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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68회 탑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9.22 | 회차평점 0 0

 

 

 

98층의 주인, 바포메트. 하위 층의 모든 주인들의 힘을 합친 것 이상으로 강력한 파멸적인 어비씨언. 소와 염소를 섞은 머리에 자웅동체의 사람 형태 몸을 가진 그 괴물은 가슴과 이마에 피로 그려진 역모망성의 흉터에서 섬뜩한 붉은 빛을 발하였다. 바포메트는 도끼와 채찍을 뽑아들었다. 자신의 몸통보다 열 배는 큰 흉측한 양날 도끼는 순수한 불을 압축하여 결정화한 물질로 되어 있었다. 마치 용광로에 달군 놋과 같은 그 도끼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움직이며 사방에 검기를 투척하였다.

 

 

“그분의 예지에 의하면 98층의 주인은 97층의 주인과는 달리 단기전에 능한 투사 타입으로 추정된다.”

 

 

협회장들 중 하나가 팀원들에게 정보를 공유하였다. 이곳에 올라오기 전에 그와 몇몇 팀원들은 미리 사령관에게서 사전 예측 시나리오를 인계받은 상태였다. 헬게이트의 패턴을 예측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직 정복되지 않은 탑의 내용물을 예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터널 셀을 뇌에 탑재하고 있는 헌터들이라지만 아무나 예보 작업을 하지는 못하며, 오로지 그 이터널 셀들의 원천인 헌터만이 한없이 정확에 가까운 예지를 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남쪽 탑과 서쪽 탑을 공략할 때는 그의 예지가 99% 이상 맞아 떨어졌고 실제로 그 덕분에 헌터들은 큰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고 그 예지의 정확도는 더 상승하였다. 97층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맞닥트린 상황은 사령관이 미리 알려준 도식도의 큰 그림에서 크게 벗어난 부분이 없었다. 군대의 성상, 지리의 특징, 환경의 특성, 그리고 보스의 능력치와 타입과 위험도에 이르기까지.

 

 

“97층 때와는 달리 최대한 빨리 승부를 본다.”

 

 

벨제버브는 엄청난 초재생 능력을 소유한 존재였다. 심지어 라이텔바흐에게서 나온 힘인 백파와 섬멸물질에도 상당한 내성을 보였으며 재생 능력의 봉인도 한참을 겨룬 뒤에야 이뤄낼 수 있었다. 강력한 힘과 능력도 문제지만 바로 그 맵집과 끈질긴 생명력이 벨제버브가 헌터들을 오랫동안 소모시키고 묶어둘 수 있던 비결이었다.

 

 

반면에 바포메트는 벨제버브보다 압도적인 파워와 스피드와 영리함을 지녔으나 대신 초재생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성장한 우리라면 승부도 어느 정도는 성립해.”

 

 

헌터들도 이미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의 힘이 실질적으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헌터의 등급이 상승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게 등급 상승은 저등급의 경우에나 일어나는 일이다. S랭크 정도에 이르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지난 두 번의 탑 공략과 이번 탑 공략의 경험이 농축되어 마침내 임계치에 이르자 놀라운 성취가 나타났다. 공략에 참여한 S급 헌터 거의 전원이 상한선의 유리벽을 깨트리고 SS랭크에 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남쪽 탑과 서쪽 탑을 무너뜨릴 때는 아직 그 경험치의 축적이 충분치 않았고 사령관에게 너무 많은 부분을 의존하였기에 역치를 넘어서진 못했다. 그러나 그때도 꾸준히 경험은 쌓았고 안티-게이팅 파워의 저장폭과 생성폭 및 발현폭도 거듭 발전하였다. 특별히 백파와 섬멸물질을 간접적으로나마 운용하는 과정에서 헌터들의 본신에 담긴 안티-게이팅 에너지 생성 능력도 대폭 끌어올려진 면도 있었다.

 

 

벨제버브와의 기나긴 싸움은 그들의 체력도 소모시키긴 했으나 동시에 그들을 정신적으로 각성시켜 새로운 경지로 도약하게끔 하는 성장의 마중물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그들은 각각 독창적인 새 기술들을 터득했고 무술에 있어서도 전에 보지 못했던 경지에 발을 디뎠다.

 

 

그 덕분에 바포메트는 50명 가까이 되는 SS급 헌터들과 100명 가까이 되는 S급 헌터들을 단신으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재밌구나.-

 

 

전투에 진심인 괴수는 자신을 따르는 수백만의 강력한 군단을 뒤로 물린 후, 오롯이 상대들을 맞아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순진하게 놈을 믿어줄 수는 없다.’

 

 

당장은 주인의 영광을 위해 뒤로 물러났겠지만 주인이 위태로워지면 언제든 도우러 달려올 부대였다. 저런 예비 전력을 뒤에 남겨둔 채로는 심리전에 밀려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없다. 이 사실을 헌터들은 잘 알았다.

