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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70회 탑 파괴자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09.28 | 회차평점 0 0

 

 

 

서쪽의 바벨탑. 이곳은 현재 정지된 상태였다. 침식 작용의 반응도 감지되지 않았고 한창 쏟아내던 흑파, 어비쓰론, 다크포스, 어비씨언 군단도 중단되었다. 마치 탑 자체가 얼어붙은 것만 같은 상태였다. 다만, 탑의 외관상의 모습만은 그대로 유지되어 박제되었는데 그 을씨년스러운 위용이 으스스한 경관을 자아내었다. 온전된 탑 골격을 3km 반지름의 거리로 원형으로 에워두르는 봉인진이 있었고 그 진을 지키며 보초를 서는 것은 헌터들이었다.

 

 

“왜 탑이 붕괴되지 않는 것이지?”

 

 

일단의 무리 앞에 서 있던 한 청년이 중얼거렸다.

 

 

“그 녀석의 감찰안(監察眼)으로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탑 전체의 주인이 죽는 순간, 탑은 유지력을 잃고 붕괴한다. 그 이론이 틀렸던건가?”

 

 

“글쎄요. 아무리 헬게이트 관련된 것에 한정하여 미래를 엿 보는 반칙의 눈이라고는 해도 설마하니 100%의 정확도를 가질 수는 없죠.”

 

 

곁에서 동행하던 한 여성 헌터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녀는 조세피나 디컨 프레딘 당회장, 일반인들에게는 조세핀 소장(少將)으로 불리는 인물로 헌터들 사이에서 대단히 유력한 영향력을 지닌 자였다. 반쯤 적대 관계인 세계 정부 휘하의 군인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깡을 소유한 용맹한 여장부이기도 했다.

 

 

“조세피나 당회장, 라이텔바흐 협회장이 분명 알파 수장님과 베타 수장님께 두 탑에 대한 최종 공략을 완료했노라고 포고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일단 제가 파악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총회장님.”

 

 

“남쪽의 탑도 그렇고, 동결된 것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듯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뭔가가 더 있군요. 라이텔바흐 그 자식이 일처리를 어설프게 하는 타입은 아닌데 말이죠.”

 

 

갈색과 금색 사이의 매력적인 머리카락을 소유한 그 장신의 청년은 언뜻 보기에도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만큼 잘난 얼굴의 미남이었다. 은근 보는 이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건방져 보이는 자만한 인상, 귀하게 자라난 듯한 이미지, 귀티와 날티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느낌의 인물이었다.

 

 

조세피나는 유독 라이텔바흐를 생각하거나 언급할 때마다 묘하게 긁혀 과민하게 반응하는 저 남자의 묘한 모습에 아주 잠시 궁금증이 스쳤다. 저건 자격지심인가 아니면 라이벌 의식인가.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저 인간이 라이텔바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라이텔바흐는 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아무런 감정이 없이 무관심한지, 알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원래 대중은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의 문제에 괜스레 관심을 갖기 마련이 아닌가. 델타 수장이 양아들처럼 여기는 청년과 감마 수장이 실제로 아들로 거둔 청년. 둘 사이에 기묘한 신경전이라도 벌어진다면 곁에서 구경하기 꽤 흥미로우리라는 기대가 들었다.

 

 

“당장에라도 탑 안에 직접 쳐들어가서 확인해보고 싶군.”

 

 

“그건 무리입니다, 발레리안 총회장님. 알파 수장님과 베타 수장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공략이 끝난 두 개의 탑 안으로 절대 발을 들이밀지 말아라. 위험해질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금지하니 괜히 더 궁금해지는군요. 라이텔바흐 녀석이 어떤 장난을 쳐놨는지 제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치기 어린 감정입니까, 아니면 경쟁심입니까?”

 

 

“또 어린아이 취급이로군요. 3세대 선배님들의 눈에는 저 같은 4세대가 여전히 꼬마로 보이시는 모양입니다.”

 

 

갈색머리 청년은 농담조로 투덜거리며 웃었다.

