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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69회 세미라미스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9.26 | 회차평점 0 0

 

 

 

자녀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여인들을 가루를 반죽해서 납작한 빵을 만들어 하늘의 여왕에게 바치고 다른 신들에게 음료 헌물을 부음으로 내 분노를 일으키느니라 (예레미야 7:18).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이르시되,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 너희 입으로 말하고 너희 손으로 이루며 말하기를, 우리가 서원한 우리의 서원을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으리라, 하였은즉 너희가 반드시 너희 서원을 성취하고 반드시 너희 서원을 이행하리라 (예레미야 44:25).

 

 

 

 

 

 

 

 

*

 

 

 

 

 

-어서 오세요, 손님들.-

 

 

헌터들은 98층과 99층 사이의 중간 공간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둥글게 진을 그리고 서로와 서로의 손이 닿을 거리에 밀집하여 진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였다. 99층의 관문은 다른 층의 문들과 달리 그 자체로 거대한 완충 공간이었는데 커다란 둥근 쟁반 두 개가 서로 맞닿아 타원 구체 형태의 공간을 이루는 모양 같았다. 아래쪽으로는 98층과 이어지는 크레이터 형태의 수정 공간이, 위쪽으로는 99층이 보이는 돔 형태의 천장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99층 위로 선뜻 올라갈 엄두를 못 내었다.

 

 

-분수를 잘 아시는 분들이군요.-

 

 

바벨탑의 관리자, 탑의 여왕인 그녀가 바로 이 사잇공간에 사뿐히 내려왔다.

 

 

-본능적으로 깨달아 아신 모양이네요.-

 

 

그녀는 화려하지만 매우 관능적인 옷차림을 하였으며 눈과 얼굴에는 문신과 진한 화장을 하였다. 이목구비나 몸매는 매우 매혹적인 미녀였으나 어딘가 모르게 이질감을 주는 두려움의 존재였다. 흡사 고대의 마녀, 혹은 탐욕스러운 여신을 연상케 하는 주술적인 느낌의 객체였다.

 

 

-이곳 너머로 가면 여러분은 순식간에 질식사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헌터들은 직감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움직여서는 안 돼.’

 

 

‘여기서 삐끗하면 죽는다.’

 

 

‘저 괴물, 지금까지 보았던 존재들과는 카테고리 자체가 달라.’

 

 

어비씨언들과는 달랐다. 저런 류의 존재가 라이텔바흐의 보고서에 몇 번 보고된 적이 있었다. 헬게이트들의 융합체라고 했던가. 탑의 여왕도 비슷한 아우라를 뿜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으로 다 설명되기는 어려웠다.

 

 

-맞아요, 여러분이 공략할 수 있는 건 98층까지가 상한선이죠.-

 

 

99층에는 단 한 명의 주인 외에는 어떤 거주민도 없다. 그 이유는 굳이 군대라는 개념이 필요 없는 주인이 다스리고 있기도 하며, 또 99층은 생산 용도의 하위 층들과 다른 목적으로 마련된 무대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니 여러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벌레님들.-

 

 

-저기, 세미.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어린 남자 아이 실루엣의 또다른 존재가 저 멀리 떨어진 상공 위, 즉 천장 너머 바로 위에서 쭈그리고 앉아 목소리를 내었다.

 

 

-지루한 데 그냥 죽여버리면 안 될까?-

 

 

-안돼요, 담무스. 저들은 미끼랍니다. 저들의 목숨이 붙어 있어야 낭군님께서 이곳으로 올라오시죠. 우리는 저 귀한 미끼들을 안전하게 포획하여 그분을 맞이할 낚싯바늘로 사용해야 한답니다.-

 

 

-에에, 그러면 한두 명 정도는 장난 삼아 죽여도 되잖아?-

 

 

그 섬뜩한 내용의 대화에 모두의 몸이 바짝 긴장으로 굳었다.

