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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59회 [2부] 80화. 가짜의 가짜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09 | 회차평점 0 0

 

 

 

로빈은 제로스의 저택 안에서 초조히 시간을 떼웠다. 책장에는 온갖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치 국립도서관마냥 문학부터 비문학까지 거의 모든 문헌이 담긴 만물 백과의 공간 같았다. 그는 이것 저것 뒤적거리며 부산해진 마음을 제어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집중되지 않았다.

 

 

그 동안 제로스는 홀로 분주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로빈은 몹시 궁금했지만 자신의 주제를 알기에 함부로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고 잠잠히 기다렸다. 이윽고 제로스가 대강의 채비를 마칠 쯤에 그가 소환한 손님들이 당도했다.

 

 

“들어간다?”

 

 

“응, 문 열어줄게.”

 

 

자동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둘 다 선글라스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감추고 있었는데 한 명은 성인 남성, 다른 하나는 여성이었다. 얼굴을 가리기는 했어도 얼추 드러난 피부를 보아 스무살을 막 넘긴 듯한 젊은이들이었다.

 

 

부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체격에서 나오는 위압감이었다. 남성 쪽은 황금 비율의 완벽한 체형에 190cm를 넘는 근육질의 훌륭한 몸을 지녔다. 옷으로 겹겹이 싸맸음에도 그 조화로운 아름다움과 아우라가 도저히 가려지지 않았다. 여자 쪽도 여성 기준으로는 꽤 큰 키에 그 어떤 모델보다도 더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였다. 로빈은 압도적인 기운의 두 사람의 등장에 긴장하였다.

 

 

“어서 와.”

 

 

제리는 밝은 미소와 함께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하였다. 십년지기 친구나 가족을 맞이하는 듯한 편안함이었다.

 

 

“저분들은?”

 

 

“형제들이에요.”

 

 

“네?”

 

 

로빈은 그제야 저들 사이의 저 친숙함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유독 여자 쪽이 낯이 익었다. 그녀는 천천히 모자를 벗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다. 이내 여신이라 불리우던 그 찬란하고 고귀한 미모가 훤히 드러났다.

 

 

“황녀님?”

 

 

“오랜만에 뵙네요, 비서관님. 세 달 만에 뵙죠? 한 번에 못 알아보던데, 제 변장이 그런대로 통한 모양이네요.”

 

 

빛이 뿜어지는 듯한 착각과 함께 로빈은 정신이 잠시 얼얼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아델바이스 황녀의 그 광채에 넋이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로빈도 전에 공적인 자리에서 알렉시스 황태자와 함께 황녀를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매번 그랬듯 지금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혼을 빼앗는 매혹이랄까. 너무도 존귀한 보석을 발견했을 때 그것 앞에 감히 손을 내밀어 더럽힐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체험이었다. 사실 이것은 로빈만의 일은 아니고 거의 모든 젊은 남성들이 마찬가지였다.

 

 

“제 여동생이에요. 제 증조부이신 전전대 황제의 ‘정식 후손’ 가운데 유일한 홍일점이죠.”

 

 

제리의 소개에도 여전히 말문이 막혀 넋이 나간 채로 선 비서관. 황녀는 그에게 다시금 정식으로 악수를 청했고 비서관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황송한 기분으로 그 존엄한 고운 손을 잡았다.

 

 

“변함 없이 아름다우시군요.”

 

 

“고마워요.”

 

 

제리도 여동생이 자랑스러운지 저도 모르게 어깨에 위세가 들어 갔다.

 

 

“아델의 참된 진가는 외양이 아닌 지혜에서 발견되죠. 그녀가 제 계획을 보조하고 도울 참모가 될 겁니다.”

 

 

알렉시스를 제외하면 형제들 가운데 가장 다방면에서 넓고 깊게 학식을 섭렵한 그녀. 또한 단순히 지식에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판단력과 슬기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로스가 아무리 고도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주체이지만 그의 책략을 현실성 있게 다듬고 보충해줄 모사(謀士)는 필수불가결했다.

 

 

아델바이스는 교수이자 학자로서 시대를 풍미하는 인재였다. 수많은 명강의와 저서를 통해 대중과 엘리트들 모두에게 고풍스럽고 유용한 학식을 풍성히 전달하는, 이 시대 교육계의 높은 산맥. 허나 그 모습도 빙산의 일각일 뿐, 그녀의 진정한 능력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채 감춰져 있었다.

 

 

“제리 오빠,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공유하자. 듣고 오빠의 계획에 약점이 있다면 지적해줄게. 즉석에서 토의하면서 교정해가자.”

