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34회 [2부] 55화. 문명 건설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04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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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조 말리크 만델라, 아프리카의 위대한 성자. 이 별명은 그의 인품과 능력을 다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단어였다. 만일 그가 브리튼 제국이 존재하지 않던 세상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는 불우한 대륙을 독립시키는 것을 넘어서 그 전체를 위대한 합중국으로서 재탄생시켰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법이다. 엄연히 브리튼 제국이 존재하는 이 역사 속에서 만델라의 역할과 의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왜냐하면, 굳이 난세를 개혁할 성자가 없어도 이미 흠결 없는 명군(名君)들이 존재하는 세상이니까.
오늘 만델라는 황태자와 같이 신도시들과 마을들을 순회하고 있었다. 둘을 태운 최신식 트랜스포터는 비행접시마냥 소음도, 관성도 없는 듯 부드러이 순회하였다. 수송 장치는 자기장의 힘에 지탱된 채 장거리를 미끄러지듯 거닐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만델라와 동행하는 육체는 황태자의 아바타로 정신과 의식은 황태자 본체나 몸은 단말기였다. 그러나 드워프 시리즈 계열 인공지능과 앨리스의 비술이 결합된 이 몸은 너무도 완벽하게 본체의 뜻과 의식에 조율되었고, 그로 인해 만델라는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비상한 지혜를 갖춘 마스터조차도 이럴진대 보통 사람들이야 어떠하겠는가.
“총독님과 같이 단 둘이서 시간 보내는 건 오랜만이네요.”
“뭐, 코헨과는 달리 저는 그리 태자 전하와 각별한 인연은 아니니까요.”
“아쉽네요. 그러면 뭐, 지금부터라도 각별해지면 되겠죠.”
오늘 따라 친한 척이 심하군. 넉살도 좋기도 하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만델라는 겉으로는 태연하게 신사답고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였다.
“감상은 어떠신지요?”
알렉시스는 경쾌한 어투로 상대의 의견을 요청하였다.
“확실히 경탄을 금하기 어렵군요.”
쿠조는 숨김 없이, 그러나 절제된 음조로 호평을 쏟아내었다.
“3대 플랫폼, 블랙스미스와 트랜스포터와 컬티베이터, 하나하나로도 문명의 상식을 벗어난 특이점들이지만 셋이 결합했을 때의 시너지는 제 머리로도 가늠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특히나 블랙스미스는 자율형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스템, 커버넌트 그룹의 최대 숙원 사업 중 하나였죠. 출시야 기업의 힘을 빌렸지만 지금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는 마지막 피스를 더한 덕에 사실상 독립형 시스템으로 방출되었죠.”
“자랑스러우신 모양이군요.”
“웬만해서는 저도 교만하게 자기 성과를 자랑하기를 경계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속이 근질근질하긴 하네요.”
“전하께서는 언제부터 이 프로젝트들을 준비하신겁니까?”
“3대 플랫폼의 핵심 시스템의 최종 조율 작업을 시작한 건 4년 전부터입니다.”
“이슬람 제거를 시작하기 한참 이전이군요.”
“사실 이터널 클렌징도 오래 전부터 예비하긴 했습니다. 솔직히 가디언엔젤과 같은 기형적 테크놀로지를 몇 달 사이에 완성할 리는 없잖습니까. 이미 한참 전부터 아미타브 교수님과 지식 교류를 해왔었죠.”
“그러고보니 3대 플랫폼도 기반 기술은 가디언엔젤의 원천 기술 이론과 공통 분모가 많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그것도 그때부터?”
“그런 셈이죠. 사실 이미 엘프 시리즈들을 바탕으로 이미 플랫폼들을 준비하기는 했었는데, 아미타브 교수님의 논문을 발견한 직후에 힌트를 얻었죠. 저는 그분의 이론을 현실화 단계로 끌어올려주는 대신, 그분의 이론을 살짝 뒤튼 응용 이론들을 제 것으로 취해 플랫폼들을 완성하는 일을 허락받았죠.”
“건전한 교류 방식이로군요. 헌데 정치며, 경영에, 눈코 뜰새없이 분주하시던 것 아니었습니까? 연구와 공부할 시간은 언제 따로 내시는지 경이롭군요.”
“사실 큰 축이 되는 핵심 아이디어를 내는 게 제 역할이고 세부적인 부분은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죠. 그런 일을 하려고 고용한 사람들이니까요.”
알렉시스는 싱글벙글 호쾌하게 웃으며 여유로움을 마음껏 표출했다.
사실 4년 전부터라고는 했으나 그의 이 계획의 뿌리는 매우 오래 전으로 올라간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직 권한도 작고 정치 견습생이었던 알렉시스였던지라 주된 토대를 닦아준 주체는 아버지인 알폰스 황제였다.
