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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21회 아벨의 후예 Ch 50. 소원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6.19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무슨 고민이시죠?”

 

 

“아, 아무것도 아니오.”

 

 

곁에 있던 데이빗이 스테판의 경직된 표정을 빤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슬슬 3차 경합도 코앞으로 다가오네요.”

 

 

“누가 우승하든 지혜로운 선택을 하길 바라오.”

 

 

“저도요. 주님의 뜻이 올바르게 실현되었으면 좋겠네요.”

 

 

“주님의 뜻이라…….”

 

 

스테판은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데이빗에게 되물었다.

 

 

“후보자들은 각자 어떤 소원을 계획하고 있소?”

 

 

“음, 넘버 12, 넘버 72, 넘버 108, 그 세 분과는 친분이 깊지 않아서 물어보지 못했어요. 다른 다섯 분은 각자 뜻을 정했더라고요. 그 생각을 들어보니 나쁘지 않았어요.”

 

 

최근 RS-월드 때 테마 제너레이터로 활약했던 경험이 생각보다 후보자 개개인의 정신적 성장에 일취월장의 큰 유익이 되었다. 덕분에 그들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공의를 구체적으로 현세에 실현할지 충분히 고민해 보게 되었다.

 

 

“소원이란 것 자체가 탐탁지 않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버릴 기회는 아니니 최대한 신중히 판단한 뒤 정해봐야겠죠. 우리의 정욕이나 오판이 개입되지 않도록 말이죠. 너무 과대한 꿈을 품어서도 안 되겠지만요.”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 봐도 나는 어떻게 해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를 모르겠소.”

 

 

“저도요. 쉽지 않은 문제죠.”

 

 

그 ‘소원’이란 게 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현될지도 잘 모르니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도 어려웠다. 한 번에 너무 큰 것을 요구하자니 겁이 났고 그렇다고 여러 소원을 한꺼번에 묶기도 애매했다. ‘가치’와 ‘실용성’을 타협해야 하리라. 어느 정도의 선이 적합할까. 이 역시도 애매했다.

 

 

후보자들이 그저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들이었다면 차라리 결정 내리기가 훨씬 더 빨랐겠지만, 스테판도 데이빗도 그런 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모든 수단을 하나님 왕국과 주님의 의를 위해 유익이 나타나는 방향으로 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혹여라도 자신들의 그릇된 결정이 그분께 폐가 될까 봐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우리처럼 하나님 나라의 공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방도를 연구하는 듯해요. 넘버 5는 ‘자유’라는 키워드, 특히 ‘개인의 선택과 존엄성’을 억압형 정신 지배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서 희망을 걸고 있어요. 넘버 13은 ‘윤리의 회복’, 그러니까 인류의 법도를 다시 하나님의 율례와 합하는 방향으로 교정하려는 소망을 품고 있고요. 넘버 19는 시민권의 차등을 최소화하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자발적인 마음으로 섬기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재조정하기를 원하고 있죠.”

 

 

“그 또한 전부 공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측면들이긴 하겠소.”

 

 

다들 치열하게 생각하며 고민한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넘버 37은 생명 윤리를 강조하고 있어요. 무절제하게 진화 중인 과학 기술을 올바른 창조 질서 하에 복종시켜 인류의 겸손을 회복하기를 원해요. 넘버 103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적 혹은 육체적 능력으로 재단하는 지금 시대의 관점을 수정함으로써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발견하고, 달란트를 청지기의 마음으로 바르게 사용하도록 가치관을 개선하기를 추구하고 있죠.”

 

 

“하나같이 바람직하지만 어려운 일들뿐이구려. 해낼 수 있을는지…….”

 

 

“당연히 단번에 실현하진 못하겠죠. 후보자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각자 자신이 주제로 택한 테마에서 좀 더 구체성을 높인 실천 방안을 찾는 중이에요. 그것만 해도 어려운 일일 테지만요.”

 

 

“최소한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실현되었으면 좋겠소.”

 

 

“그러게요.”

