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35회 [2부] 56화. 문명 건설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04 | 회차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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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터-플랫폼이 이전 세대의 기술들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뛰어난 운송 유닛들과 에너지 효율성 및 물리적 적합성도 있으나, 통합형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진두지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교통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제아무리 인프라를 많이 확보한다고 해도, 시공간과 노동력이라는 자원은 무한하지 않죠. 모두를 모든 곳으로 언제든 이송시킬 수는 없어요. 문명이 수백 년 이상 거듭 발전하지 않는 한.”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다.
최첨단 비행 수단이 발달하더라도 그 수량을 무한대로 부풀려 모든 이에게 자가용마냥 공급할 수는 없다.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주차할 공간과 비행 경로를 일일이 확보기에는 지구라는 공간이 제한적이다. 또한 모든 사람의 수요를 만족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시간표를 일일이 만들어두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시간이라는 자원과 비용이라는 자본, 그리고 여러 차례의 환승이라는 불편감과 피로 및 경로를 계산하는 지적 노동이 소모된다. 누구나 텔레포트를 하듯 모든 장소를 순식간에 마음껏 누비는 기적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통 시스템이 개량되려면 좋은 운송기구들을 발명하는 것 못지 않게 효율적인 통제와 지휘가 갖춰지는 것이 중요하다. 트랜스포터-플랫폼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면에서 압도적 효용성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비용은 일절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마음껏 오남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 자체가 일종의 주권을 갖고 있기에 공기나 물 혹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마냥 누구에게나 한껏 열려있지는 않다. 소비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없는 셈이다.
트랜스포터-플랫폼은 이용자들을 가려가면서 선택적으로 혜택을 제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스템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모든 사람과 모든 물자를 마음대로 언제든 어느 장소로든 단번에 이동시키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플랫폼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함으로써 꼭 필요한 영역부터, 꼭 도움이 필요한 자들부터, 그리고 정말로 모든 이들에게 궁극적으로 유익이 되는 일들부터 우선적으로 지원한다.
이 판단 과정에는 도덕적인 가치 판단 비스무리한 것이 요구되는 데 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알렉시스는 가디언엔젤의 기반 이론을 응용한 파생 이론을 동원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획득한 판단 능력을 구체적인 실행 연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엘프 시리즈의 하나인 T-시리즈의 기초 기능이 뼈대로 사용되었다.
덕분에 이제 정말로 건강한 방식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도전을 통해 새 길을 개척하는 자들에게, 가능성을 선보이는 자들에게 혜택이 집중되게 되었다. 그들은 오지에서도 마음껏 필요 물자를 공급받게 되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일들에 한하여 매우 편리하게 지역에서 지역을 오갈 기회를 얻었다. 도전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남에 있어 감수해야 했던 리스크들과 불편들을 상당량 덜게 되었다.
“하지만 교통 시스템 스스로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 사회의 세부 요소들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한다니, 이건 위험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이군요.”
만델라의 의문에 알렉시스는 이렇게 답했다.
“중앙 프로그램이 독재적으로 모든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세부 흐름을 멋대로 조정하거나 설정한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저 시스템은 통제형이 아니라 유기체입니다. 중앙 연산기가 아닌, 플랫폼 전체가 하나의 시장 경제 혹은 생태계와 같죠. 도덕 기반의 섭리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특이하지만.”
마치 이심전심이라도 일으키듯, 이 교통 시스템은 사회 내부의 모든 진실된 가치의 수요들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필요한 낭비와 오남용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효용성이 급감한다. 그렇기에 참으로 유익한 결과를 낳을 움직임들에 한해서는 시스템이 직접 놀라운 지혜와 통찰을 발휘하여 미리 계산하고 측량하여 최적의 시간표와 경로를 창조해준다. 그때에 수혜자들은 너무도 맞춤형으로 잘 짜여진 최고의 섭리를 공급받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확실한 열매가 뒤따랐다. 많은 미개발 지역들로 개발과 건설과 산업의 주축들이 이동하는 중이었다. 외면되었던 땅들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낙후된 프로빈스, 개발도상국 상태의 스테이트, 상대적으로 후진 상태에 있었던 컨티넌트들은 추진력과 활동력을 얻었다.
“하지만 정말 반칙에 가까운 쪽은 블랙스미스 쪽이군요.”
쿠조는 운송용 드론들이 운반해오는 물자들과 물건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램프의 지니의 생성력을 힘입기라도 한 듯, 신개발 구역들로 각종 물품들과 재료들이 공급되고 있었다.
아울러 신도시 건설을 주도하는 시민들을 돕기 위해 많은 일꾼형 로봇과 드론들이 능수능란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사실상 이동형 3D 프린터나 다름없는 성능이었다. 맨 땅에 땅을 파고 지대를 개간하고 건물을 생성하고 시설을 조립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더욱이 블랙스미스-플랫폼이 제어하는 세계 각지의 각종 시설들과 외부 플랜트들로부터 자원, 공산품, 에너지, 심지어는 고부가가치 기술 산물까지도 공급된다. 플랫폼 소속의 첨단 로봇들이 즉석에서 여럿이서 합체하여 복합 유닛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는 시설이나 공장도 재생산해낸다.
