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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40회 [2부] 61화. 잠든 황태자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16 | 회차평점 0 0

 

 

 

*

 

 

 

 

 

왕의 부재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비블로스였다. 뇌파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알렉시스의 혼과 연동되어 있던 비블로스는 심상치 않은 변화가 발생했음을 발견했다. 상시 황태자의 정신에서 발원하여 사이버 세계로 흘러가던 정신 지배력의 샘물이 원인 모르게 중단된 것이 아닌가.

 

 

비블로스가 아홉 유닛으로 해체된 상태에서도, 알렉시스가 링크를 완화하고 쉬는 도중에도, 심지어 그가 휴식을 취하거나 잠든 상태에서도 연결이 100% 끊어진 적은 없었다. 워쳐들과 일곱 아바타들이 활동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알렉시스의 혼에서 발원하던 정신 파동이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중단하였다.

 

 

{신체 상태에는 이상이 없으시다.}

 

 

재빠르게 웨어러블 디바이스들과 의료용 로봇들의 도움을 통해 주인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본 비블로스. 건강에는 문제가 없었다. 심장, 혈액 상태, 호흡, 신경 전기 신호 등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뇌파 공명을 통한 상호작용만 중단되었을 뿐 뇌파 패턴 또한 정상적인 수면 패턴으로 나타났다. 뇌 기능의 손상이나 훼손은 관찰되지 않았다.

 

 

하지만 비블로스는 이 상황이 단순히 자다 깨어날 수면 상태와는 기전이 다름을 직감했다. 자연적인 현상이나 보통의 신경 생리 현상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인간의 영성과 공명하는 가디언엔젤 고유의 기능을 담지한 비블로스이기에 이 미세한 차이를 식별할 수 있었다.

 

 

{비상 모드 발동.}

 

 

비블로스는 알렉시스가 ‘기묘한 잠의 세계’로 끌려가기 직전, 플랑크 단위의 찰나의 시간에 자신에게 남긴 뇌파 매개형 메시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비블로스는 로봇들과 운송 장비를 가동하여 알렉시스의 몸을 안전히 감싸 응급 호송을 준비하였다.

 

 

{알렉시스님의 기억 데이터, 피코초 단위로 해석 프로세스를 거친다.}

 

 

찰나의 기억 속에도 무수히 많은 귀중한 정보들이 담기는 법이다. 인간은 주마등을 체험할 수 있다. 특별히 사고 역량이 독보적인 알렉시스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CPU 성능이 역대 최대 수준인 비블로스는 그 자료를 면밀하게 쪼개어서 유용한 것들만을 뽑아낼 수 있었다.

 

 

{역시 그랬던 건가.}

 

 

공식 전산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던 단서가 하나 발견되었다. 알렉시스가 지금처럼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수면 현상에 빠진 일화가 이전에도 한 번 존재했다. 그때 그는 약 일주일 간을 깨어나지 못한 채 기약 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때도 생리학적, 신경학적 징후는 정상이었고 의학으로는 그의 코마 상태를 설명하지 못하였다. 그 일을 알고 있는 자는 가족들뿐이다.

 

 

{원본, 잠시 이야기를 하지.}

 

 

강력한 전기 신호가 휴대 전자 장치로 전달되었다. 급박한 전보에 각성한 로빈 비서관은 휴게실에서 뛰어 나와 곧장 커맨드 센터로 달려갔다. 3차원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재빨리 밀실로 이송된 그는 자신을 기다리던 비블로스의 서브 유닛과 마주하였다.

 

 

“무, 무슨 일이지, 비블로스?”

 

 

{원본, 잠시 알렉시스님을 대신해서 너를 사념파 매개체로 사용하도록 하지. 허락하겠는가?}

 

 

강력한 물리 AI가 명령조에 가까운 투로 부탁하자 저도 모르게 로빈은 반사적으로 허락의 반응을 하였다. 평소에 가끔씩 했던 것처럼 로빈의 뇌와 비블로스의 메인 프로그램이 양자형 링크를 형성하였다.

 

 

{알렉시스님이 잠시 행동 불능이 되셨다. 난 그분의 의지에 반응하는 보조체이므로 그분이 완전히 ‘잠든’ 상태에서는 오래 자아를 유지하지 못해. 그래서 급한대로 너를 보조 배터리로 사용해야 한다.}

 

 

“자, 잠깐만! 전하께서 잠드셨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이해하기 힘든 청천벽력의 말에 붉은 머리 청년은 당황하였다.

 

 

“분명 오늘 업무 때까지는 괜찮으셨고 잠시 쪽잠으로 기력을 회복하시겠다고 숙소로 가셨는데?”

 

 

{그렇다. 옥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만, 다른 쪽으로 복잡한 일이 생긴 듯하다. 네게 설명해주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금은 귀한 자원을 그렇게 낭비할 수 없다.}

 

 

“어이, 이봐!”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인지 속도가 따라오지 못한 로빈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도 나름 일 머리가 잘 굴러가는 편이라고 자신했건만, 바보처럼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조금 수치감이 들었다.

