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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624회 아벨의 후예 Ch 51. 니알라토텝의 시험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6.06.29 | 회차평점 0 0

 

 

 

*

 

 

 

 

 

한편, 후보자들이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을 수행하면서 자신에게 딸린 고유 차원을 짐을 운반하듯 이동시키며 열심히 상위 차원을 휘저어 다니는 동안, 히어로들과 폰들 역시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몸으로 뛰었다.

 

 

그들은 후보자들과는 조금 다른 류의 기시감을 체험했다. 특히 히어로들에게는 이 상황이 낯익었다. 눈앞에 펼쳐진 갖가지 난관과 시험, 그 형태는 유독 전에 겪어보았던 경험과 비슷하여 데자뷔를 유발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했지만, 억겁에 가까운 인조 시간축을 통과하며 치열하게 과업을 해결해 나가다 보니 마침내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이곳……, 그것과 비슷하다.’

 

 

‘확실해.’

 

 

‘이곳에서 제공되는 시험의 방식은 정확히 그자의 것과 똑같아.’

 

 

‘신수왕, 일라이저 1세.’

 

 

‘냉전 당시와 테마가 거의 비슷해. 난도는 비약적으로 오른 형태이긴 하지만.’

 

 

‘던전, 그리고 신수 사냥까지…….’

 

 

그때와 상황이 유사했다. 복잡성 측면에서 수천경 배 이상 정밀해졌고 그만큼 방대한 사고력과 판단력과 지혜를 요구한다는 점만 뺀다면. 던전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패턴을 초 극한의 단계까지 진화시킨 뒤 온전히 하나로 융합한 것만 같았다. 자연히 공략 난도도 훨씬 높았다.

 

 

대신 보조인원들에게 제공된 능력도 현실 던전 공략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고 강력했다. 히어로들은 시스템에서 주어지는 이 모든 혜택을 십분 활용해야만 각 스테이지를 공략할 수 있었다. 길고 치열한 전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시험이 전개되던 중, 이레귤러들은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구슬에 담긴 QBE를 소비할 때마다 그릇인 회색 구슬의 색상에 변화가 생겼다. 이에 관한 이유도 머릿속으로 저절로 정보가 들어오면서 깨달아졌다. 회색 QBE가 후보자의 의지, 신념, 판단과 결합하여 어떤 현상을 발생시키고 소비되면 그 반작용으로 정확히 소모된 양만큼 ‘형질이 변형된 QBE’가 구슬 안으로 채워진다.

 

 

형질이 변형된 QBE도 재활용 자체는 가능했으나, 그 대신 처음 사용했을 때와는 작동 시 나타나는 효과가 달랐다. 어떤 색깔로 변형된 것이냐에 따라 그 변화 방식도 달라졌다. 또 어떤 색의 QBE는 구슬의 특정 부분에만 응집되었고 어떤 색은 물감이 번지듯 순식간에 구슬 전체를 오염시켰다. 어떤 색은 쓰면 쓸수록 탁해졌고 어떤 색은 분명하게 선명한 채도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이러한 의미였다.

 

 

‘QBE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마냥 자기 멋대로 가치 판단을 하고 있다.’

 

 

열 명은 이 사실을 직감하고는 긴장감에 붙잡혔다.

 

 

‘저건 의지가 없는 무형의 에너지 따위가 아니야.’

 

 

‘스스로 사고한다. 심지어 직접 우리를 평가하기까지 한다.’

 

 

그렇다. QBE는 후보자가 자신을 소비할 때마다 그로 인해 유발된 현상이 얼마나 장기적으로 가치 있는 일인지를 거국적으로 판단했다. 더 나아가 후보자가 자신 속에 섞어 넣은 신념, 의지, 판단을 직접 분석한 뒤 그것이 얼마나 ‘영속적인 가치’를 함유한 것인가를 분석하고 그에 걸맞은 대가를 되돌려주었다.

 

 

후보자들은 이번에도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공적의 비유(고전 3:13-15)를 모방한 건가?’

 

 

성경에는 최후 심판에 대한 교리가 있다. 모든 성도의 공적이 심판대 앞에서 평가받을 때 나무나 풀이나 짚처럼 무가치한 재료로 쌓인 공적은 불에 타 없어지고 금이나 은처럼 영원한 재료로 된 공적만 남게 되리라. 이는 믿는 자의 삶에서 오로지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행해진 일들만이 영원한 상급으로 남게 되고 세상적인 생각과 이기적인 의도에서 행해온 일들은 상급을 받지 못한다는 교훈이었다.