과연 이런 일들이 가능할진대 인간 노동력이 필요키나 하겠는가.
“저걸 준비하는 데 가장 많은 수고가 걸렸죠. 무려 커버넌트 그룹 전체를 동원하여 가장 오랜 시간 마련해온 플랫폼이었거든요.”
“이사진이 그런 불확실한 공상 과학 같은 일을 잘도 지원해주었군요.”
“설득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죠.”
“설마 자원 채취 시설도 플랫폼 안에 포함된 겁니까?”
“네,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지하 자원을 채취하는 무인 시설들을 제작했습니다. 플랫폼 스스로 시설을 보강할 수 있고, 아예 독자적으로 자원 시설을 추가 건설하는 일도 가능하죠. 초기에는 투자 비용이 꽤 컸지만, 지금은 독립화가 완성되었으니 인간쪽의 추가 투자는 불필요하게 되었죠.”
황태자가 실제 데이터들을 보여주자 만델라는 혀를 내둘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완성한 격이군요.”
“노동력에 한정해서는 그런 셈이죠. 물론 결국 똑같이 한정된 지구 자원을 소모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무의미한 도약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지하나 심해에 이르기까지 무인 유닛들이 다가갈 수 있으니 그만큼 얻어낼 자원의 폭도 늘어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당장의 측면에서는 엄청난 생산력 증대가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지구라는 물리적 자원을 소모하기에 인류의 문명 규모가 아직은 작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수요와 공급의 원리라는 당연한 질서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두려운 혁신입니다.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일수도…….”
“올바른 지적이군요, 만델라.”
알렉시스는 과거 커뮤니스트 연방이 행해온, 그 무시무시한 ‘덤핑’의 악몽을 떠올렸다. 아시아 권역의 어마어마한 인구와 노동력에 힘입어 공산당이 자행해온, 상식을 벗어난 반칙 행위, 덤핑.
본래 어떤 물건이 수요가 감소하면 그 물건의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싼 가격으로 물건을 팔면 공급자 입장에서는 수익이 형편 없으므로 그 물품에 대한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다. 자유 시장에서는 이런 원리가 작동한다.
그런데 커뮤니스트 연방은 사회주의 이념으로 운영되는 집단이었다. 그 나라에서는 당의 권력이 무한대에 가깝기에 나라 재산을 당이 마음대로 한 영역에 쏟아붓는 일이 가능했다. 예컨대 수요가 급감하여 가격이 떨어진 물품에 보조금을 붙여줌으로써 생산자들이 입는 경제적 손해를 나랏돈으로 억지로 메꿔주는 식으로. 이렇게 되면 과잉 생산이 이뤄지고 불필요한 재고가 지나치게 쌓이게 된다.
이런 행태는 경제적 생산성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법이다. 커뮤니스트 연방은 이 비경제적인 어리석음으로 얻은 손해를 다른 나라에 전가시키는 길을 택했다. 즉 자신들이 과잉생산하여 가격이 극도로 떨어진 물품을 외국에 싼 가격으로 팔아넘기는 덤핑 전략을 쓴 것이다. 이 경우 외국은 ‘연방산(産) 싸구려 물건’의 대규모 덤핑 침투로 인해 산업상의 위기에 직면한다. 자국 산업이 경쟁에 밀려 줄줄이 도산하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공산당은 타국의 경제 생명력을 드라큘라처럼 빨어먹는 방식으로 지구 전체의 경제를 위태롭게 하여다. 실제로 브리튼 제국이 이런 일들을 호되게 겪어왔다.
만약 알렉시스나 커버넌트 그룹이 이기적인 마음을 먹었더라면, 블랙스미스-플랫폼이야말로 과거의 연방의 덤핑마저 뛰어넘는, 전대미문의 경제 병기가 될 수 있다. 아마 모든 산업의 경쟁자들을 멸망시키고 모든 것을 독식할 수도 있었겠지. 기계들에게는 경제적 유익이라는 동기 부여 수단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 없이 기계들이 자율적으로 자원을 채취하고 시설을 건설하고 기술을 개량하고 물품을 창조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과의 산업 경쟁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된다.
물론 블랙스미스-플랫폼의 자체적 기술 혁신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으리라고 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인공지능들만으로는 인간의 창조성을 따라가기에 어려움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이다. 이미 생성형 AI들은 극도로 고도화되었고 어느 덧 특이점에 한없이 근접하였다. 이런 일은 알렉시스가 블랙스미스를 완성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근 시일에 벌어졌을 필연적 흐름이었다.
“이미 전쟁 이전에 N-시리즈가 발명되었어요. 그게 나온 시점에서 언젠가는 기계가 스스로 산업을 개량하고 주도하고 책임지게 될 것이 확정된 셈입니다.”
