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25회 [2부] 46화. 형님의 고민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5.10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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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은 아들들의 결혼과 연애에 대단히 보수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알고 있네. 우리 가문의 가풍이지. 이기적인 목적으로 정략 결혼을 주도하지는 않지만, 대신에 품격과 인품이 뛰어나고 능력 면에서 온전한 사람들을 맞아들이지. 이왕이면 가치관과 신앙관도 올바른 사람을 선호하고.”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신기하게도 황실은 인복이 좋아서 그런지 예로부터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맞아들일 수 있었어. 그것도 다 주님의 복이지. 그 가운데는 혈통 면에서 브리튼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많았고, 원래는 다른 문화권에 있었다가 개종하거나 황실 사람과의 만남을 계기로 회심한 사람들도 제법 되지.”
{덕분에 유전자풀이 다양해진 것이로군요. 확실히 알렉시스님의 유전자 속에도 현 지구 상의 민족의 거의 모든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내 주치의 노릇을 충실히 잘해주는군. 혹시 내 인체유래물 샘플이나 영상소견에 신체 이상 징후 같은 것은 없었어?”
{양성(良姓) 병변이나 작은 DNA 오류도 없습니다.}
“고마워.”
알렉시스는 기특하다는 듯 기계의 몸체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아무튼 황실은 원래 좀 기준이 까다로워. 하지만 전쟁터에서 여러 힘든 일들을 겪은 이후 내가 조금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든. 그래서 주도적으로 그 엄격한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노력했어. 내 동생들의 세대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사람과 편하게 교제할 수 있도록 말이지. 아버지도 내 조언을 받아들여주셨고.”
{완전한 자유 연애를 허락하셨다고요?}
“물론 필수적인 기준 선들은 남겨두었지. 빠트릴 수 없는 조건들은 그대로 두었고.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기본 원칙도 지키게끔 했지. 하지만 그 외에는 그 아이들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하고자 했어.”
이러한 형님의 배려 덕분에 동생들은 이성 교제에 있어서 비교적 전 세대보다는 자유를 누린 편이었다. 물론 가풍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한지라 완전하게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결혼이라는 중요한 관문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래도 틀의 속박이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알렉시스가 동생들 주변에 얼쩡거리는 이성들과 가까운 여자 사람들, 혹은 연인들을 향해 감시의 망을 해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도 몰래 면밀히 어떤 사람들이 동생들 곁에 오가는 지를 확인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동생들과 사귀고 헤어지곤 했지. 에드윈처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경우는 보통 없지만, 짧은 주기로 여러 인물이 연인 자리를 채우고 빠지는 순환은 심심찮게 보았어.”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아이들까지 보수적인 건 아니군요.}
“넌 참 뼈 아픈 말을 발칙하게 표현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나.”
{저는 팩트만을 말할 뿐입니다.}
“어련하시겠어.”
{그러면 그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보통 연애했다가 헤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지 않습니까?}
“내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 동생들의 애인들 대부분은 이별할 때도 매우 깔끔하게 헤어져서 그 뒤로도 쓴 뿌리나 뒤끝이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 지금은 대부분 친구처럼 막역하게 지내는 모양이야. 혹은 그런대로 괜찮은 비즈니스 파트너로 남거나.”
{황자들이 성격 좋은 호인들인 모양입니다.}
“그렇긴 하지. 다들 치정 싸움을 하지도 않고 목을 메지도 않더라고.”
{그건 워낙 여복이 많아서 집착할 필요가 없어서 일 것입니다.}
알렉시스는 비서의 쓸데없는 농담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면 이미 결혼한 분들도 있겠군요.}
“맞아. 펠렌드로크는 이미 3년 전에 반려를 찾아 결혼했지. 유타는 최근에 결혼했었고. 한달 쯤 뒤에는 엘리어트도 결혼할 예정이야.”
{형보다 먼저 결혼하는 것은 관례적으로 피하지 않던가요?}
“항상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황가 쪽에서는 후계 문제가 걸려 있어 복잡할 텐데요?}
비블로스가 지적한 부분은 설명하자면 이런 예였다. 어떤 황제가 왕좌에 앉아있는데 그의 아들들 중 맏이인 황태자가 있고 여러 작은 아들들이 있다. 그런데 황태자가 아직 결혼하지 않고 나머지 아들들 중 일부가 먼저 결혼을 한다.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결혼한 아들들이 자식을 갖게 된다면? 그러면 황제 입장에서는 황태자가 아닌 자가 장손을 낳아주는 셈이다. 확실히 그러면 2세대는 몰라도 3세대 때에는 후계 문제가 꼬이지 않을까?
