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67회 탑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9.20 | 회차평점 ![]() |
또 그분께서 나를 데리고 뜰의 문에 이르시기에 내가 보니, 보라 벽에 구멍이 있더라.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제 그 벽을 뚫으라] 하시기에 내가 그 벽을 뚫었더니, 보라, 한 문이 있더라.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 그들이 여기에서 행하는 사악하고 가증한 일들을 보라] 하시기에 내가 들어가 보니, 보라, 온갖 형태의 기어 다니는 것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의 집의 모든 우상이 벽의 사방에 그려져 있고 거기에 이스라엘의 집 원로들 중의 칠십 명이 그것들 앞에 서 있었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들의 한가운데 서 있더라. 그들이 저마다 자기 손에 향로를 들고 있는데 짙은 향 구름이 위로 올라가더라.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집 원로들이 어두운 곳에서 저마다 자기 형상을 둔 방들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신다, 주께서 그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에스겔서 8장 7-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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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공략대는 파죽지세로 층들을 정복하며 위로 올라갔다. 이미 18층의 주인부터 SSS랭크 헌터와 맞먹기 시작했고 40층부터는 그 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배가되긴 했으나 그것이 그리 문제가 되진 않았다.
사실 아무 지원도 없이 그들 본신의 힘만으로 싸우라고 했으면 2층을 정복하는 데만 해도 족히 5년은 소모되었을 것이다. 고작 이런 전력으로 시간을 단축하여 불과 사흘 만에 반 이상인 50층을 돌파한 데는 전적으로 초인적인 단 한 명의 활약 덕택이 컸다.
일단 공략대는 대부분의 층에서 하위 유닛 군단과의 전쟁을 생략할 수 있었다. 만일 정석대로 군단과의 싸움을 치르고 가려 했다면 전력 소모가 상당하여 한 층을 제대로 통과하기도 전에 보급이 바닥났겠지만, 이걸 생략하여 보스 전에만 집중한다는 점의 메리트는 상당했다. 대부분의 하위 유닛은 로브 속에 전이된 ‘사건의 지평선’의 효력에 의해 싸우지 않고 봉인되었고 그 틈에 소수의 상위 유닛을 잡은 뒤 보스를 죽이는 데만 전력 투구를 하면 충분했다.
아리아드네의 실을 통해 최전선 공략팀을 자유자재로 교체 가능한 점도 상당한 전략적 우위였다. 쉬지 않고 위로 올라가기만 한다면 보급으로부터 고립되어 결국은 전멸했겠지만, 적당히 싸운 뒤에는 내려와 엘릭서를 통해 헬게이트의 오염물을 정화하고 충분한 휴식을 통해 경험치를 안티-게이팅 파워의 강화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니 한 텀을 거칠 때마다 헌터들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고 어느 덧 일곱 팀이 순환을 몇 번 거치고 나니 대부분의 헌터가 기존 등급보다 한 단계 정도씩 더 강화되었다. S랭크 헌터들은 S+에 준하게 되었고 일부는 SS랭크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갔다. AAA랭크 헌터들도 실상 S랭크나 마찬가지인 힘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흑재규어의 힘 공급을 제외한 순수 본신의 역량만으로. 만일 이능의 추가 공급을 더해 계산하면 이들의 전력은 한 단계를 넘어 몇 단계 이상 강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여럿이서 힘을 합치면 그 시너지 효과는 몇 곱절에 해당되었다.
더욱이 이들이 받은 ‘백파’와 ‘섬멸물질’은 다른 계열의 안티-게이팅 파워와는 상이한 특성을 지녔다.
보통의 안티-게이팅 파워도 기본적으로는 헬게이트의 영향력이 짙은 권역에서는 더욱 강한 길항 효과를 갖는다. 헬게이트의 힘이 없는 통상 공간에서는 아무 효과도 주지 못하지만 짙게 침식된 세계 안에서는 마치 초인적인 효력을 내어 이능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파괴력을 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승 효과의 한계는 분명하다. 만일 헬게이트의 오염력과 침식력이 도저히 인간이 견딜 수 없도록 극대화되면 아무리 안티-게이팅 파워가 강한 반작용을 얻는다고 해도 헌터의 힘으로는 견디기 어려웠다.
