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27회 [1부] 27화. 가디언엔젤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8.19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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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다섯 시간의 프리젠테이션이 진행되었다.
알렉시스는 한 끝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모든 내용을 샅샅이 새겼다.
냉정하게 감시하고 냉혹하게 평가하고
한 팀의 대표로 있던 실버피스트는 커버넌트 그룹 회장이 프로젝트의 실제 개시에 앞서 얼마나 철저하게 변수들을 체크하는지를 매우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숨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 최선을 다해 상세히 보고했다.
토씨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일절의 침소봉대도 없이,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연구의 현황과 장단점, 한계점과 도약 가능성을 이실직고했다.
어차피 상관을 속이거나 그를 목전에 두고 무언가를 고의적으로 빠트리고 어물쩍 넘어간다는 발상은 불가능한 몽상이었다.
만약에 고의로 부풀리거나 감추거나 은폐할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더라도,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알렉시스는 자신이 주도한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부하들의 손에서 완성된 작업마저도 어떤 요소 하나 감찰의 눈에서 벗어나게 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알렉시스는 성취 현황을 만족스럽게 여기는 눈초리였다.
“좋습니다. 다른 자회사 측에는 제가 지시 사항을 전달하죠. 모듈, 소프트웨어, 완제품과 프로토타입 모두를 행정부에 인계하세요. 내일부로 곧바로 실행 단계로 돌입하겠습니다. 이제는 오너가 아닌, 정책 관리자로서 집행하겠습니다.”
실버피스트 및 그와 동석한 연구원들은 그제야 긴장의 속박에서 풀려났다.
일단 그런대로 합격은 한 모양이다.
팀 아르다로서 맡은 책무는 일단락 해결되었다.
“과연 꼼꼼하신 건 여전하시군요.”
공적 모임으로서 시간이 종료되자 실버피스트와 알렉시스는 잠시 친우로서의 막역한 관계로 돌아가 편안하게 말을 내려놓았다.
둘은 천공 요새 아이언 로드의 전망 좋은 발코니에 앉아 잠시 구름 너머 풍경을 감상하며 담화를 나누었다.
“이해해줘, 실버. 직업병이라서 말이지. 제국과 테라코프(지구 전체 규모의 경제력을 소유한 기업체를 칭하는 약어)를 동시에 경영하려면 작은 실수 하나라도 허용하지 않아야 하거든.”
“어련하시겠습니까.”
중대한 계획의 개시를 하루 앞두고 있음에도 평온히 차를 마시는 두 사람.
그 모습에서 걱정이니 두려움이니 하는 감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금 전 프리젠테이션 때 긴장이란 긴장은 이미 죄다 쏟아내기라도 한 걸까.
사실 점검의 과정이 진정한 고비이지 통과의례를 마친 지금은 염려할 부분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렉시스는 A부터 Z까지 자신의 모든 플랜을 세부사항까지 손바닥 내려다보듯 꿰고 있었으며 실버피스트는 주인이 얼마나 집요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보는지를 알았기에 실패 가능성은 염려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뭐를? 딱히 네게 축하받을 경사는 기억에 없다만.”
“사업을 훌륭하게 번창시켰지 않습니까?”
“근래 들어 인상깊은 터닝포인트가 있긴 했었나?”
“어휴, 하기야 당신 기준에는 아무것도 성에 안 차겠죠.”
커버넌트 그룹 같은 테라코프의 경악스런 고공행진 발자취에 비춰 본다면 사실 성공이라는 용어는 충분한 설명에 그리 적절치 못한 선택이리라.
그들의 기준에서는 경쟁에서의 쟁취라는 개념은 오히려 잊혀진 추억이다.
어느 분야 하나 석권하지 못한 구역이 없는 진정한 생태계의 정점인 그들.
지금의 그들에게 승리란 그저 호흡하듯, 신진대사를 하듯 자연스러운 것이며 도리어 그 권리가 박탈된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
황태자를 시작으로 분야별로 전 세계의 1000위 권에 드는 인재 중 99%를 모조리 끌어모아 독식하다시피한 집단이니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므로 어느 때건 돈을 많이 번다든지, 사업이 번창한다던지, 신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든지 하는 일들은 알렉시스에게 그리 감흥을 주지 못했다.
실버피스트도 자신이 모시던 주인의 그런 성향을 이미 잘 알았다.
하지만 운영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알렉시스에게 있어서 커버넌트 그룹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반면, 제국과 시민들, 그리고 인류는 그의 반려와도 같은 사랑의 대상.