 

 

“오케이.”

 

 

“그런데 혹시 비서관님도 토의에 참여하시는 거야?”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동참하시기로 했으니까.”

 

 

“저, 저기…….”

 

 

뭔가 복잡한 대화가 오갈 것을 직감한 로빈이 손을 들었다.

 

 

“저는 어차피 크게 도움도 되지 않을 듯 하고, 솔직히 황자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거들기에도 제 능력이나 지혜가 탐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세 분께서만 사적으로 논의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제로스가 딱 잘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저를 믿고 중요한 소식을 전해준 당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그리고 당신은 유능한 사람이에요. 우리 형의 안목을 함부로 간과하지 마세요. 또 무엇보다도 당신이 동참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죠.”

 

 

제로스는 현재 자신과 로빈의 목에 착용된 휴대용 원거리 뇌파 교환 단말기를 가리켰다. 비블로스를 염두에 둔 지적이었다. 그 즉시 로빈도 이해했다. 비블로스처럼 한없이 완벽한 인공지능 기계는 외부에서는 예외적인 조건 없이는 절대로 접근할 수 없다. 지금은 오로지 단 하나의 정식 루트만이 허락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비블로스의 본체이자 비블로스와 일시적인 연동이 된 상태인 로빈이었다. 즉 제로스가 비블로스에게 대화를 부탁하려면 로빈이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제로스는 곧바로 본론으로 돌입했다.

 

 

“난 솔직히 ‘그들’의 움직임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확신할 수 없어. 대략 백 가지 정도의 시나리오를 상상해봤어. 일단 그게 내 두뇌로는 한계였지. 비블로스는 수조 가지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 한 것 같더라. 그의 히든 메시지를 읽어보니 내가 고민한 것과 겹치는 쟁점들도 많이 떠올렸더라.”

 

 

그는 여동생과 형의 비서에게 현재 돌아가는 상황, 배후에서 벌어지는 일들, 각계각층의 숨은 배반자로 추정되는 용의자들, 의심되는 세력들, 그들이 숨기는 것으로 의심되는 카드들, 그 외에 각종 사회 시스템 내부의 위험요소들을 공유하였다. 알렉시스 밑에서 실무를 해본 로빈은 금세 알아들었고 엄청난 두뇌를 소유한 아델바이스 역시 한 치의 빠짐없이 이해하고 암기하였다. 제로스와 아델바이스 사이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알렉시스 오라버니께 일이 생기니 가당찮은 미물들이 꿈틀거리는구나.”

 

 

그녀의 얼굴 위로 온실 속 화초답지 않은 강인한 의지가 드러났다.

 

 

“어떤 접근법이 옳을까? 성동격서를 해서 내분을 유발할까? 역정보로 발을 묶어둘까? 아니면 정보국의 도움을 활용해야 하나? 선제적으로 심장부를 공략할까?”

 

 

그녀는 수첩 위에 수많은 가짓수들을 그려내며 대화 중에도 고심하였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알았다. 자신은 에쉬튼처럼 실전이나 실무에 탁월한 것이 아니니 작전의 핵심을 구상한다기보다는 그저 돕는 자문 역이다. 이렇게 냉철하게 제 분수를 바로 이해하는 것도 그녀의 장점이었다.

 

 

“좋은 의견들을 제시해줘서 고맙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일을 시행할 역량이 없어. 실무를 행하려면 권력이나 권한이 필요해. 세르빈 형이나 유타 형처럼 재력과 경영권이 있거나, 엘리어트 형처럼 정치력이 있어야 하지.

 

 

아니면 펠렌드로크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책략가가 되거나. 그 인간은 정말 경계선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길을 동원하지. 내게는 그런 길이 맞지 않아.”

 

 

반면에, 제로스에게는 오로지 제로스만이 해낼 수 있는 발상이 있다. 다른 형제들처럼 정치인도, 관료도, 기업인도, 총독도, 의원도 아닌 보통의 자유로운 시민이기에 해낼 수 있는 일, 그러나 엄청난 상상력과 영적 지혜를 지녀야만 할 수 있는 일. 이것이 제리의 이점이요 기회였다.

 

 

사실은 제로스의 이런 톡톡 튀는 재능의 상위 호환 버전에 겸해 앞서 언급한 형제들의 모든 권한과 재능을 합친 것 이상의 현실적 능력을 동시에 소유한 한 인간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든든한 사람은 지금 자리에 없다. 이제 형제들은 맏형의 도움 없이 이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

 

 

 

 

 

“저들은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차원에 국한된 ‘그림자 정부’나 ‘신세계 질서 추구자’들로만 정의될 수는 없어. 저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영적 힘이지. 종교야. 그것도 통상의 종교와는 완전히 성질이 다른, 괴이한 주술적 마법이지.”