 

 

후보자들 모두가 기독교 신앙에 익숙하다는 점을 일부러 감안한 것인지 매우 노골적이면서 교묘한 방식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뒤튼 오마주가 이번 게임이었다. 하지만 QBE 중 구체적으로 어떤 색깔이 ‘영속적인 가치’를 패러디한 것이며 어떤 색깔이 ‘덧없는 가치’를 패러디한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할 방도가 없었다.

 

 

‘교활한 인간 같으니.’

 

 

인류연합 수장의 검은 속내는 대체 어디까지 뻗어있을까.

 

 

 

 

 

 

 

 

*

 

 

 

 

 

일라이저는 본격적으로 대결하기 전, 몸을 찬찬히 풀며 손님을 기다렸다. 제1 필드에서 제공되는 억겁의 세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시간이 너무도 길고 지루했지만, 사고 활동에만 오롯이 정진하는 것도 나름 나쁘진 않았다.

 

 

일라이저는 여러 행성에 걸쳐 공동 전개된 RS-필드 연속체를 두루 감찰하며 주군이 맡긴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배우들은 시험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라이저의 장기 말 노릇을 하며 세 가지 임무의 완성을 도와주고 있었다.

 

 

후보자들은 QBE를 활용해 투영체 차원에 변형을 일으키고 그 변형을 활용함으로써 보조 인원들은 ‘던전’의 강화판들을 거듭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분투하는 과정에서 각종 데이터 부산물들이 발생했다. 신수왕은 그 정보 부산물을 놓치지 않고 회수함으로써 제1 필드의 방정식 변동 패턴을 조정했다.

 

 

그는 이런 비열한 과정을 통해서 난제들을 쑥쑥 해결해 냈다.

 

 

먼저는 ‘인과율-택스 시스템’을 차세대 버전으로 개량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인과율의 ‘수심(水深)’을 안정적으로 보전하는 ‘안정화 방정식’을 구현했다. 또한 이론 단계에만 머물던 ‘신세계 구축’이라는 방법론의 수학적 모델을 증명해 냈다. 그리고 현 실험 단계 ‘신격화 장벽’에 남아 있는 오류들까지 모두 검출해 냈다.

 

 

카이젤은 일라이저가 실시간으로 인계해 준 데이터를 취합했다. 그리고 그것들로 새로운 모델과 방정식과 알고리즘을 완성했다. 그것도 즉각적으로. 유명하고 악명 높은 공포 신화 속에 등장하는 왕 ‘아자토스’와 비서 ‘니알라토텝’처럼 둘은 한 쌍의 완벽한 듀오를 이루어내었다.

 

 

“QBE라, 참 흥미롭군요. 지독하리만큼 잔인한 운명의 족쇄입니다.”

 

 

“그래, 네 말대로 끔찍하지. 우리 같은 초인들에게는 일절 반응하지 않되 오로지 넘버 1이나 넘버 111 같은 순수하고 선량한 이레귤러들에게만 반응하는, 참 신비한 물질이야.”

 

 

“그나저나 도대체 그 에너지체는 정체가 뭡니까? 이름 자체는 ‘양자적 생명 에너지’인데 도무지 이 시험과 무슨 관련인지 의미를 모르겠군요.”

 

 

“그건 내가 최근 획득한 능력을 갖고 실험을 하던 중 우연에 가깝게 생성해낸 에너지다. 여러 용도가 있지만 근진계에서는 일종의 화폐처럼 거래될 수 있지. 흥미롭게도 오로지 인간에게만 적용된다. 그리고 마치 거울처럼 영혼을 비추는 성질을 갖고 있어.”

 

 

“영혼을 비춘다고요? 비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말입니까?”

 

 

“그래. 다만 모든 부분이 가능한 게 아니라 특정한 형질만 비출 수 있어.”

 

 

참고로 카이젤은 이 QBE라는 것을 최초로 생성해 내는 과정에서 무려 4만 종류가 넘는 하젠트라를 활용했고 여기에 더해 백 가지도 넘는 다양한 카리스마타를 응용함으로써 가공도 거쳤다. 그렇게 만들긴 했다만 정작 생성한 본인도 사용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 원인을 이렇게 추측했다. 아마 QBE를 발명해 내는 중, 자신이 동생에게 이식된 ‘알트루즘’과의 연결로부터 영향을 받은 탓이리라.

