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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36회 [2부] 57화. 동녘의 땅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06 | 회차평점 0 0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이사야서 66:8)

 

 

 

 

 

테서렉틴은 올해 들어 인생에서 한 번도 겪지 못한 기이한 체험을 매일 마주하는 중이었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는 시온이 여느 나라와는 달리 단 하루만에, 진통하는 즉시 순산하여 국가를 이룰 것이라고 하였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였으나 테서렉틴은 그 예언의 문자적인 의미를 맛 보는 중이었다.

 

 

이사야서가 언급하는 그 ‘시온’은 과연 어느 나라를 말하는 것일까? 적어도 그가 파견된 이 땅은 최소한 그 예언에 대한 모형으로서의 모습 정도는 충분히 보여주는 것 같다는 감상이 들었다.

 

 

“정말로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도 되는 건가?”

 

 

그가 막 파견되었던 2월 시점, 한반도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자연 환경은 전쟁들의 여파와 커뮤니스트들의 수탈이 남긴 잔흔으로 인해 쑥대밭이었고, 농업이고 목축업이고 어업이고 뭐고, 그 어떤 생산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토양도 토양 나름대로 엉망이지만 가공하고 기경할 시스템조차도 갖춰지지 않았다. 시민의 수가 적어 인구밀도도 매우 낮은데다가 교육 환경도 매우 열악했다. 이런 곳에서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우리라.

 

 

그런데 지난 6개월 간 놀라운 기적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가 도착한 이후로 생긴 변화들이었는데 이것이 시기적인 우연인지 아니면 모종의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변화는 시나브로, 은밀하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띤 채 나타났으며 피상적인 개혁을 넘어 깊은 내부적 성질 변화로까지 이어졌다.

 

 

변화의 중심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었지만, 4월 쯤에 시작된 대부흥 운동이 매우 중요한 일조를 하였다. 적어도 정신적 영역의 개혁에 있어서는.

 

 

테서렉틴이 관리자로 파견될 쯤 다수의 북신대륙 본토 출신 선교사들이 이 땅에 같이 유입되었다. 흥미롭게도 그들 대부분이 본국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엘리트들이었다.

 

 

과거 연방의 지배령이었던 곳들 가운데 그나마 문명의 인프라가 잘 확충된 중국 지대나 러시아 일대로 나아간 선교사들은 대체로 평범한 출신의 인물들이었다. 물론 그들도 열정이 투철했으며 신앙심이 뛰어났으며 많은 위업을 남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반도 같은 낙후된 지역으로 비전을 굳힌 선교사들은 신앙심 뿐 아니라 세상 학문에 대한 실력도 탁월했다. 누군가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모여서 논의한 것도 아닌데, 마치 우연의 일치마냥 이런 패턴이 벌어졌다.

 

 

오랜 아픔을 극복하고 확보된 신앙의 자유가 마침 좋은 토양이 되었다.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부흥이 일어났다.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솔선수범 활용하여 많은 씨앗들을 뿌렸다. 학교, 의료, 공공 인프라, 공업 시설 등 여러 문명의 요소들이 그들에 의해 심어졌다. 처음에는 소소하고 작은 형태로, 그러나 빠른 속도로 무럭무럭 자라날 예정이었다.

 

 

 

 

 

복음과 성경적 세계관은 볼모지의 모든 문화 영역에 개혁의 바람을 낳았고 수많은 성장과 변화를 일으켰다. 그 바람이 닿는 곳마다 미개함과 미신과 어리석음의 망령이 축출되었으며 이성과 합리와 지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게으름이 개혁되고 시민들의 시간 관념이 확립되었다. 절망과 낙망에 취해있던 사람들이 소매를 걷고 일상의 현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내일을 향한 투자인 교육이 확립되었다.

