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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191회 [2부] 외전 7화. 에쉬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1.09 | 회차평점 0 0

 

 

 

워쳐라는 모델은 기본적으로 설정 당시부터 세 종류의 기능을 내재했다. 하나는 인간 세계의 사회 내부에서 직접 몸을 입고 상호작용하며 학습하는 능력. 두 번째는 음모를 꾸미는 주요 위험 인자들을 감시하고 탐색하는 것. 그런데 사실은 이것들보다 먼저 탑재된 더 중요한 기능이 있었고 이에 대해서는 알렉시스와 개발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는 이가 없었다.

 

 

세 번째 기능은 초상현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더 정확히는 ‘미시적인 초상현상’을 읽고 그것의 기원과 속성을 분별하는 기능이다.

 

 

 

 

 

“과거의 네필림은 항상 비정상적으로 큰 체격을 가지는 표현형으로 발현되었지.”

 

 

사전적으로도 네필림이란 ‘거인’을 뜻한다. 물론 히브리어의 어원을 면밀히 따지고 보면 ‘타락한 존재’라는 뜻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하지만 현재의 네필림들은 조금 다른 것 같더라고.”

 

 

오랜 시간 인간과 섞이면서 희석된 탓일까? 그 영향으로 그들은 신체적으로 인간과 거의 똑같은 규격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만일 좋은 일이라면 네필림 입장에서 좋은 것인지 인류 입장에서 좋은 것인지는 말하기가 참으로 애매하다.

 

 

“대신 체형이 압축된 대신 다른 속성을 띠게 된 것 같아. 그들의 몸 자체가 미시적인 규모로 미세한 초상현상을 일으키게 되었어.”

 

 

알렉시스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그들이 인간과 섞이게 됨으로 말미암아서 불안정했던 하이브리드로서의 괴이 속성이 안정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 인간과 천사의 결합이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르면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금기이다. 그러니 그런 금기로 인한 결과물은 매우 불안정했을 것이다. 지나치게 비대화된 골격과 근육은 그로 인해 파생된 부작용이었겠지.

 

 

그랬던 특성이 오랫동안 그 혈족 안에서 천천히 안정되고 내면에 깊이 자리잡으면서 더는 불안정한 외형을 유발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특성 변화는 네필림 개체들의 약체화를 의미하는가? 알렉시스는 이 낙관적 추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였다. 어쩌면 그들의 힘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 교묘하고 강력한 형태로 변환된 것인지도 모르지. 전에는 천사로부터 유래한 그 이질성이 단순히 육체 강화만을 일으켰다면 이제는 그것이 더욱 농밀하고 강력한 마법적 능력으로 바뀐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태초의 범죄자 천사들이 바랐던 이상적 목표치였는지도 모른다. 태생적인 거인을 만드는 것보다는 태생적인 마법사를 탄생시키는 것이 그들로서는 훨씬 유리하다. 덩치 큰 인간은 오히려 표적이 되기 십상이지만 마법사들은 은밀하게 사회 내부를 장악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피가 꽤 희석된 영향인지 네필림들이 자신 속에 내재된 태생적 이능력을 잘 발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만일 그런 엄청난 마법력을 자랑하는 존재들이 존재한다면 크게 눈에 띄었을 터인데, 알렉시스가 감찰한 네필림 후보들은 대개 오컬트와는 크게 연관이 없는 삶을 살았다. 단지 그들이 의도하지 않고도 불수의적으로 몸에서 초상현상이 새어 나갔을 뿐이다.

 

 

 

 

 

“워쳐들은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유형의 초상현상, 즉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연구해 왔어. 그런 관찰 작업에 있어서는 인간과 인공지능을 포함해 누구보다도 특화된 존재들이지. 특별히 그들은 ‘인간 개체’를 중심으로 발원하는 초상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왔어.”

 

 

“그렇군요. 하지만 악령에 들린 사람도 비슷하게 초상현상을 일으킬 수 있지 않습니까?”

 

 

“맞아.”

 

 

알렉시스는 머릿속으로 잠시 트라하 폰 바이스하우프트에 대해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서로 다른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는 작업을 하려고 워쳐들을 만든 셈이기도 해.”