일반적으로는 S랭크 헌터가 가진 힘은 그가 S랭크 던전에 들어갈 때에 그 가장 높은 효율이 나타나고 그 이상의 던전에 들어가면 안티-게이팅 파워의 반작용이 상승하는 효과보다 헬게이트의 권능이 인간 헌터를 압도하는 효과가 더 우월해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보통 헌터들은 자신의 랭크보다 두 단계 이상 위험한 헬게이트 던전에는 입장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라이텔바흐의 고유한 힘은 백파는 그런 보통의 힘과는 달랐다. 상승 작용의 효력이 선형 함수가 아닌 지수 함수를 따르며 안티-게이팅 파워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높은 잠재력을 지녔다. 그렇기에 이 힘을 슈트에 담은 상태에서는 자신보다 상위의 위험도를 지닌 던전에도 거뜬히 들어갈 수 있었다. 한 층을 오를 때마다 보스가 두 배씩 강해지더라도 자신 역시 그 환경 안에서는 두 배만큼 충분히 강해지니 문제가 없었다.
물론 보스의 강함만이 한 층의 위험도를 판가름하는 모든 변수는 아니었다. 병력의 증대, 전체적인 유닛들의 능력 분포, 인간에게 부적합한 환경의 심각도, 그리고 공략에 걸리는 전체 시간, 이런 요인들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층의 주인의 간교함과 지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이런 종합적 요인이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갔기에 층을 오를수록 여러 어려움이 따르긴 했다.
그러다 보니 전략에도 점진적인 수정이 필요했다. 42층까지는 한 팀이 연속해서 세 층 씩을 격파했다면, 그 이후로는 한 팀 당 두 층씩으로 할당량이 바뀌었다. 그리고 56층을 모두 격파한 뒤로는 한 팀이 아닌 두 팀씩이 연합하는 식으로 전략이 수정되었다. 먼저는 1팀과 2팀이 한 층을 공략했고, 그 뒤에는 1팀이 내려간 뒤에 3팀이 올라왔으며, 이후에는 2팀이 내려가고 4팀이 올라오는 식이었다. 63층부터는 이것이 더 조정되어 한 층에 세 팀씩이 공략에 나섰다. 75층부터는 네 팀씩이, 90층부터는 다섯 팀씩이 뛰었다.
도중에 헌터들은 온갖 흉측한 괴물 보스들과 맞닥트렸다. 51층의 주인 ‘데저트비스트’는 모래로 만들어진 흉악한 너구리 괴수로 거대한 몸집으로 모래 폭풍을 일으켜 헌터들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59층의 주인인 ‘글루미 비스트’는 라플레시아를 닮은 거대한 꽃을 단 괴수로 포자와 꽃가루를 뿌려 중독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65층의 ‘아일랜드비스트’는 커다란 섬과 같은 몸체의 괴물 거북으로 날카로운 뿔들을 등껍질에서 솟아나게 하여 헌터들을 공격했다.
77층의 주인은 ‘사티로스’, 그는 파멸시키는 악의의 권세를 소유한 자로 음파 형태의 흑파를 방출하여 입자들을 배열을 해체하는 짐승이었다.
80층부터 85층까지는 드래곤 시리즈가 연달아 나타났는데 레드탄닌, 골드탄닌, 블루탄닌, 블랙탄닌, 화이트탄닌이 가로막았고 그 뒤에는 모든 색의 비늘을 지닌 드래곤이 출현했다. 네 무리의 헌터 군단이 라이텔바흐가 원심 분리해놓고 농축한 백파의 성분 중 각자 다른 것을 취한 뒤 협공으로 힘을 공명한 끝에야 드래곤의 목을 베어낼 수 있었다.
88층의 주인은 더욱 강력하고 교활한 폭군, 메뚜기들의 왕인 ‘느치’였다. 수억의 기갑 군대를 거느린 느치는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듯 헌터들을 포위하였다. 헌터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사건의 지평선으로 만든 결계를 최대 농도로 조밀하게 결합하였다. 가까스로 군대의 휘몰아침을 견뎌낸 그들은 결계 안에 갇힌 느치를 사방에서 섬멸물질로 베어 처형하였다.
90층의 주인은 인어왕 ‘다곤’이었다. 상어의 하반신과 염소의 상반신을 가진 그 거대한 백 개 뿔의 괴수는 휘어지는 유도형 빔을 폭우처럼 방사하였다. 한참의 격전 끝에 헌터들은 웨폰 여러 개를 소모하고 보스를 처치하였다.
