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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38회 [2부] 59화. 동녘의 땅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11 | 회차평점 0 0

 

 

 

*

 

 

 

 

 

열아홉 살 무렵 그녀 앞에 좋은 기회의 문이 하나 열렸다. 자신이 태어났던 바다 건너의 땅에서 공부할 기회였다. 좋은 성적으로 외국 대학에 합격하였고 장학금과 생활 자금에 대한 지원의 손길이 더불어 제공되었다. 마침 자신이 평소 관심을 두고 비전을 갖던 분야의 선진 학문을 풍부하게 배울 기회였다. 장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그녀는 새로운 길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태어났던 곳과 자신의 혈육이 거하는 곳, 두 세계를 왕래하였다. 선진 문물과 지식을 배우며 경험을 쌓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계획한 일을 실행할 실질적인 실력을 확립해갔다.

 

 

어린 시절 잠시 스쳐가듯 만났던 그 소년과 재회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는데 이 만남은 평생을 잊지 못할 중요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동양인 소녀는 어느덧 현명하고 품위 있는 성인이 되어 있었고 그 서양인 소년 역시 의젓하고 듬직한 청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당시 테디는 대학원생 겸 AOPA 교육생으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다. 평소에 검소한 복장을 즐기는 터라 그녀는 그 남자의 신분이나 배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어린 시절 얼핏 보았을 때 대단히 귀티나는 좋은 옷차림을 보아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었을 뿐이었다. 또 실제로 다시 만난 그는 대단히 아름다운 미남이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건장하게 잘 갖춰진 체격을 숨길 수 없던,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좋은 배경의 가문에서 잘 자라난 유복한 남자일 것이라고만 얼핏 짐작하였다.

 

 

두 사람은 몇 번의 만남을 계기로 데이트를 주고 받는 관계가 되었고 금세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상대임을 깨닫고 가까운 인연이 되었다. 성향부터 세계관과 정치 성향은 물론 장래 비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그들은 천상 최고의 짝이 될 기질이었다. 휴일이 될 때면 그들은 어김없이 서로를 찾았고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세계를 알아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만남이 더 깊게 이어지기에는 현실적 여건 면에서 어려움들이 있음을 기억하였다. 그녀 또한 서서히 그 청년에게 마음은 기울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만일 그와 함께 걷는 미래를 택한다면 자신이 감당할 몫의 소명은 포기해야 한다.

 

 

둘 다 취하려면 그를 자신의 고향이자 선교지인 그 불모지로 데려가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그 일은 불가능해보였다. 아직 당시에는 테디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정체까지 알지 못했지만 동양인 여자는 그가 명망 높은 출신에 좋은 교육을 받아 창창한 앞날이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 내버려두고 가장 가난한 나라로 떠난다고? 자신이야 애초에 잃을 것도 별로 없었고 피와 영의 이끌림이 있었다지만, 저 남자가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왜 그런 길로 가겠는가.

 

 

그래서 연애 직전의 감정에까지 이르고도 그녀는 과감히 상대와 선을 긋는 길을 택했다. 정중하게 그녀는 자신의 사정과 어려움, 그리고 자신이 택한 길의 험난함을 고백하였다. 더불어 자신이 아직 누군가와 사랑을 할 여력이 없음을 자백하였다. 때마침 그녀에게 프로포즈하려던 그는 큰 상실감에 눈초리가 축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감정보다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기다려도 되죠?”

 

 

테디가 질문했을 때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테디. 당신은 이곳에서 더 멋지고 훌륭한 인생을 영위하세요.”

 

 

그는 독수리와 같이 더 넓은 세계를 가로지르며 비상해야 한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고 기꺼이 그를 보내주었다. 아쉬움이나 쓰라림이 없진 않았으나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큰 고통이나 상처 없이 온화하게 헤어졌다. 애초에 이것은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것이 아름다운 인연이다. 적어도 그녀 생각은 그랬다.

 

 

하지만 테디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유……, 정말 그 선택으로 만족하시겠어요? 당신이 기뻐한다면…….”

 

 

언제든 응원해줄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떠나보내기는 싫었다. 그러면서도 과감히 자신의 소유들을 포기할 용기도,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할 용기도 없었던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들었다.

