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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71회 [2부] 92화. 동요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8.04 | 회차평점 0 0

 

 

 

나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분은 생명력 넘치는 밝은 햇살과도 같은 분이셨다. 이색적인 민족들의 혼혈이셨던 이방인 출신. 그러나 누구보다도 브리튼을 사랑하던 애국자이기도 하셨다. 당대 제일의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나이, 문화, 인종의 장벽을 넘어 어머니와의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또한 그녀는 할아버지에게도, 삼촌들에게도, 황실의 모든 구성원들과 충신들, 브리튼의 지도자들에게 인정받던 모범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바는 기억이라는 흐릿한 렌즈를 통해 굴절되어 불분명하게 형성된 상에 불과하다.

 

 

당시의 나는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고 엄밀한 의미에서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연인의 상태였다. 명석한 두뇌 덕분에 아버지께 들은 하나님에 대한 성경 말씀을 모두 이해하긴 했으나 지적인 이해가 복음에 대한 영혼의 반응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로 여덟 살 이전의 어린 나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지 못했고 세상의 이치와 진리를 분별함에 있어서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었다. 극도로 영리한 신동 중의 신동, 이것이 세간의 나를 향한 칭찬이었으나 나는 진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눈뜬 장님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어렸던 나는 어머니에 대해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후향적인 이해를 통해 과거의 내 기억들을 다시 재정렬해보게 된다. 어머니는 지혜롭고 재치 있고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분이셨다. 그분의 비전과 의견,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분명 깊이가 풍성했으며 틀에 얽매이지 않았고 남들보다 앞선 미래를 볼 줄 아셨다. 선각자였으며 혜안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분의 생각들이 과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생각들이었을까?

 

 

분명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이룬 두 주축 중 하나는 어머니이다. 나머지 하나는 아버지이셨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나의 근간은 전통, 언약, 성경, 복음, 순종, 그리고 나라를 향한 충성심과 사람들을 향한 신실함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로 대표되는 나의 또 다른 근본은 혁신을 향한 열망, 창의성, 자유로움, 새로움을 향한 갈구, 재치 있는 창안물들에 대한 발견이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브리튼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긴 했으나 그 구체적인 방법론과 전략은 종종 어머니에게서 배운 재능들에 기초한 경우가 많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의 생각들과 가치관은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실만 한 것들이었을까? 쓰라린 마음으로 진실을 직면한 결과,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인 답변을 내려야 했다.

 

 

어머니가 원하던 바는 브리튼이 소유한 능력인 ‘언약’의 힘을 모든 이에게 보편화하여 세상을 혁신으로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분명 하나님의 실존과 능력을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의미를 묵상하기보다는 그 능력 자체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녀의 말대로 세상이 그 힘의 특혜를 같이 누린다면, 분명 인류 전체의 번영이 빠르게 임할 것이다. 비슷한 예로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의 특혜를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누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 역시 그런 소원을 가졌던 적이 많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옹졸하시고 인색하신 것인가? 신성모독적인 그런 질문은 감히 담고 싶지도 않다.

 

 

만일 구원 또한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 가운데 임하는 것이라면, 언약 또한 그분의 주권과 뜻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베풀어지고 누군가에게는 거둬지는 것이리라. 우리는 그분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왜 누군가에게는 베풀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느냐며 토기장이에게 질문할 수 없다.

 

 

어머니는 프로메테우스와도 같으셨다. 그분은 하나님께 감히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나도 한때는 민주적인 세상을 바랐다. 지금도 내 마음 한켠에는 그 소망이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전에 하나님께 의견을 물어야 했다. 내게 주신 것들을 모두에게 나누기를 바라시는, 그 때와 그 시기를 그분의 뜻에 맡겨야 했다. 나는 경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어머니 역시 그러했다.

 

 

지금에 와서야 보건대 그때의 의문과 꺼림칙함들이 조금 이해가 된다. 어머니는 ‘하와’이셨다. 그분이 ‘아담’이신 아버지에게 맡겨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분명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가장 어울리고 합당한, 훌륭한 짝이었다. 그러나 가장 완벽했던 결혼인 인류 최초의 부부 안에서도 미혹과 실수는 존재했다. 원래는 죄가 없었던 하와마저도 죄의 유혹에 넘어갔으며, 자신의 넘어짐을 남편에게마저도 전이시켰다.