본래 연애사업의 부흥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성공 시대가 아니겠는가.
“마인드 퓨리파이어 프로젝트가 대박을 쳤다면서요.”
“아하, 그 말이었군.”
황태자의 보랏빛 눈동자가 여유로움을 머금고 생기를 빛냈다.
자랑하기를 싫어하는 그도 이번에는 뽐내고픈 욕구가 가득해보였다.
“퀀텀일렉트로닉스 코퍼레이션이 거사를 잘 감당해냈더군요.”
“유타는 유능한 지도자이자 훌륭한 경영자야. 그를 보필하는 연구원들과 경영진도 내가 인정하는 세계 일류급들이고. 팀 아르다 출신만이 세상 혼자 사는 승리자라는 오만함과 학연주의는 버리는 편이 좋아.”
어휴, 팔불출 또 나셨네.
은발 적안의 마른 체구의 사내는 입술을 비죽였다.
“하여간 당분간은 엄청난 열풍이 불 것 같군요. 과거 스마트폰의 발명이 일으킨 여파도 조만간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열기에 역전당할 기세란 말이죠.”
분명 4차 산업 혁명도 인류에게 많은 편리함과 유익을 가져다주긴 했다.
하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후유증을 무수히 남긴 것 또한 사실.
반면에 5차 산업 혁명의 열매들은 그 후유증을 역전시키는 것은 물론 4차의 영향력을 뛰어넘어 영구적으로 인류의 유익을 증대시키는, 장기적 공공선의 혁신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야 물론이지. 본질의 격과 위력의 궤 자체가 다른 발명품인데.”
마인드 퓨리파이어는 이미 그 사이에 세 번의 업데이트를 거친 상태였고 기존에 판매된 제품과 연계 작용을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되었다.
옛 것과 새 것이 함께 만나 더욱 강력하게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특성.
이는 한 번 제품을 새로이 구매하면 전에 구입했던 것은 사실상 폐기 처분으로 이어지는 스마트폰의 본질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측면이었다.
이런 면에 힘입어 마인드 퓨리파이어는 이미 세계 시장을 점유한 뒤로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었고 이는 프로젝트의 지속 투자 및 개량을 위한 충분한 명분을 확립해주었다.
아울러 대중의 신뢰와 인기는 가히 무시무시한 기울기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어느새 국가, 민족, 지역, 종교, 정치색, 직업군을 막론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면 너나할 것 없이 하나 이상의 마인드 퓨리파이어를 소유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 이유에 관해 복잡하게 해석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압도적이고, 확실하고, 증명 가능하며, 영속적이고, 부작용이 없는 선한 효과.
이러한 선한 효과가 보편적인 차원에서 모든 측면에서 잘 발동되었으니.
그러니 대중으로서는 열광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초기 모델에서 몇 단계 더 나아가 보완된 신형 모델들은 태생 단계에 내포되었던 미약한 부작용들마저 극복하였다.
초기 모델은 알렉시스의 이슬람 삭제 플랜을 위해 두 개의 서로 다른 모듈을 급하게 합쳐놓아 만들어낸 것.
사소한 수준이긴 했지만 그 탓에 약간은 공명률에 오차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약점은 제거되었고 강점은 곱절로 증폭되었다.
사람들은 더욱 강화된 완제품을 통해 상당한 유익을 누렸다.
스마트라는 접두어를 붙였으나 되려 사람들의 지능을 퇴보시켰던 스마트폰이나 산업혁명을 이룬다는 명목으로 게으름과 실직을 유발했던 각종 인공지능들과는 달리 이 발명품은 정말로 소유자를 스마트한 존재로 성장시켜주었다.
이 발명품의 사용을 계기로 인생의 중대한 변화가 나타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무익한 루저 취급을 받던 인생이 신선한 역동력의 인생으로 탈바꿈된 이들은 더욱 많이 나타났다.
아토믹 해빗의 개량은 거듭 축적되어 나비 효과로 이어졌다.
사고력의 확장과 배우고자 하는 열린 마음의 함양은 공동체와 개인 모두에게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잘못된 관습의 사슬로부터 벗어난 이들은 잠깐의 성장통을 극복한 이후 보다더 낫고 만족스러운 삶을 향해 전진하였다.
이렇듯 현실에서 증명된 성공 사례가 일일이 기록하지 못할만큼 많았으니, 폭발적인 열풍이 나날이 그 세기를 더하는 흐름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
발안자이자 책임자인 알렉시스 본인마저도.
