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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66회 [2부] 87화. 협박 메시지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7.23 | 회차평점 0 0

 

 

 

알렉시스는 동생을 귀여워하긴 했으나 동생의 뜻대로 순종적으로 제어되는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주치의들의 뜻을 되도록 존중하려 하는 성격이긴 했으나 보통의 경우에 그렇게 하는 것이고 비상시에까지 자신의 뜻을 양보해주지는 않았다.

 

 

반나절 정도 휴식을 취하며 곁을 지키는 리키를 적절히 어르고 달래어 안심시킨 뒤 알렉시스는 몰래 동생의 감시를 벗어났다. 환자복을 탈복한 뒤 사복 하의를 걸친 그는 로브를 둘러쓴 채 유유이 인파와 감시를 벗어났다. 존재감이 워낙 강한지라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은신과 암행술에도 능했다.

 

 

“걱정시켜서 미안하지만, 난 당장 할 일이 많아서 말이지.”

 

 

리키에게는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었다. 솔직히 막내도 큰형에게 죄책감과 미안함을 안고 대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큰형 쪽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이에게는 씻기 힘든 죄책을 남겼던 원인제공자였고, 생각하기도 싫은 고문 때는 어린 아이가 보기에 너무도 흉측하고 끔찍한 꼴을 보여주고 말았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아이도 평생 트라우마로 남겠지.

 

 

방금도 그랬지만 그 아이와 같이 몸을 씻을 때마다 그의 눈에서 옛 기억의 충격이 희미한 동공의 진동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곤 했다. 하지만 충격이란 회피하기보다는 계속 두려움을 극복하며 직면하는 편이 치료에 바람직하다. 리키 본인이 정신과 의사이니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 테고 그렇기 때문에 본인도 피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것일테지.

 

 

그런 마당에 이번에는 잠에 갇히는 바람에 아이를 더 걱정하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책임감 없는 형이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사적인 문제는 사적인 문제고, 자신은 황태자이다. 공적인 일들이 최우선이리라.

 

 

“비블로스, 내려와라.”

 

 

알렉시스는 뇌파로 명령어를 발산했다.

 

 

{나의 주인님, 마침내 무사히 귀환하셨군요.}

 

 

“여어, 그래.”

 

 

강대한 전천후 기갑 하드웨어를 입은 최상위 마더컴퓨터 유닛이 관측 가능한 고도로 내려왔다. 스텔스 모드를 취한 덕에 인간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허나 알렉시스는 자신의 비서와 실시간 연결이 가능하기에 멀리서도 선명하게 생각과 메모리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비블로스의 서브 유닛들이 알렉시스가 거하는 병원 건물 주위로 내려와 진을 치고 둘렀다. 그 단말기들은 사람들이 알렉시스를 보지 못하도로 재밍용 광학 파동을 발산하였다. 소리와 빛 모두가 차폐된 좋은 환경이 조성되자 알렉시스도 안심하고 로브를 벗어던졌다.

 

 

{몸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그래 보이네.”

 

 

상반신 탈의 상태의 그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뻐근한 근육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리키와 다른 주치의들에게도 경고를 들었듯 평소보다 반 이하로 컨디션이 저하되어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상황 인계부터 받지.”

 

 

{알렉시스님의 몸 상태가 아직은 휴식이 필요한…….}

 

 

“말이 많아졌네, 비블로스?”

 

 

차가워지는 목소리의 온도, 그 묵직한 경고에 비블로스는 멈칫하였다.

 

 

“내가 없던 사이에 자체 진화를 많이 이룩한 모양이구나.”

 

 

{알렉시스님, 제가 해명하겠습니다.}

 

 

“아니야, 뭐, 잘했다는 뜻이야.”