 

 

염두에 두어야 할 걱정거리가 많았다. 개인적인 욕망이나 그릇된 사고가 은연중에 소원 속에 내포돼서는 안 된다. 또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해보지도 않은 채 부적절한 소원을 정해서도 안 된다. 현실성, 필요성, 추후 벌어질 여파를 철저히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에 합치하는지를 기도로 점검해야 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당장 기도해도 뚜렷하게 들리는 응답은 없기에.

 

 

“막상 준비해 가도 왕 앞에 섰을 때 어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렇소. 1차 경합 때도 느꼈지만, 우린 자기 자신을 확신해선 안 될 것 같소. 신실치 않은 우리 인간은 누구나 탐욕과 유혹과 무지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오. 그걸 잊어버리고 우리가 무난히 해내리라고 믿어버리면 필시 넘어질 것이오.”

 

 

그렇기에 스테판은 되려 소원에 전력을 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나치게 기대가 크면 막상 실패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아 재기치 못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누구든 좋으니 지혜로운 답을 내릴 자가 우승자의 자리를 차지하길 기도했다.

 

 

 

 

 

 

 

 

*

 

 

 

 

 

대화가 점점 깊어지던 중 이런 이야기가 거론되었다.

 

 

“혹시 스테판은 최상위 초인을 직접 만나보신 일이 있나요?”

 

 

“최상위 초인이라면, 혹시 그때의 그 둘 같은 자 말이오?”

 

 

첫 경합을 시작하기 전, 두 최상위 초인이 이레귤러들을 한 명씩 방문해 다소 폭력적인 면담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의 그 둘은 본체는 아니고 분신이었다. 본체를 직접 마주한 후보자는 아직까진 없다.

 

 

“그때 그자들, ‘존재의 격’ 자체가 인간과 완전히 달랐어요. 더 무서운 건 그때 우리가 마주친 건 고작 그자들이 지닌 무수한 분신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는 점이죠. 틀림없이 본체의 초능력을 티끌만 한 분량도 담지 못했겠죠.”

 

 

“확실히 그 둘은 위압적이긴 했소.”

 

 

이번에는 데이빗이 다시 질문을 바꿔보았다.

 

 

“그러면 우리를 조작해서 이레귤러로 만들었다던 ‘그녀’는 기억하세요?”

 

 

“아.”

 

 

데이빗 역시 무의식 속에 파묻힌 기억 저편에 어렴풋이 엘이라는 여인의 잔흔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 기억은 마치 한 날의 꿈속에서 스친 장면처럼 불분명했기에 의식적으로 묘사하기는 어려웠다.

 

 

“나도 잘 모르겠소.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서.”

 

 

“힘이나 권능으로는 분명 경합 직전에 보았던 그 최상위 초인 두 명이 압도적으로 강했는데……, 그런 물리적인 능력과는 별개로 영혼을 통해서 느껴지는 존재의 격은 그녀 쪽이 훨씬 더 우월했어요.”

 

 

그 말에 스테판이 의문점이 생겼는지 눈동자가 팽창하였다.

 

 

“영혼을 통해서 느낀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아, 저는 영에 대한 감지력이 민감한 편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소유한 은사도 특수한 계열의 영 분별 능력 쪽이고요.”

 

 

영 분별의 은사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딘가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혹시 그대가 우리를 포함한 일곱 명의 후보자를 미리 발견하여 동맹을 맺으려 했던 것도 그 능력 덕분이오?”

 

 

“어느 정도는 맞아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그럴 뜻을 품은 건 아니었지만요.”

 

 

데이빗은 성도와 거짓 신자를 분간하는 감각이 상당히 탁월한 편이었다. 단순히 예민한 정도가 아니라 어렴풋이나마 누구에게는 거짓 영이 있으며 누구에게는 참된 영이 있는지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했다. 물론 충분히 오랜 시간 같이 만나 대화해보고 관찰해 보고 간증을 들어봐야 가능하긴 하지만.

 

 

“그나저나 별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드네요.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우리를 시험해 보기 위해 인류연합이 강력한 자를 파견해 볼지 몰라요. 우리는 ‘그녀’가 사용하였다가 버린 장기말이기 때문이죠. 수배자인 그녀의 악의가 묻은 작품. 처리 곤란의 위험물. 그래서 그토록 초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거예요.”