 

 

악령이나 외부의 힘을 빌려서 초상현상 또는 초자연적인 마법을 발생시키는 경우. 그리고 아무 도움 없이 스스로의 존재로부터 이능을 발하는 경우. 두 유형을 감별 진단하기 위해 워쳐들은 학습하고 또 학습했다.

 

 

그들이 모아오고 관찰한 자료는 주기적으로 알렉시스에게 모였다. 그는 중앙 컴퓨터들을 동원해 그 데이터를 다시 분석했고 그 결과를 워쳐들에게 피드백해 주었다. 이런 과정을 몇 년간 반복했다.

 

 

최근에는 이들을 돕기 위해 가디언엔젤까지 동원했다. 워쳐들과 가디언엔젤들의 연맹이 결성되었고 이 과정에서 워쳐들은 가디언엔젤들의 고유 속성인 ‘인간의 마음의 선악을 감지하는 능력’의 덕택을 제대로 보았다.

 

 

이렇게 두 종류의 센서를 적절히 교합하여 사용한 결과, 알렉시스는 네필림들의 후보를 좁힐 수 있었고 대부분의 위험 개체를 레이더망 안에 포착하였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최근에 이슬람과의 내전, 그림자 세력의 내란, 사상조작병기 사태가 연달아 있었지.”

 

 

“형님께서 초상물질들을 녹이신 이후로 종교들의 폭주도 시작되었죠.”

 

 

“그 과정에서 잡힌 범죄자들과 포로들 가운데도 일부는 네필림이 포함되어 있었어. 유전자 검사 이후에 확진할 수 있었지.”

 

 

침착히 대화하던 에쉬튼이 흠칫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의학적인 근거까지 확보된 겁니까, 형님?”

 

 

“그런 셈이지.”

 

 

“네필림들의 유전자의 특성은 어떻죠?”

 

 

“확실히 유전자 단계에서부터 뭔가 특이한 속성은 있어. 하지만 진짜 본질은 그게 아니야.”

 

 

과거의 거인들과 다른 형태로 진화해서인지 그들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화학식만은 DNA 및 RNA의 분자식과 동일했다. 하지만 몇 가지 후성유전학적 특성이 인간과는 상이했다. 미토콘드리아 내부에 담긴 물질의 패턴도 미묘하게 달랐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그들의 유전 물질을 이루는 입자들은 초상물질의 성격을 띠었다. 분자의 배열은 인간 유전자의 모양을 흉내 냈으나 그 기본 블록은 외계의 물질에 가까워진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 내 원자들이 초상물질처럼 변했다고요?”

 

 

“엄밀하게는 초상물질은 아니야. 일시적으로, 또는 주기적으로 초상물질의 속성을 띠는 가변적인 입자였지. 막상 그들의 몸에서 분리한 뒤로는 몇 번의 반감기를 거치자 보통의 물질로 바뀌더라고.”

 

 

그 외에도 자세한 정보를 나열하자면 한없이 긴 이야기가 되는데, 모든 분야에 천재인 알렉시스와 달리 동생 에쉬튼은 과학 쪽은 전공이 아닌지라 더 길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도 검사를 진행해 보면?”

 

 

“그건 우리의 윤리에 어긋나는 행태지.”

 

 

알렉시스는 고심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쉬운 지름길을 택하고 싶은 유혹에 고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한두 번 내주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권력에 취한 괴물이 되기 마련이지.”

 

 

그는 에쉬튼의 눈치를 보았다.

 

 

“네 말이 맞아, 에쉬. 나는 생각보다 유혹에 약한 사람이야. 세상이 말하는 그런 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알게 모르게 유혹 앞에서 타협한 적이 많아. 그러니 워쳐들을 창조했고 아이언로드를 건설했겠지.”

 

 

동생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는 형이 되려고 노력해 왔건만 그렇게 자신을 포장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것 같다.

 

 

“네 실망은 그러니 정당하다고 볼 수 있어.”

 

 

에쉬튼은 곰곰이 속으로 생각했다. 실망감이라. 아예 그런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군주이며 리더로서 본보기가 되는 형님이 인간 세계의 질서를 흔들 위험성을 창조해 낸 장본인이라니. 워쳐의 존재를 발견해 낸 이후로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만일 형님이 지나치게 권력에 취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자신은 그분을 견제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도 없고 원치도 않는 일이다. 그러나 원치 않는다 한들 그 일은 자신의 의무가 되리라.

