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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41회 [2부] 62화. 혼란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19 | 회차평점 0 0

 

 

 

알렉시스는 잠시 정체불명의 갈색머리 사내를 멈춰 세웠다.

 

 

“이봐, 잠깐만.”

 

 

그때 흰 공간 속의 주인인 그 사내는 잠시 움직임을 정지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 이해하기 힘든 기시감의 발산에 위화감을 느낀 알렉시스는 차마 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말문을 멈췄다.

 

 

“그러니까, 잠시만 기다려줘. 부탁하고픈 말이 있다.”

 

 

“뭘 알고 싶지, 알렉시스?”

 

 

다시금 엄습하는 위화감. 자신이 질문을 하겠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불쑥 본심을 찔러오는 그의 태도에 알렉시스는 순간 혼동에 빠졌다. 정말 저 남자가 선언했던 대로 ‘나는 너고 너는 곧 나다’ 라는 말이 허상이나 거짓말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저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지?

 

 

“나는 아직 너를 따라갈 수 없다.”

 

 

“그게 나와 너의 문제에 있어서 무슨 상관이지? 언제는 네가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시계를 조정할 수 있었던가? 삶과 탄생이 너를 기다려주거나 네 의견을 물었던가? 혹은 죽음이 그랬었나? 언제부터 만물과 운명이 너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었지? 오만하군, 알렉시스.”

 

 

거침 없는 질책에 말문이 턱 막힌 알렉시스. 이 자리에서 그는 위대한 언약 계승자나 황태자가 아닌, 한 명의 미약한 인격체에 불과했다. 자기 자신의 몸과 영혼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저 이상한 사내, 얼핏 감지되는 바에 의하면 저 존재는 자신보다 높은 상위의 위격이었다. 알렉시스 자신도 함부로 다스리거나 명령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존재. 그렇다고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난 지금 이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두려운가?”

 

 

“죽음이 두렵지는 않아. 내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져 있으니까. 하지만 지난 번 열일곱 살 때의 일이 반복된다면 나는 다시금 네게 감금되어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저 너머에서 머무르게 되겠지. 이번에는 언제 깨어나리라고 장담하기도 어려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지금 내가 자리를 비우고 그 시간이 예측 불허의 영역으로 던져져 길어지게 된다면 세계 정세에 혼돈 변수들이 생긴다. 물론 무너지지야 않겠지만 혼란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될거다.”

 

 

이에 그 잘생긴 갈색머리 미남의 입가에 호선이 그어졌다. 그때 알렉시스는 자신이 그의 얼굴에 대해 일부 정보를 인식하도록 찰나의 순간 허락받은 사실을 깨닫고 가볍게 떨었다. 무슨 현상이지? 무슨 초의식이 이토록 실감나도록 섬뜩하고 낯설고 미스테리한 것인가.

 

 

“그럴 수 있겠네. 알렉시스 네 세계도 너에게 많이 의존하는 모양이군.”

 

 

네 세계라는 표현이 몹시 거슬렸지만 알렉시스는 당황을 감추고 태연히 굴었다.

 

 

“천만에. 내게는 훌륭한 내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계를 옳은 방향으로 인도해낼 후배들과 선배들도 많고. 그러니 그들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발견할 거다. 그럼에도 당장은 내 역할을 감당해야 해. 그 공백을 내버려두면…….”

 

 

“부럽네.”

 

 

“뭐?”

 

 

난데없는 사내의 답변에 알렉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를 절실히 필요로 하되 너에게만 의존하지는 않는 세상, 그건 꽤 멋진 것 같아, 알렉시스. 난 말야, 내 세상에서 그것을 이뤄내지는 못했거든. 나에게 의존하지 않는 세계. 그런 건 불가능하더라고.”

 

 

“알 수 없는 말뿐이군.”

 

 

“차차 이해하게 될 거야.”

 

 

사내가 손을 튕기자 공간의 문이 크게 확장되더니 곧 알렉시스와 사내 둘을 함께 에워감쌌다. 잠시 후, 무대가 전환되며 초의식의 공간이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었다. 빛으로 가득한 순수한 영역이 전개되었다.

 

 

“네가 이곳에 끌려온 이유는 세계의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진실, 곧 다크센텐스를 인지했기 때문이야.”

 

 

“다크센텐스가 뭐지?”

 

 

“자연계와 인간계에서 역사하는 섭리, 그러나 그 기저는 초자연계에 뿌리를 둔 이면의 메커니즘, 그게 바로 ‘숨겨진 글’들이지.”