이런 마당에 극성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이 반발한다고 한들 그들을 정신적 지주로 모시던 양 떼가 마인드 퓨리파이어에 노출되는 일은 예방하지 못했다.
만약 원리주의 집단이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행정 체계라도 장악했더라면 강압을 통해서라도 판도라 상자의 유통을 막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브리튼 제국은 비록 아직 문화적으로 세계를 소화하지는 못했어도 행정상으로나 군사상으로나 전 세계의 치안을 넘겨받은 주권국.
알렉시스는 이중 직위의 이점을 활용했다.
구대륙의 통치를 황제로부터 넘겨 받은 대리인으로서 강력한 공권력을 사용해 자유 시장의 길을 든든히 지켜두었고, 그 열린 문을 기회의 통로로 삼아 테라코프 경영자로서 제품을 대량 유입시켰다.
그 결과는 실로 파괴적인 수준이었다.
근 몇 달 만에 탈 이슬람 배교자의 숫자는 2억을 초과했다.
탈주자의 수효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었다.
고통받는 원리주의자들을 위해 알렉시스는 염장을 한 번 더 질렀다.
평소에 착실히 십일조를 헌납하던 그는 이슬람 삭제 프로젝트 개시 이후로는 자신의 모든 수익의 십분의 일을 중동의 지하 교회와 선교 단체에 후원했다.
(참고로 황태자의 거대한 재산을 감당할 단일 교회가 없기에 그의 십일조는 개인적인 후원을 통해 선교 지원, 후학 교육, 빈민 구제 등의 용도로 직접 유입되는 방식이었다)
“설령 광범위한 탈 이슬람 현상이 일어난다 한들, 그 이후 바른 방향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테죠. 자, 제가 할 일은 했으니 나머지 분량은 당신들의 몫입니다.”
이 후원 헌금은 일종의 무언의 명령이었다.
한때 세계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를 점령했던 파괴적인 종교 집단이 뜻밖의 타격을 받아 휘청거릴 이때를 기회로 삼아 탈주자들을 참된 길로 인도하라는 지시.
황태자의 의도를 파악한 이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중동 전역 구석구석으로 침식해 들어가는 복음주의 지하 교회의 확장.
그리고 동시에 황태자의 공격을 받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이슬람이라는 이름의 여리고 성벽.
두 흐름은 상호작용을 일으켜 서로를 더욱 증폭할 예정이었다.
물론 순작용만 기대되는 것은 아니긴 했다.
“덕분에 종교 전쟁이라도 일어나겠군요. 벌집을 멋지게 쑤셔 놓으셨습니다.”
“뭐, 그때까지 전쟁을 할 정도의 무슬림이 남아있다면 말이지.”
실버피스트 특유의 무례한 조소에 알렉시스는 시니컬하게 되받아쳤다.
“글쎄요. 신앙심 얕은 보통의 신도들은 거의 떨어져나간다 쳐도 극단적 근본주의자들은 필사 항쟁을 벌일걸요? 아마도 지금쯤 그자들은 당신을 사탄의 대리인처럼 여기며 당신을 암살할 계획을 궁리 중일 겁니다.”
“무슬림들은 알라에게 아흔아홉가지 이름이 있다고 말한다지. 난 그에게 백 번째 이름을 덧붙여주고 싶군. 이제 ‘사탄’이 그의 백 번째 이름이 될 거야.”
은발의 청년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저렇게까지 한 종교를 맹렬하게 적대할 수도 있다니.
그것도 저토록 체계적이고 이성적이고 영악한 방법으로.
사실 종교고 뭐고 아무 관심 없는 과학자 입장에서는 어찌 되건 상관이야 없지만, 여러모로 주군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단순히 정치인이라는 카테고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규격의 인물.
그보다는 ‘왕(王)’ 혹은 ‘황제(皇帝)’에 진정으로 적격인 그릇이겠지.
“뭐, 당신 마음대로 하시길. 저야 즐거운 구경거리를 얻을 테니 유익이죠.”
“그래, 너와 네 동료들이 완성해준 그 검은 요긴하게 활용해주마.”
“그나저나…….”
실버피스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최신 버전의 마인드 퓨리파이어 단말기 쪽에 시선을 돌렸다.
“그 물건 말입니다. 효력의 폭이 사람마다 차이가 뚜렷하더군요.”
“그거야 그렇겠지.”
마인드 퓨리파이어는 어디까지나 보급형의 도구.
그것은 주로 퇴보하고 넘어진 인간들에게 큰 폭의 효력을 드러낸다.