 

 

“총회장님, 아무리 당신이 강력하다고 해도 단신으로 탑은 무리입니다. 저 안에는 당신 같은 SSS랭크 헌터를 여럿 상대해 이길 수 있는 중간 보스들이 많이 있습니다.”

 

 

“라이텔바흐는 되고, 나는 안 된다, 이건가? 씁쓸하군.”

 

 

발레리안이라고 불리는 청년은 반항기 가득한 눈빛으로 경계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흉흉한 서쪽 바벨탑의 몸체가 하늘을 찌를 듯 송곳처럼 솟아 있었다.

 

 

‘지금의 나는 이미 수장님들을 넘어 섰다.’

 

 

자신의 능력을 당당히 증명해보고픈 야심이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치기에 흔들려 움직이는 충동적인 사내가 아니었고 매우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가 4세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수장 다음의 높은 직위를 맡은데는 이러한 그의 치밀한 성격과 냉정한 정치 감각, 그리고 민첩한 일 머리가 상당한 몫을 하였다. 라이텔바흐가 반골 기질이 강하다면 이 남자는 그 반대였다. 세계 정부를 미워하는 건 다른 헌터들과 마찬가지이지만 그런 성향을 억누르고 되려 현실을 이용할 줄 아는 자. 발레리안은 그런 남자였다.

 

 

 

 

 

 

 

 

*

 

 

 

 

 

-저는 인간들이 싫어요.-

 

 

세미라미스가 헌터들에게 말했다.

 

 

-약해빠진 주제에 자신들이 지구의 주인인 양 착각하죠. 실상 어머님들의 자비가 아니었더라면 진작 이 땅에서 쫒겨났을 거예요.-

 

 

그녀의 도발 안에는 상당히 격한 경멸감과 차별 의식이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한번도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죠. 과거에는 신들의 노예였고, 근대에는 이성주의와 철학의 노예였으며, 현대에 와서는 물질의 노예가 되었죠. 어느 한 순간도 자유로웠던 일이 없어요. 오늘날은 심지어 죄를 범한 대가로 우리에게 팔려 핍박받도록 버림받았으니, 이 얼마나 가련한 민족인가요.-

 

 

세미라미스를 에워두른 군대는 점점 그 규모가 불어났다. 인류를 수백 번 멸종시키고도 남을 수천 기의 바포메트들, 만 기도 넘는 벨제버브들과 수만 기의 앙골모아들, 그 외에 헤아리기도 어려운 수의 상위층 주인들이 거대한 군대를 이루어서 진열을 갖췄다. 특히 1층의 주인은 바다의 모래알처럼 바글거렸는데 그 하나하나가 원래의 1층 주인의 전력을 상회했고 S급 헌터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99층의 환경은 저들의 능력을 증폭시키기에 최적이죠. 높은 밀도의 다크포스로 인해 저들은 원래 자기 층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강화되었습니다.-

 

 

헌터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함부로 움직이는 순간 저들이 덤벼든다. 힘을 다 소모한 지금의 헌터들로서는 98층의 주인 한 기는 고사하고 90층의 주인도 무리였다. 그러나 더 무서운 존재는 저 복제 주인 군단이 아니었다.

 

 

‘저 존재는 대체 뭐지?’

 

 

세미라미스도 그렇지만 저 천장 뒤에 앉아 벌레들을 장난 삼아 죽이는 아이마냥 잔학한 순수함을 드러내는 아이 모양의 요괴. 그 존재가 가장 크게 거슬렸다. 지금껏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오를 때면 보스의 능력치는 많아야 두 배 강해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저 담무스라는 이름의 괴물은 달랐다. 언뜻 아우라로 감지되는 것만 해도 98층의 주인 바포메트의 최소 만 배 이상의 기운이었다. 그마저도 온전히 전력을 드러낸 것이 아니리라.

 

 

‘저것도 어비씨언이 아니다?’

 

 

저 존재가 인내심을 잃고 움직임을 개시할까 두려웠다.

 

 

“대장은 저 두 괴물에 대해 알고 계셨을까?”

 

 

“그렇겠지? 헬게이트에 관해서만큼은 예언력에 가까운 능력을 소유했으니까.”