 

 

“너희도 알겠지만, 우리가 지금 상대하는 존재들은 절대 악마가 아니야.”

 

 

레비나 협회장이 말했다. 그녀는 라이텔바흐에게서 들은 증언들을 기억했다. 어비씨언들이 유난히 악마적인 모양새를 띤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대부분이 과거에 인간들이 섬겼던 잡신이나 그들이 경계하고 두려워한 악마들의 모양을 조잡하게 본따서 만들어진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돌로 만든 우상들은 신이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헛것들이듯, 저 어비씨언들도 악마와 악마에 대한 인류의 설화를 베껴 만든 형상들일 뿐 실상은 허깨비에 불과하다. 바포메트니, 벨제버브니, 모두 악마 설화의 모양은 빌렸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상상력을 어설프게 덧댄 가짜 피규어들인 셈이다.

 

 

“진짜 악마였더라면 저렇게 어설프고 어리석을 리는 없거든.”

 

 

차라리 인간들이 소유한 악마성이 더 ‘악마’라는 본질에 더 가까우리라. 그렇기에 정말로 초자연계에 악마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어비씨언들을 통해 역사하기보다는 되려 인간과 인간 시스템을 통해 역사하기를 택했으리라. 그 말인 즉 어비씨언들을 생산해낸 그 ‘뿌리’들도 진정한 지옥이 아닌 지옥을 흉내낸 아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악마는 절대로 정면 승부를 보지 않아.”

 

 

헌터들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악마적인 ‘교활함’이라는 속성 면에서 되려 어비씨언들을 충분히 앞지르고도 남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바포메트와는 달리 진지한 전사의 긍지 같은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니까.

 

 

“모두 태풍의 눈 쪽으로 몸을 옮겨!”

 

 

“오케이.”

 

 

신호가 떨어지자 헌터들은 갑자기 일정한 거리 간격을 유지한 채 바포메트로부터 50m 정도 떨어진 위치에 방사형으로 좌표를 두어 진을 이루었다. 그 난데없는 행동에 위화감을 감지한 바포메트는 멈칫하였다. 단 한 명만이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돌격하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헌터는 한 손에 아리아드네의 실을 쥐고 있었다.

 

 

-아뿔싸!-

 

 

아리아드네의 실이 뜨거운 금속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윽고 화산이 폭발하듯 무시무시한 열기가 땅에서부터 솟구쳤다. 이윽고 98층과 97층을 잇는 좁은 터널이 강제로 벌려지더니 뜨거운 백색 섬광의 기둥이 98층을 엄습했다. 그 엄청난 기운이 공간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농도도, 범위도 어마어마한 빔이었는데 그대로 지격하여 바포메트와 그의 군대를 휩쓸었다.

 

 

헌터들은 그 섬광의 농도가 가장 낮은 좌표에 미리 몸을 두었기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아울러 그들의 슈트에도 백색 파동이 담겨 있었기에 같은 계열의 힘인 이 빔에 휩쓸리고도 그들에게는 데미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초고농도의 백색 파동의 응집체가 지나간 자리에 놓인 나머지 존재들은 무참히 녹아내렸다. 단순히 경로에 자리한 존재들만 부서진 것이 아니라 열 폭풍에 의해 먼 거리에 있는 존재들에까지 충격파가 임하였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분자 단위로 분해될 막대한 권능이었다.

 

 

-거짓말! 저 힘을 저렇게 낭비하듯이 한번에 쏟아붓는다고?-

 

 

헌터들로서는 감히 저런 식의 사용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겠지. 누가 힘을 쏟은 것인지는 자명했다. 과연 1층부터 98층에 이르기까지 전 층이 동시에 타격을 받았다. 주인들의 상당수가 죽었고 각 층의 부활한 군단의 9할 이상이 녹았다. 가장 높은 것에 있던 98층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으나 그럼에도 빔과 바포메트의 충돌에서 발생한 충격 폭발이 번지면서 군대의 3할이 소멸하였다. 나머지 군대도 백파에 오염되어 능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었다. 움직일 수 있는 유닛들도 백파가 짙게 농축된 폭발 현장에 감히 접근하지 못한 채 주변부에서 맴돌았다. 단지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저주가 임하는, 용서받지 못할 공간이었다.

 

 

-크윽!-

 

 

몸의 반 이상이 반파된 바포메트. 반면에 헌터들은 멀쩡했다. 대신에 아리아드네의 실은 이제 소비되었다. 강제로 개방 상태로 유지되던 1층부터 98층까지의 문들이 이제는 닫히고 말았다. 헌터들로서는 고립 상태가 된 셈이며 직접 100층을 공략하지 않고서는 귀환하지 못할, 배수진의 처지가 되었다.