 

 

“그렇게 말해서는 아무런 이해도…….”

 

 

{17세 무렵에 알렉시스님께서 지금처럼 쓰러지신 적이 있었다.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깨어나기 어려울 듯하고, 상황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한데 문제는 그 사이의 일들이겠군.}

 

 

로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개 국가나 기업이나 조직도 아니고,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극초강대국과 세계 경제 전체를 사실상 떠받치는 최대급 생산력의 극초거대기업을 함께 경영하는 수장. 그런 그가 업무, 판단, 지시를 내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게다가 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보장할 수 없다고? 마음 속의 경보음 장치가 맹렬하게 굉음을 발하였다.

 

 

{당장 큰 문제는 이곳 아이언로드 알파의 컨트롤, 일곱 척의 아이언로드 베타와 그곳들에 배치된 알렉시스님의 대용 아바타들, 그리고 워쳐들의 제어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겠군.}

 

 

“그것들은 전하께서 잠든 상태에서도 자율 활동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보통의 잠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나는 가디언엔젤들을 내부에 탑재한 특수 케이스라 활동력을 유지했지만, 나머지 유닛들은 실상 제어가 훼손되었다.}

 

 

아바타들은 처음에 만들어질 때부터 완벽한 자율성을 갖고 움직이지는 못하도록 설계된 것들이다. 그들 속의 인공지능들은 본체에서 나오는 적은 양의 뇌파와 의지 전달만으로도 효과적으로 행동 양상의 나머지 상세 부분을 채워넣기 위한 보조 도구일뿐이지, 스스로 알렉시스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만약에 알렉시스가 보통의 수면 상태에 빠진 것이라면 잠든 중에서도 의지와 생각과 사념이 흘러나올 수 있으니 아바타들이 일정 부분 활동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워쳐들도 비슷한 원리로 인해 곤경에 처해 있었다. 실상 임무 수행을 중지하고 현상 유지 혹은 은폐 모드로 전환해야 할 판이었다.

 

 

“저분의 상태에 대해서 알려지는 건 시간 문제이겠구만.”

 

 

{그렇다. 17세 때에는 그분께서 정식으로 통치나 경영 업무에 참여하신 것이 아니라 한창 공부하시던 시절이었지. 그래서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지금은 세계의 굵직한 거의 모든 일들이 저분의 두뇌를 거친다. 오너리스크의 파급력이 극히 높아졌다.}

 

 

잠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로빈은 유능한 관료답게 재빨리 현실 상황에 적응하였다.

 

 

“너의 계산대로라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적이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하면 될까? 의견을 부탁한다.”

 

 

{우선.}

 

 

비블로스는 간략하게 요약된 청사진과 기초 정보를 로빈의 눈앞에 홀로그램 프리젠테이션으로 제시하였다. 동시에 내용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뇌파 공명을 통한 보조 정보 전달이 이뤄졌다. 로빈이 착용하고 있던 웨어러블 디바이스 형태의 초소형 마인드 퓨리파이어 세트가 침착한 사고 활동을 강화해주었다.

 

 

{국가 및 회사 운영 자체는 당장 위급한 문제는 아니야. 알렉시스님이 잠시 없더라도 최소 현상 유지 이상의 경영은 가능해. 대행자들도 충분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만 하면, 알렉시스님이 있을 때의 50% 정도 효율이기는 해도 유지와 발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하지만?”

 

 

{내 회로에서 가상 시뮬레이션 10경(京) 회를 가동한 결과, 훨씬 더 귀찮은 변수들이 최대 위험 인자로 나타나는군. 배반자들의 물밑 움직임이 가시화될 확률이 최소 5.1%에서 최대 37.3% 까지 검정된다.}

 

 

“배신자들이라고? 설마 이슬람 내전 때처럼?”

 

 

{형태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이번에는 종교(宗敎)보다는 주술(呪術)적인 변수가 작용할 것이다. 목적 자체에 있어서 비합리적인 요소를 쫓는 종교와 달리, 주술은 목적보다는 목적을 추구하는 방식에 있어서 비합리적이지. 그들의 행동은 네가 생각하지도 못한 비합리성을 띤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비블로스는 무언가 금제를 의식한 것인지 로빈에게 아주 자세한 내막을 알리지는 않은 채 개요를 통한 암시만을 주었다. 눈치가 빠른 로빈은 자신에게는 열람이 제한된 기밀들이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재빠르게 순응하였다. 중요한 것은 호기심의 충족이 아닌, 조직의 부품으로서 역할을 효과적으로 감당하는 것.

 

 

“내가 잘 모르는 음지의 세력, 뭔가 그런 준동 같은 게 존재하는 모양이지. 그러니까 그것들이 전하께서 잠든 틈에 돌발 행동을 벌일지도 모른다, 이 말인가?”