알폰스는 큰아들에 조언한 비전을 바탕으로 세계라는 밭을 경작하여 터를 갈고닦았다. 먼저는 저개발 상태의 대륙들과 지역들을 위주로 자력 갱생과 자력 발전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교통 체계와 에너지 공급망, 그리고 사이버 네트워크를 비롯하여 주요 인프라들이 지난 이십여 년간 착실히 건설되었다. 만델라의 본토인 아프리카는 그런 브리튼의 개발 계획들의 수혜를 크게 받은 가장 대표적인 대륙 중 하나였다.
한편 브리튼 주도 하에서의 발전은 다른 일반적인 거대 연방 국가, 이를테면 커뮤니스트 연방에서 행해졌던 지역균형 발전 계획과는 패러다임이 완전하게 달랐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인 무조건적인 개간이 아닌, 사회의 가장 기초가 되는 프레임과 원동력을 교정하는 방식에서부터 개시된다는 점에서. 그러다보니 시간은 오래 걸려도 장기적으로는 가장 건강하고 영구적인 결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간 제국과 제국 내 기업들이 주도하여 일궈낸 육대륙의 균형적 발전과 회복은 단순히 일반적인 차원의 부국강병만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 프로젝트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포석으로 현재 진행되는 ‘신 문명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준비로서의 요소가 담겨 있었다. 애초에 알폰스의 국가 사업을 배후에서 주도한 진짜 주체는 그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20여 년간 잘 가꾸어진 토양 위에 지난 4년 간의 열정적인 준비로 예비된 씨앗들이 고르게 뿌려졌고, 올해에 이르러 가시적인 열매가 공개적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그 중에서도 이곳 아프리카 대륙에 가장 인상적인 궤적을 남긴 업적은 단연 트랜스포터-플랫폼의 이식이었다. 철도 완성 계획에서부터 시작된 주춧돌이 여기에 이르러서 마지막 벽돌 한 장을 놓고 성벽 재건을 완성한 셈이었다.
“신식 운송 시스템은 뛰어나긴 하지만 별도의 세계는 아니예요. 기존 운송 시스템을 뼈대로 사용하죠. 철도를, 고속도로를, 자기장 철로를, 항공로를, 활주로와 일반도로를, 케이블을, 그 어디든 자유로이 누비되 교통 불확실성은 전혀 증가시키지 않죠.”
알렉시스는 도시들과 작은 신도시들 사이를 바쁘게 왕래하는, 마치 핏 속의 영양소 운반자인 적혈구들을 연상시키는 운반 장치들을 감상하였다. 오랜 개량을 통해 마침내 현실성과 안전성이 입증된 천여 종의 모델들, 이것들은 철저히 커버넌트 그룹의 비술들로만 제작이 가능한 첨단 기기들로 오로지 트랜스포터-플랫폼과 연계될 때에만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사람의 운반부터 각종 크고 작은 규모의 물자 운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비용 효율이 극대화된 머신들이었다. 최첨단 기술력에 힘입어 적은 에너지로도 아무런 공기 저항이나 교통 저항 없이 유유이 이동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출력에 방점을 맞추면 대륙 간 철도 시스템과 그에 딸린 자기장 선로들의 힘을 빌려 거의 비행기에 가까운 효율로 이동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것이 현재의 트랜스포터-플랫폼과 그 부속 유닛들의 성과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생산성에 있었다. 트랜스포터-플랫폼은 블랙스미스-플랫폼과의 연계를 통해 운송 유닛들의 숫자를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기에 공급 면에서도 큰 잠재력을 갖는다. 일반 기업들은 아직 이 유닛들을 최적 효율로 제작하기 어려우며 커버넌트 그룹도 비용 문제 때문에 대량 생산은 버거워하지만, 생산 비용이라는 개념을 벗어나버린 블랙스미스-플랫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감개무량하군요.”
쿠조는 순수한 마음으로 제국의 성과들을 인정하였다.
“전 대륙이 자기장 철로 건설로 하루 이동 권역이 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저런 단계까지 진보하다니.”
“이건 시작이예요. 이제 공중 활로가 없이도 사람들이 구대륙 맨 끝에서 신대륙 맨 끝까지 수 시간만에 오가는 때가 옵니다.”
늘 그랬듯 만델라의 입장을 곤란케 하는 것은 이런 선의와 희망들이었다. 이렇듯 명백히 보이는 눈 앞의 현실들. 이런 축복들은 그의 사상에서 독기를 빼버리곤 했다. 쿠조의 본질은 독립운동가. 그러나 독립운동가의 명분은 다스리는 제국의 불합리와 수탈 속에서 빛나는 법이다. 브리튼 제국은 그런 면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철저히 위축시키는 권능이었다. 특별히 지금 옆에 있는 저 남자의 경우에는 그 모든 독기를 무장해제시키는 존재였다.
“서남부 컨티넌트의 시민들이 열심히 성실하게 문명을 일궈낸 덕분이죠.”
복잡다단한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알렉시스는 모든 공로를 쿠조의 동포들에게 돌렸다.
