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55회 [2부] 76화. 실망감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01 | 회차평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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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처음에는 불안과 들뜸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웠으나 몇 시간 지나고 나니 이상하리만큼 무감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안정되었다기보다는 자포자기 비슷한 감정이 침울하게 정서를 가라앉혔다고 할까. 리키는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무료하게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급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다 했다. 어차피 여기서 자신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
국가 전복 행위니, 폭도니, 내란이니, 될 대로 흘러가라지. 어차피 결말은 알기에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어느 쪽의 승리가 될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피해가 확산될지 축소될지가 문제이긴 한데, 이걸 다룰 책임자들은 따로 있다. 지금의 자신은 포위되어 갇힌 처지이니 밖에 나가서 나라를 위해 일할 수도 없다. 최선의 책무라면 황태자의 안위를 살피는 것 정도리라.
기분이 몹시 복잡하고 무거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의 기력을 소진시키는 불쾌감은 지독하리만큼 짙은 적의에 대한 환멸감에서 나왔다. 뭐가 잘못되었기에 이렇게까지 심한 적대감의 표적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현재 불처럼 지펴지는 광기 어린 증오가 순수히 브리튼 제국만을 겨냥한 미움이라면 이해는 당연히 되지 않겠으나 백만 보 정도 양보해서 최소한의 관용을 베풀고 용인해줄 의사는 있었다. 세계의 번영을 구가한 역대 제일의 국가라지만 분명 피도 흘린 것이 사실이니까. 세 번의 대전쟁으로 합병된 세계 전역의 민족들이 기존 정체성을 버리고 브리튼의 시민이 되어주기를 기대하기란 무리이리라.
그러나 기독교적 세계 그 자체를 향한 증오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브리튼 제국은 전쟁을 치르긴 했어도 단 한 번도 기독교적인 가치를 핑계로 내세워 싸운 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적의 침략에 맞서 필요악으로서의 전쟁이라는 수단을 불가피하게 취했을 뿐이었다. 과거 십자군을 일으킨 교황청처럼 종교를 명분으로 탐욕을 정당화했던 적은 없었다.
되려 전쟁의 비도덕성을 억제하고 점령국들에 대해 자비와 화해를 주선했던 주체는 브리튼 내부의 복음주의 기독교 진영이었다. 또 황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리를 위반하였던 것도 아니었다. 이슬람과 같은 극히 드문 반인류적 범죄 집단을 제외하면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금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거의 모두가 자타공히 인정하기를 현재 브리튼 제국이 아름답고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번영하여 그 축복을 모든 대륙의 모든 민족과 나눌 수 있게 된 기저에는 종교개혁자들의 정신과 기독교적 가치관, 그리고 언약에서 나온 선한 열매들이 있었다. 이는 심지어 원수들마저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다 보니 리카온 황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고정관념에 젖어 있었다. 기독교는 세계 전체에 유익한 은혜이며 사람들은 모두 그 가치를 인정하며 순응해야 마땅하다. 이것은 마땅한 상숫값이며 여기서 어긋난 존재들이 잘못된 것이다. 이런 큰 축복과 은택을 어찌 경홀히 여기며 발로 밟으며 멸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순진한 생각이었음이 이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현실도피적 자기 상상에 취해있었음을 직면해야 했다. 그렇다. 현실은 다르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기독교와 그 가치관을 미워한다. 이것은 그저 비이성적으로 작동하는 이유 설명 불능의 미움이다.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독실하게 신께 헌신하는 인간들을 별종으로 바라본다. 이런 불편한 현실은 온 지구가 기독교 세계관 기반의 브리튼 제국 아래에 통치를 받는 지금도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
‘왜일까?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지?’
한편으로는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성경에 적힌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세상이 그분을 먼저 미워하였고 그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제자들도 미워할 것’ 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니 울분에 찼던 마음도 이내 차게 식으며 가라앉았다. 진정되는 자신의 냉철한 이성이 씁쓸하고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형님, 만약에 형님이 지금 깨어 계셨다면, 형님도 몹시 억울해하셨을까요?”
넋두리를 하듯 그는 자신의 등 뒤편에 잠들어 있는 침대 쪽으로 혼잣말을 던졌다. 알렉시스는 여전히 세상 모른 채 깊이 잠든 상태였다.
