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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50회 [2부] 71화. 심판의 날 예고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01 | 회차평점 0 0

 

 

 

한 남자가 병실 의자에 앉았다. 상당한 장신에 탄탄하게 단련된 근육질의 육체의 소유자로 강인한 인상과 불굴의 의지력이 훤히 드러나는 미중년의 사내였다. 외모나 신체 나이로는 잘해봐야 40대 중후반의 액면가이지만 실제로 그는 80세에 이르른 연령이었다.

 

 

남자는 말없이 잠잠히 침상 위의 또다른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환자복을 입은 그 사내는 소리 없이 깊이 잠든 상태였고 신체 징후를 인식하는 계측기들만이 시그널을 그려내고 있었다. 의식 불명의 젊은 남자의 뺨에서 한줄기씩 식은땀이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기다림의 시간이란 참으로 시련이로군.”

 

 

중년 신사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입가는 무표정하게 굳어 있었다.

 

 

“너는 역시 자주 시험을 겪는구나. 버거운 짐을 스스로 자처하여 취하는 게 특기라니, 애달프구나. 그래, 언약의 본질이란 그런 것이지.”

 

 

남자는 잠든 미청년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나저나 네가 깨어난 뒤로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보게 되겠구나. 그것이 어떠한 모습이 될지 방향성은 모르겠다만.”

 

 

사내는 모자를 벗고 창 너머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수도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던데 이곳은 남반구라 그런지 맑고 화창했으며 제법 더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목 시계 형태의 컴퓨터를 작동시켜 이차원 홀로그램 모니터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제법 긴박하게 흐르는군. 며칠 안에 격변이 나겠어.”

 

 

그때 비밀 메시지가 그의 이어폰 형태 컴퓨터 안으로 전달되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태연한 자태로 연결을 수락하였다.

 

 

“말씀하시지요.”

 

 

“우리끼리일때는 편하게 대해도 좋다.”

 

 

“감히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아니다, 다른 형제들은 몰라도 너에게만은 허락되는 일이야. 너는 또다른 ‘나’와도 같지. 언약의 공동 책임자.”

 

 

“지금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전직 수호자일뿐,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직위가 넘어갔죠. 인간계의 왕좌에서만 당신이 더 높을뿐, 신성 조약의 법적 기준대로라면 지금 대표자는…….”

 

 

중년 사내는 시선을 살짝 돌려 침대에 누워 잠든 청년을 흘깃 바라보았다.

 

 

“설마 그 아이와 같이 있는건가?”

 

 

메시지를 보낸 쪽에서 말했다.

 

 

“뭐, 녀석은 내 아들이나 다름없기도 하니까.”

 

 

“…….”

 

 

“형님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음 단계의 준비나 잘 하시면 됩니다.”

 

 

“마침 잘 말했군. 오늘 그 문제에 관해서 네 의견을 좀 듣고 싶군.”

 

 

이에 사내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조카님께서 안 계시니 대용품으로 이 몸의 도움이라도 빌릴 생각이신지?”

 

 

“넌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내 동료다. 유일하게 대등한 입장에서 생각과 힘을 연합할 수 있는 인간은 너뿐이야.”

 

 

“우리 형님이 인정해주니 감지덕지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다시 코트의 옷매무새를 바로 잡고 모자를 썼다.

 

 

“내일 뵙는 건 괜찮으려나, 형님?”

 

 

“언제든지. 별궁에서 만나도록 하지.”

 

 

“그럼 그동안 탈 없이 강녕하시길.”

 

 

미중년 남자는 떠나가기 전 침대 위의 청년의 머리를 어루만지듯 쓰다듬었다.

 

 

“푹 자고 편히 일어나거라, 알렉. 꿈에서도 너무 근심하지는 말고.”

 

 

 

 

 

사내는 처소를 떠나기 전 정원에 있던 또다른 어린 청년과도 마주했다. 갈색 피부의 그 호리호리한 훤칠한 젊은이는 중년 사내를 곧장 알아보고는 멈칫하며 크게 긴장하였다. 그는 불편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여 경례하였다.

 

 

“오랜만이구나, 리카온.”

 

 

중년 신사는 온기 없는 음성으로 예의 상의 인사로 응대하였다.

 

 

“네 큰형님을 성심껏 잘 모시거라.”

 

 

“…….”

 

 

“곤경의 때에는 형제들만한 지원군이 없는 법이지.”

 

 

리키는 잔뜩 뻣뻣하게 얼어붙은 채로 제 양아버지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외모의 남자가 유유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어차피 그럴 생각입니다만.’

 

 

 

 

 

 

 

 

*

 

 

 

 

 

운명의 날이 가까워지자 이계에서 온 낯선 왕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계시를 선언하였다.