 

 

그렇게 인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처럼 떠나갔다. 유도, 테디도, 둘 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갔다. 유는 충분히 많은 지식과 경험을 얻은 뒤 부모님의 나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자신만 할 수 있는 일들로 노력하며 변화의 씨앗을 착실히 뿌렸다. 그리고 테디도 황자답게 건실히 성장하였고 가족들과 시민들에게 인정받는 최고의 청년으로 완성되어 갔다.

 

 

 

 

 

 

 

 

*

 

 

 

 

 

이후 테디 곁에도 여러 인연이 스쳐지나갔다. 평생 홀몸으로만 지낸 큰형을 제외한 다른 형제들이 그러하였듯, 그도 형식적이나마 연애 경험을 여러 번 겪었다. 하지만 말이 연애이지 그에게는 친구 정도의 사귐에 불과했다. 진정으로 마음을 쏟을 상대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애틋함이 가득했던 첫 사랑의 기억이 아픈 흔적으로 그의 뇌리에 새겨졌던 것이다.

 

 

많은 여인들이 그의 빼어난 외적 조건과 인품에 이끌려 자발적으로 다가왔으나 오래 교제하지 못했고 길어야 1년을 넘기지 못한 채 떠나갔다. 그에게서 넘지 못할 어떤 벽 같은 것을 느낀 애인은 먼저 지쳐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어떤 이도 미련을 두거나 붙잡지 않았다. 애정의 깊이도 손을 살짝 맞잡는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순결에 대한 관념이 잘 교육된 이유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진지하게 미래를 함께 할 이가 보이지 않은 탓이어다.

 

 

자신을 잡지 못한 여인들에게 어느 순간 죄책감을 느낀 그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잠시 뒤로 한 채 자신을 가꾸는 일에 집중키로 하였다. 오로지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하여 국가와 시민을 위해 올바른 구실을 하는 일에 몰두했다. 스승에게서 각종 기술과 지혜를 흡수하였고 인류 역사 속에 나타난 여러 현상들을 깊이 있게 탐구하였다. 정치부터 시작해서 경제학, 사회학, 언어학 등 유익한 영양분이 될 모든 학문을 익혔다. 공부와 일이 늘 우선이다보니 사적인 삶은 자연히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마되어 황실의 유력한 재원으로 갖춰진 그는 정식으로 임무를 받고 이 땅에 파견되었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세상 앞에 실력을 증명할 기회인 동시에 옛 인연의 흔적을 다시 발견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녀, 유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번듯한 거목으로 자라나 자신의 작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테디처럼 거대한 몫을 그릇으로 받지는 못했으나 그녀는 자기 몫에 매우 성실했으며 또한 번뜩이는 창조성으로 충만했다.

 

 

그녀는 그 지역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올바른 방향으로 건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교육은 유의 천직이었다. 그녀의 방식은 어떤 제한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방송을 통해, 라디오를 통해, 종이 자료를 통해, 순회 연설과 컨퍼런스와 행사들을 통해,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의 가르침은 사회 각계각층에 착실히 전달되는 중이었다. 건전한 국가관, 그들이 나아가야 할 비전, 기독교 윤리와 정치 시스템의 유기적 관계, 시민 윤리, 세계 정세에 대한 균형잡힌 이해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동포들의 부족함을 보충해주고 또 보충해주었다.

 

 

테디 또한 망설임 없이 그녀의 울타리 속에 용감히 자신의 발을 내밀었다. 그는 그녀 주도 하에 한반도 중앙에서 개최되었던 바른 나라 컨퍼런스에 참석하였고 아무 대가 없이 찬조 연설에 참여하였다. 그는 즉석에서 메시지를 떠올려내었고 많은 주민들을 고무시켰다. 사람들은 세계와 그 미래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알기 쉽게 전달해준 고귀한 청년의 혜안에 크게 감탄하였다.