“브리튼과 브리튼 기업들쪽에서 미리 플랫폼들을 건설해두긴 했지만, 민간 문명이 건실하게 세워지지 못했더라면 지금처럼 빠르게 연계 연결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서남부의 시민들은 누구 못지 않게 지혜롭고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평가는 브리튼 이전 시대에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열강들에게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자원을 수탈하기만 했고 자립력과 복원력을 키워주기는커녕 그 밑바닥까지 갉아먹기만 해었다. 그것도 모자라 끊임없는 가스라이팅으로 대륙의 모든 주민들의 자존감을 심연으로 떨어트려왔다.
‘너희가 가난하고 미개한 것은 너희의 민족성이 저열하고 글러먹은 탓이다.’
이런 식의 경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어찌나 조소를 많이 들어온 나머지 세대가 두세 차례나 교체되고 난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아프리카의 시민들에게는 유전자 단위로 새겨진 열등감 비슷한 감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런 그들에게 알렉시스의 상냥함이란 감당하기 힘든 부담스러움이었다.
“아직은 기술력이나 국력 면에서 부족해도, 곧 북부 신대륙을 따라잡게 될 겁니다. 저는 냉철한 사람이라 헛된 희망 같은 건 심어주지 않아요. 그리고 저부터가 정말로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낼 각오가 되어 있고요.”
“당신은 뭐랄까요.”
쿠조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거북할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군요.”
그 역설적인 말에 멈칫한 알렉시스. 그 의미를 언뜻 이해하는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묘한 기분이 든 나머지 잠시 그는 사색에 잠겼다. 그는 조심스럽게 상대에게 되물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비겁하고 각박한 세상과는 너무 다릅니다. 그렇기에 나는 당신을 존경하면서도 더욱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만델라는 자신의 조국 위에 건설되어 가는 희망의 씨앗들을 바라보며 한탄스러움과 감사함이 뒤섞인 기묘한 양가감정을 토로하였다.
“위대한 성군의 완전한 통치란 군중에게 있어서는 가장 끊기 어려운, 지독한 마약이 되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공의롭고 유능한 초강대국은 자립해야 할 자유로운 민족들에게는 정신적인 종속력이 되죠.”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당신은 그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하죠. 정의로운 제국, 그리고 성군, 내 모든 정당성을 해제시키는 사람, 내게는 그 어떤 정적(政敵)보다도 어려운 숙제로군요. 차라리 당신이 불의하거나 무능한 왕이었더라면 접근법이 간단했을텐데.”
지극히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고백이었다. 그에게서 분명 진심이 전달된 것인지 알렉시스도 자신도 모르게 숙연한 감정에 잠겼다. 칭찬인지 비판인지 모를 어려운 말이었지만, 분명 오래 전부터 자신도 이에 공감하고 있었다.
“참 어려운 문제네요, 좋은 왕이 된다는 건.”
“만약 모두가 당신처럼 치열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았더라면.”
쿠조는 실소과 함께 자조하였다.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겠죠.”
“응원으로 받아들일게요.”
“얼마든지.”
“고마워요.”
만델라의 마음은 문득 복잡한 사념들로 뒤엉켰다. 사실 그는 자신 앞에 닥친 시대와 배경이 어떻건 목표를 뒤흔들 생각이 없었다. 그의 오랜 신념은 포기되어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아프리카는 건전한 방법으로 자주권을 획득할 것입니다.”
“네, 응원할게요.”
식민지들을 다스리는 제국의 통치자인 주제에 알렉시스는 아무런 불쾌함도 없이 유쾌하게 되받아쳤다. 나름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무릅쓰고 의지를 드러냈건만, 만델라로서는 너무나도 김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불경스럽게 생각되는 선언이 아닙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하죠? 저는 이곳뿐 아니라 모든 민족들과 열방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선한 방향으로 개척해가는 날을 소망합니다. 브리튼이란 단지 그 중간의 과정을 맡은 청지기일뿐이죠.”
알렉시스 역시 상대의 정직함에 대한 보답으로 솔직하게 비전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는 정직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겠죠.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래야만 당신들의 노력과 땀이 고귀한 빛을 발하겠죠. 그렇게 되도록 끝까지 곁에서 도와드릴게요. 당신들을 포함해 모든 나라들이 우리와 동일한 수준의 축복에 이르도록.”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아니면 립서비스일까. 인간이란 이기적인 존재이거늘. 사람답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배포가 넓은 나머지 진의를 의심하게끔 하는 당당함이었다.
‘저건 확실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이군.’
양가감정이 들었다. 정정당당하게 독립을 성취하고픈 열의, 그리고 그에 반해 제국의 지도자를 향해 내면에서 솟구치는 자발적인 존경심, 문득 가정법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자신이 저 나라에서 태어나 당당히 저 나라를 조국으로 연모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쿠조의 마음은 분명 아프리카의 것이지만, 한번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은 나쁘지 않겠지.
부러움과 더불어 경외감 비슷한 감사함이 들었다. 하필 지배국의 지도자를 향해 자발적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기분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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