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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56회 [2부] 77화. 임계점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06 | 회차평점 0 0

 

 

 

건물의 옥상 테라스에 올라온 리키는 야외 상황을 차분히 내려다보았다. 안전한 강화 유리 너머로 살풍경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쓰러진 사람들, 아수라장이 된 출입구, 파손된 시설들과 낭자한 피에 이르기까지. 폭도들 가운데 어림잡아도 부상자가 백 명 이상은 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저들끼리 싸우며 아수라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날카로운 무기나 둔기까지도 간간이 보였다. 계획성도 없으며 질서도 없고 그렇다고 단합도 없는 광기. 다들 무언가에 씌인 듯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무언가를 차지하겠다고 서로 죽고 죽일 듯 달려드는 불량배들, 밀려드는 인파의 충돌로 인해 생긴 부딪히고 넘어지고 깔린 사람들, 보면 볼수록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오랜 세월 꾹 참아오면 품어온 짙은 증오심과 혐오의 결실이 이런 식으로 고름이 터지듯 난장판으로 나타난단 말인가. 체계적으로 기독교 세계를 무너뜨리려는 열심도, 진지전에서 점진적으로 승리를 쟁취하려는 끈질김과 인내도, 대중의 마음을 훔치는 뱀 같은 지혜로움도 간데 없었다.

 

 

분명 그런 요소들이 저들 가운데도 꽤 오랜 세월 존재했겠지. 그러니 그토록 긴 시간을 인내하며 브리튼 황실과 겨뤄올 수 있었으리라. 비슷한 원리로, 신을 반역하여 떠난 악마도 처음 창조될 때 받은 지혜의 은사를 부분적이나마 타락 후에도 유지했었으리라. 그 지혜를 악한 일을 행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했겠지. 하지만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박함의 결말은 필시 지혜를 떠나 파국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인간이건 초자연적 존재건, 죄란 어떤 존재를 어리석게 만드는 법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는 가장 비이성적이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계란으로 바위에 부딪히는 자살 행위를 하는 법이다.

 

 

“이제는 미움마저도 들지 않네.”

 

 

착잡했다. 오히려 이제는 저 어리석은 군상의 추태가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저들이 미워하는 진짜 대상은 브리튼 제국도, 황실도, 기독교계도, 교회도 아니다. 정말 그들의 마음에 담긴 본질적 증오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미 그분께서도 그렇게 예언하지 않았던가. 세상은 먼저 그분을 미워하였기에 그분께 속한 자들, 곧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을 이유 없이 미워하리라. 그들은 때로는 신을 경외하는 자를 향하여 정죄의 화살을 던지기도 하며, 깎아내리는 말을 하기도 하고, 이것 저것 변명을 던지며 미움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자신도 깨닫지 못한 깊은 심리의 기저에는 단 하나의 이유만 존재한다. 창조주를 향한 반역의 마음, 그것 이외에는 없다.

 

 

리키는 그 모습이 어쩌면 자신의 과거 모습과 닮았을 지도 모르겠다고 감상하였다. 아니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나님 대신 알라 신에 대한 공포를 머금었던 철 없던 아이, 그 삶에는 이성도 없었고 진실도 없었으며 올바름이나 안식이나 질서정연함이나 온유함도 전혀 없었다. 만약에 형님과 만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분의 눈에 들어 친절을 입지 않았다면 그대로 그 세계에 파묻혀 죽었겠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성경을 통해 올바로 깨닫지 않았다면 영원히 저들처럼 비참한 발광을 하다가 끝없는 파멸에 몸과 혼을 내버렸을 것이다.

 

 

‘형님, 아직 고백하지 않은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어요.’

 

 

 

 

 

기억하고도 싶지 않은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최정예 특공대 전사였던 당시의 20대 초반 청년이 임무 중 제3 세력의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것은 여러 변인들이 겹친 결과였다. 그 요인 가운데는 임무 중 발견한 어린 아이에 대해 지나치게 안일한 자비를 베푼 것도 있었다.

 

 

비정하더라도 전쟁 중에는 동정심을 내버려야 한다. 아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첩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위험요소라면 사살해야 한다. 그 원칙을 알면서도 변덕을 부린 것인지 알렉시스는 꾀죄죄한 꼬마 아이를 간과하고 눈 감아주었다. 바로 그것이 나비 효과를 연발하였고 그는 부대원들에게서 떨어진 채 홀로 사로잡혔다.

