를 거두어 갈트론의 음모를 무위로 돌린다면, 그는 틀림없이 참지 못하고 직접 움직여 마흐무드 목사에게 손댈 것입니다.”
그러자 카이젤은 표정이 약간 딱딱하게 굳었다.
“미끼로 사용하겠다는가?”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가 갈트론이 미끼를 무는 순간을 포착해 그를 완전히 실각시킬 프로세스를 가동하겠습니다. 하늘도시에서 이뤄졌던 모든 비인륜적 행위의 책임을 전가해 갈트론을 ‘공공의 계약’에 묶인 죄수로 만들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카이젤이 대답했다.
“그 과정에서 목사가 겪을 고초는 어떻게 하고?”
“그에게는 상당히 미안한 일이겠지만……,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분입니다. 갈트론과 같은 괴물을 잡으려면 원치 않는 희생도 뒤따르게 될 겁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냉정하게, 눈물도 없이 대답했었다.
회상을 마친 성운은 양심의 책망으로 인해 숙연해진 모습이 되었다.
“라오디케이아(LAODIKEIA), 그건 네 스승을 도와줄 무기이기도 했지만, 사실 원래 진짜 목적은 달리 있었다. 인류연합 간부 중 가장 골칫거리인 갈트론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내가 직접 설계한 ‘맞춤형 덫’이었지.”
지현은 충격에 빠졌다.
“형!”
“미리 알려주지 않아서 미안하다. 하지만 네가 설득했어도 내 의견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경악으로 놀라 울분에 이글거리는 지현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성운은 고개를 돌렸다.
‘내 계획대로 됐는데도, 왜 이리도 기분이 찝찝하지?’
지금껏 그가 한 번도 깊이 체감해 보지 못한, 지독하게 불편한 기분이었다.
*
별안간 절대 방어의 장(場)으로 여겨졌던 공간이 와장창 깨지며 틈새가 벌어졌다. 찬영은 전신 슈트를 갖춰 입고 방어 태세를 갖춘 채 리온을 자기 뒤편으로 숨겼다. 침입자가 이내 본 모습을 나타냈다.
“이야, 이거 제법 애먹었네. 역시나 확률왕 그 양반의 작품이라 다른가?”
아공간에 침습해 온 사내, 갈트론. 그는 어쩐 일인지 온전한 컨디션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중간 과정을 보지 못해 알지는 못하나 라오디케이아의 방벽들을 훼파하는 기나긴 과정에서 대부분의 힘을 봉인 당한 모양이었다. 그의 온몸에 자잘한 상처와 초능력을 훼방하는 에너지 봉인이 걸려있었다. 꽤 많은 핸디캡을 받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피라미들을 상대로 압도할 여력은 있었다.
“마침내 직접 대면이군. 만나서 반갑군, 목사 양반.”
“당신이 바로 그 사악한 훼방꾼입니까?”
리온은 분노를 냉정한 표정 뒤에 감추고서 상대를 똑똑히 노려보았다.
“크큭, 내 의도대로 전면에 나서줘서 고마워, 사형(師兄).”
그 말에 리온은 흠칫하였다.
‘역시나 저 사람도 성녀의 작품…….’
리온은 입술을 세게 악물었다.
“아, 그리고 이것도 네게 고마워해야겠군. 네가 직접 기독교인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준 것 말이야. 덕분에 많은 수고를 덜게 되었어. 다시 말해서 이제 당신 하나만 제대로 추락시키면 그쪽 진영은 이제 재기불능의 타격을 받아 몰락하겠지.”
갈트론은 섬뜩하면서도 살인적인 기운의 미소를 지었다.
“인간의 광기란 참으로 다루기가 쉬워, 안 그래? 아주 살짝만 툭 건드려주면 벌집 쑤신 듯 폭주하게 되지. 내 추종자들이나 네 추종자나 비슷하지. 아빠도 그 예술적인 묘미를 아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야.”
“정신 나간 소리는 그만두시죠.”
리온은 갈트론의 경박스러운 비아냥거림을 딱 잘랐다.
“지금 당신이 하려는 일이나 어서 하시죠. 아무 상관 없는 제 동료는 이만 보내주시고요.”
그 와중에도 찬영을 먼저 생각한 리온.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인간의 악덕을 숭상하는 갈트론은 무언가에 역린을 자극받았는지 미간이 살짝 인해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 위로 드러난 불쾌감이 주는 신호는 몹시 불길한 징조였다.
“목사님…….”
찬영은 진동하는 무형의 거대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당황한 그는 재빨리 리온의 몸을 에워 안았다. 이것은 긴박한 위기였다.
“지금부터 절대로 저에게서 떨어지지 마세요.”
과연 순식간에 물리적인 열이 아닌 이상한 열기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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