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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23회 아벨의 후예 Ch 51. 니알라토텝의 시험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6.24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이렇게 구성된 총 33인은 결전의 날 마지막 하루 전에 다 같이 모여 성한 부부가 거주하는 보호구역을 찾아갔다. 때마침 아나스타샤도 부부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크로스솔져들은 이때다 싶어 그녀에게 질문했다. 혹시 주님께서 경합 최종 결과와 그 상품인 소원이 일으킬 여파에 관해 조언하신 사항이 없느냐고.

 

 

“잠시 시간을 주시길.”

 

 

아나스타샤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어렵사리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나에게 그것을 묻느냐. 누구든지 의인으로 나타나려 하는 자는 그 일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요, 누구든 기꺼이 죄인으로 드러나기를 감수하는 자는 그 일에 참여하리라.]

 

 

그녀에게 전달된 응답은 이게 전부였다.

 

 

“이건 제 사견입니다만……, 아무래도 문맥을 고려하건대 단순하게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의미하신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나스타샤가 조심스레 해석하며 덧붙였다.

 

 

“어려운 말씀이네요.”

 

 

성한이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으음, 혹시 자신이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하는 자의 길을 주님께서 받아주시겠다는 뜻은 아닐까요? 겸손한 자가 형통하게 된다, 뭐 이런 뜻이라면야.”

 

 

타당하게 들리긴 했다. 하지만 열 명의 후보자는 모두 복음을 바르게 아는 자들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그들의 삶에서 드러난 모습만 보면 그들이 나쁜 열매를 맺는 거짓된 자 같지는 않았다.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되는 입문 단계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철저한 내면적 항복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유진도 자기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아무래도 철저하게 지난 죄를 다 자복하는 후보를 택하여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이것도 그럴듯하게 들렸다. 하지만 후보자들이 죄를 자백해야 한다? 어떤 죄를 말하는 걸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일반적인 윤리적 개념의 범죄? 아니면 그들 자신이 전혀 짐작하지도 못하던 새로운 차원의 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 바람에 크로스솔져들의 고뇌는 더 깊어져만 갔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답이 도출되겠죠.”

 

 

신해가 나섰다. 그는 머리 아프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고리를 일단 단순 명료하게 끊어내었다.

 

 

“그래, 어차피 여기서 괜히 고민해봤자 현장에 가서는 답 안 나온다.”

 

 

“1차, 2차 경합 때처럼 어차피 곤욕을 치르는 건 불가피해.”

 

 

무디와 케리도 동의했다.

 

 

“그래, 아빠는 너희 믿으니까 걱정 말고 최선을 다하려무나.”

 

 

성한은 염려하는 크로스솔져들을 독려하기 위해 반쯤 장난을 곁들여가며 위로해 주었다. 사실 어느덧 그는 그들을 친자식과 다를 바 없이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생생히 전해졌는지 불안해하던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위기 가운데도 함께하시니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세요.”

 

 

유진도 어머니답게 자상함을 발휘하며 그들의 다친 심령을 다독여주었다. 33인은 전쟁터에 막 끌려가는 자식이 부모님 앞에 마지막으로 효도하는 심정으로 정중하게 예를 표해 인사하였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부부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운이 돌았다. 그동안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듬뿍 담아 그들은 작별의 입맞춤을 나누었다.

 

 

“윤혁이가 너희를 많이 그리워할 거다. 그 애가 돌아오거든 꼭 같이 모이자.”

 

 

성한은 아련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도 보고 싶네요.”

 

 

“그리고 염치는 없지만…….”

 

 

성한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힘겹게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그’를 만나게 된다면……, 너희에게 어려운 부탁이 되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잘 부탁한다.”

 

 

이에 몹시 숙연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몇몇은 표정이 무거워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신해가 대표로 응답했다. 아저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도와주겠다는 듯한 자신감이었다.

 

 

“분명 잘 흘러갈 거예요. 설령 그렇지 않아도…….”

