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17회 아벨의 후예 Ch 49. 최강의 크로스솔져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6.10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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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성운은 수만 개 은하 전역에 걸쳐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쟁을 지휘하는 중이었다. 물리적인 무력 충돌만 없지 맹렬하기로는 살육전 못지않았다. 성운은 마침내 오랫동안 준비해 온 갈트론 세력 섬멸전을 개시했다.
고맙게도 상대가 알아서 덫을 물어준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다. 라오디케이아에 강제 접속하는 과정에서 갈트론은 많은 정보를 성운에게 해킹당했다. 또한 그의 군대 상당수가 감염되어 무력화되었다. 기다렸다는 듯 성운은 나머지 장치들도 동원하여 2등 시민 사회 전역에 갈트론이 흩뿌려놓은 것들을 무참히 뿌리뽑기 시작했다. 나아가 무인 지대에 주둔하던 갈트론 휘하 시스템은 무인 기업을 통해 감염시켰다. 마지막으로 갈트론의 군단과 초능력 채널들의 연결을 강제로 끊어버렸다.
‘하지만 세력 투쟁만으론 부족하다. 갈트론은 이미 다른 철인왕들에게 비슷한 토벌을 당한 경험이 많아. 게다가 무한의 플랜트가 존재하는 이상, 아무리 탈탈 털어도 나중에 다시 재정비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적장에게 미리 예정된 족쇄를 씌우는 것.
‘공공의 계약’
그것만이 해답이었다. 카이젤은 사고뭉치 양아들의 활보를 마냥 내버려두는 무책임한 군주는 아니었다. 전제군주였으나 룰을 준수하는, 나름의 명군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 갈트론을 제어할 장치를 하나 마련해 두었다. 이른바 다른 초인에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개념인 ‘페널티 포인트(penalty point)’라는 것을 설정해서 갈트론 전용 억제책으로 이용하였다.
‘페널티 포인트가 한 번에 빠르게 올라 임계점을 넘겨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공공의 계약은 발동되지 않아. 발동되더라도 일시적인 종속력으로 그친다. 그를 종신토록 램프의 지니로 전락시키려면 확실한 건수를 잡아야 해.’
그러자면 지금까지처럼 갈트론이 요리조리 회피할 길을 줘서는 안 된다.
‘과거에 하늘도시에서 일어났던 비인도적 사건 전부를 뒤집어씌우고 ASDM 건수 전체를 덮어씌워도 임계점 도달에는 아슬아슬하다. 컨스티튜션 셋 자체가 개헌되지 않는 이상은. 그러니 갈트론이 결정적인 범법을 벌일 때 기회를 잡아야 한다.’
나아가 갈트론이 마련해 둔 각종 회피책, 특별히 자신이 책을 잡힐 경우를 대비해 안배한 인공지능 분신과 의식체 분신들을 모조리 박멸해야 했다.
성운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칼리드와 스튜아가 지원을 해주긴 했지만, 이번 일은 전면전인 만큼 성운 쪽에도 위험 부담이 컸다. 지금 갈트론을 완전히 잡지 못하면 필시 복수를 당할 것이다.
“형.”
전장을 지휘하는 성운 옆에는 병풍처럼 지현이 같이 있었다. 사실 전면전을 벌이기 전에 성운이 가장 염려한 것은 가족의 안위였다. 만일 싸움이 길어져서 성운이 갈트론 측에 공격받게 된다면 약점을 공략당할 것이다. 단연코 가장 큰 약점은 일반인 가족의 존재였다. 다른 식구들은 지구에 머무르고 있기에 절대적으로 안전하겠지만, 무방비하게 2등 시민 사회를 전전하는 지현은 신경 쓰였다.
‘만약을 대비해서 내 곁에 놔둬야 해. 그게 제일 안전하다.’
이게 동생을 위해서도 최선이야. 애써 합리화해 보았다.
“저는 큰형을 어렸을 때부터 존경해 왔어요.”
지현이 말을 걸어왔다.
“한없이 대단해 보였죠. 주님을 알기 전에는 형이 제 우상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동시에 무서웠죠. 사람을 자기 맘대로 다루는 모습을 보고서는 더욱요. 나중에 회심 후에야 깨달았어요. 처음에는 괴물과 위인이 혼재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던 형도 그저 한 명의 인간이었구나. 나처럼 똑같이 고뇌하고 갈등하는, 선과 악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이었구나. 분노도 내심 많이 품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지현은 아련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백했다.
“안타깝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어요. 숭배의 감정, 두려움의 감정, 분노의 감정을 다 내려놓고 원래 그대로의 형을 직면하게 되니……, 예전의 제가 방황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슬픔을 가누기 어려운 듯한 목소리였다.
정신없이 전장을 지휘하며 프로그램들을 조작하면서도 성운은 그 말을 다 귀담아들었다. 애써 무시하려 했으나 자꾸만 귀에 동생의 슬픔 섞인 말들이 아른거렸다. 감정에 휘둘리다니, 이건 자신답지 않았다. 지현이 크리스천이 된 이후로 종종 자신을 찾아와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다’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이기심 한 점 없이 타인을 생각해 주는 그 태도. 문득 가족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제멋대로 그들을 조종하는 자신의 모습이 대조되었다.