 

 

-그래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저들의 생명 반응이 실시간으로 그분께 공유되는 모양이에요. 만일 한 명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 즉각 ‘오의’부터 쏟고 보시겠죠. 그러면 자칫 제대로 된 승부를 보기 이전에 탑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제 계획을 위해서는, 또 제가 능력을 써서 농사를 거두기 위해서는 아직 탑의 터전들이 필요하거든요.-

 

 

-하긴 세미 네 계획도 고려해야겠네.-

 

 

-착하죠, 우리 담무스. 잘 참고 기다리시면 그분과의 즐거운 전투를 보상으로 드릴게요.-

 

 

-크큭, 어서 빨리 그 녀석이랑 놀고 싶네.-

 

 

그 여인 형상의 시스템 관리자는 이제 헌터들과 5m 이내의 거리로 접근하였다. 경각심을 느낀 헌터들은 자기들의 무기 중 가장 강력한 것들을 꺼내어 힘을 갈무리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눈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다.

 

 

-소개할게요, 내 이름은 세미라미스, 탑의 관리자이자 100층의 주인께서 세우신 섭정, 그리고 부활의 여왕이랍니다.-

 

 

부활이라고? 그 단어에서 몇몇 상위 헌터들은 힌트를 얻었다. 사령관은 탑을 공략할 때 이런 정보를 일러주었다. 지구 상에 출현한 네 개의 바벨탑은 상호 연동의 속성을 지녔다고 한다나. 그것들은 서로를 지탱해줄 수 있으며 하나가 무너져도 나머지가 합심하여 폐허에서 무더기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한다. 아마 그런 연동 능력도 모종의 ‘부활의 힘’에서 나온 것이리라. 유독 이 동쪽 바벨탑에서 자꾸만 층의 주인들과 군단들이 죽이고 죽여도 또 살아나는 데에도 분명 원동력이 있었겠지.

 

 

‘그 원천이 설마 저 존재인가?’

 

 

세미라미스에게서 이 탑의 기괴한 재생 능력이 기원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문제는 그런 힘을 지닌 존재가 왜 굳이 지금 나타났느냐는 것이었다.

 

 

탑의 주인들과 군단들이야 탑 자체의 법칙에 종속되었기에 자기 층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끔 탑 너머로 보내지는 외부 군단은 탑의 외벽이 만들어내는 추가 병력일뿐, 탑 자체의 정규 군대는 예속되어 있다. 이는 탑도 헬게이트에서 파생된 구조이기에 헬게이트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세미라미스는 탑의 관리자이니 얼마든지 1층부터 100층까지의 공간을 오갈 수 있으리라. 그런데 98층까지 공략 당하는 동안에는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 나타났을까.

 

 

추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한 가지였다. 세미라미스는 99층에 결박되어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는 제약에 놓였다. 그녀에게서 추출된 힘이 이 탑의 부활 능력에 에너지를 공급하고는 있으나 그녀 자신이 육체를 입은 채 자유로이 그 힘을 쓰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자유함을 얻길 바랬으리라. 어쩌면 98층을 공략하고 외부에서 99층의 문을 여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자유로이 해방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었을까?

 

 

-나와 100층의 주인을 함께 만드신 유사-심연들, 곧 우리의 어머니들께서는 제게 이런 임무를 주셨죠. 탑의 주인을 섬기며 보필하는 관리자가 되어라. 그것만이 네 존재 이유이니라.-

 

 

세미라미스는 한탄하듯 중얼거리며 교태스러운 자태로 어수선하게 거닐었다.

 

 

-하지만 난 100층의 주인과 생각하는 바가 달라요. 탑의 법칙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계율에 묶여 수동적으로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그분과 달리 주체적이죠. 저는 자유로이 인간 세상을 거닐길 원합니다.-

 

 

이거야말로 절대로 허락되어서는 안 될 망발이었다. 헬게이트 사태가 시작된 이래로 단 한 번도 인간계 전체를 어비씨언들이나 헬게이트 부속물이 거닐었던 적은 없었다. 그들은 항상 지박령으로서 제한된 공간 안에서만 거니는, 목줄 묶인 사나운 개와도 같았다. 세미라미스는 그런 법칙을 벗어던지길 원하는 발칙한 야망을 공공연하게 고백하였다.

 

 

‘이 또한 라이텔바흐 협회장이 전에 정복한 SSS랭크 던전에서 얻은 정보와 일맥상통하는군.’

 

 

최근 헬게이트들과 그 배후의 ‘어머니’들이 자꾸만 인간계에서 자유로이 자신들의 행보를 넓히고픈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그 타개책을 자꾸 획책하는 징조가 보인다. 세미라미스는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셈인가.