 

 

말하자면 자신은 단순히 형님의 자비로 목숨을 건진 아이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를 위험에 빠트린 원인 제공자 중 하나였다. 이것을 굳이 되새기지 않는 것은 죄책감을 감당하기 힘든 탓이었다. 평소에 형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미안함에 가슴이 미어지는데 그 사실까지 되새긴다면 평생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 것 같았다.

 

 

신께서도 그와 같이 ‘무고한 불쌍한 아이’를 건져주신 것이 아니라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괘씸한 아이’를 살려주셨다. 그것도 그 아이들의 반역 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비린내 나는 희생을 도구로 삼아 선을 베푸셨다.

 

 

과거 그러한 가해자의 입장에 자신이 있었음을 기억하니 되려 저 광인들의 모순적이고 미련한 작태가 가엽게 여겨졌다. 전에는 이슬람 같은 극단적인 망령만 제거된다면 인간은 조금이나마 현명해지리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그 종교가 엄한 심판을 받고 정죄를 받았을 때 속이 통쾌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비단 종교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았다. 인간은 이슬람 같은 ‘악령들의 개입’이 없어도 충분히 스스로 어리석어질 수 있는 존재이다.

 

 

마음이 정리되고 나니 기분이 후련해졌다. 그저 남은 것은 주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믿으니 저들에게 쏟을 맹렬한 분노도 한결 가벼워졌다.

 

 

“저들을 도울 신은 허상에 불과해. 그러니 곧 깨닫겠지. 자신들이 한 길로 쳐들어와서 일곱 길로 도망할 오합지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악이 악인들을 멸망시킨다는 말씀이 오늘 응하는 모습을 보게 되겠지.”

 

 

 

 

 

리키는 확신했다. 형님이 깨어난다면 최고겠지만, 굳이 형님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브리튼 제국과 황실은 강하다. 물론 우리 또한 세속 세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이니 한계는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찬송할 존재가 있다. 그 대상은 브라이틀란트 가문의 가주들도 아니며 그 언약도 아니다.

 

 

마침 전산망 혼란 사태가 진정되었는지 대륙 건너편에서 연인으로부터 안부 메시지가 도달하였다. 그녀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찬송가와 복음 송가를 음원 파일로 그에게 전달해주었다.

 

 

“리키, 무사히 잘 지내지? 너와 네 가족이 항상 평안하기를 기도할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얼굴 보기를.”

 

 

다행이다. 그녀에게도 별 탈이 없었구나.

 

 

“나도. 보고 싶어.”

 

 

리키는 애인에게서 받은 음원을 감상하며 가라앉은 용기를 다시 북돋았다. 평소에도 클로이는 웅장하고 장엄한 찬송을 좋아했다. 병원에서 데이트를 하던 시절에도 둘은 환우들을 위한 성가대 공연과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하며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곤 했다.

 

 

“찬양 그 자체가 강력한 무기라 이건가.”

 

 

가사 가운데 ‘My praise is our weapon’ 이라는 문구가 가슴 위에 짙게 새겨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악마들과 싸울 때도,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도, 주의 백성은 늘 인간적인 수단에 의존하기에 앞서 신실하신 분의 영화로움과 친절을 기꺼이 찬양하였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이길 지 질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시간 너머에서 이미 이루신 승리를 신뢰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김칫국을 마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믿음이 항상 연약한 백성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래, 질 수야 없지. 형님이 무사히 깨어날 때까지 이곳을 지킨다. 어차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쪽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야.”

 

 

 

 

 

문득 저 서쪽 하늘의 저녁 노을빛이 유독 아름답게 와닿았다. 역설적이게도 빛이 흐드러지는 와중에도 그 속에서 희망의 향기가 느껴졌다.

 

 

 

 

 

 

 

 

*

 

 

 

 

 

황제 형제는 모든 큰 그림을 바라보며 거국적인 흐름을 연산하는 중이었다. 일들이 기묘하게 전개되는 중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적들의 궐기가 확대되는 듯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자멸적인 내분 또한 그 제곱에 비례하여 증폭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는 듯했던 저들이 가면 갈수록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충돌하며 엄청난 무리수와 악수들을 두기 시작했다. 다 같이 새를 잡는 올가미 위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거의 다다랐어, 형님.”

 

 

반전을 읽는 데 능통한 자, 마스터들의 우두머리. 그는 온갖 지역에서 벌어지는 거시적, 미시적 현상들이 복잡하게 뒤엉키며 난해한 테피스트리를 자아내는 패턴을 면밀하게 읽었다. 그는 임계점을 감지하는 데 비상했다. 황제는 수없이 명령을 내리는 정신 없는 와중에도 동생이 계측하는 바를 주의 깊게 참조했다. 적절한 기회가 다가오는 중이었다.