 

 

알렉시스의 머릿속에서 아주 잠시 다니엘서 8장에 기록된 단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브리튼의 정통 번역본에만 등장하는 그 단어. 하필이면 어둠의 왕과 관련된 용어인지라 영 불쾌했다.

 

 

“너는 설마 어둠의 진실과 관련된 존재인가?”

 

 

“대답해줄 수 없어, 알렉시스.”

 

 

“너는 초자연계의 존재인가? 아니면 내 내면의 옛 사람인가?”

 

 

“다 틀렸어.”

 

 

사내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울처럼 생긴 영역이 알렉시스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를 비추는 거울상 위에는 알렉시스 자신의 모습 대신 방금 인지하였던 그 정체불명의 사내가 존재하였다. 알렉시스는 흠칫하며 당황하였다. 눈이 아닌 초의식으로 감지하다 보니 느낌을 형용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거울에 비친 존재는 자신이었는데 또 자신이 아니기도 했다.

 

 

“열일곱 살 때도 다크센텐스의 한 귀퉁이를 인지하였다. 기억하지?”

 

 

그 책문에 알렉시스는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답했다.

 

 

“그래. 나는 그날 ‘키메라’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자신이 키메라를 죽일 사명을 받은 언약의 청지기라는 사실도. 그리고 그 키메라라는 것이 단순한 메타포를 넘어서 분명하게 실존하는, 초자연적 실체 겸 자연적 실체라는 진실도 깨달았다. 그날의 깨달음은 알렉시스의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각성의 변곡점이었다. 이후 전쟁 당시의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이 깨우침은 더욱 생생한 칼날이 되어 그의 기억과 뇌리에 파고들어 흉터처럼 새겨졌다.

 

 

“키메라라고? 아하, 너희들은 그런 모습으로 인식하는 모양이군. 참고로 나와 내 동료들은 그들을 ‘새로운 질서’라고 부른다. 가증한 자들이지.”

 

 

알렉시스는 내심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한 가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혹시 저자가 말하는 저자의 세계란 나의 세계와 대칭을 이루는 어떤 ‘평행성의 구조’인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들었으나 의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여하튼, 그날의 네 깨달음은 분명 ‘이면의 진실’에 대한 접속이었다. 감춰진 신비가 네 눈앞에 천기누설된 셈이었지. 그로 인해 같은 신비로서의 공통 코드를 내포한 너와 나의 세계가 접속된 듯 하군. 너와 나를 매개로 말이야.”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군. 진실을 밝히 드러내라.”

 

 

“그건 무리야.”

 

 

이제 알렉시스와 사내 사이에 놓인 거울면은 새로운 기하학적 형태로 개편되었다. 정육각형의 방이 생성되었는데 각 면이 모두 투명한 거울로 이뤄져 있었다. 면과 면 사이의 빛의 반사로 인해 무수한 거울상들이 거울면 너머로 생성되어 무한한 육각 공간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너는 최근 두 번째 다크센텐스에 접촉했어. 그것이 너를 여기로 이끈 결정적인 매개체이다.”

 

 

“두 번째 신비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가짜 유대인에 대한 비밀 말이야.”

 

 

이제 거울면 너머의 사내의 모습은 어느 순간 알렉시스와 동화되어 있었다. 더 정확히는 알렉시스 자신이 그 사내의 모습과 닮아져 융화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누가 누구인지, 명확히 구분되지도 않았다. 거울면들 너머로 무수한 수효의 알렉시스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 왼쪽은 붉은 빛, 오른쪽은 브리튼 황가의 상징인 자색이었다.

 

 

“그건 너와 같은 이방인들의 왕이 쉽게 알아서는 안 되는 진실이었다.”

 

 

“이방인들의 왕?”

 

 

바로 그 순간, 알렉시스의 뇌리에는 어떤 인지가 자연스레 발생하였다. 정체 불명의 사내와 융화된 영향인지 그의 정체성에 대해 부분적으로 어떤 깨달음이 저절로 스며들었다. 알렉시스는 자신과 대화하는 또다른 자신의 핏줄이 유대인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저절로 알아졌다고 해야 하려나.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알렉시스 자신의 핏속에는 유대인의 혈통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인종이 섞인 혼혈이었으나 이상하게도 단 하나, 유대인의 핏줄만은 섞이지 않은 그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인지하는 이 정체성은 정말로 평행 구조의 자신에 대한 인지란 말인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는 진짜 유대인인가? 아니면 ‘그들’과 같은 가짜 유대인인가?”

 

 

“네가 내린 정의에 의하면, 둘 다이다.”

 

 

“뭐라고?”

