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49회 [2부] 70화. 내란의 조짐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6.24 | 회차평점 ![]() |
사이버 네트워크를 떠도는 어떤 영상이 주목을 끌었다. 영상에 등장한 인터뷰 대상은 바로 인도의 최고위 과학자로 주목을 받는 아미타브 카푸르 교수, 얼마 전에는 무려 황제로부터 칭송과 함께 포상을 받은 위인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음성 변조를 통해 철저히 감춰져 있었고 그가 어떤 이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아미타브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침착하게, 그러나 한 치의 웃음기도 없이 진중한 자세로 질의응답에 임하는 중이었다.
낯선 인터뷰 진행자가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아미타브는 여기에 상세하고 친절하게 답을 주었다. 과학에 문외한인 일반인이 들어도 얼추 이해가 될 만큼 분명하고 명쾌한 해답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가디언엔젤’의 속성에 관한 것이었다.
“박사님께 한 가지 여쭤볼 사항이 있습니다.”
익명의 인터뷰 진행자가 물었다.
“가정법이긴 한데, 가디언엔젤을 외부 간섭을 통해 해킹하는 일이 가능합니까?”
이에 아미타브는 자신과 더불어 팀 아르다가 기획하였던 여러 연구들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답을 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일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히 가디언엔젤을 이루는 소체들과 하드웨어의 보안이 고차원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속성’과 ‘계열’ 자체에 존재하는 극명한 차이가 원인이었다.
“가디언엔젤들의 몸과 정신을 구성하는 물질들은 우리가 아는 기존 ‘컴퓨터’ 개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동합니다. 또한 전자 통신 기반이 아니기에 외부와의 상호작용도 통상의 개념과는 다르게 이뤄지죠.”
“음, 마치 외계 문명의 기계들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가디언엔젤들은 지금껏 기존 기계들과 연계를 해온 것이죠? 그들은 연계를 넘어서 침식, 합체, 기생은 물론 복합과 개조 작용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만, 이 또한 기존의 컴퓨터 전자 공학의 테크놀로지와는 다른 구동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일련의 장황한 해설이 이어졌다. 인터뷰 진행자는 머리가 좋은 사람인지 전공자가 아님에도 얼추 아미타브의 복잡한 설명들을 이해한 듯했다. 하지만 아미타브는 결론만을 강조하였고 너무 상세하고 전문적인 부분까지는 듣는 이들이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음을 첨언하였다.
“요약하면 그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외부 기계나 컴퓨터 시스템의 간섭이 가디언엔젤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제로란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가디언엔젤 소체의 등급과는 무관합니다. ‘속성’의 상성차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더 우월한 외부 기기의 간섭이라도 통하지 않죠.”
“가디언엔젤 그 자체를 기반으로 진화한 기체가 아닌 한 말이죠.”
인터뷰 진행자는 의미심장한 사족을 끝에 달며 아리송함을 남겼다.
“요컨대 그것들을 정복할 정도의 능력이라면 인간계의 문명이 아닌 외계의 문명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외계라, 그 말도 맞는 말이네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외계의 행성 문명이라기보다는 더 고차원적인 외계일 것입니다.”
“고차원적이라면?”
“인간의 마음, 영혼, 그 본질적 부분에 간섭할 수 있는 외계의 존재들요.”
아미타브의 말에 인터뷰 진행자는 잠시 침묵으로 뜸을 들였다.
“마치 초자연계의 존재를 암시하시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천사나 악마들, 그러한 존재들이 실존한다면 가디언엔젤에 간섭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상상력의 문제입니다. 저는 영계의 존재들의 실존 방식을 잘 모릅니다. 그것들이 자연계와 상호작용하는 원리도 밝혀지지 않았죠. 영계의 실체들이 물리계에 간섭할 때 기계와는 어떻게 연접하는 지는 더더욱 수수께끼입니다. 아직 우리 세계에서는 기계와 사이버 차원에서의 초상 현상(paranormal phenomenon)이 존재하는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어요.”
이에 인터뷰 진행자는 아미타브에게 지적을 던졌다.
“박사님의 고견에 참견하는 듯하여 송구하지만, 제 생각에 입증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아, 잊고 있었군요.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둘이 염두에 둔 그 ‘증거’란 사실 하나뿐이었다.
“타르타로스. 인간계 너머와 연결되었던 유일한 기계. 그것의 성공 사례를 생각할 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닐 듯하네요. 만일 인간이 발명한 기계가 영원 차원에 접속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 반대가 불가능하리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요.”
“카푸르 교수님은 역시 저와 코드가 잘 맞는군요.”
인터뷰 진행자는 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심산인지 상상의 나래를 더욱 확장하였다.