 

 

⪡“너희가 알던 세계는 올해가 가기 전에 끝난다.”⪢

 

 

그의 말들은 더는 허언도 과장도 아니었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고차원적인 업적들을 하루 아침에 파멸시키고 해체할 권능을 가진 존재이다. 그에게 모든 기계들에 초자연적으로 접속하고 간섭할 ‘내부 간섭’의 이능이 있다는 사실이 여러 번의 시험으로 훤히 드러났다. 수십 억 이슬람 교도들을 배교하게 하였던 마인드 퓨리파이어를 해킹했고, 수천 만의 광신도들을 이겼던 가디언엔젤들이 파괴를 당하였다. 심지어 그간 여섯 조직의 세력을 감시해온 워쳐들마저 무력화되었다. 다음 단계는 어디까지 나갈 수 있을까.

 

 

⪡“나는 이 땅에 불을 붙이러 강림했다. 불이 이미 붙었다면 내가 무엇을 바라려니만, 내게는 아직 감당해야 할 한 번의 시험이 더 남아있다.”⪢

 

 

계몽자는 장래의 계획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브리튼의 신년 행사가 있기 전, 운명의 날, 곧 심판의 날이 임하게 할 것이다. 가디언엔젤이나 워쳐들을 향한 심판은 그저 본보기이자 예표에 불과했으니 그 다음 번 심판의 창은 인간들을 겨냥하리라.

 

 

장로들 중 하나가 질문하였다. 인간들을 어떤 방법으로 심판할 것입니까? 이에 낯선 왕은 일부러 자세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하늘에서 불을 내림으로써 배역한 자들을 태워죽일 것임을 암시하였다.

 

 

⪡“불은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도 가리지 않는 법이지. 더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가증한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역사는 내 공정한 심판대 앞에서 지워질 것이다. 나를 대적해 나의 원수와 결탁한 모든 배역자들은 한 줌의 재가 될 것이다.”⪢

 

 

더는 유일극초강대국이 없으리라. 더는 무기도, 창도, 미사일도, 위성도, 군단도, 로봇들도 없으리라. 브리튼 제국이 자랑하던 모든 화려한 문물들은 장망성과 같이 산화할 것이다.

 

 

이에 많은 장로들은 추측했다. 다음 번에 계몽자의 권능에 묶여 지배 당할 시스템은 군사 시설일지도 모른다. 세계 대전 때 사용되었던 대량 살상 무기들, 위성 병기, 그리고 군함들. 어쩌면 최첨단 전천후 최종 병기인 아이언로드들도 그 예속에 묶여 자멸의 병기로 택함 받을지도 모르지.

 

 

⪡“모든 인간을 심판하지는 않는다. 나는 자비로운 왕. 그러므로 내게 복종하기를 선택할 기회를 이 종족에게 주리라. 하지만 이 가증스러운 제국의 노역자로 복역한 이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리라.”⪢

 

 

계몽자는 심판 받을 자들의 체크리스트를 가르쳐주었다. 브리튼 소속의 대기업들, 정부 기관들, 공공 기관들, 교육 기관들과 연구 기관들, 의회들, 그 외에도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핵심 조직들이 사형 명부에 올랐다. 어떤 식으로 심판이 이뤄질지는 모르지만, 계몽자의 말대로 초정밀 타격 식으로 하늘에서 형벌이 내린다면 순식간에 브리튼은 무정부 상태로 전락할 것이 분명했다. 정부도, 군도, 기관들도, 기업들도, 조직들도 사라진 세상. 그 잿더미 위에서 혼돈의 장이 빚어질 것이며 그 혼돈을 제물 삼아 힐렐의 통치권이 땅에 드러날 것이다.

 

 

⪡“그들은 탐욕으로 자신을 배불린 대가를 치르리라. 그리고 그 배역자들의 곁에서 속히 떠나지 않는다면 너희라고 내 심판의 창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선고한 운명의 날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여섯 대조직의 장로들은 바짝 긴장하였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 포악한 신에 의해 멸망을 당했듯, 이번에는 힐렐께서 친히 심판의 불을 온 세상에 내릴 것이다. 인류는 자신들이 만든 과학 기술의 산물들에 발등을 찍혀 처절한 고통과 함께 산화될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정복자로 임할 왕의 발밑에 굴복하리라.

 

 

두려움도 임했으나 희열과 기대감이 그 공포를 압도하였다.

 

 

 

 

 

낯선 이계의 왕은 또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였다.

 

 

⪡“너희는 심판의 날 나와 직접 마주하게 될 것이다. 너희 중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은 내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를 시험할 것이며 시험을 통과한 너희는 내 신민(臣民)이 되어 새 시대(New World Order)를 보게 되리라.”⪢

 

 

그는 뒤이어 매우 중요한 비밀을 일러주었다.

 

 

왕에게는 현재 그릇으로 쓸 몸의 후보가 두 개가 있다. 한 몸은 아직 잠들어 있으며 다른 몸은 깨어있으나 완전하게 힐렐의 영과 더불어 동기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현재 한 몸을 통해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을 봉쇄하는 말뚝을 뽑아내기 위해 브리튼의 후계자를 추적하는 중이었다.