 

 

“에돔의 혈통인지 묻는 것일테지? 그 기준대로라면 난 가짜 유대인이야. 하지만 진짜의 피도 섞여 있지. 그러므로 나는 가짜인 동시에 진짜. 에서인 동시에 야곱인 존재이지. 마치 네가 네 아버지와 네 숙부의 유지를 모두 계승한 것처럼.”

 

 

당황한 알렉시스는 남자의 말에 어떤 응답으로 이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자신더러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부탁이다. 돌아가게 해줘.”

 

 

“네 공백으로 인해 일이 벌어질 것을 염려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위험한 사람이 우리 세계에 숨어 있어. 가짜 유대인, 그리고 바벨 시티의 에니그마를 수호하는 자들, 그 교차점에 있는 가장 위험한 인물, 그가 행동을 개시할 거다. 내가 행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흠, 내 세계와도 비슷하군. 하지만 말야. 그것이 뭐가 중요하지?”

 

 

“혹시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아냐, 아냐. 그 뜻이 아니라……. 네 세계가 혼란에 빠지든 무너지든 살아남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말이었다.”

 

 

너무도 당황스러운 대답에 알렉시스는 말을 멈췄다.

 

 

“어차피 국소적 차원의 왜소한 흐름 아닌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한없이 보잘 것 없는 현상일뿐이지. 그렇다면 거국적인 운명을 논해야 할 나와 네가 왜 그 하찮은 일들을 신경써야 하지?”

 

 

계속해서 괴롭혀오는 위화감에 알렉시스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너, 대체 뭐냐?”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거울 너머의 알렉시스의 두 눈 중 하나의 흰자위가 검은 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색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놀랍게도 그 음성은 알렉시스 본인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존재의 경계선이 흐릿해진 탓에 알렉시스는 자신이 말을 하는 것인지, 정체불명의 존재가 말을 거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친구. 나는 곧 나다.”>>>

 

 

 

 

 

 

 

 

*

 

 

 

 

 

세계가 왕의 부재를 감지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왕 자신의 본체는 물론이고 왕의 또다른 몸체인 아바타들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활동 정지 상태로 전환되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 수없이 다양한 중요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이렇게 되었으니 모두가 쉽게 그 빈 자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의 병환에 대한 소문들이 퍼져나갔다. 갑자기 건강 상에 이상이 생겼다더라, 잠시 몸이 아파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더라, 혹은 중요한 임무로 인해 칩거 상태에 들어갔다더라. 이런 식의 불확실한 루머들이 제각기 근거도 없이 스멀스멀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무리는 양지보다는 음지에 속한 자들인 법이다. 알렉시스와 브리튼 황가의 잠정적인 원수들, 곧 바벨 시티의 신비를 수호하는 주술(呪術)의 무리들은 뜬구름처럼 음지와 양지를 침식하는 소식들에 쫑긋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대기업부터 중소 기업, 정계 조직, 정당, 의회, 정부 기관, 민간 단체, 예술계, 학계 등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에 포진한 숨은 독버섯들이었다. 그러므로 무분별하게 만들어져 무차별적으로 번지는 소식들이 수렴하는 최종 종착역은 그들의 세상이었다.

 

 

“황태자에게 이상이 생겼다고?”

 

 

“그런 일에 대한 단서를 들은 적이 있던가?”

 

 

“이상한 일이군. 이게 제대로 된 근거를 갖춘 정보인가?”

 

 

“믿을 수가 없어.”

 

 

“과로로 인한 부담이 아니었을까?”

 

 

“그럴 리가. 황태자는 지구 상에서 가장 건강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야.”

 

 

챈슬러도 의구심에 빠졌다. 그는 섣불리 말을 섞지 않은 채 잠잠히 상황을 관망하며 혼란스러운 정보들에서 합리적인 결론을 찾고자 계산하고 또 계산하였다. 정황에 대한 이성적인 추론, 그리고 초자연적 요소에 대한 고려까지, 모든 가능성들을 모아 올바르게 점을 쳐야만 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챈슬러에게는 다른 수장들보다 앞선 정보력이 있었다. 그는 황가의 내부에서 있었던 과거의 일들을 차분히 고려하며 추론하였다. 한 가지 짚이는 점이 있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해.”

 

 

그는 생각하였다. 기다림과 신속한 판단. 무엇이 더 중한가. 지금 요구되는 것은 조용한 대응인가, 아니면 기회를 놓치지 않는 민첩함인가. 만일 움직인다면 어떠한 방향인가? 과연 이 일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영적 현상의 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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