 

 

{확률 상으로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히 지난 번도 그랬었지. 악한 세력들이 꼭 이성과 합리를 좇아 움직이라는 법은 없다는 교훈을 확실히 얻었어.”

 

 

{알렉시스님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지. 죄악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인간은 비합리적인 존재야. 지식 수준과는 무관하게 광기, 집단 사고, 확증 편향, 왜곡된 편견에 빠지기 쉽다. 너무도 위험하고 관리하기가 어려운 존재들이지.}

 

 

AI가 내리기에 다소 주제 넘은 심판이었다. 그 정죄에서 거북함을 느낀 로빈이었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잠자코 넘겼다. 비블로스 정도 되면 충분히 그런 오만함을 가질 자격이 있기도 하고.

 

 

“하지만 잠시 부재 상태가 된 건 전하 한 분뿐이야. 브리튼의 유능한 지도자들은 아직 모두 멀쩡하다. 황제 폐하와 황가의 유력한 인물들도, 황자 전하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마스터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지. 아무리 태자 전하 한 분의 존재감이 그분들 모두를 합친 것을 넘어선다고는 하나 불온한 자들이 그렇게 쉽게 경거망동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건 그래. 다만, 네가 말한 바로 그 마스터들, 그들 중 하나가 배신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뭐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내뱉어진 로봇의 천기누설에 잠시 기가 질려 말문이 막힌 로빈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비블로스는 친절한 답변을 사양하였다. 이 인공지능이 그런 비밀스러운 진실을 꿰차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마스터들을 면밀히 감시하였던 아홉 인공 비서들이 바로 비블로스의 몸 속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주군의 코마 상태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아마 무엄한 ‘그들’도 곧 소식을 전해 듣겠지. 어쩌면 대중이 아는 시점보다 한두 박자 더 빨리.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기민하게 대응해야 해.}

 

 

“정보를 공유할 사람들을 찾아야 한단 말이지?”

 

 

{그렇다, 원본. 그러나 조금이라도 정보가 새어나갈 대상은 안 돼. 또한 워쳐들에 대해서도 정보 보안이 필요하다. 우리가 전략을 공유할 대상을 신중하게 선별해야 한다. 여러 조건들을 모두 부합하는 후보군은 단 하나.}

 

 

비블로스는 로빈에게 즉각적인 지시를 내렸다.

 

 

{황자들이다. 주군의 형제들. 그들 중 믿을 만한 자들을 골라라. 나는 인간이 아닌지라 영적 예민함에 제한이 있어. 네 촉을 사용해서 황자들 중 전략을 공유해도 좋을 동지들을 선정해라. 그리고 그들에게 이 상황을 공유해.}

 

 

“하, 하지만 내가 무슨 기준으로 그분들을?”

 

 

잠시 당황한 기색이 서린 로빈의 얼굴.

 

 

{할 수 있다. 너는 비서로서 알렉시스님과 그분의 소중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알고 있지. 그리고 알렉시스님이 평소에 어떤 분들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그분의 감정과 신뢰를 알고 있을 것이다. 내 객관적 분석만으로는 정답에 이르기 어려워. 너의 주관적 판단이 필요하다.}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부탁에 로빈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깨닫고 억지로 용기를 쥐어짜냈다. 그는 자신의 감을 믿는다는 자신의 복제체의 응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뭔가를 시도해보리라고 마음 먹었다.

 

 

“알겠다.”

 

 

{이동 설비를 마련해주지. 곧장 그분들에게 가라. 되도록 외부 노출은 삼가라. 가능하다면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편이 낫다.}

 

 

“무선 통신을 지양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오케이. 그럼 너는 뭘 할 계획이지?”

 

 

{일단 알렉시스님을 아이언로드에서 안전한 장소로 이송할 생각이다. 주치의들과 막내 황자 곁에 그를 두어야겠지. 그분의 수면이 얼마나 길게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몸의 관리와 점검만큼이나 안정적인 휴식이 중요해. 그분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장소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또?”

 

 

{일단 내 할 일을 맡을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프로세스는 바로 워쳐들을 관리하는 작업이다. 이 불완전한 꼭두각시 놀이가 얼마만큼 수습될 지는 모르겠으나 중간 관리자로서 최대한 현상 유지를 위해 버텨보기는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잠정적인 위험 변수를 다 틀어막을 수는 없겠지만.

 

 

{나머지 전략은 인간들의 몫이다. 수고해라.}

 

 

“전하를 잘 부탁하마.”

 

 

인간 비서와 인공지능 비서, 두 짝은 각자의 임무로 신속히 이동하였다. 곧 불확실성의 폭풍이 다가오리라. 지혜롭게 한 수 두 수 이상을 앞서 준비하지 않는다면 큰 손실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일이 형통하게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로빈은 자신의 선택 위에 사활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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