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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77회 어니스트의 룸메이트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5.10.18 | 회차평점 0 0

 

 

 

어니스트와 라이텔바흐, 두 사람의 동거는 사실 순탄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삐걱거렸는데 이는 너무나도 상이한 생활 방식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라이텔바흐의 까칠한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그 집에 들어간 첫날부터 어니스트는 적잖이 고생해야 했다. 그는 라이텔바흐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가 의외로 자세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첫인상은 호인(好人)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헬게이트 사고로부터 구조해 준 사람이다 보니 약간 오만해 보이기는 해도 그가 전반적으로 좋은 사람이리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고 여기에 대해서 크게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란 사적인 공간에 있을 때야 비로소 본색이 드러나는 법이다. 거칠고 투박한 면, 이기적인 면, 자기중심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면, 누구에게나 이런 어두운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 이런 측면은 모두 앞에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공간이 아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 악취를 풍기는 법이다.

 

 

라이텔바흐는 자기 생활 방식에 거슬리는 부분이라면 가까운 친구에게라도 거칠고 사납게 말하는 편이었다. 특히 자신이 사적 영역이라고 간주하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런 까칠한 성격 때문에 그는 공적인 인간관계 외에는 사적으로 친밀한 인연을 두기를 꺼리는 편이었다. 그는 내향적이었고 혼자 고독하게 있는 것을 좋아했다. 필요하다면 인간과의 교류를 감수하지만 어디까지나 의무감에서 우러나오는 사무적인 행동일 뿐이다.

 

 

만일 플레먼의 부탁이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어니스트를 받아줄 일도 없었다. 만약에 플레먼과 어니스트가 그의 학구적인 호기심을 유도하는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었더라도 거들떠보지 않았겠지.

 

 

 

 

 

첫날부터 어니스트는 라이텔바흐의 우발적인 폭언과 신경질을 몇 번이나 감수해야 했다. 집안일을 돕다가 집주인의 생활 방식을 고려하지 못해 실수를 몇 번이나 연발했고 그때마다 라이텔바흐는 거칠게 신경질을 냈다. 짜증을 부릴 때도 있었고 반대로 무시하듯이 냉담하게 취급할 때도 잦았다.

 

 

상처를 전혀 받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참고 용인했다. 그는 굴욕감에 굴복하지 않았다. 자존심을 걸고 씨름하는 건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상처를 마음에 담아두는 것도 원치 않았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올바르게 아는 사람은 자존심에 대해 온전하게 죽는 법이다. 자기 권익을 오롯이 포기한 자, 권리 주장 서류를 기꺼이 폐기한 자는 어떤 자극에도 무반응으로 응수할 수 있다. 이것은 비굴한 굴종과는 달랐다. 자신의 가치를 천대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어니스트는 자신의 존귀함이 자기 자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공급됨을 알았고, 그 존귀함이 주님 안에 안전하게 감춰져 있음을 알기에, 이 땅에서 겪는 작고 사소한 상처와 공격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아픔은 느낄 수 있었다. 기대할 것 없는 원수들이라면 모르겠으나 기대를 걸 만한 사람에게서 실망할 거리를 발견하는 것은 좀 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이란 그의 흠모할 면이나 장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배워온 어니스트는 상대를 ‘나의 편리함’이라는 잣대에 맞춰 취하거나 버리기보다는 상대의 존재 그 자체를 받아주기를 추구했다.

 

 

그랬기에 그는 폭언을 듣건, 냉대를 당하건, 괴로운 신경질이나 싸늘한 눈빛을 받건, 개의치 않고 일관적인 모습을 유지했다. 상대의 거친 면에 위축되지 않는 그의 친절과 다정함과 친근감은 그의 장점이었다. 전날에 심한 말과 예의 없는 대우를 받았으면 최소한 주춤하게 되기라도 하는 게 보통 사람이거늘, 그는 철면피라서 그런지 이런 면에서는 수치심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질겁한 건 라이텔바흐였다. 그 역시 자신의 모난 성격으로 인해 가까운 이가 상처 받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리는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일부러 외면하며 사과를 피하던 그였다. 그런데 어니스트는 상처를 전혀 안 받기라도 한 양 어제의 불합리한 대우를 말끔히 잊어버렸고 내일은 똑같은 다정다감함으로 섬김에 임했다.

 

 

마치 태양이 내일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 같은 불변성이었다. 저렇게 꾸준히 신실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키나 한 것인가. 일이 반복되며 하루하루가 쌓이자 되려 라이텔바흐 쪽이 불편감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죄책감이라고도 볼 수 있고 부채감이기도 했다.