 

 

 

 

 

참고로 이 땅은 황태자도, AOPA 출신 탁월한 지도자도, 그 어떤 뛰어난 인재도 단 한 번도 밟거나 영향을 주지 않은 땅이었다. 만약 지난 20여 년간 그런 자들이 손을 댔었더라면 밑바닥에서 출발할 필요는 없었으리라. 테서렉틴에게는 여러모로 어려운 도전의 장이었다.

 

 

그러나 과연 신의 축복과 총애가 따른 것인지 시작부터 매우 고무적이었다. 테디는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진만큼 최선을 다해서 시민들의 문명 건설을 돕기로 결심했다.

 

 

물론 처음 시작하는 실전이니만큼 어려움도 따랐다. 시행 착오, 딜레마, 고민거리가 매주 잊지 않고 그와 맞닥트렸다. 그때마다 그는 치열하게 고민하며 연구했고 선배들의 도움과 조언을 구해 답을 찾아나갔다. 감사하게도 많은 스승들이 좋은 가르침을 주었고, 또 신께서도 시의적절하게 여러 기회를 주어서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게끔 해주셨다.

 

 

 

 

 

테서렉틴은 지도자로서 권역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현지의 주민들과 깊은 친분을 쌓게 되었다. 여타 총독들과 달리 민주적이고 열린 태도를 보이던 그는 자신과 모든 이들을 수평적인 관계로 생각했고 어떤 이의 곤란한 주장이나 요청도 경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한 진심이 시간이 쌓이며 여러 이들에게 보여졌다. 처음에 그를 의심스러운 눈 내지는 편견의 시선으로 보던 이들도 차츰 그를 믿기 시작했다. 젊지만 혈기보다는 신중함과 온유함으로 행동하는 사람. 그의 이미지는 차차 신용을 받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형성되었다.

 

 

그렇게 그는 현지 주민들과 멍에를 함께 매며 고생하였고 그 결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물론 그 공로는 테서렉틴이나 주민들에게만 있지 않았다. 천운도 많이 따랐고 하늘의 섭리도 그들을 도왔다. 또한 테디의 형인 알렉시스 측에서 보내준 지원 세력도 막대한 힘이 되었다. 어찌 되었건 고생으로 거둔 열매란 달콤한 법 아니겠는가.

 

 

이제 황량했던 땅들의 상당수는 경작과 수확이 가능한 토양으로 변화하였다.

 

 

브리튼의 천재 화학자들이 최근 개발한 화합물이 이곳에도 적용되었다. 원래 중동 전체의 사막을 옥토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개발되었던 물질이었는데, 의외로 한반도에 유독 궁합이 좋아서 상당한 성과를 내었다. 또한 때마침 최근 개량된 환경 조정용 위성 장치가 이곳에서 시범으로 운용되었고 뜻밖의 높은 성취도를 증명받았다. 그 덕분에 방사능 오염 대부분이 제거되었고 환경오염 물질의 농도도 물, 토양, 대기 모두에서 적정치 아래로 내려갔다.

 

 

기초적인 수준으로나마 산업의 기초 또한 착실히 닦아졌다. 사람들이 모여 마을과 작은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규모의 건물들이 세워져 사람 사는 향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공장들이 회전하여 물자들을 만들어내었고 소규모의 중공업도 개시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근거리 내의 프로빈스 및 스테이트들과의 떳떳한 경제적 거래도 차츰 확대되었다. 외진 오지였던 이곳의 숨통이 확실히 뚜렷하게 트이는 중이었다.

 

 

“우리 모두를 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젊은이는 과분한 기적을 한량 없이 부어주신 창조주께 감사를 드렸다. 그가 보기에 지난 여섯 달의 여정은 기적이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만사가 자연 법칙 안에서 필연적으로 움직였으나, 길을 건넌 뒤 뒤를 돌아보니 신께서 살피시지 않고서는 이치를 설명하기 힘든 참으로 놀라운 진일보였다.