 

 

그는 아무래도 더 말을 이어가기 어려운지 말끝을 흐렸다.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권능을 굳게 믿겠습니다. 그분이라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능히 변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저희는 이미 증오심도 두려움도 다 버렸습니다.”

 

 

아도니람이 신해가 미처 잇지 못한 말을 완성했다.

 

 

 

 

 

 

 

 

*

 

 

 

 

 

{3차 경합을 개시합니다.}

 

 

당일 약속된 시간이 되자 통일시스템은 한 마디와 함께 관계자들을 모조리 강제 워프시켜 레뮬로스 시 앞의 바다로 소환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곧 통일시스템이 인지 작용을 허락해 주자 거대한 결계가 눈앞에 나타났다. 규모만 작을 뿐 RS-월드가 전개되었을 때의 기운과 똑같았다.

 

 

잠시 후, 각 사람의 몸과 정신에 특수한 코드가 새겨졌다. 이레귤러들에게는 황색의 코드가, 히어로들에게는 청색의 코드가, 그리고 폰들에게는 적색의 코드가 심어졌다. 코드 이식이 완료되자 이내 RS-필드가 촉수처럼 생긴 연장선을 방출하더니 모든 관계자를 차례로 집어삼켰다.

 

 

그들은 잠깐 의식을 잃었다. 그 후 깨어나 보니 지난번과 똑같이 초 인지능력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때처럼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에 걸쳐 한 존재인 본체가 여러 단계의 화신으로 분열되지는 않았다. 하나의 통합된 육신과 혼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먼저, 후보자 열 명은 각기 다른 열 개의 차원에 접속되었다. 육체는 원래 기억하던 자신과 똑같은 형태로 인식되었다. 다만, 초의식이 각성하여서인지 인지능력이 현격히 증가되어 있었다.

 

 

아울러 그들의 초의식에 반응하여 주변 차원 또한 모종의 변형을 일으켰다. 흡사 각 후보자가 자신이 놓여있는 차원과 일체화되어 그 차원을 지배하는 주인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일정 범위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구체가 둘러싸는 결박하는 것만 같았다.

 

 

한참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본 끝에 후보자들은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자신들은 지금 자신이 마음대로 조정하고 변형하고 다스릴 수 있는 ‘고유 차원’에 들어와 있다. 둘째, 현재 그들 눈에 인식되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기억에 기반해 재현된 모습이다. 실제로 후보자들이 각각의 고유 차원 안에서 실존하는 양태는 오히려 ‘편재(omni-presence)’에 가까운 방식이다.

 

 

셋째, 이 고유 차원들은 더욱더 거대한 차원 내부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다. 흡사 눈썰매가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넷째, ‘고유 차원’은 후보자의 명령을 받으면 확장하거나 분열하거나 형태 변환을 하거나 타 고유 차원과 교류하거나 융합하거나 더 높은 차원을 침식하는 게 가능하다.

 

 

흥미롭게도 자신을 제외한 다른 아홉 후보자의 흔적은 오감으로든 육감으로든 전혀 관측되지 않았으나 의사소통만은 허락되었다. 마치 의식이 하나로 연결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온전히 하나가 된 것은 아니고 의견 교환이 가능한 정도의 연결이었다. 이 연결은 다툼, 경쟁, 협동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될 수 있었다.

 

 

한편 각 후보자에 딸린 스물네 명씩의 보조인원은 후보자의 ‘고유 차원’이 이곳 RS-필드에 투사된 그림자, 곧 ‘투영체 차원’에 예속되어 있었다. 보조인원들은 그 안에서 육체와 정신을 자유롭게 움직였다. 원한다면 RS-월드 때처럼 여러 화신을 형성하는 것도 가능했으며 분신으로 쪼개어지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한 덩어리의 초차원적 초의식적 형태로 존재했다. 비유컨대 후보자가 영혼이라면 스물네 명은 그 영혼의 지배를 받는 육체의 세부 부위들이었다.