 

 

컨퍼런스라고는 해도 아직 제대로 된 문명 기틀이 세워지지 않아 낙후된 나라인지라 변변한 시설도 없었고 많은 면에서 기술적으로는 미흡했다. 하지만 여러 지혜로운 연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고 막대하게 소모될 줄 알았던 비용도 기적적으로 잘 절감되었다. 서투른 솜씨였으나 많은 청년들과 어린 세대가 새로운 배움을 얻어갔으며 컨퍼런스는 크게 흥하였다. 이후 테디는 흔쾌히 자신의 사비로 컨퍼런스 개최에 쓰인 비용을 모두 해결해주었다.

 

 

이렇게 큰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으니 유도 그의 존재를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게 되었다. 그는 조용히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재회의 감동을 억제한 채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보고 싶었어요.”

 

 

처음에 그녀는 정중히 그를 밀어내려 하였다. 여전히 그는 자신과 사는 세상이 다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가뜩이나 커다란 존재였는데 사실은 문자 그대로 왕자님이었다니. 더욱이 이제 그는 자신의 고향을 관리할 브리튼 직할령 통치자로 부임한 사람. 어려워도 이런 어려움이 또 있을까? 헤어진 전 애인이 직장 상사가 된 것보다 더 난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테디는 끈질기게, 그러나 정중하고 신사답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의 곁에는 연인이 없었고 그녀를 잡지 못할 다른 이유도 없었다. 이전에 허무하게 포기했던 그 기억이 그의 후회를 증폭하였고 이제는 그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분명해졌다.

 

 

이후 테디와 유는 공적 영역에서, 일적인 문제로 다양한 방법으로 얽혔다. 그도 그녀의 도움으로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얽힌 상황들을 여러 차례 슬기롭게 타파하게 되었고, 그녀도 그의 도움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하였다. 어디까지나 공적인 관계이긴 해도 이런 식으로나마 마주칠 기회가 허락되어 그는 기뻤다.

 

 

그리고 시나브로 두 사람은 지난 추억과 감정에 젖어들었다. 둘의 감정적 장벽은 허물어졌고 유 역시 그에게 깊은 신뢰의 감정을 내비쳤다. 감정은 몇 달만에 빠르게 발전하였고 서로의 사적인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떠나 있던 동안에도 난 무의식적으로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테디는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드러내었다.

 

 

“아직은 천천히 다가갈게요. 그러니 너무 밀어내지만은 말아줘요.”

 

 

유는 선뜻 대답하지는 못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녀도 떠나 있는 동안 그를 늘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를 만난 이후로는 어떤 남성도 이성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위해 잠시 마음을 접었지만, 이렇게도 질긴 인연이라면 결국 밀어내지 못할 것이 아니었을까?

 

 

“고마워요.”

 

 

그녀는 수줍어하며 그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는 그것이 몹시 기뻤는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작은 손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물론 둘이 진정으로 모두의 축복과 인정을 받기에는 아직 넘을 산이 많았다.

 

 

테디는 황자이고 마스터들에 버금갈 정도로 유능한 청년 정치 인재이기에 앞으로 길이 창창했고 승진하여 큰 영예를 누릴 기회도 많았다. 어쩌면 몇 년 안에 이 비좁고 황폐한 땅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발령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유는 자신의 본토를 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또한 배경의 차이 또한 가볍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비록 브리튼 제국에서도 신분제가 폐지된 지 오래라지만, 황실이라는 배경의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복잡하게 내일을 생각하며 근심하기보다는 우선 오늘의 일들에 충실하게 임하기로 마음 먹었다. 테디가 아직 이곳에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이 지혜와 힘을 합쳐 재건해야 할 무너진 성벽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그해 8월 경, 두 사람의 인연은 극적으로 회복되었다. 비밀리에 두 사람은 정식 교제를 시작하였다. 초강대국의 황자와 약소국의 동양인 여인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으로서, 개인과 개인으로 연을 맺었다. 테디는 희망은 안고 결심하였다. 이번에는 나의 손에 허락된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열매들을 맺으리라.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알렉 형에게도, 꼭 인정 받아야지.’

 

 

자신과 그녀가, 이곳 현지 시민들과 힘을 모아 이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재건하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면 그분들도 그녀와 자신의 연합을 온전히 인정해주겠지. 그는 그렇게 확신하며 힘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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