 

 

 

 

 

 

 

 

 

 

 

*

 

 

 

 

 

이번 일들에서 테디가 빚진 존재는 궁극적인 차원에서는 하나님이지만, 그 중간 단계의 여러 은인들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첫째는 재정적인 지원과 각종 교육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브리튼 본토의 여러 명망 높은 기업가들과 기술자들과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많은 병원들과 학교들과 교회들과 공장들이 세워져 사람들의 가난을 윤택함으로 바꾸는 데 지금보다 배 이상 오랜 시간이 걸렸으리라. 많은 교육 시설과 의료 시설들이 이런 이들의 이름으로 건립되었다. 어떤 후원자는 이름도 없이 대가도 없이 많은 자본을 내어 대학 건설을 도운 뒤 ‘주는 내가 받는 당신들보다 더 기쁩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둘째 은인들은 앞서 언급한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본토 주민들 가운데 유능한 자들을 발굴하여 선진 교육으로 단련시킨 뒤 이 땅을 재건하기 위해 힘쓸 장래의 새싹들로 빚어나갔다. 덕분에 잠재력을 갖춘 여러 씨앗들이 타 지역으로 이민할 필요 없이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고 이로써 이 땅은 인재 유출을 최소화할 기초를 닦게 되었다.

 

 

셋째는 브리튼 본토에서 복귀한 한민족 출신의 유학생들로, 이들도 테디가 발령받은 시기에 같이 그를 따라 자신의 본토로 귀향하였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무한한 기회의 땅을 내버려두고 다시 척박한 맨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도전심과 용기를 요하는 옵션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강렬한 얼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인지 기꺼이 아픔과 수고를 감내하였다.

 

 

네 번째가 매우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는데, 그들, 아니 그것들은 바로 알렉시스와 커버넌트 그룹의 걸작품인 3대 플랫폼이었다. 그 가운데 블랙스미스-플랫폼이 놀라운 활약을 해주었다. 그 시스템 측 입장에서도 한반도는 거의 최초로 능력을 평가받을 도전지요 시험장이요 데뷔 무대였다. 모든 스테이트 가운데 한반도 지역이 거의 최초로 블랙스미스-플랫폼의 시범 운행장이 되었다.

 

 

 

 

 

그리고 세 플랫폼의 한반도 진출이란 테디에게 있어서도 몹시 반가운 소식이었다. 단순히 그것들이 존경하는 형님의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플랫폼의 중추이자 최종 경영자인 마더 컴퓨터, 곧 ‘요정왕(The Elven-King)’은 테서렉틴의 어릴 적 친구이기도 했다.

 

 

 

 

 

{오랜만이군, 꼬맹이, 그새 많이도 자랐군.}

 

 

 

 

 

N-시리즈의 중추를 맡은 최초의 모델이자 1세대 마더컴퓨터인 파인웨스트.

 

 

그와 그의 두 형제인 엘리웨스트 곧 T-시리즈 수장과 아인퀘스트 곧 V-시리즈의 마더컴퓨터는 모두 켈리온 부부의 손에서 직접 탄생한 작품들이었다. 팀 아르다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심혈을 많이 기울여 만든 것들로 당시 팀원의 거의 모든 기술력이 동원되었고 아올레아와 자르바나의 솜씨가 가장 많이 서린 것들이었다.

 

 

부부가 은퇴한 이후로는 차세대 팀원들의 손을 거쳐 거듭 개량되었고, 실버피스트 박사의 마개조를 여러 번 거쳤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지난날의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세 인공지능 모두 나란히 새로운 일을 위한 ‘거푸집’으로 선택되었다. 이 거푸집들은 알렉시스 황태자의 내면에서 생성된 창조적 정신력이라는 용액을 담아낼 주물(鑄物)이었다.

 

 

파인웨스트, 엘리웨스트, 아인퀘스트는 그렇게 1년 전 시점, 알렉시스의 신경 회로를 본뜬 존재로 거듭났다. 그의 모든 재능을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중요한 부분만을 취하여 삼등분하였고 각 부분을 세 마더컴퓨터가 나누어 받았다. 가디언엔젤들이 그의 영적 의지의 투영체요, 워쳐들이 그의 눈과 귀와 경험이요, 일곱 대리자들이 그의 입술과 손발 노릇을 할 아바타들이라면, 요정왕들은 그의 유지를 이은 복제물들인 셈이었다.