“가디언엔젤은 현존하는 발명품 중 거의 유일하게 인간의 도덕적 선, 영적 선함과 연계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 이후에도 후속작들이 나오긴 했으나 모두 가디언엔젤의 힘을 빌린 응용체 겸 아류작들에 불과하죠.
저는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도덕적, 영적 차원’과 연계되는 메커니즘을 갖는다면, 뒤집어서 생각해보았을 때, 그 고차원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더욱 민감성을 갖지 않을까? 혹 인간의 도덕적 차원을 본질적으로 뒤흔드는 어떤 외계적 간섭력이 존재할 때 그것이 가장 먼저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발명품은 가디언엔젤들이 아닐까?
그럴 듯한 추측이 아닙니가?”
“엉뚱한 공상 같기도 하지만, 이론을 가장 정확히 아는 제 입장에서 듣고 보니 일견 타당한 부분들이 있군요.”
그 영상은 이 대목에서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치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상 필름이 흐려졌고 다음 대화는 묻히고 말았다.
*
사이버 시대에 대한 공포의 기류가 다시 부활하였다.
이런 레퍼토리의 사이버포비아가 오늘에 이르러 처음 탄생한 건 아니었다. 과거에도 다양한 류의 기계 공포증, 기계 문명 음모론이 유행했었다.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 아래 떨어져 식민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혹은 기계가 인간을 뛰어넘거나 인간을 위협하는 재앙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괴담들.
커뮤니스트 연방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그들은 자원과 노동력을 기반으로 온갖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첨단화된 사이버 기술을 개량하였고 그것들을 악하고 기괴한 용도로 발전시켰다. 허구한 날 사이버 테러나 해킹 공격이 브리튼 제국 각 영역을 괴롭혔고, 연방 내부에서도 디지털 식민주의에 가까운 반인륜적 통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인민들을 착취하였다. 그래서 당시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인류가 멸종한다면 필시 인공지능이나 컴퓨터 기술과 관련되어 멸망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브리튼 제국이 역사의 승자가 된 뒤로는 이러한 비관론이 많이 수그러들었고 대신 장밋빛 낙관론이 힘을 얻었다. 그렇게 미래의 방향을 바꾼 데는 알렉시스 황태자와 그의 동료들의 공이 컸다.
하지만 선한 사람들의 선한 영향력이란 것도 결국은 미봉책에 불과했던 것일까? 역사의 큰 흐름과 억지력을 바꾸기에는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마인드 퓨리파이어에 이어 가디언엔젤들이 외계 공격에 집단으로 무력화된 사건은 대중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겼다. 하필 이 문제를 수습할 능력을 갖춘 유이한 인물인 황태자마저 병환으로 누운 상태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사태가 그저 기술적인 무능함, 또는 커버넌트 그룹의 부주의함과 실책 탓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자세히 앞뒤 정황을 살피니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만일 기계적인 오류, 기술적인 한계점 혹은 보안 상의 취약점이 근본 원인이었다면, 어떻게 모든 기체들이 한 날 한 시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기현상에 휘말릴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그 기현상은 단순한 기능상의 오류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돌발적 폭주였다. 더 무서운 점은 현재 브리튼 내에는 그런 일을 강제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비난의 목소리는 점차 잦아들고 그 자리를 두려움의 웅성거림이 채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거에는 인간의 탐욕스러움이 기계들을 통해 압제와 통제의 사회를 만들리라는 공포감이 유행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레퍼토리의 음모론이 번졌다. 브리튼의 지도층인 황실이 인간을 압제할 리는 없으니, 수수께끼의 또다른 세력이 기계의 영역에 침투해 악을 획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세력은 인간이 아닌, 또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 외계인 혹은 악마, 그것도 아니면 신. 이 망상적 가설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우주적 공포(Cosmic horror)가 아닐 수 없었다.
외계 침공에 대한 음모론이 확산되었다. 혹자는 마계의 악마들이 강림하여 사이버 세계 속에 빙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신의 심판이 아니면 무엇이냐는 설도 돌고 돌았다. 마냥 덮어두고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모든 정황이 기이하고 이상했다.
공포란 항상 새로운 공포를 물고 오는 법이다. 음모론이 한 번 만들어지고 허락되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어미가 자녀를 낳듯 새로운 소식과 설들이 확대재생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현상들이 역작용만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적어도 한 가지 부분에 있어서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각성하는 경험을 하였다. 더는 기계들만을 믿고 의지할 수 없다. 인공지능 문명과 5차 산업혁명의 유산들이 인류에게 커다란 풍요와 부강함을 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언제까지고 선의 도구로만 쓰이리라는 보장은 없다.