91층의 주인인 릴리스는 올빼미의 날개 열두 쌍을 가진 기괴한 여성형 요정 타입 어비씨언으로 다섯 팀의 헌터들을 상대로도 근소하게 우위를 점하였다. 그녀를 잡기 위해서 헌터들은 예외적으로 팀 교체를 세 번씩이나 해야 했다. 다행히 릴리스조차도 아리아드네의 실을 파괴하지는 못했고 보급은 끊기지 않았다. 수 차례나 아리아드네의 실에서 나온 화염이 적의 군대를 태우고야 전쟁이 얼추 비등하게 진행될 수 있었고 고립된 보스는 소모된 끝에 결국 격퇴 당했다.
92층의 주인은 개구리와 뱀이 결합된 괴수인 아포피스였으며 마치 소행성과 같은 파괴력을 발휘하는 거대한 암석형 단말기를 조종하였다. 숨겨둔 오의를 한꺼번에 소모한 끝에야 헌터들은 운 좋게 아포피스를 죽일 수 있었다.
이후로 93층의 주인인 대왕오징어 괴수 크라켄, 94층의 주인인 오랑우탄 괴수 제천대성, 95층의 주인 피닉스, 96층의 주인인 거미 여왕 앙골모아가 그들 앞에 시련으로 나타났다. 이 시점에서 대부분의 헌터들은 S+ ~ SS랭크에 근접히 성장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네 괴물은 벅찬 상대였다. 한 층에서 평균 열 번 이상의 팀 교환이 이뤄지고서야 공략의 문이 열렸고 많은 자원을 소모한 끝에 겨우 96층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97층부터는 그 격이 확실히 달라졌다. 탑을 관리하는 부감독들이 여기서부터 출현했다. 97층의 주인 파리대왕 벨제버브는 처음으로 헌터들을 몰아붙여 거의 패퇴할 뻔하게 하였다. 잠시 전략 상 후퇴를 취한 헌터들은 곧바로 여섯 팀이 합심하여 그간 아껴온 비장의 카드들을 쏟아부었다. 1층에 대기하던 사령관이 중요 병기 몇 개를 꺼내어 공급하였고 그 아머와 결합된 헌터들은 이전보다 몇 배는 강화된 이능으로 싸웠다. 수십 차례의 불의 지원을 받으며 꼬박 나흘에 걸쳐 백 차례도 넘게 겨룬 끝에야 벨제버브를 처단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훈련입니다. 다들 힘 내시죠.”
사령관은 97층에서 98층으로 이어지는 관문이 열리자 마지막 남은 한 팀을 올려보냈다. 중간에 팀원들을 내려보내 휴식을 취하게 하고 싶어도 아리아드네의 실을 지킬 사람이 상층에 남아 있어야 하기에 형편이 좋지 않았다. 98층의 주인을 상대로 한두 팀만의 전력으로 버티기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다 같이 내려가자니 주인들이 다시 부활할 것을 알기에 기껏 뚫어놓은 통로를 포기하는 것이 아까웠다. 사령관은 기세를 몰아 98층을 뚫기로 결정했다.
헌터들은 마지막으로 제공된 강화형 슈트와 헌터 웨폰을 착용했다. 그 내부에는 그들이 견딜 수 있는 최대 용량의 이능들이 담겼다. 다들 지친 상태였기에 긴 싸움은 무리였고 최단 시간에 전력을 다하여 98층을 깨트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98층이 깨지면 아마 탑의 관리자인 그녀가 나타나겠지.’
사령관은 몸을 풀며 상황을 관망하였다.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계획대로 전개되고 있었다. 헬게이트도 그렇고, 바벨탑도 그렇고, 제아무리 흉측한 재앙들이라고 해도 그의 눈에는 가소롭고 어설픈 흉내로 보일 뿐이었다. 인간의 사악함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가짜 광기들. 훨씬 더 흉악한 악마성을 일평생 보아온 그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렇게 바벨탑 공략팀으로 선정된 헌터들 중 전략가를 뺀 전원은 98층의 주인인 바포메트를 향해 직접 돌격하였다.
-오라, 죄악으로 가득한 동물들이여.-
전투광인 소 머리 괴물은 아무런 군단이나 부하들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친히 홀몸으로 헌터들을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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