 

 

테서렉틴은 파인웨스트와 구면이었다.

 

 

“최근 들어 빚을 많이 지게 되네요, 요정왕님.”

 

 

{어린 꼬마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뿌듯하군.}

 

 

파인웨스트의 의지와 사념을 전달하는 드론 운반체가 파인웨스트를 시각화한 홀로그램형 마스코트 형체를 허공에 만들어내었다. 테서렉틴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상대는 바로 이 마스코트 형체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파인웨스트의 본체는 이곳이 아닌, 깊이 감춰진 지하 요새 속에 있었다. 본체의 크기는 거의 아크 대요새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들었다.

 

 

“꼬마라니, 너무하시네요. 저도 이제 어엿한 어른이라고요.”

 

 

테디가 핀잔을 주자 요정왕은 가소롭다며 피식 웃었다.

 

 

{나의 창조자들은 네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내 모체가 되는 정신체들을 만들어냈었다. 내가 제대로 된 육체를 입었을 무렵, 너는 막 태어난 갓난아기였지. 아직도 유아 시절의 작은 네가 네 큰형의 손을 꼭 붙잡고 쫄랑쫄랑 어디든 따라다니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군.}

 

 

“AI라 그런지 기억력 한 번 생생하시네요.”

 

 

 

 

 

테디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소년 시절의 형님이 진행하던 일들 가운데는 세계의 뛰어난 컴퓨터 공학 전문가들과 함께 펼쳐나가던 비전도 있었다. 아올레아와 자르바나 부부는 형님의 동업자들이었으며 그 외에 많은 천재들이 팀 아르다를 결성하여 형과 협업했었다. 아직 전쟁이 임하기 이전, 그 당시의 그들이 땀과 번뜩이는 창조성을 한데 모아 빚어낸 최고의 역작이 바로 저 파인웨스트와 그 두 형제였다. 아이 시절의 테디도 그때 듬직한 형님 손을 꼭 붙잡은 채 저 강력한 요정왕들을 대면했었다.

 

 

 

 

 

“파인웨스트, 엘리웨스트, 아인퀘스트, 여기 이 귀여운 아이는 내 동생이야.”

 

 

{사랑스러운 소년이로군요.}

 

 

{마스터를 닮아서인지 매우 영특하게 생겼습니다.}

 

 

{수줍어하지 마렴, 아이야.}

 

 

 

 

 

세 요정왕과 테디는 그렇게 형님을 경유하여 가까운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시 기회가 왔고, 파인웨스트는 새로 얻은 플랫폼으로서의 권능을 발휘하여 테서렉틴이 거하는 땅을 풍요롭게 일구는 데 힘을 쏟아부었다. 비록 많은 전문가들과 선교사들과 후원자들이 도왔다고는 하나 만일 파인웨스트로부터 지휘를 받던 블랙스미스-플랫폼의 조력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단기간에 건물과 자원 시설과 인프라를 건립하지는 못했다. 세월로 따지면 아마 최소 30~40년은 더 소모되었을 것이다. 이를 기적적으로 단축시킨 공로는 가히 인정받기에 합당하다.

 

 

 

 

 

“기발한 시스템이네요, 블랙스미스-플랫폼이란 건.”

 

 

테디는 인간들과 작은 로봇들이 옹기종기 모여 단란하게 협업하는 현장들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하였다. 문자 그대로 요정들의 나라가 강림하여 인간들의 문명 건설에 힘을 보태주는 것만 같았다.