 

 

-이곳에 계신 99층의 주인께서는 나와 100층의 주인께서 함께 창조하신 걸작이죠. 하지만 이제 나와 99층의 주인께서는 우리에게 맡겨진 이 지루한 자리를 거절하고 반란을 꾀하기로 했답니다. 100층의 주인을 죽이고 100층에 존재하는 그 문을 통해 인간계로 진출할 거예요.-

 

 

‘뭐가 어쩌고 어째?’

 

 

헌터들은 바벨탑 안에서 벌어지는 이 기괴한 집안 싸움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굳이 듣고 싶지 않던 내용이었으나 이것이 당장 인류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메인 주의 헬게이트를 제거하여 가까스로 인류 멸망을 피한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이다.

 

 

-자, 그럼 보상으로 여러분께는 흥미로운 것을 보여드리죠.-

 

 

세미라미스는 손을 뻗어 권능을 사용하였다. 이내 1층부터 99층에 이르는 모든 층들이 지진을 일으키며 크게 격동하였다. 그것은 파괴의 진동이 아닌,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해산의 산통이었다. 이 탑의 각 층을 이루는 대지란 기본적으로 그 본질이 세미라미스의 자궁이었다. 그녀는 이제 헌터들 덕분에 봉인에서 해방된 자신의 힘을 자의로 사용하여 이 탑의 규율을 넘어선 분량으로 재생의 힘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1층의 주인이 자신의 층 안에서 대지의 태에서 나와 부활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은 순식간에 어떤 포탈에 의해 채여가 모든 층을 생략한 채 99층으로 전송되었다. 각 층의 주인이 자기 층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법칙을 세미라미스가 모종의 방법으로 깨트린 셈이었다. 1층의 주인 자리가 공석이 되자 1층은 다시 공백을 막기 위해 1층의 주인을 재생성하였다. 그러자 다시 그 주인도 위로 채여갔고 이 같은 일이 무한히 반복되었다.

 

 

이윽고 2층부터 98층까지에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다. 차이가 있다면 세미라미스의 권능이 하위 층에는 더욱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즉 부활의 속도와 강제로 채어가는 속도가 아래층으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었다. 대개 층의 주인이 가진 힘에 반비례하는 빈도였다.

 

 

헌터들은 자신의 발밑의 투명한 바닥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생히 보았다. 그토록 어렵게 죽였던 바포메트가 원래의 법칙보다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만들어진 바포메트는 유리 공간을 점프하여 순간이동되었고 곧장 천장 너머에 있는 황량한 99층의 공간 안으로 이동했다. 거듭해서 여러번 이런 일이 벌어졌고 곧 수십 명도 넘는 바포메트 군단이 헌터들을 내려다보는 윗 공간에 배열되었다.

 

 

더 무시무시한 점은 97층의 주인 벨제버브는 더 빠르게 부활되고 더 빨리 전송되는 중이었다. 그 수효는 바포메트들보다 두 배 이상. 그리고 96층의 주인은 그 두 배였으며 그 아래층은 그 두 배였다. 물론 그 아래로는 항상 층 당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급격히 수가 불어나긴 했다.

 

 

얼마 가지 않아 천장 위로 보이는 공간을 그간 힘겹게 쓰러트려온 층의 주인들이 무제한으로 복제되어 거대한 군대를 이루어 빼곡이 채웠다. 몹시 살풍경한 광경이었다. 비록 이 탑 안에서만 시전 가능한 제한적인 능력이라지만, 탑의 여왕인 세미라미스가 가진 권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처절히 실감되었다.

 

 

-이 능력이라면 충분히 100층의 주인을 죽일 수 있어요.-

 

 

왜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자기 남편을 죽이겠노라 호언장담했는지 이해했다. 그녀는 이미 탑의 규율을 벗어난 이레귤러, 버그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저 힘으로 저 거대한 군단을 창조하여 100층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문’을 열고 인간계로 나갈 속셈이겠지. 제약에 걸려 일부만 나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일부만으로도 세계에는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젠장, 탑 자체에서 버그가 발생했다고?”

 

 

“서쪽 탑과 남쪽 탑 때는 저런 게 없었는데!”

 

 

“이런 게 있을 것이라고는 알려주지도 않았잖아.”

 

 

당황한 헌터들의 꼴을 보며 세미라미스는 경박하게 폭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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