“저는 아직 어리고 철이 덜 든 모양이네요. 이유 없는 미움이란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네요. 형님은 이미 이런 시련을 수없이 거뜬히 이겨내셨죠. 언제쯤은 되어야 형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갈까요?”
이 설움의 감정을 누구에게도 토설해본 적은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형님이기에 마음을 터놓고 쏟아부을 수 있는 심정. 그나마도 깨어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깨이었었다면 자신의 이런 미숙함을 들키고 싶지는 않기에 오히려 더 숨겼겠지. 형님이 자신에게 실망하는 모습은 사양이었다.
“제가 무리한 기대를 했나봐요. 모두가 다 하나님을 믿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분에게서 나온 가치가 선하고 올바름을, 그분의 은혜가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임은 인정해줄 줄로 내심 기대했거든요.”
그리스도께서 어린 시절 키와 지혜가 자라나면서 사람들과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사랑스러움을 받았던 것처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대우를 받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분의 영광이 되도록 선한 열매를 맺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여 빛과 소금이 되고, 그로 인해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찬양을 돌리기를 기대했다. 브리튼 제국 정도라면 그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잘 이뤄낼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분명 역사에 이례 없는 모범적인 인물들이 그 가운데서 나오지 않았던가. 자신의 삶을 내던진 위대한 선교사들이 무수히 브리튼에서 육성되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각계각층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모본이 되었다. 양심적이고 지혜로운 기업인들, 정치인들, 교육자들, 학자들, 기술가들, 언론인들이 출현해서 성경적 가치관대로 자신들의 소명을 잘 이루었다. 그 영향으로 시민들의 가치관이 올바르게 정립되었고 지금의 훌륭한 인류 보편적 가치들이 정립되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정, 신 앞에서의 평등, 영혼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존중, 그리고 우상숭배에 대한 배척과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믿음까지.
그런데 세상의 상당수는 여전히 그들을 고깝게 여긴 모양이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남긴 훌륭한 영적 유산들을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미워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헐뜯기를 바랐던 것이다. 세계 패권의 질서가 브리튼 황가의 손에 있었기에 잠시 그 본색을 억누르고 숨겨왔을 뿐이지,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한 본질적인 증오심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유럽이나 다른 지역의 교회처럼 교회가 예수님의 품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타락한 모습을 보여 세상을 실망시켰더라면 그런 반응도 이해가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좋아도 교회의 모습은 형편없고 실망스럽다는 세상의 비평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돌출된 광인들의 광란은 단순히 그런 차원의 비평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독교의 선한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는 교회를 향해 분노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선함 그 자체를 증오하는 중이었다.
특별히 그들은 역사상 가장 모범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브라이틀란트 가문을 최대의 원수로 상정하고 증오심을 표출하였다.
“기억하세요, 형님?”
리키는 계속해서 혼잣말로 잠든 알렉시스와 공허한 대화를 이었다.
“형님이 저한테 가르쳐주셨죠. 참된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청년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무렵, 그에게 믿기 힘들고 감당하기 버거운 행운이 주어진 꿈 같은 시절, 그는 수천 수만 명과의 경쟁을 뚫고 황실의 공식적인 양자로 입양되었다. 거지였던 그가 한 순간에 왕자가 된 격인데 여러모로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빚이었다.
혈혈단신의 고아 출신으로 부모도 모른채 이슬람 테러리스트 범죄 조직의 아래에서 노예처럼 자라났던 그였다. 생지옥을 전전하며 온갖 악독한 명령을 힘겹게 수행했으며 자신의 영혼마저 알라에게 바치도록 강요받은 채 내일도 없이 최소한의 존엄도 없이 밑바닥에서 걸레처럼 널브러져야 하는 삶이었다.
그랬던 꼬마가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강인한 한 훌륭한 청년을 만났다. 가장 어울리지 않는 비천하고 흉측한 곳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고 잘못된 방법으로. 그것이 그 찬란히 빛나는 남자를 맞이하기에는 최악의 방식임은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거기에서 막내와 큰형의 첫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 최악의 만남의 순간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머릿속의 상흔으로만 남았는데, 입양이 확정되고 나서야 둘의 인연은 다시금 올바른 방향으로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유대감을 쌓는 길의 첫 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리키는 형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너무도 부담스러워 했다. 죄책감 때문이었으리라. 실제로 다른 형제들의 경우 리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아주 탐탁히 여기지는 않았고 어쩌면 큰형도 그러하리라고 내심 무서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우와 달리 알렉시스는 누구보다도 상냥했으며 거리감을 두지 않았다. 열 살 무렵의 꼬마는 자신을 포용해주는 형의 사랑을 선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의 곁에 다가갔다.