 

 

사실 저번 두 탑도 최종 단계에 이르러서는 헌터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마무리 되었다. 그들은 마지막 공략 단계를 보지 못했다. 최종 층에 가서는 사령관이 대원들을 대신하여 관문을 넘었고 그 뒤에는 탑이 정지한 것을 밖에서 확인하였을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미리 99층에 대해 알려주었다면 우리가 선뜻 나서지 않을 것을 뻔히 알았기에 그랬는지도 모르지.”

 

 

“성격 참 고약하군.”

 

 

이것은 비난의 어조가 아니었다. 99층에 대해 듣지 못한 것은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이 일에 대해 사령관을 탓하지는 않았다. 세 번의 탑 공략을 통해서 무사히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경이로운 속도로 강해지면서 그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굳히게 된 덕이었다. 아울러 저번 두 탑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신뢰는 꺾이지 않았다.

 

 

-시간은 여러분의 편이 아니랍니다.-

 

 

세미라미스는 경박스럽게 폭소하며 헌터들을 조소했다.

 

 

-그곳에서 지켜보셔요, 인간들이여. 당신들의 세계가 우리에 의해 불타는 광경을 말이죠.-

 

 

“풉.”

 

 

긴장감이 잠시 흐드러졌다. 내내 얼어붙어 있던 헌터 무리 가운데 한 명이 마침내 금기를 깨트리고 참던 웃음을 미세하게 흘렸다. 세미라미스는 의아해했다.

 

 

-무엇이 그렇게 우스울까요?-

 

 

“아, 아니야, 아니야.”

 

 

웃음을 삼킨 그 헌터는 만회하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냥 좀 우스워서 말이지.’

 

 

그는 잠잠히 이 생각은 속으로 감췄다. 자신들의 목숨이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경각인 건 맞지만 웬지 모르게 웃음을 참기는 어려웠다. 사람이란 게 참 아이러니하고 복잡한 동물인지 마지막 순간에도 돌발 튀어나오는 유머 감각을 절제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요, 담무스. 당신 말대로 잠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세미라미스는 턱에 손을 괴었다. 유흥의 유혹을 그녀도 절제하기 어려웠다.

 

 

-죽지만 않으면 되겠죠. 팔다리를 모두 자르는 건 괜찮겠죠?-

 

 

일순간 100기의 바포메트들이 정지 상태에서 벗어나 행동할 준비를 하였다. 헌터들은 경각심을 최대로 높이고 무장을 활성화하였다.

 

 

-그대들이 오체불만족이 된 몰골을 우리 낭군님께 보여드린다면…….-

 

 

 

 

 

쿠르르르릉.

 

 

 

 

 

바로 그때 99층 전체가 격진으로 진동하였다.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보니 뿔 네 개가 보이기에 나와 말하던 천사에게 내가 이르되, 이것들은 무엇이니이까? 하니 그가 내게 대답하되, 이것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은 뿔들이라, 하니라. 또 주께서 내게 목수 네 사람을 보이시기에 그때에 내가 이르되, 이들은 무엇을 하러 왔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말씀하시여 이르시되 [이것들은 유다를 흩어서 아무도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한 뿔들이라. 그러나 이 목수들이 와서 그것들을 문질러 벗기고 자기들의 뿔을 유다 땅 위로 들어 그 땅을 흩은 이방인들의 뿔들을 쫓아내려 하느리라] 하시더라.

 

 

(스가랴서 1장 18-21절)

 

 

 

 

 

 

 

 

 

 

 

*

 

 

 

 

 

서쪽 탑 앞에 선 발레리안과 조세피나는 갑작스레 일어난 지진에 얼어 붙었다. 차이가 있다면 조세피나는 그 압박감에 휘청거리며 흔들렸으나 발레리안은 멀쩡히 서서 태연한 자태를 유지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기존의 의구심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새로운 의구심들이 발생해 복잡하게 뒤섞였다.

 

 

“시한폭탄?”

 

 

무슨 원리로 저런 장난을 칠 수 있는지는 이해되지 않았다. 라이텔바흐라는 인간, 도대체 어느 경지까지 도달한 것인가? 경탄과 함께 자존심이 미묘하게 긁혔다.