인간은 기술력과 과학을 반석으로 삼아 헛된 안위를 얻어서는 안된다. 자칫 그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 되리라. 타킨의 소설에 등장하는 요정들이 마왕의 지식으로 만든 ‘힘의 반지’들의 정체를 깨달은 뒤 그것을 내어버렸던 것처럼, 사람들은 기계 문명 그 자체의 의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근간을 흔들 소란과 혼돈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서서히 빠르게 번져갔다. 병균과 역마처럼, 천천히, 그리고 잠잠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대중을 흔들어놓았다. 이 시련은 일종의 고통인 동시에 알곡과 가라지를 가려내는 시험이기도 했다.
기계 문명에 대한 회의와 병적 공포만이 당장 닥친 문제의 전부가 아니었다. 브리튼 황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황제가 버젓이 살아 옥좌에 앉아있음에도 그러하였다. 황태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사람들이 지금껏 고려해보지 못한, 그러나 반드시 고려했어야 마땅한 오너리스크였다. 게다가 황태자는 지금 홀몸인데다 후사를 이을 자녀도 없지 않은가.
필연적으로 이런 질문이 제기되었다. 브리튼이 세계를 통솔하며 브라이틀란트 가문이 세계의 선(善)을 지도하는 지금의 평화 체계, 곧 ‘팍스 브리타니아’의 시스템이 반드시 영존하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당장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만 해도 전혀 다른 미래를 그려내고 있지 않던가.
더 무시무시한 일은 브리튼과 그 기저의 가치 자체를 미워하던 이들의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지금의 소란과 흔들림을 기회로 보았다. 바야흐로 그토록 견고했던 제국의 내부에서 대규모 내란이 연발될 조짐이 보였다.
음모론, 충동, 각종 선전선동이 네트워크와 통신망 전역에서 시나브로 확산되었다. 브리튼 황실에 대한 과잉충성자들도, 반동분자들도, 모두가 이 극단성의 향취에 천천히 취하여 비뚤어진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브리튼 황실에 대한 정죄하는 음모론도 천천히 여기저기서 제기되었다. 사람들 틈에 숨어들었던 그 이상한 ‘인간형 기계’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온갖 가설과 억측이 난무하였다. 황실을 신뢰할 수 없다고 평소에 생각했던 이들이 이때다 싶어 수면 위로 올라와 소문을 실어나르고 사람들을 혹세무민하였다.
그리고 이 기괴한 기류를 재빨리 감지한 자들이 바로 어둠의 세력이었다. 광명의 신을 섬긴다고 하는 비밀주의자들과 신비주의자들. 그들은 바로 이 흐름이 자신들이 기대하던 기회라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어쩌면 ‘내란 성립 불가의 법칙’이 자신들의 신의 권능으로 인해 균열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품었다. 아직 확신을 품기는 어려웠으나 면밀히 살필 필요성은 있었다.
“왕의 말씀과 예언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올해가 지나기 전에 대규모 반란이 벌어질지도.”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대전쟁 때 브리튼에 점령되었던 독립국 출신의 권역들과 구 연방령 쪽 지역들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무력 분쟁만 없다 뿐이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화약고와 같은 상태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기폭제만 던진다면…….”
여전히 그들로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가 앞으로 오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알렉시스 황태자가 잠들고 계몽자가 강림한 지금이야말로 힐렐 신이 내린 절호의 기회이리라.
접근할 수 있는 옵션은 다양했다. 브리튼 내부에서 대규모의 혼란을 유발함으로써 동시다발적인 내전 상황과 내란 상황을 유도한다. 그 뒤에는 여러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겠지. 경제의 안정성을 무너뜨리거나 테러를 통한 공포 확산을 일으킨다. 주요 요인을 암살하거나 첩자들을 포섭할 수도 있으리라. 혹은 과거 러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했던 것처럼 과감한 혁명을 개시하는 선택지도 있다.
무엇이 최선인지는 철저히 계산하고 점검하여야 한다. 여전히 상황은 불리하지만 이번에는 신의 현현이 그들 편에서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기대가 그들로 하여금 용기를 얻게 하였다.
그리고 어둠의 세력은 다른 한편으로는 또다른 동상이몽도 품었다. 누가 주도권을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 애초에 그들끼리도 온전히 연합된 가족이 아닌, 경쟁자였기에 어차피 결정적 순간에 내분이 나는 것은 필연이었다. 누가 먼저 공을 세울 것인가. 누가 계몽자를 차지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계몽자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장차 임할 신세계 질서를 고려하면 이 또한 그들에게 심각한 질문이었다.
그렇게 브리튼 제국의 연말연시는 이례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총성 없는 내전의 불구덩이 속으로 천천히 침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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