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43회 [2부] 64화. 낯선 강림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20 | 회차평점 ![]() |
사흘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총 오십 회가 넘는 암흑 회의가 이뤄졌다. 번개불에 콩 튀겨 먹을 듯한 기세로 예정에도 없는 물밑의 행보가 긴급하게, 신속하게 전개되었다. 대전쟁이 벌어지던 시절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이슬람 세계가 산화될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두로와 에돔과 바빌론의 후예들은 무슨 연유로 저렇게 허둥대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쫓기게 만든 것일까.
이들로서는 두려웠고 의혹으로 마음이 흔들렸으며 갈등되었다. 눈앞의 이변이 미끼인지 유인책인지 기회인지, 판단하는 것조차도 망설여졌다. 이미 수세에 몰릴대로 몰린 그들로서는 지금의 사태를 올바르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다. 한 번의 오판으로도 나락과 생존이 갈릴 것이다.
두 가지 의문이 아른거렸다. 먼저, 황태자의 현재 행방과 위치와 상태, 그것을 알아야만 했다. 그는 왜 행동하지 않는 것인가? 이것은 그의 의도적인 계략인가?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은 이것이었으니 만약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것이 맞다면 여기서 행동해야 하는가, 만약 행동해야 한다면 어느 범위까지?
워낙 신출귀몰하고 계략이 치밀한 황태자인지라 극도로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신도수가 많았으며 가장 과격했던 종교가 지구상에서 삭제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했다.
이럴 때에 영험한 신적 존재들이 그들에게 계시를 준다면 좋으련만. 주술적인 사고로 충만한 이들이었기에 이 와중에도 초자연적인 도움을 탐닉하였다. 이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이들의 전통이자 유전이자 본능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초자연적 현상들과 접촉들에서 짭짤한 유익을 누려왔고 그 힘에 의존하여 일어선 자들이었다.
은밀한 암흑 회담은 점점 팽창하듯 확대되었고 끝내는 다시금 전 조직 규모 최고 간부 회의가 펼쳐졌다. 한 해에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는 것은 예사로운 조짐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들은 기대와 위기의 기로에서 심리적으로 상당한 긴장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챈슬러, 그대의 자문을 구한다.”
광명협회의 두 번째 서열의 아크비숍이 황급히 본론을 던졌다.
“그대라면 황실의 최상부에도 측근과 눈과 귀를 두고 있겠지.”
이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황태자의 신변에 대해서 그대가 검증해낸 정보는 무엇인가?”
“아아.”
스스로는 황실을 상대하거나 접촉할 용기도 없는 버러지들의 무리. 어리석은 하수들의 버둥거리는 꼴을 감상하며 챈슬러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경멸의 눈빛을 머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배를 탄 동지들이다. 적어도 이용 가치가 남은 아직까지는.
“알렉시스 황태자가 상대라면 그 어떤 경우의 수도 100%의 확률이란 없어.”
챈슬러는 체스판 위의 숫사자 모양 장기말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물리 법칙과 인과율의 질서라는 것이 있지. 그 개연성의 틀에서 극도로 벗어난 이적(異蹟)은 황태자에게서라도 기대하긴 무리이지.”
이제 그의 눈은 자신의 서재 앞에 놓인 수천 개의 모니터들을 향했다. 해킹만을 위해 마련된 최첨단 장비들, 오컬트와 첨단 과학 기술을 하나로 접목시킨 작품들로 오로지 브리튼 제국의 허점을 공략하기 위해 창작된 기계들이었다. 그는 축적된 데이터들을 관찰하며 머릿속으로 모든 확률을 고려하였다.
“내 의견은 이렇다. 이 현상은 황태자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섭리의 벗어남. 정황들을 더듬어 파악해보건대 나는 감히 그렇게 단언해본다.”
“무슨 근거로?”
바일덴부르크 결사단의 제3 영도자가 물었다. 그러자 황급히 제5 마탑주가 말을 자르고 끼여들었다.
“저분께서 판단하실 때 쓰는 로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모든 부분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좋은 판단이군. 아무리 내가 신뢰가 가는 캐릭터가 아니라고 해도 그대들로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겠지. 자신들끼리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솟아날 구멍을 만들어낼 가망성이 없을테니까.”