 

 

데이빗은 초인에게 또다시 농락당할 상황에 대해 염려를 내비쳤다.

 

 

“최상위 초인에 관해서 질문하였지? 그것에 대해 답해야겠구려.”

 

 

스테판은 잠시 불편한 기억을 떠올렸다. 선교 여행 마지막 날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때 칼리드가 자신의 뇌를 무참히 해부했던 그 과정의 끔찍한 감각이 지금까지도 트라우마가 되어 아른거렸다.

 

 

“나는 딱 한 번, 최상위 초인의 본체를 직접 만난 적이 있었소.”

 

 

그 말을 들은 데이빗이 잔뜩 긴장하여 스테판의 발언에 주의를 집중했다.

 

 

“압도적인 격이었소. 나랑 같은 인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그렇게까지 강력했나요?”

 

 

“물리적 힘을 말하는 게 아니요. 그 당시에는 초능력 기술도 지금보다 훨씬 원시적이고 미흡한 수준이었으니, 지금 우리가 마주치는 초인들의 권능을 기준으로 보면 약한 수준이겠지. 내가 말하려던 건 그에게 내포된 무서운 잠재력이오.”

 

 

“어땠나요?”

 

 

“성장의 한계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 흡사 끝없는 바다 같았소.”

 

 

데이빗은 여태껏 스테판이 저렇게까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본 바가 없었다.

 

 

“아, 지금쯤이면 그자도 RS-월드의 영향을 받아 과거보다 훨씬 더 강해졌겠지. 만약 그자를 지금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번에도 그 압도적인 기운과 잠재력 앞에 위압되어 버릴 것 같소.”

 

 

“신앙심이 그토록 굳건한 당신 조차도요?”

 

 

“신앙심으로 극복되는 염려와는 다른 개념이오. 아무리 영이 강건한 자도 생리적인 공포를 면제받진 않지. 하물며 그 초인은 순수한 우주적 공포 자체였소. 내가 주님의 보좌를 한 번이라도 직접 목도했다면 이 세상의 존재에게 공포를 품지 않았을 텐데…….”

 

 

“아뇨, 만일 그랬다면 오히려 당신은 보좌와 그것에 앉으신 분의 위엄에 압도당해 절명하였을 거예요.”

 

 

스테판이 피식 웃으며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려. 하지만 이건 말해둬야겠소. 당신이 일개 최상위 초인 정도에 겁먹으면 앞날이 곤란할 거요. 여행 당시 나와 동행했던 동료 중에는 최상위 초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격의 인간과 친분을 맺었던 이들도 있었소.”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소. 마치 전에 우리가 ‘그녀’와 만났던 것처럼 말이오.”

 

 

실제로 리온의 사부였던 성녀는 최상위 초인보다도 우위의 격을 지녔었다. 그리고 리온만이 아니다.

 

 

“심지어 내 동료 중에는 현 인류연합의 수장과 연을 가진 사람도 있었소.”

 

 

“네?”

 

 

이어지는 스테판의 발언에 데이빗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초인을 합쳐놓더라도, 인류연합 수장의 발끝에는 못 미친다고 하였소. 권능에서든 지혜에서든 격에서든……, 모든 측면에서 말이오. 그 친구는 과장을 떠벌릴 사람이 아니오. 정직한 데다가 영민하기까지 하니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분명 그 말이 맞을 것이오.”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이 점점 더 고조되었다.

 

 

“이제는 좀 아시겠소? 조만간 우리가 마주하게 될 존재가 무엇인지를?”

 

 

“그, 그런……, 도무지 믿기질 않는군요.”

 

 

“이 경합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괴물과의 충돌인 셈이오.”

 

 

과연 그런 자가 선뜻 들어주겠다는 내미는 비밀의 수표, 곧 소원 성취의 능력을 만만하게 여기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솔하게 방심한 자에게 임할 충격이 얼마나 클지, 미리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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