 

 

최고의 선택지는 적국의 후계자를 제거하고 완전체로 부활한 다음 이 땅에 가시적으로 데뷔하는 것이다. 현재 사용 중인 몸은 그 일에 특화된 몸이었다.

 

 

⪡“나는 그를 패망시킨 뒤 그의 모든 유전 정보를 흡수하여 그와 똑같은 모습을 취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한 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조종하고 다스릴 것이다.”⪢

 

 

여기에서 지각 있는 수장들은 이런 추론을 하였다. 어쩌면 이계에서 온 왕이 현재 사용하는 몸체는 황가 후손의 몸일 가능성이 크다. 못해도 방계, 어쩌면 직계에 가까운 누군가인지도 모르지. 의외로 황제나 대공의 사생자 씨앗일지도 모르고.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

 

 

말뚝 근처로 다가가면 억제하는 영력이 작동하여 계몽자는 온전한 힘을 다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행동에 제약이 생기고 브리튼 공권력의 공략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하여 계몽자는 플랜 B를 마련해두었다.

 

 

⪡“만일 뜻대로 일이 흐르지 못한다면, 나는 지금 쓰는 이 몸과 함께 적국 수장을 화염의 바다에 침몰시킬 것이다.”⪢

 

 

브리튼의 차기 지도자를 물 귀신처럼 데려가리라. 하늘에서 쏟아질 불의 심판과 더불어 자기 자신마저 화약으로 사용한 뒤 브리튼의 태자를 묻어버리리라. 그 뒤에는 피닉스와 같이 예비해둔 새로운 몸에서 깨어날 것이다.

 

 

“당신의 두 몸이 위치한 곳은 어디입니까?”

 

 

⪡“나는 그대들의 마음 속에 숨긴 것을 이미 다 안다. 너희는 내게 대하여 각자 자기만의 꿍꿍이를 품고 있다.”⪢

 

 

폐부를 찌르는 맹혹한 힐난에 수장들은 공포감에 떨었다. 실제로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 그들은 각자 왕을 이용하여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유익을 취하고자 간교한 속셈들을 품는 중이었다. 당장은 거사를 앞두고 연합된 것처럼 보이나 운명의 날이 이르면 언제 어디서 돌발 행동을 벌일지 모르는 자들의 집합체였다.

 

 

⪡“나는 그대들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들의 자격을 시험하리라. 그리고 나는 살아남은 자들, 곧 자격을 입증한 자들만을 내 영광에 참예시킬 것이다.”⪢

 

 

왕은 자신의 두 몸이 위치한 정확한 좌표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그 범위를 추측할 수 있도록 힌트들과 수수께끼들을 남겼다. 평소에 두로와 에돔의 후손들이 즐겨쓰던 은어, 미스테리, 비밀스러운 서적들에 기반을 둔 단서들이었다. 그 내용은 하나 같이 외부에는 드러나지 않은, 그들만의 은밀한 소유물로 오로지 같은 힐렐 숭배자들이나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만일 그 내용을 이해하는 외부의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초자연계에서 온 사자(使者)들 뿐이리라.

 

 

⪡“자, 이미 기회는 주어졌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대들도 내 장기판 위의 말이 되어 사용될 것이다.”⪢

 

 

얼마 후 많은 대화가 조직원들 사이에서 비밀스레 왕래되었다. 조직 내에서, 하부 조직들 내에서, 그리고 친목회 단위에서, 공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상의가 이뤄졌다. 유용한 정보들이 도출되는 데는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정보 교류와 추리를 통해 왕과 그의 예비 몸체가 자리할 것으로 추정되는 권역이 윤곽을 드러내었다.

 

 

“늦기 전에 움직이자.”

 

 

조직원들 사이로 정보가 퍼졌고 그들은 일제히 눈치 게임을 시작했다. 정확하게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올해가 지나기 전에는 심판의 날이 임한다. 즉 너무 늑장을 부리다가는 심판의 불에 함께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고 너무 이른 시점에 움직이면 브리튼 당국이나 다른 조직 측에 의심을 살 위험이 있다. 조심스럽게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해야 하리라.

 

 

구체적으로 어떤 노선의 전략을 취할지는 그들 사이에서도 합의된 바가 없었다. 계몽자를 도울 것인가? 아니면 그의 신변을 확보하여 독점할 것인가? 알렉시스 황태자를 찾는 일에 가담해야 하는가? 혹은 그 전에 다른 전술을 행할 것인가?

 

 

만일 정말로 계몽자가 몰래 알렉시스 황태자의 모습을 탈취할 생각이라면 그 이후의 일도 계산에 넣고 고려해야 한다. 브리튼 당국 측의 눈에 노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잠잠히 묻어가며 기회주의적으로 이득을 취해야 하는가. 어려운 질문이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뒤돌이킬 수는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가만히만 있으면 계몽자의 심판에 휘말린다. 왕의 손에 죽건, 적국의 손에 죽건 지금은 최대한 지혜롭고 기민하게 선택하여 생명을 확보할 때다. 심판의 날에 살아남아 신세계질서가 세워질 때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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