조소하며 조롱하는 와중에도 챈슬러는 사념파 패턴을 면밀히 읽었다. 이곳은 주술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생성된 시공간 너머의 토론의 장. 그렇기에 원탁의 특성상 뛰어나고 기민한 책략가에게는 매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곤 했다. 생각을 읽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대가 숨긴 의중에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다. 챈슬러는 옛 동료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계획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기민하게 간파하였다.
“알렉시스 황태자에게는 아바타들이 있어. 그것들은 이미 이슬람 내전 때 성능을 검증 받았다.”
챈슬러는 예전에 황태자가 총격에 맞을 뻔했던 암살 미수 건에 대해 자신의 추리를 가르쳐주었다. 아울러 그 정황 근거와 심증들까지도. 그렇게까지 정교한 인간 대행 장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잠시 놀라긴 했으나 아주 불가능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브리튼 제국과 커버넌트 그룹의 기술력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 그들도 어렴풋이는 알았다.
“현재도 여러 기기가 운용되는 것으로 보여. 아마도 그 사령탑은 황태자의 최대 전략 자산인 아이언로드, 그것이 커맨드센터 겸 마더컴퓨터가 되어 그의 서브 유닛들을 조종하는 것일테지.”
“그렇다면 우리와 우리의 동지들이 접촉해온 황태자도 적잖은 경우 그자 본인이 아닌 아바타 유닛이었다는 말인가?”
자유건축가연맹의 제1 아키텍터가 질문하였다. 이곳에서 서열로는 최고인 그이기에 오만하고 괴팍한 챈슬러 앞에서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그대도 그의 대용 유닛들을 마주한 적 있었나?”
“아니, 그는 내 앞에서는 그 유닛들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물론 마스터라는 직위를 고려하여 주의한 점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미 내게도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 같단 말이지.”
이것이 챈슬러조차도 현 상황에서 몹시 조바심을 내는 이유였다. 알렉시스 황태자 측에는 이미 대부분의 정보적 고지가 확보되어 있다. 워쳐 그것들이 어느 단계까지 진실을 채굴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알렉시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시나브로 모든 준비를 완료해두었다. 마지막 남은 보루인 챈슬러 자신마저도 안전하지 않다.
‘내버려두면 알렉시스님은 사냥을 시작할 거다.’
그 실행 방법이 이슬람 때처럼 과격하고 급진적이지는 않겠지만, 분명 가만히 있지는 않으리라. 천천히 목을 조이며 씨를 말릴 수는 있겠지. 이건 가만히 버티고 있으면 되는 싸움이 결코 아니다. 멈춰 있으면 멸종이 확정된다. 시간의 행운은 오래 전부터 이미 두로의 후손들의 편을 떠났다. 시곗바늘이 움직일수록 황태자의 육체와 정신은 경험을 쌓아 점점 더 진화할 것이며 그의 세력은 거대하지고 강성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인지도?’
덫에 걸리는 것이 왜 무섭지 않겠는가. 하지만 어차피 죽는 것이 필연이자 시간 문제라면 조금이라도 달아날 구석이 보일 때 고양이를 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쥐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고양이에게 잠시 마비가 일어났다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내 안보는 확보해야 해. 우선은 양동으로 간을 본다. 내란을 부추겨 볼까?’
챈슬러는 자신만의 꿍꿍이를 간직한 채 동료들을 상대로 심리전을 시작했다.
“알렉시스 황태자의 아바타들, 그들마저도 행동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가 당장 급한 일이 생기거나 몸을 운신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더라도, 적어도 그것들 중 하나는 대신 움직일 수 있었겠지.”
“뇌파 운용만으로 그런 정교한 조작이 가능한가?”
“물론이다. 그대들도 타르타로스를 보지 않았던가? 차원을 넘어 이면 세계에까지 내던져진 희생자들의 정신 세계가 연동을 통해 현실 차원에 현현되었다. 그 정도 기술력이라면 황태자는 잠든 상태에서도 자신의 분신들을 조종할 수 있다.”
타르타로스를 만들 정도의 기술력을 얻은 팀 에덴, 그리고 그 원조 기술을 제공했던 라지쿠마르 박사, 여기에 그의 제자이자 알렉시스의 몸 상태를 봐줄 막내 황자까지 있다면 뭐든 불가능하지 않다. 알렉시스 정도의 정신력이라면 아마도 코마 상태에서도 능히 아바타를 매개로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그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정무와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알렉시스 황태자는 잠잠하게 굴고 있다. 최소한 얼굴 마담으로 대행자 아바타를 내세워 결제나 회의에 얼굴 비치기 정도만 해도 충분하리라. 하지만 그 일마저 안된다는 건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겠지.