 

 

격전이 이어졌다. 소모된 바포메트가 회복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헌터들은 모든 전력과 기술을 쏟아 사방에서 괴물을 공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8층의 주인답게 바포메트는 호각을 유지하며 견뎠다. 만일 빔으로 놈의 전력을 크게 깎지 않았다면 정면 승부로는 헌터들이 전멸을 면하기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이미 방금 타격으로 승부는 났다.”

 

 

날카로운 병기들과 원격 무기들이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안티-게이팅 파워와 섞인 백색 파동이 검기와 총격의 형태로 바포메트의 살갗을 가르고 뚫었다. 섬멸물질이 섞인 헌터 웨폰들도 괴물에 몸에 박혔다.

 

 

-크윽! 비겁한 벌레들이!-

 

 

치열한 싸움이 삼십 분 동안 이어졌는데 결국 견디지 못한 98층의 주인은 팔과 다리를 잘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잔뜩 지친 헌터들은 괴물이 회복하기 전에 확인 사살을 하였다. 마지막 남은 섬멸물질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창들이 바포메트를 토막토막 쪼개었고, 흉측한 악귀 형태의 모방물은 사무엘 선지자가 아말렉 민족의 왕 아각을 쪼개듯 처형되었다.

 

 

“됐다!”

 

 

99층으로 이어지는 문이 개방되었다.

 

 

-어머나! 세상에나!-

 

 

그러나 의외의 존재가 헌터들을 맞이하였다. 99층 위 상공에서 지친 헌터들을 내려다보는 그 존재는 마치 여신이 미개한 미물들을 굽어살피듯 그들을 향해 흥미의 눈초리를 던지며 추파를 흘렸다.

 

 

-무려 그 바포메트를 쓰러트렸다길래 어떤 재미난 실력자들이 오셨나 했는데요, 의외로 쭉정이들이었네요, 호호.-

 

 

관능적인 옷 차림의 매혹적인 여인 모양 실루엣이 저 멀리에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로부터는 헌터들 따위는 도무지 접근하지 못할 두려운 아우라가 발산되었다. 본능적으로 그 격차를 인지한 헌터들은 감히 경솔하게 덤비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99층의 주인이 아니다?”

 

 

“저 존재는 대체?”

 

 

사령관이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었다. 예측을 벗어난 존재의 등장인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시험하고자 알려주지 않고 숨겼던 것인가? 사령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현재 그들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

 

 

-반가워요, 모험자 여러분! 저는 이 탑을 관리하는 시스템 관리자랍니다!-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 그녀는 꺄르르 웃으며 그들이 볼 수 있는 높이로 강하하였다. 99층으로 들어가는 문은 얇은 유리와 같은 물 층으로 되었는데, 시스템 관리자라고 불리는 그녀는 수면의 위쪽에, 헌터들은 그 아래에 놓인 형국이 되었다. 언뜻 보니 99층에는 그녀 외에 다른 존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이 온 거야, 세미?-

 

 

그때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나타난 여인과는 다른, 상당히 앳된 소년의 목소리였다. 짖궂은 꼬마 남자아이의 음색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지. 그 목소리에서 기괴하게도 순수함이 느껴지는 듯한 묘한 착각이 들었다. 아이가 호기심에 벌레를 고문하여 죽이는 그 순수한 폭력성, 말하자면 그런 계열의 순수함이 공기 중에 전달되어 암시되고 있었다.

 

 

-어머, 아니예요. 낭군님은 저 자리에 없는 듯 하네요, 담무즈.-

 

 

-에에, 그러면 너무 재미없는데. 난 검은 재규어랑 놀고 싶었단 말이야. 그 기대감에 꾹 참고 지루함을 견뎠는데. 헌터들 따위는 전부 다 덤벼도 손가락 하나로도 전멸시킬 수 있단 말이지.-

 

 

-저도 아쉬워요. 그분을 제 새로운 낭군님으로 삼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저런 벌레들이라.-

 

 

여인과 꼬마 사이에서 몹시 섬뜩한 대화가 오갔다.

 

 

-뭐, 당장 죽이기는 아쉬우니 잠시 절망을 보여주죠.-

 

 

시스템 관리자는 손을 뻗어 권능을 사용하였다. 이에 탑 전체가 흔들리며 새로이 배열되었다. 부서졌던 곳들이 고쳐졌고 뚫렸던 거대한 크레이트가 원상복구되었다. 그와 동시에 땅에서 군대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제가 마침내 해방되었으니 이젠 마음껏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낭군님이 오셨을 때 아름다운 신세계를 보여드려야죠.-

 

 

그녀는 사악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인간 세계의 완전한 멸종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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