 

 

“뭔 장난을 친 거지?”

 

 

서쪽 탑의 주인은 이미 한참 전에 공략대에 의해 사망한 상태였다. 하지만 탑은 무너지지 않은 채로 그대로 박제되어 유예되었다. 탑을 부순 당사자인 심연 파괴자는 탑의 주인의 몸체를 ‘죽음과 생명 사이 어딘가의 상태’로 고정하여 미라로 만든 뒤 그 안에 방대한 무언가를 주입해두었다. 정확히 자신이 의도한 시점이 이르렀을 때에 한꺼번에 폭발하여 그가 원하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목적은 혹시……, 아, 그런 건가?”

 

 

탑 공략대의 정보에 의하면 동서남북 네 곳의 탑들에는 일정량 재생 능력이 담겨 있다. 그 능력들은 연동을 통해 상호 전이가 가능하며 네 개의 탑의 공명을 통해서 더욱 강력하게 발현된다. 하나의 탑이 주인을 잃고 무너지더라도 나머지 세 탑이 온전되어 있으면 세 탑의 힘이 무너진 한 탑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 공략대의 전력만으로는 한 번에 두 탑을 공략하기에 부족하며 최종 전력인 그 사람도 몸이 하나이므로 두 탑을 한 번에 칠 수 없다.

 

 

설마 이런 애로사항을 극복하게다고 저런 기발한 방법을 택한 건가? 그런 것이라면 이해가 된다.

 

 

 

 

 

네 대륙을 감찰하던 헌터 수장들도 긴급하게 보고를 받고 당황했다.

 

 

“서쪽 탑과 남쪽 탑이 무너져내린다. 그리고 동쪽 탑까지?”

 

 

공략을 마치고도 왜 두 탑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세 번째 탑을 치는 순간에 맞춰 미리 공략한 두 탑을 함께 붕괴시킨다. 그러면 세 탑이 합심하여 무너진 한 탑을 부활시키는 전략이 성립되지 못한다.

 

 

 

 

 

긴박하게 반전된 상황을 감지한 건 바깥의 헌터들만이 아니었다. 세미라미스 역시 긴급함을 발견하였다.

 

 

-서쪽의 바알님과 남쪽의 몰렉님이 서거하셨다? 어째서 그분들의 생명 소실 반응이 지금에서야?-

 

 

동쪽 탑의 부활의 힘을 담당하던 그녀였기에 나머지 세 탑의 주인들과 관리자들과도 연계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다른 탑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다. 유럽에 설치된 서쪽 탑과 아프리카에 설치된 남쪽 탑이 폭풍 앞에 무너져내리는 모래성마냥 기초에서부터 붕괴되어 산산이 부서져 쏟아지기 시작했다. 초월적인 구조물이니 완전한 붕괴까지 한 시간 이상은 걸리겠지만 이제 소멸은 불가피하게 확정되었다.

 

 

-하필 이 내가 부활 에너지를 모조리 군단을 만드는 데 쏟아부은 순간?-

 

 

파괴자의 덫에 걸린 것은 미리 무너진 두 탑만이 아니었다. 동쪽 탑도 정확하게 적의 타이밍에 맞춰 사로잡혔다. 만일 세미라미스가 모든 힘을 군단 만드는 데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서쪽 탑과 남쪽 탑의 붕괴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도 있었을 것이며 동쪽 탑도 다른 탑들의 조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무의미한 가정법이 되었다. 네 개의 탑 중이 셋이 공격을 받았고 서로가 상부상조할 여지도 남기지 않은 채 밑둥부터 침을 당했으니 속수무책이었다.

 

 

이윽고 거대한 망치 셋이 임하여 네 개의 오만한 뿔 중 셋을 동시에 후려쳤다.

 

 

-1층 붕괴, 대지 전체 소멸입니다.-

 

 

-2층 붕괴.-

 

 

-40층 붕괴, 소멸 반응 확인.-

 

 

무시무시한 속도로 탑의 시스템이 경보음을 전하였다. 격진은 점점 더 심해졌다.