 

 

“펠렌드로크가 기대보다 훌륭하게 일을 해주는 모양이네.”

 

 

“사실 건전한 방식은 아니다. 이런 일에 재능을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아이이거늘, 아비로서 마음이 무겁군.”

 

 

“한 명쯤은 그런 재주를 발휘하는 친구가 있어야지. 잊지 않았겠지?

 

 

형님과 나도 우리 내부의 연방의 첩자들을 뽑을 때는 그보다 더한 일들도 여럿 했었잖아. 펠렌드로크는 우리로부터 그런 재능을 물려받은 거야.”

 

 

아우의 지적에 알폰스는 가볍게 탄식하듯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우리에게도 그런 원죄는 있다만, 그래도 아들들 세대마저 이런 수 싸움에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 세상은 변함없이 험난한 걸. 알렉시스에게 영예와 평화의 시대를 물려주길 바란다면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저 낡아 빠진 적들을 쥐고 함께 바닷속으로 투신해야겠지.”

 

 

대화하는 와중에도 대공과 황제의 눈은 모든 현상들이 수렴하는 임계점의 등장을 모니터링하였다. 의도치 않은 변수이긴 했지만 이번 내란이 확산되자마자 시의적절하게 펠렌드로크가 부리는 비밀스러운 수족들이 적들 내부로 공작(工作)을 부리기 시작했다. 교란, 역정보, 이간질, 분열 유도, 유인, 그 외에 온갖 전략들까지 동원되는 듯했다. 수 싸움에서 그 교활한 황자를 능가할 책략가는 저쪽 측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속수무책으로 계략에 휘말리는 분위기였다.

 

 

그 효과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제는 엄청난 카오스 현상으로 이어져 생각지도 못한 블랙 코미디를 자아내고 있었다. 내분이 어찌나 거세졌는지 브리튼 측에서 개입하기도 전에 반역자들이 함께 서로의 머릿채를 잡고 자폭할 기세였다. 이미 제어를 잃었기에 그들의 무질서를 통제할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들이 기회를 낭비하는 바람에 거의 모든 잠정적 원수들이 빛 아래서 훤히 드러났다. 주요 멤버가 누구 누구인지, 끄나풀들이 누구인지, 심지어 간접적으로 연루된 자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조금이라도 연루된 회원들이 누구인지도. 감춰졌던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 그들의 범죄 행각이 물증으로 확보되었고 체포 또는 즉결 처분할 명분도 세워졌다. 굳이 계엄령을 발동하지 않고도 법에 의거하여 제거할 기반이 확립되었다.

 

 

“드디어!”

 

 

데이터들의 홍수 속에서 최적의 타이밍을 읽어낸 대공은 쾌재를 불렀다. 그 신호를 빠르게 포착한 황제는 즉각 마음 속에서 예비하며 모아두었던 모든 작전들을 실행으로 옮겼다. 그의 신호가 모든 수족 기관들에 하달되었다.

 

 

“혼돈의 나선들이 멸망의 수렴점으로 모여들었다.”

 

 

“마침내 왔군.”

 

 

극단의 세력과 극단의 세력들이 서로를 찌르며 자멸하듯 공멸하여 자신들의 죄상을 폭로하는 지점에 이르러 무방비에 놓이게 되자 타이밍이 도달했다. 마치 입자들이 가속기 속에서 쌍소멸하듯 그들은 서로를 나란히 구덩이로 밀어넣었다. 누가 더 어리석은지를 두고 경쟁이라도 하듯 각종 코미디를 연발하였고 이제는 쇠약해진 모두를 일망타진할 때가 이르렀다.

 

 

“형님, 슬슬 준비하시죠.”

 

 

“이미 버튼은 눌러졌다.”

 

 

지금부터는 황실의 시간이다. 그의 충성스러운 군단이 각계각층에서 청소를 개시하였다. 대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축이자 사상전에서도 승리했었던 전설적인 영웅인 알폰스를 그들은 너무도 과소평가했다. 이제 그 대가를 맞게 되리라.

 

 

동시에 또다른 주체도 대공이 계산해낸 절호의 타이밍을 포착하였다. 비블로스였다. 비블로스도 황제와 거의 동시에 행동에 나섰다. 잠시 보류해둔 모든 카드들이 발동되었다. 인간계의 사령탑과 기계 세상의 사령탑, 둘은 한꺼번에 덫 속의 사냥감들을 향해 화살을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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