 

 

어머니는 내가 여덟 살이던 시절에 명을 달리하셨다. 사인은 분명 독살이었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물은 밝혀지지 않았고 범인들 역시 발각되지 않았다. 이유는 그녀를 죽게 만든 물질이 ‘물질계의 법칙’에 속한 것들이 아닌, 더 고차원적인 세계의 메커니즘을 따르는 독이었기 때문이다. 저주와 마법의 매개물. 당대의 우리에게는 그런 것을 분석하거나 이해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독에 당하신 이후 서서히 건강을 잃어가셨고 병상에 누워 아무런 치료약의 효력도 받지 못한 채 천천히 숨을 거두셨다.

 

 

아버지와 그분의 쌍둥이 형제인 삼촌은 확신하셨다. 그녀의 죽음에 관여한 무리가 누구인지를. 어린 나는 가문의 오랜 비밀인 그 이야기들을 당장 듣도록 허락받지 못했다. 어느 정도 자라나 진리를 올바르게 분별할 능력이 생긴 뒤에야 그 지식이 허락되었다. 이 세상 배후에 역사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과 그림자 권세. 그간 오대양 육대주의 배후에서 각종 전쟁과 전염병과 비극을 관장해온 흑막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는 사탄 마귀, 힐렐. 나는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를 배웠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서 그들에게 복수하리라 결심했다. 그러자면 권세를 얻어야 했다. 복수할 힘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성경은 사적인 복수를 금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정부’에게는 사법권을 행사하여 법적 정의를 집행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나는 정식으로 그 권위의 자리에 올라 대리 심판자로서, 정당한 공의를 집행해야 한다. 그 일념으로 아버지 밑에서 배웠고 재능을 갈고 닦았다. 동료들을 얻었고 전쟁 영웅이 되었으며 사업을 일궈 정직하면서도 혁신적인 창조성으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와 주님께 인정 받고 국가 전체의 대리 통치자로 권한을 위임 받았다.

 

 

그러나 마음 한 켠 늘 불편했던 진실을 직면한 나는 큰 혼란에 빠졌다. 만일 어머니도 그들과 같이 깨끗지 못한 자였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알렉시스의 마음은 깊은 심연 속에 가라 앉은 돌마냥 근심으로 짓눌렸다. 세일린의 배신은 그리 큰 충격이 아니었다. 트라하의 도발도 무섭지 않았다. 이 순간에 그를 가장 괴롭히는 아픔은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일단 명목상으로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고백하던 분이었다. 그러나 브리튼의 기본 가치가 기독교이며 성경적 문화가 배경이다보니 외관상으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많다. 적어도 어머니는 그런 분이 아니기를 간절히 원했다. 다행히 그녀는 선행 면에서는 흠 잡을 데 없는 인물이었다. 남에게 베풀기를 잘했으며 인정이 많고 선량했고 이해심이 많았다. 하지만 타 종교인 가운데도 그런 인물은 종종 있지 않던가. 단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또 겉으로 드러나는 선행의 열매가 그럴 듯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정한 구원을 얻었음이 확증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가치관은 어느 정도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기초를 둔 듯했으나 미묘하게 드러나는 어긋남이 간간이 보이곤 했다. 어린 알렉시스는 그것을 다 탐지하지는 못했다. 지금 와서는 분별할 수 있겠지만, 그는 추억 속의 선량한 어머니를 난도질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무의식적으로 그 판단을 억제하곤 했다.

 

 

불행히도 트라하는 알렉시스로 하여금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일, 곧 이본에 대해 올바르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일을 하도록 등을 떠밀었다.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던 건가?’

 

 

어쩌면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녀가 어린 시절에 주입받았던 ‘그들’의 사상, 곧 그들이 묘사한 힐렐에 대한 가르침을 완벽하게 씻어내지 못한 채 하나님을 섬기되 바알을 섬기듯이 하나님을 섬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믿던 하나님, 그녀가 증언하던 하나님은 언제나 그럴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와 어긋남이 있었다.

 

 

이것이 알렉시스로 하여금 정말로 직면하고 싶지 않은 더 큰 공포 앞으로 가져갔다. 어머니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었을까? 이것만은 정말로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그의 소원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을까?’

 

 

알폰스 황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맞다. 이 사실은 그의 삶과 열매들을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헌데 그리스도인이 반려를 맞으면서 그 아내의 본질을 온전히 꿰뚫어보지 못할 수도 있단 말인가?