막내가 막 입적되었을 무렵, 알렉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틈틈이 본가에 내려가 어린 동생의 적응을 도와주었다. 그가 이 부담스럽고 고귀한 가문 안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런데 그 중에서 형으로서 가장 애쓴 부분은 바로 어린 리키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일이었다. 알렉시스는 이슬람 교도들의 영혼이 얼마나 깊은 상처와 배신감으로 곪고 병들어 있는지를 잘 알았다. 나름 유일신을 추구하기는 하나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채 그저 두려운 폭군으로 모시며 벌벌 떨어야 하는 운명. 자신의 잘못과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전혀 확신하지 못하는 공포. 소년은 그런 절망이 아닌 소망을 보아야 한다. 그것이 어린이들에게는 마땅히 공급되어야 할 은혜이리라. 알렉시스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그는 형으로서 직접 동생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잠드는 자리를 공유하면서 그 모든 추억 가운데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데 열심을 다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모든 것의 창조주이자 만물을 다스리고 운영하시는 그분의 지혜가 어떠한지, 그분이 어떤 계획으로 인류를 이끄시는지, 그리고 그분의 이름은 무엇이며 그분의 독생자의 이름은 무엇인지, 그분께서 죄에 종 노릇하며 비참히 신음하는 우리를 위해 어떤 놀라운 일을 하셨는지. 그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들을 이야기를 전하듯 들려주었다.
리키는 지능 지수 230을 가뿐히 넘기는 영재였기에 딱히 지적인 이해에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새겨진 영적 속박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기에 내심 알렉시스는 걱정하였다. 아이의 마음 속에 정말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형성될 수 있을까?
“그런데 말이죠, 형님.”
회상을 곱씹으며 리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한테는 말이죠, 그 말씀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어요.”
어린 시절 자라온 배경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영적 종교관을 갈아엎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린 리키는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하신 일의 의미를 들었을 때 그것에 전혀 저항감이나 의문감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을 평생 세뇌시킨 이슬람의 교리와는 완전히 상충된 내용임은 틀림 없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낯선 이야기가 마치 너무도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진 잔흔마냥 친숙하게 다가왔다. 피부 위로 생생히 와닿는 듯한, 원래 자신의 DNA 속에 새겨졌던 것마냥 착각이 드는 친밀감이랄까.
보통 마음이 부드러운 아이의 때에 복음을 들으면 그 말씀을 쉽게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자신의 삶으로 체감하고 깊이 동화되기란 쉽지 않다. 2천 년이라는 시간 간격이 너무도 큰 데다가 개인적인 삶과의 실제적 연관성이 체험되기 어려운 탓이다. 훌륭하고 감동적인 옛날 이야기로 인식될 수는 있어도 예수님의 희생이 나를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교훈은 다소 뜬구름을 잡는 듯한 형이상학적 느낌의 가르침으로만 어렴풋이 남기가 쉽다. 설령 진정으로 믿는 아이라 해도 깊은 체감까지는 무리겠지.
하지만 성경이 전한 복된 소식은 리키에게는 전혀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 생생한 체험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비유한다. 죄인의 신분에서 입양된 자녀, 친자식의 피 흘림과 희생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앙자.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런 방식으로 아버지와 극단적으로 끈끈한 연을 맺지는 않는다. 하지만 리키의 경우는 이 모든 것이 형이상학적인 교리가 아닌 실제적 체험이었다.
가장 비천한 처지에서 아무런 값도 지불하지 않은 채 왕의 자녀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그 어둡고 칙칙한 선박 안에서, 리키 자신과 다른 민간인 포로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들에게 자기 몸의 치욕을 허락한 채 비명 한 마디도 지르지 않은 독종 같은 청년의 발악을.