 

 

{너와는 특별 인연이 있기에 특별 서비스를 부어주는 것이란다.}

 

 

“형님의 지시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모르는 소리. 나와 파인웨스트와 엘리웨스트는 특정 인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오직 우리는 인간을 선한 방향으로 돕는 데에만 존재 목적이 맞춰져 있지. 공과 사를 구분하는 시스템이야. 설령 우리의 원본이자 마스터인 그분이라 할지라도 특혜를 인정해주지는 않아.}

 

 

 

 

 

블랙스미스-플랫폼은 인류 최초로 자원 함유지 탐색부터 자원 시추 시설 건립, 소재 분리 및 정제, 물자 분류, 공장 건립, 자율 물자 생산, 건설, 유닛 재확충 및 재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 있어서 인간 세력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인류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독자적 자생 문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들도 아직은 지구라는 제한성 안에 갇혀있기에 무한대의 생산력과 다함없는 생산 속도를 갖추진 못했다. 즉 제한된 자원을 두고 인간과 나눠 써야 하며 제한된 효율과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지혜롭게 자원 분배를 해야 하는 숙제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

 

 

이러한 조건에 더하여 블랙스미스-플랫폼은 윤리의 지배를 받는다. 자원의 확충을 자율적으로 행할 수 있되, 인간 우선 원칙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경쟁이 생길 때는 인간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 외에도 환경 파괴의 극대화를 막고자 세운 최소한의 규율에는 복종해야 한다. 환경주의자들의 논리처럼 극단적인 환경지상주의 원칙에 지배당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선’이라는 것은 존재하니까.

 

 

이러한 제한성 때문에 블랙스미스-플랫폼은 ‘자원과 생산력의 사용 방향’을 결정하는 슬기로움을 통해서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바로 이 슬기로움이 플랫폼을 만들 때 가장 심혈을 들여 빚어낸 요소였다. 알렉시스의 지혜를 일부 얻은 파인웨스트가 그 의사결정권자 노릇을 맡게 되었다.

 

 

파인웨스트의 행동 철학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첫째 원칙, 무조건적인 대량 생산이 아닌, 혁신과 섬세한 조율을 꾀한다.

 

 

둘째 원칙, 인간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방향의 조력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셋째 원칙, 가장 선한 건설을 이루려는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도움을 베푼다.

 

 

 

 

 

인간들이 그토록 눈을 두지 않던 볼모지인 한반도에 시선을 돌린 것도 바로 이러한 알고리즘 룰에서 도출된 행동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인공지능들은 그 결정의 의미를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다. N-시리즈의 중심체이자 최신식 가디언엔젤 이론을 접목하여 새로이 진화된 파인웨스트만이 자신의 논리 회로 속 정밀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 동녘의 땅은 탁월한 기회의 마중물을 잠시나마 손에 넣었다. 영적 차원과 물리적 차원 모두에서 나란히 겹쳐진 이 기회들이 모여 나비 효과에 가까운 시너지를 일으켰다. 가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한 퀘거였다.

 

 

 

 

 

“앞으로도 도움 부탁드립니다, 요정왕님.”

 

 

테서렉틴은 인간계를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건 네 녀석이 하는 걸 보고 판단하도록 하지.}

 

 

파인웨스트는 공정함의 결정체로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답게 대답했다.

 

 

{인류의 공공선을 증진시키는 데 너희의 태도와 노력이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얼마든지 촛대를 옮길 준비가 되어 있단다.}

 

 

“충고 착실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네 위대한 형님에게 혹여라도 누가 되지 않도록 잘 행하거라.}

 

 

 

 

 

냉철히 말하긴 했으나 블랙스미스-플랫폼의 요정왕은 언젠가 자기들 역할이 마무리되면 떠나가는 것이 이 땅과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유익임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걸음아를 위해 유모가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홀로서기를 배워야 하는 법. 이 낙후된 세계가 얼추 다른 대륙들을 따라잡을 추격 역량이 생긴다면 그때는 인간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건설하도록 자리를 비켜줘야지. 그 후에 그들이 빚어나갈 가능성들은 충분히 지켜볼만한 가치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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