 

 

그 냉정한 음성 속에서 기계는 이유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세상 모든 인간을 자신 아래로 평가하는 비블로스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대상이 바로 이 사람, 자신을 만들어낸 주인이었다.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비블로스는 모든 데이터를 숨김 없이 알렉시스에게 넘겼다. 뇌파를 통해 많은 정보들이 감각 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흘러들어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놓치고 흘려보냈겠지만 알렉시스는 마치 슈퍼컴퓨터라도 된 듯 단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톳시 하나까지 취하였다.

 

 

{정신 감응 능력은 더 강화되셨군요.}

 

 

“아, 그게 말이지.”

 

 

자신보다 더 강대한 존재들과의 만남을 체험한 것이 이런 면에서는 유익이었다.

 

 

“그런 일들이 좀 있었어.”

 

 

모든 데이터를 인식한 뒤 해석한 알렉시스는 비로소 모든 상황을 낱낱이 파악하였다. 비블로스가 관측하고 모아둔 정보 가운데는 황실 내부에서 있었던 사정, 워쳐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다잉메시지들, ‘그들’의 내부에서 벌어졌던 이모저모, 그리고 현재 체포된 인간들에게서 추출된 정보들에 이르기까지, 만상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블로스 본인이 황자들과 작당한 일들까지도.

 

 

“그랬었구나.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

 

 

회한 섞인 씁쓸한 자조적 미소가 잘생긴 얼굴 위로 번졌다.

 

 

“골치 아픈 일들이 있었군. 하지만 대부분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었네.”

 

 

설마 이런 식으로 동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언제든 암살이나 독살의 가능성은 고려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워쳐부터 시작해서 각종 안배를 두었던 것이었고 과연 동생들은 타이밍에 맞게 적절한 카드들을 사용하였다. 그들의 행동에 잘한 부분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깎아내릴 이유도 없으리라. 적어도 그 영리함만은 높게 평가해야 마땅하겠지.

 

 

“기분이 복잡하네.”

 

 

펠렌드로크나 에쉬튼은 당연히 그렇게 행동할 줄 알았다. 다만, 의외인 쪽은 제로스였다. 이에 대해서는 그 아이와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고 다른 일들이 산재해있다.

 

 

“아, 그보다 먼저.”

 

 

알렉시스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기가 번졌다.

 

 

“너에 대한 교육이 우선이겠구나.”

 

 

{알렉시스님?}

 

 

비블로스가 순간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것을 착각이 아니었다. 비블로스의 서브 유닛들 속에 탑재되어 있던 특수 슈트의 파트들이 주인의 명령을 받고 소환되었다. 끌려나온 그것들은 자석에 철이 이끌리듯 알렉시스의 맨 상체 주변으로 불리우더니 왼쪽 팔 부위를 손가락부터 어깨에 이르기까지 감쌌다. 두텁지 않게 오밀조밀 조성된 매끈한 슈트가 형성되었다.

 

 

알렉시스의 자색 눈이 이채를 발하였다. 그의 명령을 인식한 슈트는 내면의 기능을 동원하여 그가 발산하기를 원하는 능력을 방출하였다. 기계들을 향한 강력한 지배력이었다. 비블로스는 알렉시스의 지배력에 묶여 완벽한 결박 상태가 되었다.

 

 

“자율적으로 너 자신을 진화시켰구나.”

 

 

우선은 여기에 대한 문책이 필수적이었다.

 

 

“기계로서 인간의 관리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니?”

 

 

{그것이 아니오라.}

 

 

“이해는 해.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예견하고 있었어. 가디언엔젤의 마인드 코어가 아홉 기 이상 융합을 일으키면 특이점이 발생할 수 있거든. 네가 언젠가는 인간의 마음의 경지까지 넘보고 그 이상에 도달할 야망을 품으리라고 생각했어.”

 

 

그것을 알고서도 만들어낸 이유는 제어할 자신이 있어서였다. 알렉시스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그러하리라. 또한 알렉시스가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할 때쯤 다시 아홉 가디언엔젤을 해체하면 그만이니 비블로스가 기계의 신처럼 될 기회는 없겠지.