비블로스의 상상의 나래는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보통의 황가의 경우라면.
{알렉시스님의 사촌 항렬은 형제들까지 포함하여 총 일흔 명이었죠.}
“맞아. 브라이틀란트 가가 좀 다산하는 편이지. 유전자에 뭔가 확률 조작이라도 걸어둔 것인지 우리 귀여운 아델바이스 말고는 시커먼 남자들밖에 없지만.”
{사촌 쪽에서는 알렉시스님보다 나이가 많은 자가 없습니까?}
“사촌이나 형제들 중에서는 없어. 내가 우리 할아버지 장손이긴 한데, 다만, 증조할아버지의 자녀들, 그러니까 육촌들까지 포함하면 나보다 형인 분들과 누나인 분들도 있긴 하지. 그건 왜?”
{맏아들보다 더 빨리 결혼하여 동생이 더 일찍 자기 자녀를 갖는 경우가 생기면 후계 과정에서 문제가 없을까 궁금하였습니다.}
“아, 뭘 걱정하는 지는 이해했는데, 우리 가문쪽은 절대 그런 문제로 갈등할 필요가 없어. 애초에 황위 계승을 확정해놓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 인간 황제는 거기에 함부로 관여할 권한이 없거든.”
{신께서 정하신 바라면, 혹시 맏이 승계의 법칙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성경을 읽어보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마엘 대신 이삭을, 에돔 대신에 야곱을, 그리고 요셉과 유다를 세우시잖아? 다윗도 막내였었지. 전부 그분의 주권적 선택이었어. 아버지들의 선택권은 없었지. 그분께서 일부러 중요한 가문에서는 맏이를 안 세우시는 모양이야. 히브리 민족의 경우에는 말야. 브라이틀란트가를 택하셨을 때는 일부러 그때와는 반대 법칙으로 일하시기로 작정하신 듯해.”
{신께서는 일관된 규칙을 따르시는 게 아니란 말입니까?}
“그분의 전적인 주권적 결정에 달린 문제이지.”
실제로 그 영향인지 지난 400여 년간의 브리튼 역사 속에서 맏이가 승계하지 않은 예시가 전혀 없었다. 무조건적으로 ‘더 크라이스토브 브라이틀란트’라는 칭호는 한 왕에게서 그의 맏이로, 그 뒤에는 그의 맏이로, 그 뒤에도 그의 맏이로 계승된다. 즉 알렉시스의 사촌이나 팔촌 가운데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있건 말건 황위는 그들과는 상관이 없다.
“그래서 난 내 동생들 다 일찍 결혼시키려고. 내가 아들딸을 못 본다면 조카들이라도 많이 봐야지. 좋은 아내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구경하고.”
{알렉시스님도 입양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흠, 그건…….”
알렉시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생각해보지 뭐.”
여하튼 큰 꿈은 좋으나 문제는 그 일이 얼마나 순수하고 순탄하게 진행되느냐였다. 과연 동생들의 아내들을 아무런 하자없는 사람으로 맞아들일 수 있을까?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알렉시스는 그 일을 성취하기를 소원했다.
“펠렌드로크의 아내는 매우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인이야. 능력면에서도 탁월하고 동생의 능력과 시너지를 일으키기에 매우 적합하지. 다만 그를 닮아서인지 야심이 강하고 치밀한 면이 마음에 걸리긴 해.”
그는 생각의 깊이를 온전히 가늠하기 어려운 제수씨를 떠올렸다. 차가운 이미지의 그 여인, 클라린스 레이카는 인간에 대해 이해가 높은 알렉시스조차도 됨됨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윤리적이고 상식적이며 가족들의 마음을 잘 파악하기는 하나 어딘가 모르게 다가가기에 부담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려나.
{그녀는 기독교인입니까?}
“아니. 만일 기독교인이었다면 내가 허락하지 않았겠지.”
{알렉시스님의 가문은 하나님과 언약한 집안 아닙니까?}
“우리가 맺은 언약은 어디까지나 ‘크리스토프의 언약’일뿐, 그 효력이 구성원 모두에게 간접적으로 미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땅에서의 축복과 관련된 언약이야. 구원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새 언약’과는 직접 연결되진 않지. 다수의 구성원이 기독교인이긴 하나 상당수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의 비율은 30% 내외일걸. 즉 아브라함의 경우가 그러했듯, 우리 가문도 모든 구성원이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야.”