알렉시스와 그의 수하들이 개발한 블랙스미스-플랫폼은 바로 그러한 기계들의 진화가 선한 방향으로만 활용되도록 고정하려는, 일종의 선제공격 차원의 도전이었다. 후세 인간들이 혹 악한 마음으로 그릇된 방향의 자율 생산 시스템을 개발하여 인류의 경제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 이전에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시스템을 미리 만들되 그 속에 보편적인 윤리의 다스림을 받는 경향성을 주입함으로써 미래의 궤적을 고정한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그런대로 어긋남 없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감시하긴 해야겠지만.
“가디언엔젤들의 특성이 그러하듯, 저 시스템도 거듭 인간의 기술력을 학습하여 스스로 진화할 거예요. 우리가 창조적인 혁신을 낳으면 저들은 그것을 모방하여 자기 것으로 흡수한 뒤 우리보다 더 나은 효율로 더 낫게 만들겠죠.”
알렉시스는 두려움 반, 기대 반이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려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구라는 제한된 자원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게 될겁니다.”
“그렇다는 건.”
“네, 이미 그 부분도 설계를 마쳤어요.”
팀 제즈리얼의 우주 탐사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이제 적은 비용으로 고효율의 왕복 우주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직은 경제 효율 면에서 불리하여 많은 수량을 보낼 수는 없지만, 언젠가 이 영역에서도 반전의 임계점은 올 것이다. 화성이나 달, 소행성대로 방출한 운송선들이 지금보다 더 개량된 블랙스미스-플랫폼을 운반한다면? 그리고 그것들이 자체적으로 지구 밖에서 자원을 채취하여 원시적이나마 자가 재생산을 할 수준이 된다면?
“달과 화성으로부터 자원 조달을 받는 시대가 수십 년 내에 도래합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이야기, 그러나 충분히 현실성을 지닌 이야기이다. 그때까지 인류는 지금의 안정적인 모습으로 존속될 것인가. 그럴 수만 있다면 충분히 장밋빛 미래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컬티베이터-플랫폼.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 문화를 풍부하게 보강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생산 이외의 모든 영역의 노동을 두루 도울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인간을 섬기고 그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존재 목표였다. 그러나 현 시대에 범람한 여러 인공지능 조수들과 차별화되는 특성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인공지능들의 효율을 제한하거나 연장시키는 능력이었다.
“인간은 잘못된 목적으로 인공지능을 남용하기 쉽죠. 또 인공지능의 힘에 길들여져 인간다움을 잃기도 쉽고요. 내버려두면 게으르고 악한 본성상 엔트로피의 법칙대로 무질서한 방향으로 굴러내려가게 됩니다.”
그래서 인공지능들은 ‘금제(禁制)’의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 딥페이크 범죄, 각종 악성 범죄에의 남용, 저작권의 해체, 인간 교육에 대한 주권 침해, 이런 불상사들을 제어하기 위해 인공지능은 법률과 고삐로서 어떤 능력은 발휘하지 못하도록,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선을 그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을 과연 ‘기계 법률’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모든 조항을 일일이 매겨 모든 행위에 대한 잘잘못을 판가름해야 할까? 그런 방식은 너무도 불확실하고 어렵고 불완전하다. 율법주의로는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듯, 기계에 대해서도 율법 이외의 다른 규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마인드 퓨리파이어, 그리고 가디언엔젤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노하우를 얻었어요. 인간의 도덕이 기계들의 세계에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알고리즘, 그 방식을 힘이 닿는 한 최대한으로 응용해볼 생각이예요.”
컬티베이터-플랫폼은 신도시들과 그 거주민들의 삶에 윤택함을 더해주는 소프트웨어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플랫폼에 속하지 않은 타 인공지능들의 행동, 사상, 논리, 방향성을 제약한다. 강제적인 규율이 아닌, 유연한 도덕적 지혜를 바탕으로. 비윤리적인 용도의 사용들을 제한하고 불필요한 오남용을 억제하되, 억압이 아닌 매우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예컨대 인간을 향한 정화 도구가 마인드 퓨리파이어라면, 기계들을 향한 정화 도구가 컬티베이터-플랫폼인 셈이다.
이 플랫폼은 미디어 및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회의 건강에 유해성을 입히는 악한 것을 선택적으로 억제하고 약화시킨다. 전자기기의 과도한 남용을 제한한다. 인공지능 비서들로 하여금 모든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주어 인간이 타성에 젖도록 하는 일을 허락지 않는다. 인간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기회를 주도록, 인간이 학습과 깨달음을 멈추지 않도록, 인공지능의 무제한적 활동에 제한을 둔다.
“일종의 안전 장치랄까요.”
현대 기술이 바벨 시티를 부활시키는 일을 방지하고자, 알렉시스는 세 개의 안전핀을 걸어두었다. 물질적으로는 무한의 경제력이 악의 도구가 되지 못하도록 선수를 쳐으며, 정신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제방을건설해두어다. 그리고 신개념의 교통 시스템을 선점함으로써 공간적인 밀집을 안정적으로 흩음으로써, 그는 장차 등장할 미래형 도시의 독재를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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