 

 

제로스는 그들이 비밀스럽게 행하는 온갖 주술 의식들과 오컬트적 행태에 대해서 몇몇 증거 자료를 통해 고발해주었다. 로빈은 믿기 어려워 했으나 아델바이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매우 태연스러웠다.

 

 

“충격적이네요. 어떻게 21세기에 저런 정신 나간 광기를.”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오던 관습이죠. 저들은 단순히 허상의 토템을 믿는 게 아니예요. 실존하고 명백히 작동하는 권능, 그것이 그들의 시스템이 의존해온 뿌리입니다.”

 

 

“하지만 황자님, 저들이 미친 주술 행위를 자행하는 범죄자들인 건 저도 알겠습니다만, 저 힘이 정말로 실존하는 권능이라고 믿습니까?”

 

 

초자연계에 대한 이해력이 탁월하다고 인정했기에 제로스의 도움을 찾은 건 사실이나 여전히 현실주의자인 로빈으로서는 다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세계였다. 마법 행위가 단순하게 미신적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적 능력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는 것은 저들이 실존하는 악령과 모종의 교접을 해왔다는 뜻 아닌가?

 

 

“믿기 어렵겠지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듯 사탄도 분명 존재합니다, 비서관님.”

 

 

“그, 그야 그렇겠지만.”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악의 인격화’를 말하는 게 아니예요. 힐렐과 그의 부하들은 창조된 인격체들입니다. 자아가 있고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있어요. 능력 또한 있죠. 그 능력은 단순히 인간의 마음에만 간섭하는 경지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죠. 하나님의 허락만 따른다면.”

 

 

요지는 이것이었다. 저들은 사탄을 숭배한다. 대외적으로는 자신들도 주님을 믿는다고 드러내긴 하지만 실상 저들이 부르는 ‘주’란 힐렐을 의미한다. 모양새만 여호와 하나님인 것처럼 포장했을 뿐 사실은 바알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들은 자신들의 주군인 힐렐을 다양한 버전으로 부르고 섬긴다. 때로는 부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조로아스터의 이름으로, 브라흐마의 이름으로, 또는 마이트레야의 이름으로 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최상층부는 결국 그 모든 이름이 곧 하나의 인격인 ‘사탄 힐렐’에게로 수렴된다고 믿는다.

 

 

그런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시오 만유의 창조주임을 확신한다. 이와 같이 두로와 에돔의 후손들도 자신들만의 신께서 보내주실 자신들만의 메시아를 고대한다.

 

 

“두로의 영적 후손들은 그 ‘메시아’의 예표로서 고대 두로의 장인인 ‘히람’을 숭상하였습니다. 자유건축가 연맹이 자신들의 지주로 모시는 그 시조도 바로 히람이죠.”

 

 

“열왕기서와 역대기서에 등장하는 그 히람 맞습니까?”

 

 

“맞아요.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때 도왔던 기술자이죠. 히람은 단 지파의 과부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었죠. 동시에 부친은 두로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단 지파의 유대인과 두로 족속의 혼혈임 셈이죠.”

 

 

“벌써부터 느낌이 좋지 않군요.”

 

 

“성경적으로 아주 분명한 예표이죠.”

 

 

예표? 무엇에 대한? 성경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 주일 학교 때 배운 것 이상으로는 그리 박식하지 못한 로빈이기에 의문이 들었다.

 

 

“여하튼 그자들이 자신들의 구세주를 기다린다는 거죠? 그가 나타나면 뭐, 브리튼 제국을 함락시키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주기라도 한답니까?”

 

 

“저는 그들이 그걸 기대하고 있노라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조금 레퍼토리가 다를 수도 있었겠죠. 어쨌건 이번 시대에는 명목 상으로나마 기독교 세계를 수호하는 주축은 우리 나라이니 저들로서는 우리를 무너뜨리는 데 혈안이겠죠.”

 

 

로빈은 왜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악인들의 메시아’에 대해 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잠잠히 대화를 들으며 사색하던 아델바이스는 이미 감을 잡은 눈치였다. 제로스는 자신의 계략의 본질을 천천히 드러내기로 했다.

 

 

 

 

 

“저들이 믿는 메시아는 아주 허황된 기대가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 사이비 컬트 집단이 믿는 ‘미륵불’이 정말 임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무슬림들이 믿던 마흐디도 결국 나타나지 않았잖습니까?”