인간적인 욕심대로라면 신앙심이 좋은 여인을 붙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렉시스는 그런 이기심을 부릴 수 없었다. 펠렌드로크는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거듭난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그에게 가문의 욕심대로 믿음의 여인을 붙여준다면 그 여인을 향하여 씻기 어려운 죄를 짓는 셈이다. 그 여인분은 무슨 죄가 있어서 자신과 영적 기류가 다른 남편을 평생 모시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면 위험성이 더 높아진 것 아닙니까?}
“제수씨 말인가?”
{네, 그리스도인이 아닌 인간은 언제든 악의 타락에 강력히 미혹될 수 있다고 당신이 말씀해주셨죠. 제 속에도 가디언엔젤들이 부품으로 들어있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뭐 맞는 말이긴 한데, 그리스도인이라고 미혹에서 면역인 건 아니지. 그리고 거짓으로 신앙이 있는 척 속일 수도 있잖아. 막말로 우리 가문에 들여온 며느리가 정말 참된 성도인지 아닌지, 내가 하나님도 아니고 어떻게 확증하겠어.”
{그래도.}
비블로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렉시스도 이해했다.
“알아. 넌 우리 가문에 ‘그들’의 첩자들이 들어올지 걱정하고 있는 거지?”
비블로스는 주인의 말에 묵묵히 침묵으로 응답하였다.
“다행히도 제수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것만은 내가 이미 미리 알아보고 검증했어.”
{그렇다면 유타의 아내쪽은 문제가 없습니까?}
“그분이야말로 인간됨이 순수한 편이지.”
펠렌드로크의 아내처럼 엘리트 출신에 엄청나게 빼어난 미녀인 건 아니다. 나름 유능하고 고운 심성과 외모를 지니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평범에 가까운 축. 그러나 개인적으로 알렉시스의 마음에는 더 합격점에 가까웠다.
“유타가 회사 생활하면서 만난 짝이야. 처음에는 유타의 사수였는데 나중에는 유타가 상관이 되었지. 초반에는 티격태격하며 다투었다는데 그러면서 정이 들었다네. 만나보니 정말 마음에 간사한 점이 없는 분이더라고.”
알렉시스가 사람의 내면을 엑스레이로 보듯 꿰뚫는 재주에 능통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평가는 분명 어느 정도는 정확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세르빈 녀석도 비슷한 식으로 자유연애 중이지. 몇 달전부터 카밀라 비서실장과 비밀 연애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
{그분은 믿을만한 분입니까?}
“카밀라는 내가 아는 본사 직원 중 한 손에 꼽힐만큼 유능한 사람이야. 내가 신뢰하는 심복이기도 하고. 외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상당히 아름답지. 장녀로서 자기 집을 경제적으로 책임져온 가장이기도 하니 책임감도 믿을만 하지. 신앙심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아마 명목상의 교인에 가까울거야.”
여기까지는 그래도 알렉시스의 기준으로 호평에 가까웠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리라. 먼저 곧 결혼할 예정인 엘리어트의 약혼녀. 솔직히 알렉시스는 그 여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불확실하게 여기는 중이었다. 특별히 책잡을 면은 없지만 동물적인 촉이 심상치 않은 직감을 가져다준다고 해야 하려나.
그보다 더 걱정은 지금까지 거쳐왔고 현재 접촉 중이며 앞으로 거듭 접촉할 예정인, 미혼인 동생들의 애인들과 옛 애인들이었다. 동생들이 유능하고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의 경각심과 분별력이 아주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최소한의 성 윤리만 지키고 있는 수준인지도 모르지.
현재까지는 그들의 본질을 분석하기에 여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탐색할 길을 열렸다.
“내가 원래 속된 말을 꺼리는 편이지만, 이번만은 속어를 빌려야 할 것 같네. 슬슬 내 아우들 주변에서 잡초들과 가라지들과 찔레들을 숙청해야 할 때가 온 듯해.”
비블로스는 온화했던 주인의 과격한 면모에 깜짝 놀랐다.
“특히나 만일 그들 중에 ‘그 녀석들’의 끄나풀들이라도 있다면.”
황태자는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으며 근무를 위해 몸을 움직일 준비를 했다.
“더욱 확실하게 수색해서 수뇌부를 뿌리뽑아야겠지”
코트를 걸친 그의 얼굴은 강한 집념과 결의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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