 

 

헌데 현 황후의 예시를 보건대 황제의 분별력이라고 완벽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속기 쉽다. 그럴 듯한 말과 위장을 백퍼센트 분별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영적으로 지혜롭다는 자라고 해서 그 법칙에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의 지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솔로몬 왕이거늘, 정작 그는 아내를 분별함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우매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천국에 이르지 못한 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괴로웠다. 주님의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처하는 곳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고통스러운 곳인지, 이미 자신의 손으로 타르타로스를 통해 세상 만방에 공개하지 않았던가.

 

 

트라하는 이렇게 고뇌하며 번민하는 알렉시스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마침내 저 잘난 얼굴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저열한 쾌락감에 젖어 들었다.

 

 

“황실이라고 해서 대단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더군요. 당신의 아비는 그토록 지혜롭다고 모두의 칭송을 들었으나 정작 가정을 이루는 일에서는 그와 같이 형편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모욕에도 알렉시스는 꿈쩍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마주하고 있는 비통과 애도는 너무도 깊고 강렬했기에 비열한 자의 저속한 도발에 일일이 반응해줄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이렇게 미인계 하나로 쉽게 공략되는 집안이건대, 차라리 다음 대는 당신처럼 사내 구실도 하지 못하는 고자가 왕이 되는 편이 낫기도 하겠습니다.”

 

 

자신을 향한 노골적인 조롱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지옥으로, 당신은 천국으로 갈 것이라 하였습니까? 어디 한 번 그렇게 해보죠. 세일린 황후도, 나도, 당신도, 다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신의 품에 안길 테니 어미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되겠군요.”

 

 

알렉시스의 손바닥에서 피가 흘렀다. 얼마나 주먹을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그의 손가락을 파고 든 것이다. 그의 강대한 근육들과 장대한 골격의 기골은 배신감과 비애로 미약하게 떨렸다.

 

 

“어머니.”

 

 

그는 혼잣말로 망연자실하게 말을 머금고 중얼거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가 흔들리지 않던 강대한 그가 이 문제 앞에서는 의연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알며, 그것을 위해 살아왔던 그이기에, 정치적 위기나 경제적 위기보다 영혼의 문제 앞에 더욱 비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트라하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영원히 어머니를 뵙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의 혈육이 불못에서 영원히 불타는 장면을 영원히 구경하는 천국이 과연 천국일지 나로서는 참으로 궁금증이 드는군요, 황태자시여.”

 

 

트라하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심리전을 펼치는 가운데에도 속으로는 대단히 초조해하고 있었다. 마치 호랑이 앞에서 일개 하이에나 하나가 도발하는 것과 같은 위험한 행태였다. 알렉시스의 분노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계속 시덥잖은 치졸함으로 시간을 끄는 것은 알렉시스의 시선을 돌려 자신의 계략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정말로 중요한 이벤트는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시간을 계산한 트라하는 마침내 때가 무르익었음을 감지했다. 전자 통신과는 분리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그로서도 오로지 심장 속에 이식한 ‘이계의 물질’이 공명하는 패턴만으로 상황을 짐작해야 했다.

 

 

‘드디어!’

 

 

그는 승리의 쾌재를 부르며 크게 폭소하였다.

 

 

“크하하! 알렉시스님! 이것으로 당신의 패배입니다. 지옥으로 떠나기 전에 당신의 후손들과 당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브리튼 제국에 큰 선물을 드리죠.”

 

 

세일린도 순간적으로 흠칫하였다. 그녀의 무표정했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 더욱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트라하의 계획에 얼마만큼 깊이 관여했던 것인가.

 

 

“혼돈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트라하의 선포와 함께 전 세계에 설치된 육십 개의 비밀 저장 탱크가 활성화되었다. 그 안에 저장된 비밀스러운 ‘연료’들, 곧 이계의 물질들이 에너지를 발하면서 공명하였다. 아울러 지구 각지의 도심 지역, 곧 사람들이 밀집된 곳에 설치된 비밀스런 육백 개의 시설물이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작동을 개시하였다.

 

 

‘사상조작병기.’

 

 

물 귀신의 마지막 선물. 브리튼의 악몽. 그 인세지옥의 재앙이 마침내 모든 전력을 충전한 채 마지막 고난의 잔을 쏟아붓기 위해 아가리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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