“소거법을 통해 경우의 수를 모두 배제했을 때 남은 가능성은 둘이다. 알렉시스 황태자는 사망했다. 혹은 그게 아니라면 현실과 격리될 정도로 강력한 결계에 의해 외계에 봉인된 상태이다.”
“뭐라고?”
거의 모든 최고 수장들이 당황하여 외쳤다.
“현실과의 격리라면?”
“뇌파와 정신파를 통한 양자 연계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상태, 즉 몸 자체 혹은 정신이 모종의 격리를 당한 셈이겠군.”
점술이나 부리는 영(Familiar spirit)의 존재를 알고 이용하는 그들이기에 이러한 대화는 아주 맥락에서 동떨어진, 현실과 분리된 소리가 아니었다. 챈슬러의 추측이 원리적으로는 자세히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대강 어떤 맥락인지는 모두가 즉시 인지할 수 있었다. 알렉시스 황태자에게 어떤 초자연적 계에서의 간섭이 작용하였으며 그로 인해 그는 곤경에 처했다.
문제는 어떤 주체가 감히 브리튼의 황태자에게 그런 일을 행했느냐였다. 헥스나 주술, 점술, 복술, 저주, 마술과 마법 따위는 존재력만으로도 상쇄해버리는 강력한 권능이 바로 브리튼 황실의 명예로운 언약이다. 그런 언약이 수백 년 간 가장 짙게 농축된 핵(核)이 바로 알렉시스 황태자. 심지어 그는 현 시대 인간 가운데 히브리 족속의 신에게서 호의와 총애를 가장 많이 받는 자이다.
에돔과 두로의 신들이 과연 그러한 강대한 인간을 영적 사슬로 포박할 수 있는가? 솔직히 그 신들을 섬기는 자신들부터도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가 지금 무슨 말을 떠들어대는 지 이해하는 건가?”
“너희보다는.”
“그런 일이 가능한 원리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하라!”
제1 아크비숍의 다그침에 챈슬러는 잠시 속으로 궁리하였다.
‘솔직히 나로서도 물증이 필요한 참인데, 저 녀석들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려나.’
챈슬러에게는 사실 저들이 모르는 정보원이 하나 있었다. 그 정보원은 과거 황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아주 희미한 단서 하나를 간접적으로 던져주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감추기로 했다.
사실 24년 전의 사건과 지금의 사건이 동일한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어떤 원리에서 발생되고 유발된 것인지도 불명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잠시 뒤로 빠져서 일의 전개를 지켜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챈슬러는 자신에게 있는 여러 가지 ‘덜 유용하고 불명확한’ 정보들을 나누어 동료들의 시선과 관심을 돌렸다. 그는 직접적으로 전략 구상을 도와주거나 방향성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서도록 어떤 암시들을 넌지시 제공하였다. 그는 이런 식으로 타인을 조종하는 데 능숙했다.
챈슬러가 암흑 회의의 장에서 퇴장한 뒤 머리가 혼잡해진 수장들은 더욱 고뇌에 빠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로젠크로스의 대집정관 중 하나가 질문했다.
“글쎄. 간을 보아야 할지, 은밀하게 흔들기 시작해야 할지, 혹은 좀 더 과격하게 일들을 펼쳐야 할지, 범위와 폭을 조정하기가 생각보다 간단치 않군.”
아무리 상대적으로 열세라고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말해서 이들이 뒤흔들 수 있는 폭이 아주 좁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안과 밖에서 직간접적 영향력을 모두 동원해 시기를 적절히 취하기만 한다면, 예상하지 못한 규모의 혼란을 낳을 수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잘만 양동한다면 한 번 정도는 뭔가를 취할 기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
“우리는 아직 강합니다. 우리와 우리의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 그리고 중간 지대의 비겁한 자들을 끌어모으기만 한다면 잠시 동안이나마 거사(巨事)에 다다를 수도 있죠.”
“그렇습니다. 의회 내부에서도 형제들의 영향력을 모두 동원하면 최대 3분의 1까지는 손을 뻗칠 수 있습니다.”