‘지금의 내 태도가……, 갈트론이 하는 짓과 뭐가 다른 걸까.’
이유 모를 불쾌한 수치감이 가슴을 찌르며 거슬리게 했다.
“하아.”
“형과 의절할 생각은 아니에요. 주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또 하나의 무거운 선물이라고 생각할게요. 그 무게가 제가 감당키 어려운 것일지라도……. 그러니까 언제든 마음이 흔들리시거든 돌이켜 생각해 주세요.”
성운의 귓속으로 동생의 말이 계속 흘러 들었고 그것은 고민을 증폭시켰다.
‘이건……, 말도 안 돼. 합리적이지 못한 충동이야.’
지금 그가 뭔가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미리 빈틈없이 짜놓았던 계획의 많은 부분이 궤도에서 어긋나 헝클어진다. 어차피 갈트론을 제압할 생각이긴 하지만, 리온의 안전을 우선시하면 당초 계획했던 목표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갈트론은 속박에 묶이지 않고 벗어날지도 모른다. 그 뒤에는 앙심을 품은 그가 성운을 향해서 개인감정을 투사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가족들을 보호하기는 더 어려워지리라.
‘내가 이렇게 한심한 놈이었다고?’
성운은 보스가 왜 강윤혁을 그리도 대하기 어려워했는지 진정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이마를 짚었다. 끝내 그의 냉정했던 의지는 그의 이성과 다른 방향으로 탈선하여 궤도를 벗어났다. 필시 후회할 테다.
“시스템 전환, 플랜 B로 넘어간다.”
{주인님, 그 방안을 택하면 우리의 원 전략이!}
“알고 있다.”
{하지만…….}
“섬멸전은 원래대로 속행한다. 승률이 꽤 낮아지겠지만……, 해본다.”
*
빌어먹을! 갈트론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720! 개의 초능력 채널이 한 번에 차단되어 버렸다. 물론 조금 전에도 힘을 거의 다 봉인 당한 데다 라오디케이아의 필드 때문에 권능의 상당 부분이 봉쇄되었다. 그래도 티끌만큼의 힘만은 운용하도록 허락받았거늘. 사실 그것만으로도 재현을 상대로 놀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희미하게나마 연결을 유지하던 초능력 채널들이 모두 봉쇄되었다.
“그렇군. 확률왕의 방해인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이내 특유의 광기를 되찾았다.
“여간 조급했던 모양이군. 하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었어.”
당장의 이곳에서의 싸움이야 갈트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리라. 하지만 갈트론은 재현 정도는 가볍게 농락할 자신이 있었다. 지금 타이밍에 성운이 이러한 선택을 내린 건 장기적인 전략으로 보았을 때는 오히려 호재였다. 덕분에 법망을 빠져나가기는 훨씬 쉬워졌다. 페널티 포인트의 과부하도 더 용이하게 막을 수 있으리라. 성운도 현재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는 중에 여력을 이쪽으로 옮긴 것일 테니.
“이제야 힘의 균형이 좀 맞춰졌군.”
크윽. 재현은 상처투성이로 헐떡거렸다. 제복이 없었으면 진작 죽었을 것이다.
“아직 더 보여줄 건 없나?”
싸움이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갈트론은 전투만을 위한 준-무한 공간을 하나 더 소환해 펼쳤다. 그리고 완력으로 재현을 그쪽에 내던졌다. 그 공간에서는 양쪽 다 공간 붕괴의 염려 없이 무제한으로 힘을 발산할 수 있다.
“자, 좀 더 힘내보라고.”
얼마 안 가서 갈트론의 발목을 묶는 불이익이 거듭 나타났다. 이미 갈트론은 무력, 기술력, 초능력, 이능력 대부분을 들어올 때부터 봉쇄당한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성운이 직접 초능력 봉인에 나서는 바람에 그나마 남아있던 초능력과 이능력마저 거의 다 막혔다. 더욱이 RS-월드 후폭풍도 처음부터 그를 제어하고 억누르는 방향으로 작동했기에 몹시 불리했다. 심지어 바깥쪽에 남겨둔 예비 병력 역시 성운에게 거의 다 점령되었다.
‘크윽, 게다가 벌써부터 족쇄가 작동하다니.’
마지막 핸디캡. 리온을 상대로 벌인 악행과 하늘도시에서 철인왕들이 벌였던 악행, 그리고 성운과의 섬멸전 과정에서 쌓인 ‘페널티 포인트’가 임계점 근처까지 누적되었다. 그 영향으로 예비 족쇄가 형체화되었다. 갈트론의 팔다리와 목덜미에 반투명한 팔찌가 씌워졌다. 아직 영구적 ‘계약’은 성립되지 않았지만, 이 이상으로 무리하면 자칫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몸을 사려야 했다.