 

 

더욱이 지금껏 그가 만나온 상대는 몇 명의 예외를 빼고는 대부분 그를 잘못 대우하거나 학대하거나 이용하려던 자들이었다. 아군이라고 해도 그에게 빚진 자들인 경우가 많지 지금처럼 자신이 마음의 빚을 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구해주고 키워준 은인들의 경우 충실하게 섬김의 의무를 다했기에 딱히 죄책감에 빚진 마음은 아니었다. 어니스트는 이례적인 경우로, 자신의 못난 모습을 다 보고도 아무 의무감 없이 자유의지로 자신을 섬겨준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 그 빚이 쌓여 견디기 힘든 수준이 되자 라이텔바흐는 이렇게 생각했다. 기회가 되면 적절히 부채감만 덜자. 자존심을 최소한으로 굽히되 적절히 상대의 면을 살려주며 인사치레라도 하자.

 

 

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존심이 충돌하자 망설임이 더욱 커졌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성숙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전쟁터 이상의 용기가 요구되었다. 이런 경험에 자주 노출되지 못했던 라이텔바흐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종들아, 모든 두려움으로 너희 주인들에게 복종하되 선하고 부드러운 자들에게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베드로전서 2장 18절).

 

 

 

 

 

 

 

 

 

 

 

 

 

 

*

 

 

 

 

 

둘의 공동생활이 어느덧 8개월 차로 접어들었다. 중간에 탑 공략을 위해 석 달 정도 떠나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다섯 달이나 룸메이트로 지낸 셈이다. 이렇게 기나긴 시간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라이텔바흐는 자신의 의무를 돌아보았다. 용기를 내기란 그만큼 어려웠다.

 

 

“식사 때 잠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시간 괜찮은가.”

 

 

라이텔바흐는 평소와는 달리 단정하게 잘 갖춰 입은 차림으로 어니스트에게 말을 걸었다.

 

 

“늘 넘치는 게 시간이죠.”

 

 

“잘됐군.”

 

 

두 사람은 저녁 식사 시간에 이르러 같이 자리에 앉았다. 집주인의 불규칙한 식사 패턴 탓에 원래는 겸상하기보다는 어니스트가 식사를 먼저 마치고 상대의 음식을 챙겨주고 섬기는 식이었다. 라이텔바흐가 사적 영역에서 이기적으로 굴지 않고 상대의 시간과 형편에 자신을 맞춰주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었다.

 

 

“사실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네, 어니스트 군.”

 

 

“무슨 말씀이요?”

 

 

어니스트는 혹 무슨 책망을 듣지 않을까 염려하며 긴장하였다. 라이텔바흐는 어색함과 민망함으로 한참을 뜸 들였다. 그는 자존심을 내려놓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해야 존엄 있는 인간다운 모습이리라.

 

 

“그……, 나한테 서운한 일이 있었다면 솔직히 말해줘도 좋아.”

 

 

차마 직접적인 사과로 시작하기가 망설여졌는지 그는 이렇게 시작했다.

 

 

“네?”

 

 

“그러니까……, 나 때문에 그동안 많이 고생했을 거 아닌가. 아니, 고생 많이 한 걸 나도 안다. 내가 자주 서운하게 굴었던 것도.”

 

 

평소의 용맹하고 당당하던 태도는 간데없었다. 쭈뼛거리며 상대의 눈치를 보는 수축된 모습. 라이텔바흐와는 많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욕을 삼키며 자신의 한심함을 힐난하였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부끄러움에 귓불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러니 너도 참기만 하지 말고 당당하게 요구해달라고. 너에게도 마땅히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정식으로 고용된 사람이니 식객처럼 대우받을 이유는 없지.”

 

 

어니스트는 저 양반이 오늘 뭔가 잘못 먹었나 싶어 의아했다.

 

 

“이제야 이런 변명을 하는 게 모양 빠지긴 하는데, 난 이렇게 많이 뒤틀린 인간이다. 너처럼 착하고 부드러운 사람과는 달라. 사회성도 부족하고, 인간미도 없는 냉혈 인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의 없이 군 것이 합리화되진 않겠지만…….”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라이텔바흐는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조금 너그럽게 이해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 어렵긴 하겠지만 최대한 잘못된 버릇을 고쳐보려고 노력할 테니까.”

 

 

이어서 라이텔바흐는 자신이 사려 깊지 못하게 대했던 순간들, 냉대하며 무관심하게 굴었던 순간들, 그리고 말로 상처 주었던 것들에 대해 작게나마 사과했다. 원래라면 더 확실하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겠지만 차마 거기까지는 무리였다. 또 모든 순간들을 다 기억하지도 못하니 생각나는 부분에 대해서만 사과해야 했다.