 

 

-50층 소멸 확인.-

 

 

-76층 소멸 확인.-

 

 

-1층부터 80층까지 대지 째로 송두리째 파괴되었습니다.-

 

 

-적성 세력 진격, 막을 수 없습니다.-

 

 

-적 기체는 단 한 기.-

 

 

세미라미스는 긴장감과 동시에 기대감으로 충만하여 음심 가득한 얼굴로 전율하였다. 그 곁에 있던 담무스도 순수한 잔혹함을 담은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드디어 왔구나.-

 

 

그들이 그 말을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97층의 소멸을 알리는 신호가 도달했다. 다음 순간, 헌터들이 거하던 사잇공간 바로 밑이 송두리째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헌터들은 발밑을 보았다. 새하얀 섬광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막 부활한 바포메트는 섬광에 휘말려 그대로 가루가 되었다.

 

 

“다들 몸 잘 사리길.”

 

 

몇 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속도로 한 발사체가 진격하여 유리바닥을 송두리째 가루로 만들었다. 헌터들의 망토가 각기 보호막을 생성하여 그들의 몸을 안티-게이팅 에너지의 폭풍우로부터 보호했다.

 

 

-크르르르.-

 

 

100기의 바포메트들이 위에서부터 천장을 뚫고 내려와 몸을 수그린 헌터들을 향해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 도끼가 1인치도 진격하기도 전에 더 빠른 무언가가 그들을 관통하여 지나갔다. 헌터들은 그 풍압을 느꼈을 뿐 아무런 상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물체의 진격 궤적에 위치했던 100명의 바포메트들은 그대로 상체가 소멸되어 하체만 남았다. 직접 맞부딪힌 것도 아니고 그저 교통 사고처럼 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 여파만으로도 일거에 소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98층 소멸.-

 

 

세미라미스는 재빨리 99층의 가장 깊숙한 후방으로 퇴각했다. 한 사람의 형체가 99층 위로 치솟았다. 그는 오른손에 여러 색채의 에너지들을 응축하여 쥐고 있었다. 백색 파동을 분리하여 만들어낸 광원들이었다. 고도로 농축된 분리 성분들은 가장 높은 효율로 공진하여 최상의 공명을 이뤄내었다. 그의 왼손에는 대량의 섬멸물질로 생성된 창이 한 자루 있었다.

 

 

“약속은 지켰다.”

 

 

흑회색 머리에 검은 나노 슈트와 코트형 로브를 입은 젊은 남자. 머리에는 호흡용 마스크 외에는 아무런 무장도 착용하지 않았다. 어찌나 자신만만한지 따로 들고 온 헌터웨폰도 보이지 않았다.

 

 

“수고했으니 나머진 맡겨라.”

 

 

붉은 눈의 사내는 왼손의 섬멸물질을 형태 변형하여 수십 갈래로 뻗어나가는 나뭇가지들의 형태로 바꿨다. 각 나뭇가지 안에는 불꽃의 형태로 백색파동 농축체가 입혀졌다. 나뭇가지들은 화려한 춤사위를 그리며 이리저리 궤도를 틀고 곡선을 그리며 온갖 방향으로 진격하였다. 수천 개의 에너지 작용이 중첩되었다. 수십 개의 원점에서 시작된 파동의 폭발이 겹치고 겹쳐 극한까지 공명하였다. 그것들은 확대되어 99층 전역을 덮었다.

 

 

콰아아아아앙.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우글거리던 1층부터 98층까지의 주인들이 엄청난 압력과 진동에 그대로 선 채로 그대로 분해되었다. 그들이 아직 서 있을 때 그들의 눈구멍에서 눈이 소멸되었고 뼈 위의 살이 소멸되었으며 혀가 녹아내렸다. 일시에 말라 비틀어진 잔나뭇가지만 남았고 그마저도 흙이 되어 흩어졌다.

 

 

-현 병력 8% 소멸.-

 

 

이 엄청난 격변 속에서도 헌터들은 옷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 앞에서 최전선의 바통을 넘겨받은 사령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헬게이트를 상대로는 절대 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 인류 유일의 EX 랭크 헌터. 라이텔바흐 벤 키르헤른스트가 모든 층을 강제로 부수고 99층에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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