 

 

“그건 우리 형이 먼저 선제 공격을 해서 뿌리를 뽑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기다리는 ‘그 메시아’는 다릅니다.”

 

 

제로스는 성경을 펼쳐 요한계시록 13장을 보여주었다.

 

 

“적그리스도입니다.”

 

 

“네?”

 

 

“소설이 아니예요. 그들이 기대하는 세상, 그 끔찍한 ‘신세계 질서’를 이끌 ‘빅브라더’, 성경에서는 그를 가리켜 적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짐승이죠. 사탄의 현현체이자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인류를 타락시킬 가장 사악한 자. 현재 세상의 모든 거짓 종교들이 기다리는 구세주, 그리고 ‘그들’이 직접적으로 기대하는 메시아. 그는 그 모든 악인들과 거짓 종교들을 사로잡은 뒤 자신의 종으로 삼을 것입니다.”

 

 

“하, 하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군요. 오늘날의 세상에서 그러한 존재가 어떻게 등장할 수 있단 말입니까?”

 

 

로빈이 믿기 어려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세상에서 악이 크게 번성하며 승리하는 동안에는 성경의 경고와 예언은 피부로 와 닿게 된다. 그런 시대에는 내버려둬도 종말에 대한 예언이 믿겨지고 회자되는 법이다. 심지어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 사이에서도 종말에 대한 음모론이 재생산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태평성대를 향해 나아가는 때에는, 특별히 브리튼 제국이 의로운 기치 아래 번영하여 모든 악을 제어하는 동안에는 그런 종말 예언이 쉽게 믿겨지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미래는 모르는 법이다. 브리튼이 영속되리라는 법이 있는가.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쳐도, 그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 해도, 적어도 저희 시대에 그런 존재가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로빈이 생각하는 이유는 알렉시스 때문이었다. 항상 그 엄청난 존재를 곁에서 모시다 보니 이런 고정관념이 확립되었던 것이다. 알렉시스를 꺾고 세상을 위험에 빠트릴 인간은 없다. 적어도 인간계 내부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 한들 그가 등장할 기회가 있겠는가. 문제의 그 세계 독재자가 되려면 일단 알렉시스부터 이기고 결승전에 올라야 하는데, 도저히 그런 그림이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저도 그렇게 여겨요.”

 

 

황녀가 도도한 목소리로 한 몫을 거들었다. 그녀의 절제된 음성 속에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황실이 존재하고 언약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불가능하죠. 큰 오라버니 자신이 직접 독재자가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오라버니의 성품은 그 누구보다도 올곧고 정의로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죠.”

 

 

이제 중요한 발상의 전환이 제기될 차례였다.

 

 

“맞습니다, 비서관님. 아델 말대로 형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 세상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긴 어려워요. 형은 일종의 억제 장치죠. 사탄이 직접 몸을 입고 성육신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형과 형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축복하셨기에 그런 범행마저도 거의 불가능할겁니다. 다만.”

 

 

제로스는 과감하게 한 가지 반전을 생각해냈다.

 

 

“거꾸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죠. 저들이 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리던 ‘악의 메시아’의 등장. 그것을 우리 쪽에서 미끼로서 던져볼 수도 있겠죠.”

 

 

“네?”

 

 

이번에는 로빈뿐 아니라 아델바이스도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적그리스도란 참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흉내낸 ‘가짜’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우리는 ‘가짜의 가짜’를 만들어 저들에게 던지는 겁니다. 그토록 인고하며 오랜 세월 숨고 참아온 그들도 이것만큼은 반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가짜의 가짜.

 

 

만들어진 가짜 적그리스도.

 

 

이것으로 어둠 속에 숨어있던 모든 자들과 그들에 가담된 모든 연합체를 단 한 명도 빠트리지 않고 수면 위로 끌어낸다. 확실하게 찔러 모두를 유인한 뒤, 지금이야말로 정말 최후의 결전이 임한 시대라고 믿게 한다. 마침 알렉시스가 쓰러진 지금,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그,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

 

 

비서관은 당췌 전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 머리와 눈이 핑글핑글 돌았다. 이제는 그의 상식선을 벗어난 방향으로 일이 흐르는 중이었다. 저 괴짜 청년은 도대체 뭘 계획했길래 저런 터무니없는 계략을 당당하게 제시한단 말인가?

 

 

 

 

 

“제리 형. 나 슬슬 답답한데, 좀 편하게 있어도 되려나?”

 

 

마침 아무 말도 없이 토론을 구경하기만 하던 또 한 명의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쓴 그 장신의 청년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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