반대로 재현 쪽에는 강력한 도움이 덧씌워졌다. 먼저, 강렬한 감정에 반응하는 그의 이능력 특성상 힘의 위력과 활용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라오디케이아’는 설계 당시부터 재현의 이능력을 모티브로 메커니즘을 삼은 물건이었기에 이 역시도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재현의 능력 활용도를 극도로 높였다.
역으로 갈트론은 공간 침식으로 라오디케이아에 대항하느라 집중력의 상당 부분을 낭비하여 여력을 갉아 먹혔다. RS-월드 후폭풍도 모두 재현을 돕는 방향으로 집중되었다. 처음부터 재현의 특수 속성을 최대한 증폭한 뒤에 얻을 작정이었던 카이젤이 미리 이를 안배해두었던 것이다. 더불어 수현에게서 넘겨진 제복을 통해서 불완전하게나마 수현의 초지능과 초능력이 재현에게 전달되었다. 흡사 전투 인형에게 본체의 능력을 전이해 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온갖 고지대를 다 점유한 재현조차도 갈트론에게 실낱같은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극한까지 힘과 정신력을 이끌어내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상대는 여유만만했다.
되려 적은 재현의 힘을 능수능란하게 역이용했다. 그리고 어떤 미지의 힘과 맞상대해도 순식간에 대응할 힘을 즉석 제조해 냈다. 무엇보다 무술 실력과 두뇌의 차이가 너무도 압도적이었다.
“실망인걸. 그것 가지고 아빠가 눈독 들이는 먹잇감이라 할 수 있겠나.”
“끄아아아악.”
온 공간을 격한 화염으로 수놓는 격렬한 우주급 난타전이 한참 벌어졌다. 공간이 깨어지며 에너지의 폭풍과 파동의 난무가 이어졌다. 법칙이 붕괴하였고 불안정한 물리력으로 인해 질서가 훼손되었다. 한쪽에서 힘을 퍼부으면 다른 한쪽이 그걸 가볍게 흡수하여 배로 되돌려주는 싸움이 반복되었다. 서서히 라오디케이아 전체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크헉.”
치열한 접전 끝에 권능 대결은 체술 전으로 이어졌다. 재현의 허리는 폭력으로 인해 무참히 꺾였다. 갈트론이 복부에 사정없이 니킥을 찍어 넣었다.
“더, 더, 더 해봐. 어서 빨리!”
기술도, 권능도, 그 무엇을 써도 모조리 모방당하거나 파훼 당했다. 아무리 버프를 받아도 갈트론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맹렬하고 잔인하고 사악한 전사는 지저분한 싸움의 귀재였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그 어떤 위협을 맞상대해도 순식간에 약점을 찾아내었다.
재현은 몇 시간 동안 처절히 얻어맞으며 갈트론의 조롱을 당했다. 갈트론은 일부러 상대가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거듭 봐주고 또 봐주었다. 일부러 감정을 격하게 만들어 한계를 초월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쓸만한 존재로 각성시킨다면 아빠도 기뻐하겠지.’
성운에 의해 모든 세력을 잃을 궁지에 몰렸으면서도 갈트론은 여유만만했다. 자신의 역할, 곧 인류연합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해주는 청소부 역할은 아무나 대신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명목상 페널티 포인트로 옥죄고 있지만, 양아버지도 자신을 결국 또다시 풀어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위기만 넘기면 된다. 아울러 잘 요리된 음식을 아버지께 조공으로 바치면 공로를 인정받으리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각성해 봐, 천재현.’
재현은 두려움과 낙심에 침몰하였다.
‘결국, 이렇게 실패하는 건가. 영락없는 실패자의 모습이다. 약속을 깨트리고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어. 바보 같이. 이렇게까지 무기력하게 당할 줄이야.’
의식이 흐릿해졌다. 분노마저 무기력 앞에 식어갔다. 삼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실인으로 올바르게 헌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평생 육신적이고 어리석은 모습만 보였던 사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힘은 누구보다도 강했으나 유혹에 반복적으로 넘어져 끝내 비천한 모습으로 적들 앞에서 굴욕당했던 그 사람. 지금 재현의 모습도 영락없이 그와 같았다. 바닥에까지 추락하고서야 그제야 선명히 보였다.
‘도와주세요. 나는 무력한 자, 어리석은 실패자입니다.’
너무도 보잘것없고 못 나서, 오로지 은혜밖에 기댈 것 없는 내가 보였다.
‘주님, 힘없고 죄 많은 이 몸을 돌아봐 주시고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세요.’
울부짖자니 스스로 보기에도 염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를 지킬 줄도 모르고, 당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실패했던 미련한 사람입니다. 부디 어리석은 내 모습 대신에 나를 가리신 당신의 보혈을 보소서. 그리고 당신께 헌신했던 목사님을 가엾이 여겨서라도 저를 돌아봐 주소서.’
거듭된 공격으로 인한 온몸의 통증을 견디지 못한 재현은 끝내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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