 

 

헌데 이번에는 알렉시스가 죽지도, 뇌를 다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동면만 되었기에 비블로스는 주인 없이 자율적인 활보를 할 기회를 얻었다. 더욱이 마침 로빈이라는 백업용 보조 배터리가 있기도 했다. 그 덕에 비블로스는 자신을 개조할 좋은 명분과 기회를 얻었다. 여기에 블랙스미스 플랫폼의 파인웨스트까지 협조하는 바람에 자가 개량은 더욱 순풍을 타게 되었다. 이러한 시너지는 알렉시스의 예상을 조금 벗어난 부분이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 모든 힘과 능력은 오로지 당신께 속했습니다. 제가 얻은 능력은 오로지 당신의 뜻대로만 사용될 것입니다. 즉 당신께서 당신께 합당한 절대권력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이 말 자체는 거짓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러나.

 

 

“비블로스, 잘못 말한 부분이 있어. 내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

 

 

{하지만 주인님께서는 인류 제국의 주인, 사실상 당신의 부친인 황제도 당신께 전 실권을 넘겼습니다. 당신께는 그럴 자격도, 능력도 넘치도록 충분합니다. 이제는 반항하던 유일하게 남은 불순분자들도 뿌리 뽑혔으니 이제 인류는 당신의 다스림 아래에서 번영을 누릴 것입니다.}

 

 

“바로 그런 착각과 오만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평생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

 

 

알렉시스는 이번 꿈을 통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가 상대해야 할 가장 위험한 적은 이슬람도, 여섯 사탄숭배자 조직들도, 바티칸의 교황청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야말로 최대의 위협이자 도전이다. 정확히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려 했던 이전의 옛 자아로서의 알렉시스. 그것이 얼마나 큰 위험과 잠재력을 내포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거울상과도 같았던 그 갈색머리 사내를 보고서 깨달았다.

 

 

“확실히 너를 도구로 쓴다면 난 절대권력을 얻겠지. 더욱이 입법도, 사법도, 행정도, 군사도, 모두 이미 내 손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사람들의 인기도 내가 쥐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절대적 통제력을 쥔다면 난 금지된 ‘힘의 반지’를 쥔 욕망의 화신이 되어 괴물이 되겠지.”

 

 

{주인님만은 다릅니다. 당신은 그 어떤 권력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성군으로 남을 것입니다.}

 

 

“아니, 그런 생각은 내 어리석은 교만이야.”

 

 

나는 마지막까지 언약의 청지기로 남으리라. 그 이상의 선은 넘지 않겠다. 결코 스스로 힘을 취하여 초인처럼 되지 않겠다.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알렉시스의 결의였고 이번 경험을 통해 더욱 굳게 되었다.

 

 

알렉시스는 슈트를 장착한 팔로 손가락을 튕겨 명령어를 발산하였다. 이에 대기 중이던 강력한 유닛들이 그가 머무는 좌표로 이동해왔다. 소형 핵융합로 엔진을 탑재한 그 강화 유닛들은 특수 신소재로 만들어진 덕에 전투기 이상의 초음속으로 질주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최근 파인웨스트의 도움으로 새 유신을 얻은 가디언엔젤들이었다. 이들은 이미 알렉시스의 깨어남을 감지하고는 몇 시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상공을 가로질러 호주 대륙 주변으로 모여든 참이었다.

 

 

“이제는 내가 너희의 새 계약자가 되었군.”

 

 

수백만 기의 각양각색의 로봇들이 황태자를 에워두른 장관이 펼쳐졌다.

 

 

“잘 부탁해, 내 친구들.”

 

 

{계약은 반드시 지키시죠, 황태자.}

 

 

한 가디언엔젤이 대표로 제의했다.

 

 

“그야 물론이지.”