 

 

이런 생각들을 곱씹다 보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형님에게서 직접 그 진실을 듣기를 원해왔다. 그분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을 의심으로 더럽히기를 원치 않았다. 그의 불가피한 사정을 이해하고 싶었고 그와 동시에 의구심으로 인해 형님을 향해서 불안감이 들었다.

 

 

이런 갈등이 오늘의 이야기들을 들으니 아주 조금은 지식적으로 납득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님의 모든 면이 다 감정적으로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너무도 기대감이 큰, 마치 우상 같은 존재였다 보니 반동으로 실망감이 더 증폭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형님에 대한 복잡한 양가감정과는 별개로 네필림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중앙정보국장으로서 공적인 태도로 책임감 있게 접근해야 하리라. 그들의 존재는 확실히 인류 전체에 대한 잠정적 위협임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에쉬.”

 

 

“네.”

 

 

“네 신념이 그렇게 요구한다면 나를 면밀히 감시해도 좋아. 필요하다면 충언해도 좋고 쓴소리도 달게 받을게.”

 

 

형님은 동생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했다.

 

 

“저는…….”

 

 

에쉬튼은 고민했다. 비록 다른 형제들처럼 큰형과의 친밀감이 깊지는 않지만, 자신도 이 고귀한 가정에 입양된 이후로 큰형에 대해 막연한 존경심을 품어왔다. 그런 마음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큰형이 자기 눈에 어떻게 비치느냐가 곧 이 나라와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 자신이 갖는 시선을 결정할 테지. 형님에 대한 실망은 어쩌면 브리튼과 기독교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형님께 빚진 게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동생도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고백했다.

 

 

“그러니 당신을 감시하는 건 제게 그리 기쁜 일이 아닙니다. 가혹한 명령이죠.”

 

 

“고마워.”

 

 

다시 한번 알렉시스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워쳐들은 네 관리하에 둘게.”

 

 

“알겠습니다.”

 

 

에쉬튼은 형의 명하고자 하는 바를 빠르게 포착하였다.

 

 

“네필림의 완전한 색출을 위해 아직은 저것들의 도움이 필요할 테죠.”

 

 

이번 한 번만은 형의 방식이 속는 셈 치고 어울려주리라. 워쳐들을 이용해 남은 네필림의 수색을 성취한다. 알렉시스의 동료들이 된 가디언엔젤들과 협력한다면 이 작업의 완성도 그리 멀지 않겠지. 즉 이로써 에쉬튼도 알렉시스와 더불어 공범이 된 것이다.

 

 

‘부디 형님은 선한 사람으로만 남아주시길.’

 

 

낙심하고 부서졌던 어린 자신을 자비로이 품어주던 그 듬직하고 멋있고 단단한 품이 원래의 따스함을 그대로 영원토록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네필림들의 존재가 검증되면 어떻게 처우하실 생각입니까?”

 

 

죽일 것인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그들을 제거한다고 해서 인류의 장래가 밝아지진 않아. 인간 자신의 원죄도 만만치 않으니까.”

 

 

알렉시스의 목표치는 현재로서는 온건한 수준이다. 그가 바라는 바는 네필림들이 추가로 번식하여 자손을 낳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마 그들의 변형된 유전자 자체가 타 인간의 생식 세포와 잘 섞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랬으니, 그들의 개체 수가 기나긴 역사 속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못하고 천 명 미만을 유지했겠지.

 

 

만일 사탄이 예언대로 하늘에서 패하여 땅에 추락하여 강림한다면 그가 먼저 할 일은 저 남은 네필림들을 대거 번식하게 하여 인류의 씨를 오염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전에 네필림들의 생식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당장은 번식을 차단하는 것으로 충분해.”

 

 

“거세시키면 됩니까?”

 

 

“그 또한 방법이긴 한데, 우리가 후보를 잘못 지정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지. 억울한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지. 많이 돌아가는 불편한 방법이지만, 철저한 감시를 통해 차단하는 편이 나아.”

 

 

그들이 누군가와 성관계를 맺으려 할 때 그 상대방을 구해내는 일이 기본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에쉬튼은 한숨을 쉬었다. 범죄자들을 대거 소탕한 덕에 일이 조금 줄어들 것이라고 여겼는데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그래도 이로써 형님이 근심을 덜어낸다면 수고하는 보람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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