“군(軍) 내부에도, 프로빈스와 스테이트의 리더들과 관료들 중에도, 심지어 산업 스파이로 심어진 이들도, 활용할 수 있는 카드 자체는 저희 측에도 많습니다. 황태자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감히 커밍아웃을 할 수 없었지만, 딱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일이라면?”
금빛 새벽회의 마탑주 세 명이 조심스럽게 낙관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래서 뭐.”
나이트템플러 조직의 제3 기사단장이 반문했다.
“확실하게 제어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콩가루 세력이다. 설령 판을 한 번 흔든다고 해도 순식간에 진압될 일회용에 불과해.”
이에 대집정관 중 하나가 동의를 보탰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할 세. 이대로 경솔하게 행동한다면 되려 우리의 수족을 잘릴 걸세. 전부는 아닐지라도 조직들의 상당 부분을 토벌당할지도 몰라.”
문제는 이것이었다. 그들을 이끌 확실한 중심축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챈슬러가 지혜로는 가장 탁월하고 위상 면에서도 뛰어나나 황실을 상대로 불리한 판을 뒤엎을 격은 못 되었다. 게다가 챈슬러 본인부터가 최고 수장들과 연합이 잘 되지 않기도 하고 수장들끼리도 서로를 온전히 믿지 못했다. 반면, 알렉시스의 충신들은 단단하게 연합되어 있고 인재풀에서도 앞선다.
게다가 황실과는 경제력, 정치력, 영향력, 기술력 등 모든 차원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이런 수세를 뒤엎으려면 이쪽 진영에 알렉시스보다 배는 뛰어난 괴물 같은 능력자가 있어야 한다. 마치 신이 직접 현현한 것과 같은 유일무이의 존재. 그런 메시아가 등장하지 않는 한, 저쪽 진영의 괴물을 이길 방법은 없다.
“알렉시스 황태자가 너무도 두려웠던 이유는 권력 때문이 아니었다.”
바일덴부르크 결사단의 제1 영도자가 중얼거렸다.
“알폰스 황제도 위협적이었지만 충분히 인간의 규격 안에서 계산될 수 있는 위협이었지. 이전 황제들도 우리 윗세대 리더들께 능력적으로 위협이 되긴 했으나 어느 정도 맞상대는 해볼 만 했다. 하지만.”
“지금 세대의 황태자는 뭔가 궤가 달라.”
“이건 압도적인 권력의 문제가 아니야.”
“지식과 현명함도 문제지만, 뭔가 다른 개념의……, 권능, 그래 맞아, 권능의 문제이다.”
그들이 보기에 황태자에게서 나오는 힘은 인간끼리 규정하고 약속한 ‘권력’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치 위로부터 부여된 듯한 신비한 권세, 혹은 ‘권능’을 연상시키는 힘이었다. 기계들을 다루는 지배자. 기계들의 신. 인간의 문명 위에 혁신을 빚어내는 존재. 상식의 범주에 가두기 어려운 기괴한 독창성. 이런 이질적인 존재이기에 그는 이전 세대의 황제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외경심을 주었다.
여섯 대조직의 수장들은 골똘히 생각하였다.
리더십의 공백을 메울 결정적인 열쇠는 무엇인가. 탈인간의 범주에 가까워진 황태자의 권능이 그들에게 너무도 큰 위협이 되듯, 그들의 편에도 어떤 인간 너머의 권능을 지닌 존재가 허락된다면?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지만 지금은 너무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소원이자 반전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그리고 수 시간의 토의가 이어진 끝에 낯선 정적이 임했다.
⪡“그대들이 히람의 아들들인가.”⪢
사념파의 경계선을 찢고 한 낯선 음성이 그들에게로 침투해왔다.
⪡“아, 그랬던 것이군. 이번 천 년 동안은 국가라는 형태의 그릇 대신 이런 양태를 취하기로 택했던 것인가. 나쁘지 않은 공생 방법이야.”⪢
공기를 짓누르는 위압감과 위화감. 누구도 낯선 손님의 등장에 말대꾸하거나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이유를 모를 기이함을 자아내는 기묘한 감각이 공간을 매질로 전파되어 그들의 혼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군, 내 친구들의 아이들이여”⪢
공간 너머에서 배덕의 향미가 짙게 밴 마왕의 향기가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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