“자세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형님에게는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 전 한 장면도 빠짐없이 기억해요. 형님이 당했던 모든 일들이 지금도 생생해서, 꿈에서 떠오를 때마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그때 그 광신도들은 형님의 살을 잔인한 칼로 찢었다. 마치 도축장의 돼지를 칼로 저며 썰 듯이. 더 늦게 구출되었다면 육체 전체가 그런 고깃덩어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자들은 형에게 이렇게 회유했다. 만약 ‘알라’에게는 아들이 없다고 고백한다면, 그리고 이사(Isa,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닌 일개 인간일뿐이라고 선포한다면 칼날을 중지해주겠다고. 형님이 뭐라고 대답했더라. 리키는 평생 알렉이 비속어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 그때의 한 번이 유일한 예외이었으리라. 단칼에 거절당하자 분노한 테러리스트들은 지체없이 반인륜적인 범죄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포로가 된 알렉이 만약 비명을 지른다면, 소리를 낼 때마다 절단기를 움직여 다른 포로들의 생명이나 신체를 거두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포로들 중에는 알렉에 대한 동정심으로 몰래 그에게 물을 주었던 꼬마 리키도 있었다. 배신자에게는 아이라도 전혀 자비가 없던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이었다.
신음 소리라도 흘러나왔다면 몇은 목이 잘리거나 평생 불구가 되었으리라. 아직도 리키는 그날의 공포와 두려움이 생생했다. 언제 목이나 팔다리가 잘릴지 모른다는 무서움.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독종 같은 알렉의 모습이었다. 그는 가장 치욕스러운 모습으로 가장 극렬한 통증을 수 시간 이상 당하면서도 입술을 악문 채 숨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당황한 그들이 가장 통증에 민감한 신체를 둔기로 두들기며 고문하는 와중에도 그러했다.
“그래서였을까요?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요.”
신의 아들이 인간을 위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 체험적 지식이 생생한 소년에게는 멀고 흐릿한 소식으로 와닿지 않았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치욕과 죽임을 감당해준, 하늘에서 내려온 형님이라는 존재란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래서 아이는 쉽게 반응할 수 있었다. 단순한 개종이 아닌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인정과 회심. 그는 냉혹하고 비정한 알라를 버린 뒤 성경이 증언하는 야훼 하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였다. 더욱이 가장 소중한 사람인 형님께서 전해준 복음이기에 더욱 쉽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속상하네요. 나에게는 이토록 당연하고 아름다운 소식인데. 모두가 인정해야 마땅한 가치라고 생각했는데. 제 기대가 너무 컸나봐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갖지는 못하리라는 현실을.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참기 어려웠다. 자신에게 있어서 너무도 귀하고 존귀한 보물들을 누군가가 그저 증오심에 북받쳐 혐오하고 미워하고 짓밟는 이 현실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왜 우리는 이토록 미움을 받는가. 왜 가장 귀한 일을 하신 하나님은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 막론의 맹렬한 혐오에 이제는 서럽다 못해 마음이 지쳐 분노할 힘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해 발버둥을 쳤을 뿐인데, 우리의 부족함 때문일까요?”
이슬람 같은 파괴와 혐오의 신앙은 징벌받아야 마땅하다. 로마 교황청의 배교의 교리도 지탄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을 선하게 이끈 진리의 가르침까지 미워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백번 양보해서 기독교인들은 불완전한 죄인들이니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왜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미워하는가?
“미안해요, 형님. 너무 철없는 말들만 떠들어댔죠.”
뒤돌아보니 알렉시스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없이 평온했다. 찬란히 빛나는 세계의 영웅 같아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런 증오를 받아내며 힘겨운 씨름을 해온 것일테지. 그의 든든한 어깨와 웃는 모습이 그리웠다. 내일이면 그의 생일인데, 그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해줄 수 있을까?
“나약해지지 않을게요. 그러니 형님도 힘 내세요.”
리키는 손수건으로 형의 이마를 닦아준 뒤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증오의 열기를 마주하기가 서럽고 두려워 무심코 회피만 하고 있었다. 이슬람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가 반기독교적 광기에 물드는 모습에 실망하여 그저 눈을 돌리고만 싶았다. 그래서 덮어두고만 있었다. 이제 그런 무책임한 회피는 하지 않아야지.
“현실을 마주할게요. 그리고 실망스러워도 앞으로 나가야죠.”
밝은 햇빛이 스며들어 그의 옷깃 위에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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