어리석고 퇴폐화되고 게으른 자들에게 최고의 효과를 나타낸다.
혹은 사고가 경직되었거나 편향되었거나 왜곡된 자들에게도.
이는 사실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본질이 ‘치료의 도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었다.
거꾸로 말하면 이미 훌륭한 습관, 탁월한 사고력, 건강한 인품을 함양한 자들에게는 그 효력의 크기가 작게 나타난다는 뜻이었다.
자기 자신의 지력을 충분히 잘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도구의 도움으로 지혜를 추가 개선할 여지가 없었다.
또한 복합적이고 다각화된 사고를 자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자에게는 관점의 전환 및 깨우침을 일으킬 필요성이 없었다.
그리고 좋은 습관이 몸에 밴 자들은 구태여 교정할 것이 많지 않다.
이런 이들은 큰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효력이 없지는 않되, 인생의 전환점 혹은 성공시대의 시작이라고 평할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마인드 퓨리파이어가 소유한 한계 아닌 한계였다.
상향 평준화에 초점을 둔 장치이며 이미 존재하는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전부이기에 잠재력 그 자체를 늘리는 일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당신이 그 도구를 써보았을 때는 어떠했는지요?”
실버피스트의 예리한 질문에 알렉시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지혜로운 자, 정신이 건강한 자, 성공하기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자, 자기 자신을 잘 함양하는 자에게는 효과의 증폭률이 시연찮다고는 하죠. 수십 억 인구의 베타테스트를 통해 입증된 바입니다. 하지만.”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백 퍼센트 사용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완벽하게 바로잡힌 습관을 소유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설령 있다 한들 올바른 습성을 항상 사용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렇기에 효력의 극적인 면에는 차이가 있어도, 마인드 퓨리파이어는 보편적으로 어느 정도의 유의미한 변화까지는 일으키곤 했다.
병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란 없듯, 정신의 왜곡이 없는 인간은 없으니까.
알렉시스의 비서관 로빈도, 팀 아르다 멤버들도, 켈리온 부부도, 각종 인재들도, 황가의 인물들도, 발명자인 나스루딘 자신도, 심지어 그 대단하다던 열두 지도자들도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유용성을 체험적으로 느꼈다.
일반 민중 가운데 회자되는 ‘인생 역전의 기적’이라는 평가까지는 과장될 지언정 분명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유익이 상당한 도구임에는 반론하지 않았다.
“심지어 저와 제 동료들도 그 영향을 받습니다. 업무의 성취도도 상당히 높아졌으며 창조성과 생산성에도 제법 약진(躍進)이 발생했죠. 저 같이 인격이 뒤틀린 경우라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치더라도, 성실한 인격과 훌륭한 실력을 겸한 분들에게도 유익은 나타난단 말이죠.”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당신만은 다르죠?”
“실버.”
“맞춰보죠. 당신과 그 도구 사이에는 상호작용의 접점이 없었을 겁니다.”
그것은 무엄한 발언이었으나 정곡을 찌르는 정답이기도 했다.
현존하는 인간 중 유일하게 알렉시스만은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힘이 조금도 닿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여러번의 실험에도 그의 뇌리에는 일획의 변화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미 극도로 고도화된 뇌이기에, 이미 완벽히 활성화된 두뇌이기에 그런 것일까? 마인드 퓨리파이어가 손 볼 틈이 아예 없을 정도로?’
실버피스트는 호기심으로 입맛을 다시며 추리의 나래를 펼쳤다.
‘혹은 그게 아니면, 일개 조잡한 기계 따위가 감히 간섭하지도 못할, 고차원적인 위상의 지성 중추라서?’
어느 쪽이건 탐구자로서 말초신경이 자극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궁금하군요. 당신이 우리를 도구 삼아 완성시킨 이 기술적 변곡점, 가디언엔젤 또한 그러할까요?”
황태자는 묵묵부담으로 응수했다.
“나름 당신은 황가의 후예답게 신앙심도 독실한 사람이잖습니까? 그 이전에 세계가 인정하는 정의와 도덕의 수호자고요. 그런 당신이 가디언엔젤과 상호작용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두 가지 해석을 내릴 수 있으리라.
알렉시스라는 존재의 영혼 속에 심연 같은 짙은 어두움이 숨어 있거나.
혹은 그의 정의로움의 무게와 질량을 일개 기계 따위가 가늠하지 못하거나.
기회만 허락된다면 자신의 주군을 실험해보고 싶다는 과감한 상상이 매드사이언티스트의 호기심 속에서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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