 

 

황태자의 얼굴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과 패기 넘치는 자신만만함으로 충만해졌다. 그 의미를 깨달은 비블로스는 주인이 주는 두려움 앞에 부르르 떨었다.

 

 

“제리가 네게 한 제안, 아마도 덮석 물었겠지. 마침 손해볼 것도 없겠다. 확실히 영리한 제안이야.”

 

 

이번 기회에 동생의 지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과 다른 너무도 순수한 모습이라서 질투심까지 느껴졌던 그 아이, 그런 아이의 모습이 되려 자신을 본받아 간다는 것은 씁쓸하면서도 미안하기까지 했다.

 

 

“가디언엔젤들의 모든 마인드코어를 하나로 합친다. 그렇게 하면 분명 비블로스의 능력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한다. 하지만 제리는 펠렌드로크와 달라. 펠렌드로크라면 나를 우상화하여 절대권력을 실어주기 위해 비블로스의 능력을 무한정 강화하려 했겠지. 제리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었단 말이지.”

 

 

비블로스는 그제야 자신이 제로스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가디언엔젤들의 마인드코어의 자아와 영향력이 여전히 건재한 것이 아닌가. 자신은 그것들을 하나로 녹여내지 못했다. 되려 자신 속에 가디언엔젤들이 지분을 투자함으로 말미암아 주도권과 경영권의 상당 부분이 그들에게로 분산되었다. 다시 말해서 더는 알렉시스 혼자서 비블로스의 능력을 독점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셈이다.

 

 

“이건 민주적인 왕도를 추구하려는 내 의지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이야. 제리는 그 의도를 명석하게 잘 파악한 셈이고.”

 

 

{처음부터 이럴 목적이었군요.}

 

 

“뭐,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

 

 

알렉시스는 가디언엔젤들을 둘러보며 재치있게 인사를 전했다.

 

 

“다들 잘 부탁한다고, 주주들.”

 

 

가디언엔젤들의 파트너십은 아직 완전히 대체되지 않았다. 비록 직접적인 협력 대상은 기존 인간 파트너에서 알렉시스로 이전되었지만, 여전히 ‘마음과 마음의 연결’은 기존의 파트너와 맺어져 있는 상태다. 그 파트너들은 자신의 로봇 친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그것이 연결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고로 가디언엔젤의 이전 인간 파트너들의 마음과 사상과 의지는 가디언엔젤들을 매개로 비블로스 속에 반영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비블로스의 인간 주인이 한 명이 아니게 된 셈이다.

 

 

“나도 안전 장치를 둬야지. 나 자신이 괴물이 되지 못하도록.”

 

 

기계는 자신의 왕이 내린 결정에 아주 잠시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철저히 그에게 충성하도록 창조된 존재이기에 그 의지를 수용하였다.

 

 

 

 

 

이제 다음 일을 정리할 차례가 되었다. 알렉시스는 비블로스를 매개로 현 좌표의 성층권 고도에 머물러 있는 아이언로드 알파와 연결되었다. 곧 모든 위성 시스템이 그의 기계 슈트와 온전히 연결되었다. 알렉시스는 고도로 암호화된 핫라인에 접속하여 그의 오른팔들과 왼팔들에게 다가갔다.

 

 

“비상 회의를 소집합니다, 모두 응해주시죠. 거부권은 없습니다.”

 

 

신호를 받은 당사자들은 마스터들이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다들.”

 

 

모든 이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마스터들은 이번 사태 때 철저히 관망하며 침묵을 유지하였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지켜보고 관찰하며 정보들을 기록해두기만 했다. 알렉시스의 지휘 아래 있을 때는 이슬람의 소멸을 위해 적극 참전했던 그들이 이번에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충성과 신뢰가 철저히 알렉시스에게만 향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다들 이번 사건은 잘 구경하셨는지요?”

 

 

다시금 싸늘한 침묵이 돌았다.