 

 

어니스트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놀라운 발전으로 보였다.

 

 

“고마워요.”

 

 

그는 웃으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용기 내 말해주셔서.”

 

 

어니스트는 친구가 자신과의 우정을 진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고 안도감을 느꼈다. 성격 면에서 흠이 많은 사람인 것은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니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많겠지. 그렇기에 딱히 원한이나 앙심을 품지 않았고 편견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기다려줄 뿐이었다. 그 인내심에 보상을 받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럼, 저희 이제 더 잘해보는 겁니다.”

 

 

화해의 뜻으로 어니스트는 손을 내밀어 화친을 제안했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상부상조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준장님도 더 인간다운 복지의 삶을 누릴 테고 자신도 플레먼 도련님의 임무를 잘 수행할 테니까.

 

 

“잘 부탁한다.”

 

 

라이텔바흐는 흐뭇한 기분으로 자신을 칭찬했다. 자존심을 약간 포기한 대가로 일을 좋게 좋게 끝냈다. 이제 앙금을 잘 청산했으니 새 기회를 얻었다. 무엇보다 밥 챙겨주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잘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어니스트 같은 유능한 살림꾼이라면 더욱더. 세계 최강의 전사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

 

 

 

 

 

라이텔바흐를 섬기는 과정에서 어니스트는 과거와 관련된 단서들을 목격할 기회를 자주 마주했다. 라이텔바흐가 종종 무의식중에 흘리는 단편적인 말들이 그것이었고 그의 행동 패턴도 그러하였다.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몸뚱이였다.

 

 

이 성격 까탈스럽고 손 많이 가는 흑재규어를 공손히 섬기고 용인하는 중 그의 몸에 남은 여러 잔흔을 자세히 볼 일이 종종 찾아왔다. 겉보기에는 골격도 반듯하고 건장하며 빈틈없이 건실하게 짜인 고밀도의 근육이 매우 건강해 보였다. 언뜻 생각하면 그가 학대받으면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노라는 사실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라이텔바흐는 무슨 일을 겪었길래 온갖 가혹한 일들을 체험하고도 번듯하게 자라날 수 있었는가. 이것이 어니스트의 머릿속에 자주 스친 의문 1번이었다.

 

 

다른 질문은 그의 특이한 신체적 특성이었다. 헌터들의 생리학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 어니스트였지만, 서당 개가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라이텔바흐네 집에서 같이 생활하다 보니 적잖은 정보들을 주워들어 알게 되었다.

 

 

헌터들의 신체 내에는 일종의 나노머신 형 입자들이 존재하는데 그것들은 현대의 과학 기술로 재현해 내지 못하는 오파츠라고 한다. 또한 그들의 뇌 조직 속에도 현대 기술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괴한 인공 세포들이 존재하여 자연적인 뇌세포들과 더불어 매우 독특한 신경계를 이룬다고 한다. 헌터들이 여타 인간과 달리 지나치게 똑똑하고 강한 이유가 이 때문이란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것들이 만들어졌지?’

 

 

만일 백만 명 가까이 되는 헌터들에게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인공 세포 및 나노입자 기술이 존재한다면 왜 그 기술이 상용화되지 못했을까? 세계 정부라면 그 기술들을 얼마든지 악용하여 자신들의 야망을 더 실현하고도 남는다. 그들은 어째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여러모로 불가사의였다.

 

 

마지막 한 가지 의문은 라이텔바흐의 흉터였다. 그의 몸 곳곳에는 학대의 흔적으로 남은 옅은 흉터들이 있었는데 상체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얼굴을 제외하고는 없는 부위가 없었다.

 

 

어니스트가 집에 들어온 뒤로 라이텔바흐가 잘 먹고 잘 쉬고 물리치료도 잘 받으면서 옛 흉터들은 생각보다 많이 옅어졌다. 아마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심리 속에 남은 과거의 흔적이 치유되면서 체내의 헌터 전용 회복 장치들이 흉터마저 지우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만, 전혀 지워지지 않는 상처도 있었는데, 인간 남성이라면 보편적으로 누구나 감추고 싶은 은밀한 부위에 새겨진 흉터였다. 그 수치스러운 부위에는 어떤 특정한 모양의 흉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뿌리부터 줄기를 거쳐 말단에 이르기까지, 온통 빼곡하게 도배되어 있었다. 정삼각형과 역정삼각형이 겹쳐 만들어진 육각 별 모양이었다. 칼로 베어 피부 위에 낸 상처, 뜨거운 인두 같은 것으로 지져서 만든 화상 같은 것, 전부 육망성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저 문양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감히 캐내고 싶은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궁금증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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