 

 

“넘버 111 같은 부류를 완벽한 이레귤러로 각성시킨 그 미지의 속성, 그것이 주안점이지. QBE는 오로지 그런 속성을 띤 영혼과만 섞인다. 물론 섞였을 때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그래서 소원을 이룰 재료로 그것을 택하셨군요.”

 

 

“그 결과가 비극일지 축복일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

 

 

보스와 비서가 협력의 하모니를 자아내는 동안, 마침내 시간이 도래했다. 운명의 시점, 드디어 이 게임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니 시간관념이 사라지는군요.”

 

 

“고작 그 정도로 내게 불평할 건 없지 않나?”

 

 

“하긴 주군께서는 상시 저 필드를 몸에 두르고 계실 테니 더 힘드시겠군요.”

 

 

일라이저는 자신의 영향권 바로 앞에 당도한 손님들의 존재감을 발견하고는 빙긋 웃었다. 사냥감들이 덫 안으로 들어왔구나.

 

 

“그럼, 잠시 수고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이번 기회에 폰의 잠재 능력도 전부 확인해 봐야 하니까 최선을 다해서 몰아붙여라.”

 

 

“이런 이런, 전 역시나 실험용 모르모트였군요.”

 

 

“표현이 너무 적나라하군. 틀렸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내 둘의 통신은 끊어졌다.

 

 

일라이저는 RS-필드에 융화된 자신의 ‘진짜 실체’를 꺼냈다. 이내 제1 필드에 펼쳐진 멀티버스와 패러렐 월드 전역이 일식이 일어나듯 어두워졌다. 흉흉한 살기가 발산되었다. 이번에 일라이저가 완성한 작품인 지적설계종의 최종 진화 버전, ‘편재의 유령’, 드디어 그것의 성능을 확인해 볼 차례가 되었다. 잠시 후, RS-필드에 놓인 일라이저의 본체가 ‘편재의 유령’ 딱 한 기와 융합했다.

 

 

{편재의 유령, 코드네임 ‘야누스(Janus)’ 부여.}

 

 

{‘니알라토텝’과 ‘야누스’의 융합 프로세스 시작.}

 

 

{융합 완료. 2차 재분리 시행합니다.}

 

 

두 존재는 한 번 융합 후 다시 재분리하는 프로세스를 거쳤다. 이로써 야누스는라는 이름을 얻은 편재의 유령은 이제 니알라토텝의 속성을 일부 갖게 되었다. 동시에 일라이저, 코드네임 니알라토텝도 야누스의 속성을 일부 획득했다.

 

 

“슬슬 움직여볼까.”

 

 

야누스에 깃든 니알라토텝의 의지가 자기 자신의 임재로 근진계를 메웠다.

 

 

 

 

 

 

 

 

*

 

 

 

 

 

숱한 시험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제1 필드 심장부에 당도한 후보자들. 심장부에 모이니 보이지 않던 상대편 후보자들의 임재도 어렴풋이 감지되었다. 열 개의 고유 차원이 불완전하게나마 드러나 하나로 접합되었다. 덕분에 후보자들끼리 생각 전달이 더 선명하게 이뤄졌다.

 

 

경합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느덧 각 후보자의 구슬은 각양각색으로 물들고 오염되어 있었다. 그들은 타인의 구슬을 쳐다보며 자신의 것의 상태와 비교해 보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지 하고 걱정도 들었다.

 

 

“어서 와라.”

 

 

바로 그때 낯선 목소리가 온 사방에서, 모든 좌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그녀가 남겨놓은 폐기물들, 엘의 실패작들이여.”

 

 

그 목소리의 위압감과 압박감에 후보자들은 우주적인 공포에 휘말렸다.

 

 

“저, 저건 대체 뭐지?”

 

 

거대한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무려 해당 근진계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신령해 보이는 생명체였다. 용(龍)이나 기린(麒麟)처럼 신령하다는 동물들을 모조리 합쳐놓으면 딱 그런 모양이 될 듯하려나. 구체적으로 형태를 정의할 수 없는 형태였다.

 

 

그것은 한없이 강대하고 무시무시했다. 그 거대 생명체는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더니 급기야 3차원의 범주를 넘어 아예 다차원인 벌크에 속한 생명체가 되었다. 심지어 그것의 몸뚱이는 여러 패러렐 월드와 멀티버스에 걸쳐서 존재하고 있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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