 

 

열 개의 고유 차원, 그리고 각각에 딸린 투영체 차원은 썰매가 미끄러지듯 근진계라는 거대한 상위 차원 안쪽에서 유유자적 흘러갔다. 후보자들은 도중에 여러 수수께끼와 난해한 시험들을 받았다. 때로는 우주적 연산력을 요구하는 퀴즈도 등장했고 때로는 평생 사활을 걸만한 무거운 가치관의 시험도 나타났다.

 

 

그 와중에 상위 차원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다운로드되었다. 그들은 지혜롭게 그것들을 분별하고 판단하고 걸러내야 했다. 이곳에서만큼은 후보자 한 명 한 명이 아카식 레코드 급의 컴퓨터를 정신 속에 탑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지력을 갖고 얼마나 지혜롭게 의사결정과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들에게 배당된 고유 차원의 실존 형태와 이동 양상이 좌지우지되었다. 당연히 투영체 차원도 은연중 그 영향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제공되었다. 우주 표준 시간 기준으로는 불과 피코 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근진계에서는 억겁의 시간이 흐를 수 있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했다. 시간축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들쭉날쭉한 세계였기에 통상의 시간 개념은 머릿속에서 금세 지워져 버렸다.

 

 

어느 단계에 도달하자 후보자 앞에 한 개씩 회색 구슬이 나타났다. 후보자들은 그것을 쥐어 들었다. 손과 구슬이 접촉하자마자 아무런 공지 없이도 머릿속으로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그 구슬은 ‘제1 필드’라고 불리는 제한형 근진계 안에서 벌어지는 이번 1단계 시험을 치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구슬 안에는 소위 ‘큐베(QBE)’라고 칭해지는 기이한 에너지체가 일정량 담겨있었다. 구슬을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후보자 본인의 ‘의지’, ‘신념’, ‘판단’, 이 세 가지 종류의 정신 활동을 구슬 속에 담긴 소량의 QBE에 섞는 것이었다. 과학적인 원리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복잡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본능적으로 사용법이 체감적으로 깨달아졌다.

 

 

“느낌이 썩 좋지 않소.”

 

 

스테판이 데이빗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당신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군요.”

 

 

데이빗이 응답했다.

 

 

“저도 불현듯 한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열 명의 후보자, 그리고 뭔가가 담겨있는 그릇…….”

 

 

넘버 5와 넘버 13이 연달아 말했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동일한 연상을 하였다. 다만, 그 은유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 상황과 연관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몰랐다. 그들로서는 카이젤의 기괴하고 깊은 의중을 다 파악하기엔 무리였다.

 

 

‘부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할 텐데.’

 

 

구슬에 담긴 QBE가 후보자의 의지, 신념, 판단과 더불어 섞이면 그것은 실체화되어 모종의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 현상은 ‘투영체 차원’ 내에서의 일련의 변화로 나타난다. 즉 후보자는 큐베를 일정량 지불함으로써 자신이 거느린 스물네 명과 그들을 에워싼 환경을 개변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정신 지배를 가할 수도 있었고, 능력향상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특정 잠재력을 일깨워낼 수도 있었고, 의식 수준을 강제로 높일 수도 있었다. 보조인원들의 화신이나 분신을 형성하기, 폰들이 지닌 허상 초능력이나 메이저급 초지능체 유사 기능 활성화, 투영체 차원의 시공간 구조 변형, 인과율 변형, 혹은 의지의 투영 등 고차원적인 기능도 가능했다.

 

 

‘지난번에 테마 제너레이터를 맡겼던 건 미리 이걸 훈련시키기 위함이었군.’

 

 

후보자들 모두 난생처음으로 QBE를 다루면서도 마치 수억 년 이상 연습하기라도 한 것마냥 자연스럽게 제어할 수 있었다. 전에 테마 제너레이터로 뛰면서 획득한 경험 때문이었다. 근진계에서 나와 현실로 돌아올 때 그 기억을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다시 근진계에 접속하자마자 몸속에 새겨진 것처럼 기억이 되살아났다.

 

 

즉 애초에 지난번 2차 경합은 3차 경합이라는 변수까지 감안하고 계산되었던 셈이다. 교묘하게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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