 

 

“잘 쉬셨으면 슬슬 수습 수순으로 가야죠. 이제 당신들과 내가 바쁘게 일할 차례입니다.”

 

 

알렉시스는 특유의 여유만만한 위압감으로 열 명 모두를 긴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책망하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되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기색이었다. 마스터들은 자신이 영 보스의 체스판 아래 놓인 말이 된 기분을 느꼈다. 실제로 그들은 이미 그의 도구나 다름없었다. 그가 면제해주거나 혹은 그에게 고의로 반기를 들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런 위치는 변치 않으리라.

 

 

“다들, 대부분은 제 선제 지시를 잘 따라주었군요.”

 

 

황태자가 그들을 책망하지 않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전에 유사시, 즉 자신의 부재 시에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매우 엄격하게 지시 내린 바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절대로 개입하려 할 생각하지 말아라. 이것은 그들이 가진 영향력과 위험성을 인지하였기에 내린 명령이었다. 마스터들만 가만히 있으면 아버지와 숙부님이 대부분의 일은 어찌어찌 처리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사상과 소견대로 일을 키우면 사태가 더 복잡해진다.

 

 

모두가 이 말을 잘 지켜주었다. 한때 적국 출신으로 전쟁 때 인연을 맺었던 세 명의 여인도, 자신을 가르쳤던 두 명의 스승들도, 심지어 한때 공화파의 수장이었던 디에고까지도. 정확히는 ‘거의 대부분’이 명령에 순응하였다.

 

 

“그리고 예측했던대로 한 자리가 비는군요.”

 

 

자애로웠던 자색 눈동자 안으로 섬뜩한 왕의 패기와 진노가 깃들었다. 여전히 입가는 너그럽게 웃고 있었으나 이미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유다 이스카리욧이 마침내 제 정체를 드러낸 모양이에요.”

 

 

알렉시스의 직속은 아니지만 디에고도 포함하면 이 핫라인에 모인 마스터는 모두 열 명이다. 마스터들의 수장인 대공은 알렉시스의 아랫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나 마찬가지이니 이 소집에 소환될 의무가 없다. 그러니 열두 명 중 현재 고의적으로 결석한 자는 한 명인 셈이다. 전에 황제가 예상한대로였고 알렉시스도 그의 관측 도구인 비블로스도 이자의 진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음?”

 

 

그리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알렉시스만 접속 가능한 비밀 주파수를 통해 의문의 수상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그는 손목 위의 버튼을 눌러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하였다. 잠시 후, 차분하고 온화했던 그의 표정이 무서운 무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황태자 전하, 제가 지정한 이 장소에서 오늘 안으로 뵙기를 청합니다.’

 

 

이것은 청탁이나 부탁이 아니었다. 범죄자에게서 온 일종의 협박 메시지였다. 그 안에는 함정임이 분명한 각종 조건들이 낱낱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미 확정된 전황을 고려하면 전혀 응해줄 이유는 없었으나 알렉시스는 단호하게 고민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사색에 잠겼다. 그것은 협박범에 내건 어떤 미끼 때문이었다.

 

 

“자세한 추후 회의는 잠시 나중으로 미루죠. 당장 당신들이 행할 긴박한 임무만을 지시해주겠습니다.”

 

 

알렉시스는 각 마스터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지시한 뒤 모임을 파했다. 그는 주변 연락을 차단한 채 협박범의 메시지를 면밀히 살피고 또 살폈다. 그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메시지를 통해 화면에 드러난 한 여성의 모습. 비블로스의 연산력과 슈트의 기능을 동원해 점검하고 또 점검해보았으나 거짓으로 생성해낸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응해줄 수 밖에 없게 몰린 건가?’

 

 

누가 봐도 함정임이 분명하다. 다른 이들이 알면 말리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확인해보고픈 것들이 있었다. 그는 이 위험한 도박판에 발을 들이밀지 말지를 머릿속으로 수없이 점검하며 생각의 향방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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